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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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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이야기책.

 

삶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자면 끝도 없겠지만,

이 안에는 풍부한 이야기들이 조용히 모여 있다.

 

우선, 책을 읽는 일에 많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480페이지나 되어

두꺼움?

이렇게 보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책값 13,000원은, 좀 비쌈? 이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책을 잘 안 읽는 한국 사람들에게,

정호승이라는 유명세와,

쉽고 편하게 읽을 거리로는 이 책도 적당하겠다.

적당히 감동받을 이야기들도 많이 담겨 있다.

 

감동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고 삶에 에너지를 얻는가 아닌가는,

책에 담긴 에너지가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발전기를 돌리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3등은 괜찮지만 3류는 곤란해...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오래 견딘 나무가 재목이 되는 법.

무딘 연장을 가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홀로'와 '혼자', '공백'과 '여백' 늘 바쁘게 빡빡하게 사는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다시 도전하라. 또다시 실패해도 좋다. 이번엔 한결 성공에 가까워져 있을 테니까.(사뮈엘 베케트)

천국을 맛보기 위해서는 네 가지 양념이 꼭 필요하다. 단순, 절제, 소박, 작은 것에 만족함.

 

마치 101가지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읽고 한동안 가슴 벅차했던 것처럼,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맑은 샘물로 가득한 우물이 있다 한들,

그 물을 얼마나 떠가느냐는... 두레박질하는 독자의 몫일 뿐.

 

-------------살펴볼 곳.

89쪽. 사의제...가 아니라, '사의재'가 옳다. 서재를 가리키는 '재(齋)

 

358쪽. '야곱의 사다리'보다 '빵장수 야곱'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요나 : 저는 나이가 들면 부자가 될 거예요.

야곱 : 조금만 덜 원하면 넌 이미 부자란다.

요나 : 야곱 아저씨,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싶지 않은세요?

야곱 :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원하던 것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라 필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부자가 되는 거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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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신간 서평단은 매월 5일까지, 이런 페이퍼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3월 5일이 지났는 줄도 모르고, 새 달이 지나가고 있는 줄도 모르게,

내가 눈을 뜨고 사는지도 모르게 첫 주가 지나가고 보니, 3월도 10일이다.

 

1. 박광수, 야구생각

 

   광수 생각의 박광수,

   야구에서 인생을 배운다는데... 한번들어보고 싶다.

 

 

 

 

 

 

 

 

 

 

2. 리사 나폴리, 행복한 라디오

 

 

세상에 지친 어느 저널리스트의 행복 찾기 여정. CNN, 뉴욕 타임스 등에서 리포터 및 칼럼니스트로 일했으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한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부탄에서 일하게 되고, 부탄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 가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은 책이다.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면, 악한 내가 착해지는 착각을... ㅎㅎㅎ

 

 

 

 

 

 

 

3. 정수복, 책인시공 - 책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에세이와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리와 프로방스의 골목에 숨어 있는 '사색과 영감의 장소'들로 독자들을 이끌었던 사회학자이자 작가 정수복의 에세이. 그가 이번에 걸어들어간 곳은 특정 도시나 마을이 아닌 '책과 독서가들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4. 신창범, 국경없는 괴짜들

 

 

국경없는의사회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도주의에 투철한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슈바이처 박사나 테레사 수녀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인도주의에 투철하지도, 게다가 의사도 아니다.

 

 

 

 

 

 

 

 

 

 

5. 김경민, 젊은 날의 책 읽기

 

 

<시 읽기 좋은 날>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저자가 내어놓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에세이. 흑백영화처럼 스치는 사진과 함께 펼쳐지는 책 속의 문장들은, 이미 우리가 접했던 책이라 할지라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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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림 떨림 울림 - 이영광의 시가 있는 아침 나남시선 83
이영광 엮음 / 나남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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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역순 사전'이란 것이 있다.

한국어는 음절 단위로 표기를 하도록 되어있고,

한자어로 된 말들이 많아서 뒷글자부터 사전을 만들어도 꽤나 유의미할 것인데,

거기서 찾는다면, '-림'의 칸에 홀림, 울림, 떨림... 이런 말들이 등장할 법 하다.

