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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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유명하다.

이 소설은 특이하다.

이 소설은 신기하다.

이 소설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궁금하다.

 

19세기 월스트리트에 취직한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는 열심히 남의 서류를 베끼는 작업에 몰두해야 하건만,

바틀비는 아무 이유도, 연유도, 까닭도, 연원도 밝히지 않고,

무작정,

저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이 소설을 들고 있으면서, 당혹스러웠고,

도대체 이야기하는 바가 뭘까 의아했고,

바틀비의 경직된 자세에 내가 다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읽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갖게 되는 느낌은,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는 이 책의 바틀비를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 자신이 해야할 일을 고집스럽게 안 하겠다는 말을 반복할까?

현대의 파편화된 인물들은 이유없이 어떤 일엔가 몰두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 조직이나 구조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은 채...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은

'하지 않겠다'와는 다른 느낌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관료사회를 살아가는 파편화된 개인들에 대한 반성도 좀 하게 되고,

과연 현대 사회에서 '선택'이란 가능한 것인지도 돌아보게 된다.

 

검푸른 바다로 흰 고래를 잡으로 떠나던 현대의 오딧세이아를 쓴 멜빌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온몸을 돛대에 묶고 눈과 귀를 모두 가려버린 오디세우스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벽'으로 가로막힌 월 스트리트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불현듯 나타난 바틀비의 강경한 목소리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도돌이표를 되밟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어떤 '부정'과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블루 오션도 원래는 존재하였음을...

그리하여, 블루 오션을 향한 항해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도 있지 않겠냐는 물음을...

불친절하게 툭,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27)

 

바틀비는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가 주어진 일을 거부하면서,

아니, 안 하는 편을 '선택'하면서,

그는 두 눈의 모습이 달라진다.

 

우리는 두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같다고,

하나의 초점으로 상이 맺힌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선택' 이후, 좌우 양안에 비추이는 세상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다양한 생각을 시작하게 만드는 바틀비,

그의 불친절함에 대하여,

그의 불친절한 '선택'에 대하여... 생각만 많고,

삶의 선택엔 정답이 없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금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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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원의 서울연가
사석원 지음 / 샘터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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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문에 연재한 사석원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다.

이야기가 가볍고 경쾌하지만,

예술가의 치기가 가득 묻어있기도 하다.

주로 술마신 이야기, 술마시러 다닌 이야기, 술마시면서 만난 사람 이야기, 술집 이야기로 질펀하다.

 

그림의 질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신문에 실으려고 슥슥 그려 그렇겠지만,

몇가지 주제를 잘 함축한 그림엔 눈길이 갔고,

사람사는 북새통을 그린 그림들은 별로였다.

 

그의 그림들 중, 남산골 딸깍발이를 그린 것이나,

인사동 천상병의 귀천을 그린 것,

청량리 아가씨를 동백에 비유한 표지화 같은 것은 나름 멋진 그림들이기도 하다.

 

 

그가 나보다 대여섯 살 많으니,

7,80년대 서울 풍경을 기억하는대로 적고 그리는 점은 풍속도로 읽을 만 하다.

가~끔 그의 글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몇 부분만 옮겨 놓는다.

 

나는 민중미술 작가들을 불편해했다.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거칠었다. 그들의 뒤풀이 장소는 부글부글 끓는 활화산 같았다.

화나면 화나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날것의 상태로 드러냈다.

복숭아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는 선홍색이 너무도 흥분된다며 꽃밭에 들어가서 용두질을 하고야마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솔직한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미술에서 민중미술 말고 자생한 것이 있었을까?

민중미술을 빼면 모두 다 수입한 것이다.

우리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147)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열린 시각으로 볼 줄 아는 마음도 그의 이점이기도 하다.

 

스무살이 되었고 대학생도 되었다.

대학은 그전과는 딴세상이었다.

이전 세상이 밝거나 어두운 정지화면이었다면

대학생활은 점멸하는 네온사인처럼 쉴 새 없이 선과 악이 교차했다.

때론 열광하고 때론 아프고 때론 애틋한 젊음의 몸부림이 있었다.

진실도 모른채 집단의 신념에 충실하기도 했다.

때로는 갑자기 피었다가 갑자기 지고 마는 벚꽃처럼 간교한 사랑의 술수에 휘말렸다.

그래서 목덜미에 창이 꽂힌 노루처럼 오랫동안 죽은 듯이 늘어져 있기도 했다.

대학은 달콤한 꿀물과 매혹적인 분내와 쓰디쓴 독배를 동시에 내게 안겨주었던 알 수 없는 곳이었다.(166)

 

젊은 시절을 이렇게 묘사해 내기도 쉽잖은 일이다.

 

원래 서울 여인들은 수더분하기보다는 깔끔하고, 푸짐하기보다는 야무진 느낌이 풍겼다.

꼭 조여진 버선발의 사뿐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잘 씻어서 껍질을 깎아놓은 생밤알 같다고나 할까.

곱고 사근사근한 말씨에 깍듯한 예의범절을 갖춘 서울 여인들.

알뜰하면서도 부지런하고 때론 지나치게 경우가 밝아 다소 차가운 인상을 풍기기도 했던 서울 아낙네들.

그녀들의 말은 졸졸졸 물소리같이 맑고 명랑했다.

서울 여인들은 비교적 말이 많고 빨라 받아 적기가 힘들고 힘을 빼서 발음해

억양에 변화가 적어 타지인들은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도란거려 무슨 재미난 소설 읽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랬던 서울 여인들의 토박이 말투가 지금은 오래된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말투는 전국 팔도가 비슷비슷해졌다.

모두 같은 고향 출신인 듯 엇비슷한 음색으로 말을 한다.(260)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눈 앞에서 서울깍두기처럼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서울 여인 한 명을 만나는 기분이다.

 

서울의 추억이 담긴 지명들이 거론될 때면,

나도 옛추억에 잠길 수도 있었고,

그의 술판에서 술마시지 않고도 거나해진 기분이 되기도 했다.

 

사석원의 그림과 글을 좋아하지만,

좀 잡스런 글들이라 아쉬운 점도 많았던 책.

 

어느 인터뷰에서 문화일보 신세미 기자에게 사석원이 이런 말을 했다.

 

미처 읽지 못한 책들도 많아요.

그래도 일생에 한 번,

한 부분이라도 읽느다면 그 책의 소임을 다 한게 아닐까요?

 

책을 많이 읽기 힘든 학기 초,

그의 말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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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4-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기초라 많이 바쁘시군요.
3월부터 백수인데도 책 잡기가 쉽지 않네요.ㅠ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뭐... --;

기껏

만우절 거짓말이라면... 이런 수준...

 

4월 읽을 만한 에세이를 몇 권 뽑는다.

 

1. 그대, 강정

 

 

43통의 절절한 연애편지, 그리고 아름다워 아픈 '당신'의 사진. 2013년 4월 3일, 책 한 권이 발간되었다. 제주와 강정을 담았으나 발행일에서 짐작할 수 있듯, 2013년 올해로 65주년이 되는 제주4.3항쟁을 염두에 둔 책이기도 하다.

 

 

 

 

 

 

 

 

 

 

 

2. 문학 속에 핀 꽃들

 

 

 

한국 소설을 '야생화'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유일한 책이다. 김유정의 '동백꽃'부터 정유정의 <7년의 밤>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33개 작품을 '꽃'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야기한다.

 

 

 

 

 

 

 

 

3. 찰스 디킨스, 이탈리아의 초상

 

 

 

 

 

찰스 디킨스의 여행 에세이. 소설가로서 탄탄한 이력을 쌓아가던 디킨스는 1844년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의 초상>은 그 일 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아름다운 정경들을 글 속에 담아냈다.

 

 

 

 

 

 

 

4.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KBS 즐거운 책읽기” 추천도서로서 이순형화백의 그림과 인기작가 공선옥, 김연수, 오정희, 이기호, 이명랑, 조창환, 한수산의 글이 어우러진 그림 에세이집이다. 진정한 만남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감동을 전해 준다.

 

 

 

 

 

 

 

 

5. 변종모,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변종모 에세이. 모든 길 위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 지난 10여 년간 그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한 그날의 기억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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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4-0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러면서 들어왔는데,
낚였다~~~~~~~~~~~~ ㅎㅎ
꽃보다 아름다운 4월 되세요~~

글샘 2013-04-01 19:33   좋아요 0 | URL
어허~ 정말... 이라뇨.
책을 읽지 않고 어찌 산다고... ㅠㅜ
 
[소설의 기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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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전집의 11번째 책.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역시 상당 부분 현실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소설 읽기 이상의 힘을 기울여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독자에 불과한 나는,

유럽의 다양한 소설 세계,

특히 번역의 문제까지를 다룬 밀란 쿤데라의 이 책을 설렁설렁 읽어 넘기기엔 무리였다.

 

더군다나... 알라딘 서평단에서 '에세이' 분야의 서평자로서 읽어야 하는 책 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에세이를 만난 셈이다.