더 생각해 보면, 말림, 갈림, 졸림, 불림... 이렇게 ㄹ-로 끝나는 용언들의 명사형은 제법 엮는 재미도 있겠다.

 

이 책의 표지가 참 이쁘다.

빛깔도 곱고, 크기도 아담해서 손가방에도 쏙 들어갈 사이즈이고,

돋을새김으로 홀림, 떨림, 울림을 표현해 보려한 듯,

동심원과 물결선들이 새겨져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왼손으로 표지를 쓰다듬게 된다.

사랑스런 책은 눈으로 읽는 것 외에도 쓰다듬는 용도로도 쓰인다.

 

중앙일보에 '시가 있는 아침'이란 꼭지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인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시집 좀 사 읽읍시다~ 라고 외치려는 듯,

비교적 낯선 시인들의 낯선 시들이 많다.

그렇지만, 시의 목소리에 대한 그의 언어는 사뭇 따스하고 한켠 웅숭깊으며, 사려깊다.

 

시는 원래 살기 막막한 사람의 말.(서문)

 

시는 소설과 다르다.

소설은 특별한 인물이 어떤 시대적, 공간적 상황(배경)에서 겪게 되는 일(사건)을 통하여,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어서,

독자는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소설 속 인물을 잘 아는 듯이 여겨지고, 그 배경을 잘 이해하게 된다.

반면, 시에서는,

뜬금없이, 불현듯, 어떤 처지인지 알기 힘든 화자가, 혼잣말로 몇 마디 내지르고 사라진다.

그래서 시의 독자는 혼자서 끙끙 앓으며,

도대체 이 화자의 처지는 어떠하며, 의도는 무엇인지,

어떤 상항에서 이런 말을 하려 했던 건지... 궁금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설 해설서'에 비해 '시 해설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의 언어는 절박함에서 튀어나온 독백이다.

그것을 원래 살기 막막한 사람의 말~ 이라고 했다.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시는 자주 가까이 다가온 먼 것의 목소리(52)

 

시가 압축하여 삶의 비의를 보여주려할 때,

일반적 삶의 언어로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살기 막막함이 극에 달하면,

존재의 기반이 다른 먼 것의 목소리조차 낯설지 않게 공감하며 울릴 수 있을지도...

 

소망스러운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 없을 때 시는 태어나는 것 같다.

결핍은 시의 문전옥토다.

당신이 와버리면,

당신이 전부일 나에게 시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173)

 

아, 이 해설은 시보다 아름답다. 청출어람 이청어람...이랄까.

이 해설은 손 세실리아의 문전성시 덧글이다.

 

문전성시

                        손세실리아

 

해안가 마을길에 찻집을 차린 지 달포

발길 뜸하리란 예상 뒤엎고 성업이다

좀먹어 심하게 얽은 싸리나무 탁자

마당 정중앙에 버텨 앉은 맷돌상

바다정원의 화산암 테이블

좀처럼 빌 틈 없다 만석이다

기별 없는 당신을 대신해

떼로 몰려와 종일 죽치다 가는

 

눈먼 보리숭어

귀 밝은 방게

아기 보말

남방노랑나비

 

당신이 없는 그자리

종일 텅 비어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그 자리...

다른 모든 것 다 있는데, 보리숭어, 방게, 보말(고둥), 노랑나비까지...

삶의 증거로 가득차 있는데,

화자가 그리워 죽겠는 당신은 삶의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핍이 시의 문전옥토라니... 그렇구나...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

좀 들여다봐주었으면 하는

혹은 아무 욕심도 없는 마음

그런 게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이상국,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부분)

 

시인이라고...

스스로 시어를 갈고 닦는 사람이라고 자부심 가지고 살았건만,

감옥에 있는 사람의 편지,

많이 아픈 사람의 전화,

이런 언어 앞에서 돌아본다.