보통 여느 문맥에서 말하는 에세이처럼 신변잡기나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대한 내게

무지한 복병이 등장한 셈.

더군다나 해외 수학여행까지 겹쳐 책을 일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읽으려면, 유럽 소설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우선,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웃음과 망각의 책' 같은 것들을 읽어야 하고,

카프카의 소설들도 '성, 심판, 변신' 같은 것들을 읽어 주어야 할 듯 싶다.

 

소설(로망)이라는 것들이 중세에 등장한 기사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발단된 것이라지만,

현대의 소설은 현대의 역사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처럼, 체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그의 언어 체코어나 불어가 담고있는 역사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과 지독한 민족주의 전쟁들 와중에서, 과연 '소설'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가?

 

괴물은 바깥에서 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이 역사는 모험에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과는 더이상 비슷하지 않다.

비인격적이고 다스릴 수도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바로 이 순간(1차 대전 직후)에 중부 유럽의 위대한 소설가들은 근대의 종말적 역설을 느끼고 체험하고 포착했더 것(24)

 

역사는 인간을 하나의 파편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던 매력적인 아우라는 사라지고,

아우슈비츠의 아이히만처럼, 인간은 '관료 조직'의 말단 조작체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 시대에 와서 세계는 우리 주위로 갑자기 좁아져 버렸습니다.

세계가 덫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1914년의 세계대전일 거예요.(44)

 

카프카에게 제도는 그 자체의 법칙만을 따르는 메커니즘이다.

그 법칙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인간적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이해되지도 않는다.(147)

 

 

그럼, 그는 왜 소설을 쓰고,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세계에 대하여,

적어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소리를 지르기 위하여,

최소한의 저항을 위하여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이나 아닌가 싶다.

 

소설은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존이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이지요.

인간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소설가들은 인간의 이러저러한 가능성들을 찾아내 실존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죠.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안에-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인물과 그의 세계를 '가능성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겁니다.(65)

 

카프카에게서도 잘 드러나듯,

소설 속 세계는

인간적 세계의 극단적인, 그러나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들먹이면서 톨스토이의 업적을 이렇게 쓴다.

 

사람들의 행위에 있어 비인과적이고 가늠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신비롭기까지 한 측면에 대한 조명이라는 문제에 대한 일종의 비유.(88)

하나의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행위로 전환되며 행위들은 또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모험을 이루게 되는가.

 

소설은 결국 인간 세계의 가능성을 이야기 속에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인간 삶의 '우발성'과 그 결과의 '필연성'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읽으며,

자신의 삶과 주인공의 삶을 나란히 두면서 긴장하고 안도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다양한 연설, 대담도 등장해서, 소설에 대한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다양함은 늘 풍부하게 헷갈릴 수 있다는 약점도 품고 있는 법)

 

그래서 그는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한다.

 

주제란 실존적 질문이죠.

소설은 우선적으로 몇몇 기본 단어 위에 기초합니다.

주된 단어들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분석되고 연구되고 정의되고 다시 정의되어,

마침내 실존의 범주로 변환됩니다.

소설은 마치 집 한 채가 몇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것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범주 위에 세워진 것이죠.(124)

 

실존적 질문을 위하여 선택한 단어들과 그 단어들이 드러내는 실존의 범주.

결국 그는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키워드들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6부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

 

소설은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밀란 쿤데라 자신은 왜 소설을 써서 자신을 드러내는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 마디로 질문하기 어려우니,

이런 길고 난삽한 글들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펴냈을 것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역시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찌질하기 그지없이 사는 나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치만, 주변 사람들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번드르르하게 잘도 적응하며 사는 거 같다.

나와 '유사'한 인물들은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텔레비전 속 연속극 주인공들 역시 늘 해피엔딩으로 잘도 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세계와 갈등하며 대치하고 패배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슬프기 그지없는 삶의 '실존'을 만나면서 긍정의 고갯짓을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시적인 독백은

심리적 공감이 큰 삶에게는 무한한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복잡다단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맞닥뜨린 인간들에게,

남의 독백을 쉽사리 공감하고 수용하라고 하기에는 '시'의 공감대가 멀어져가고 있나보다.

왜, 이 시대의 소설을 이야기하는가...

같이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많다.

(듣고 알아먹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고백이다.)

 

한자 하나 고칠 곳...

162쪽. 非時的... 時가 아니고 詩로 고쳐야 옳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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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푸른도서관 6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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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할인으로 파파로티를 보았다.

돌봐줄 사람도 없는 청소년 이장호의 인생은 조폭으로 끌려든다.

네 번째 학교로 전학온 김천예고에서 이장호란 청년은

괴팍한 성악 선생과 조우하게 되고,

청년의 가능성을 본 선생은 제자 이장호를 위해 진심으로 애쓴다.

이장호 역시 조직에서 벗어나 음악의 길을 가려 노력하지만 갈등은 많다.

결말은 해피엔딩~인 좀 뻔한 스토리지만,

제자의 유학길에 배웅나온 스승님께 큰절을 올리는 대목에서 한참을 눈물흘렸다.

청년 이장호에게 스승이 없었다면 그는 방황으로 인생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재작년 학교 행사로 40명의 고딩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넘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을 인솔한 것은 해병대 아카데미라는 단체의 훈련된 조교 2명이었는데,

지도교사라는 명목으로 따라붙은 나는 아이들보다 저질체력을 자랑하며 내 몸 간수도 힘들 지경이었다.

둘쨋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젊은 교관이랑 소주를 한잔 하게 되었는데,

그 교관은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 작은 섬에서 자랐고,

부산에서도 알아주는 깡패 학교를 다녀서 선생님이라면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들로 알았단다.

우연히 들어간 해병대에서 삶의 자침을 바로 잡아 수련원 조교로 일하고 있는데,

우리학교 고딩들과 같이 땀뻘뻘 흘리며 산을 넘고 애들을 돌보는 샘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단다.

외로운 자기에게도 좀 더 따뜻한 선생님이 말걸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그 체구좋은 청년이

흐느껴 울던 그 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이금이의 청소년 소설이 점점 성장한다.

여기엔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도 환경이 비슷한 우수학생 집단인 기숙사 학교가 등장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벌이는 갈등은 유치한 고등학생 드라마처럼 시시할 것 같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을 조바심치게 만든다.

 

기숙학교에서 살면서 남달리 스트레스를 받는 다양한 환경의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복지나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은 곳이어서,

공부가 인생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어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선 어떤 입시제도에도 알맞는 '치열한 사교육'이 발생하는 것이다.

날 세워 말하면, 이 땅엔 공교육이 없는 셈이다.

 

엄마는 늘 석주의 행복을 바라며 그것을 위해 전략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진짜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230)

 

이런 것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땅의 부모들이다.

부모들이 지나온 경험을 잣대삼아 내세우는 미래의 모습은...

실제 나아갈 미래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를 것임을 부모들은 인정하기 싫어하겠지만...

 

오만 잡놈 다 만나 봤는디

머리에 똥만 든 놈보다 악질이 머리에 먹물 든 놈이라게.

그놈들은 만사를 저울에 달고 자로 재 뿌려야.

그 저울질에 미스 고 니가 근수가 맞을 중 아냐?(266)

 

우리가 최고로 치는 공부, 공부... 그 지식에 치우친 주입의 노릇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만을 위한 그것이었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공부를 잘못한 사람들... 머리에 먹물 든 놈들이,

만사를 칼질하고 저울질한다.

하느님이 그토록 먹지 말라고 만류했던 과실의 이름이 '선악을 구별하게해주는 과실'이었음에랴...

판단에서 차별이 나온다. 잘난 체 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한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목록' 보다

'그럴 수도 있지 목록'이 더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282)

 

모든 일은 환경에 따라 다르고 사정에 따라 다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아예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게 세상이다.

그런데 늘 정답 하나만 고르던 아이들에게 닥치는 세상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처럼 비명을 지르는 지옥도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살면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정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 삶의 진행 방향일지도...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겄나.

사는 기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마 그제사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다.(304)

 

인간은 인생의 방향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숱한 명리학, 점성학, 역학이 발달하였지만,

인생은 숱한 우연과 선택의 기로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불행'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신이 있다면,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겠지만,

언제까지나 '행운'이라는 운명의 선택지만을 가려 뽑을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는 법.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운명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선택의 주체도 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웃으며 살아야 할 사람도 나임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파파로티란 영화 속의 '이장호'란 청년이

힘든 과정을 거쳐 음악을 선택하고, 자기 삶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애태웠을 불면의 밤들 역시...

그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쏟아지는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는 것 아닐까?

 

나랑 하룻밤을 새우며 술을 마시던 그 교관 청년 역시,

자신의 선택에 좀더 힘을 줄 수 있었던 선생님들이 있었더라면... 하는 회한에 가득했던 것이기도 하듯,

나랑 지내는 아이들이 훗날,

그런 회한으로 눈물짓지 않도록... 아이들이 단단해 지도록 가르치는 데,

이런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선택의 몫은 역시 독자의 몫임에랴...

삶의 고난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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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1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1 1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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