 

시인이 의지한 윤리 가운데 하나는 그가 누군가를 대신해 말한다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어떤 때는 그 누군가가 제 입을 빌려 말한다는 느낌에 닿기도 하는 것 아닐까.

대신이라는 점에서 그는 얼마간 사제를 닮았다.

사제의 길과 시인의 길은 어느 험로에선가 갈라지겠지만,

대신 아프고 대신 슬픈 몸을 지녀야 시인은 아픈이와 갇힌 이의 긴 얘기를 어렵사리 들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얼음아내...

여보, 건너려고만 하면 녹아 허물어지는

이 얼음다리 위로

나 어떻게 건너가지?(얼음나라 체류기, 유홍준, 부분)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차없이 무로 바뀌어가는 곳에서,

기막혀 하지도 않고 살고 있다.

요컨대 허망을 산다.(89)

 

시가 그려내려는 것 역시, 허망하고 요망하다.

그걸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에게, 시는 근본적으로 그런 걸 그리는 것임을 짚어준다.

 

이 책에서 유심히 몇 번 읽었던 시 한 편.

 

선어대 갈대밭

                      안 상 학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 있다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

 

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거다

 

갈대와 바람의 이별은 봉두난발에 몸부림의 시간을 넘어

피어나는 어떤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평등하게 사랑하는 두 존재의 헤어짐은

어느 결에 슬픔을 훤칠하게 넘어서 있습니다.(60)

 

이영광의 해설 아니라도,

매달리고,

끌고, 뿌리치고,

다독이고,

등 떠미는...

바람과 갈대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어느 하나로 해석할 수 없는...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깊은 시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서정주에 대한 한 마디.

 

시인은 영욕의 세월을 살다 갔으나,

그의 시는 남아서 이렇게 의젓하다.

한 번 더 읽어드리고 싶은 대목.

 

나그네 배때기에

등줄기 뜨시하여

이 시린 물 또 한 번 업어 건넨다

 

좋다. 어디에도 꿰맨 자국이 없는데, 참 좋다. (79)

시인이 시를 읽고 몇 마디 덧붙인다는 것은 쉽잖은 일이다.

몹시도 욕심났을 것이다.

자기보다 더 뛰어난 시재(詩才)를 만나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처럼 부르르 떨기도 여러 번 했으리라.

허나,

시어란 팍팍한 우물에서 길어올린 한 바가지 두레박임을 알기 때문에,

참 좋다~

이렇게 덧붙일 수밖에 없는 그의 '떨림'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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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마이클 굿윈 지음, 김남수 옮김, 댄 E. 버 그림 / 다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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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물질의 흐름을 파악하는 학문인 듯 하다.

그렇지만, 경제학에서 중심에 서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주류 경제학을 내세우는 자들이 교묘하게 감추려 드는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들도 있듯이,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만 배부른 세상을 행복한 세상이라고 여기게 마련이다.

자기들이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경제학을 필요로 한 것이다.

 

가진 사람들.

특히 미국의 부호들은 어떻게 부호가 되었는가?

그리고 세계화의 틀 속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더 부자가 되었고,

후진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더 가난에 몸부림치게 되는가.

 

이런 것을 쉽사리 이해하긴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몰이해가 정치적 무관심이나 쏠림현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경제 학습 시간에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은,

신문에서 마주하게 되는 리만 브라더스의 몰락과 9.11과 연관성을 짓기 힘들다.

 

이 만화가 시도하는 바는, 대단하다.

경제의 역사를 간결하게 꿰뚫으면서,

인간에게 경제학이란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설파하고 있다.

 

비주류, 소외된 사람들은 월가에서 99%를 위한 경제학을 외치는 시대가 왔다.

경제학 역시 99%가 이해할 수 있어야 그것이 학문일 것이고,

정치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을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미국에 국한된 경제적 흐름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라는 흐름은,

결국, 인간의 욕심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불거지는 갈등들의 원인은 결국 욕심의 갈등임을 알게 된다.

 

복잡한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의 기저에서 흐르고 있는 도도한 경제의 흐름을

이 책은 경쾌한 만화로 설명해 주고 있다.

 

고등학교 문과반 아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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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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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주목한 사람이 왜 에라스무스란 사람일까? 몹시 궁금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예술이다. ^^

보통 사람들이 평전을 쓰면 '그는 이렇게 태어나 살다 죽었다'가 되는데,

츠바이크의 글에서는 온갖 비유와 수사를 곁들여 읽는 양념맛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그냥 풀을 뜯어 먹는 것과, 샐러드 드레싱을 즐겨가며 먹는 맛은 천양지차일 거시다.

 

최초의 의식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 에라스무스.

그의 비극을 통해 츠바이크는 자신의 비극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라스무스는 레가토를 사랑한 남자였다. 비유하자면...

레가토는 피아노 연주할 때, 음과 음 사이를 최대한 이어지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소리내는 주법이다.

스타카토와 상반되는 개념인데, 혁명과 열기가 스타카토라면, 에라스무스의 고귀한 인문정신에 대한 숭고한 찬양은 레가토인 셈이다.

 

광신과 폭력으로 점철된 종교전쟁이란시대의 혼란 속에서,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루터파의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극단을 거부하는 에라스무스는 결국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편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그 격동의 시기에 인기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역사는 그것을 보여주는 교과서다.

 

에라스무스, 실망한 이 늙은 남자.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해서는 안 될 이 늙은 남자가 전쟁과 유럽의 분열이라는 혼란 한 가운데서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 도래할, 그리고 결코 막을 수 없는 인류의 인간화에 대해 모든 종교와 신화가 갖고 있는 희망의 원초적 꿈이었으며,

이기적이고 일시적인 격정에 분명하고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리라 희망하는 꿈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때로는 자신감을 잃은 손으로 그려 놓은 이러한 이상은 항상 새로운 희망으로수십 세대에 이르도록 유럽의 시각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253)

 

세계사를 배운 내가 기억하는 그에 대한 것은 '우신 예찬'이라는 책 제목 뿐이다.

르네상스와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ㅠㅜ

이제 츠바이크를 통해, 잔인한 정치의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품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츠바이크가 살았던 시대 역시 나치즘의 잔인한 시대였지만, 어느 한 시대 잔인하지 않은 시대는 없으므로,

에라스무스를 읽는 일은, 극단에서 벗어나기를 한없이 간구하는 수도자 아닌 수도자의 열망이기도 한 셈이다.

 

츠바이크를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그는 나쁜 소식을 듣고 나서야 놓쳐버린 순가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79)

 

루터와의 논쟁에서 그가 적절한 시간에 논박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편지만 써대고 있었던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결정적인 힘, 운명과 죽음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서는 일은 드물다.

그들은 매번 얼굴을 감춘 사자를 조용히 보내지만,

그를 맞은 사람들은 대부분 비밀스러운 그의 말을 흘려듣는다.(139)

 

아~ 에라스무스가 루터의 편지를 받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해석한 대목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츠바이크의 광팬이 될 수밖에... ^^

 

인문주의 세계 제국의 군주(209)

 

츠바이크에게 에라스무스는 이런 존재였다.

그러나 그 군주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츠바이크에게 그 군주의 치명적 결함 역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문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은 인문주의가 민중을 이해하고 그들로 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위에서 그들을 그르치려 했다는 데 있다.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영역은 단지 얇은 상층부만 포함하고 있었고 현실과의 관계는 상당히 약했다.(133)

 

이런 글을 읽으면, 왜 돌아가신 전 대통령과 유시민 같은 사람들 생각이 나는 걸까?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27)

 

종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니, 종교 전쟁의 촉발을 제공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가톨릭의 부패를 조롱하고 풍자한 '바보 예찬'의 저자로서 중도를 지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가상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줄타기였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는 광대는 줄에서 떨어지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무게중심을 변화시키면서, 이쪽과 저쪽의 균형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줄타기의 유일한 방법일지니...

츠바이크에게 에라스무스가 그만한 무게로 다가선 것은,

에라스무스가 처한 광포한 현실과,

그가 추구한 이상이 그만큼 절실한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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