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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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리보슈에 빠져드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겠다.

 

직업에 대한 전문성,

사건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통찰력,

맥을 짚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지적 번득임,

그리고 여자들을 사로잡는 섹시한 매력~

대담하게 부딪치면서 사람들과 연대하는 파워~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권력과도 불화를 서슴지않는 용기.

 

 

나약하게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그런 남자 하나쯤 선물한 작가가 고맙다.

 

장르 소설의 효용은 그런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에 역겨워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어질 때...

장르 소설 안에서만이라도,

권력도, 암투도, 어떤 검은 거래도 주인공이 날려버리는 속시원한 해결~

 

그런데 이 남자,

또한 무척이나 섬세하다.

터프하기만 하면 매력이 덜한 법인데, 한 섬세하는 이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

 

나는 손전등을 끄고 린델에게도 끄라고 하자 그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잠시 끄라고."

그가 손전등을 끄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암벽의 윤곽과 돌출면이 차츰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를 따라 들어온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로스트 라이트. 난 로스트 라이트를 보고 싶었어."

"뭐라고?"

"잃어버린 빛이란 뜻이야. 어둠 속이나 지하에서도 항상 볼 수 있지."(401)

 

음... 이런 낭만이라니...

하지만 이 낭만을 되뇌는 장소는 FBI 대원의 시신을 찾으러 간 동굴임에랴.

 

현대인은 환한 불빛에 너무 의존한다.

세상의 사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제각기 아주 약한 빛을 반사하고 품고 있는데도...

이 소설에서 '빛'이 상징하는 바는, 단순한 명암을 뛰어넘는 애수를 자아낸다.

아무리 캄캄한 곳,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곳이라도,

어둠이 간직하고 있는 빛,

숨어있는 빛, 잃어버린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해리 보슈는 일깨워준다.

 

속에서 불길이 두 줄기로 뻗쳐올랐다.

하나는 빨간 불길, 다른 하나는 파란 불길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쳤다.

하나는 분노의 감정, 다른 하나는 따스한 감정이었다.

하나는 내가 컵을 깊숙이 담글 수 있는 비난과 복수로 가득한 데블즈 펀치볼,

마음속 캄캄한 심연으로 나를 인도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끌어내어 천국의 길로 안내했다.

환하고 축복받은 낮들과 어둡고 성스러운 밤들,

로스트 라이트가 돌아오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빛.

...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410)

 

로스트 라이트는 파경을 맞았던 해리 보슈가 아내와 만나는 대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다함이 없다.

그렇게 은은한 빛으로 간직되어 있다가 삶을 다사로운 빛으로 인도한다.

 

매력남 해리 보슈는 은퇴한 경관이다.

그는 색소폰 레슨을 받는다.

그의 색소폰 선생 슈거 레이는 기억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음악이 있는 인생. 그리고 직접 그 음악에 참여하는 인생은, 빛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 역시,

로스트 라이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란 걸 나는 알겠다.

 

그가 전처 엘리노어 위시에게 느끼는 감정.

마음 속 깊이 담아둔 애정이 느껴진다.

 

나는 단발이론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

내가 알고 있는 건 엘리노어 위시가 나에겐 그 사랑의 총알이었다는 것.

그녀는 나를 깊숙이 관통했다.

엘리노어가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그것이 영영 아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144)

 

이 책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이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9)

 

작가의 마음 속에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애정으로 가득한 다함없는 인간에 대한 긍정은,

해리 보슈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을 주었다.

마음속에서 간절한 것은 결국 뚝,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해리 보슈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400페이지의 두께도 아쉬워할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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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3-04-1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어떤 경우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얼마전 링컨차를 탄 변호사 후속편에 잠시등장 존재감을 과시 해주셨죠

글샘 2013-04-17 23:23   좋아요 0 | URL
링컨차 후속편도 나왔군요
참 멋지더군요. ^^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 - 행복할 경우 읽지 말 것!
아르튀르 드레퓌스 지음, 이효숙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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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20세) : 아, 사는 거 넘 힘들다~ 난 어서 은퇴했음 좋겠어. 은퇴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작가 : 그럼 지금 죽어버리는 건 어때?

 

이런 농담을 한 이후,

자신이 너무 무성의 했고, 심지어 난폭했다는 자책이 들어서 그럴 경우 해주면 좋은 이야기들을 쓰게 된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의미한다면,

세잎클로버처럼 주변에 가득하여 바라기만 한다면 돌아올 것이란 이야기부터,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 첫구절까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뭐하나 빠지면 안 되지만,

또 행복이란 중뿔나게 도드라져 보이는 건 아니란 말이렷다.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뭣 하나만 빠져도 제각각의 고민으로 불행하다고 철철 울 것이고 말이다.

 

네 살짜리 꼬맹이 때에는 행복해질 수 있어.

아직 행복을 믿고 있기 때문이며,

행복이란 무엇보다 행복의 가능성이기 때문이야.

 

행복은 절대적인 조건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행복이란 '열린 가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작가의 상상력이다.

 

열린 가능성은 '우연성'과도 통한다.

 

그래. 최근까지 난 '우연성'이란 말을 몰랐어.

진지하지 못했던 거야.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자 들린다, '난 몰라'의 쾌감이.

모르는 자는 운이 좋아. 모두 다 배워야 하니까.

배울 때는 행복한 법이지.

'안다'는 표시로, '물론' 이라고 말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기.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의 사기성 ㅋ~

 

고지식한 사람이 행복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가 다 알고 있어야 하고,

자기가 다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함을 인정하고,

난 몰러~ 유연한 태도로 다가간다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단 이야기.

 

행복은... 고정적이지 않다.

 

바다를 두려워하던 노예 이야기.

그를 바다에 빠뜨리고 나자, 배 위에서 잘 있더란다.

바다에 빠졌던 노예가 배 위로 다시 올라왔을때 그가 더 강해진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

그에게 있어 세부사항들은 흐릿해져 버렸다.

핵심적인 것들만 빼고.

 

그래.

불행할 것도 없다.

핵심적인 것이 중요하다.

두려워할 것도 없다.

핵심적인 것들만 빼면...

흐릿해져도 무슨 상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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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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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환상문학 작가로 유명하다.

작년엔가 별세했다.

 

이 소설의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세계에서 책은 금지된다.

책이 발견되면, 모조리 불살라진다.

저항하는 사람 역시 그렇게 한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Fireman이라고 부른다.

예전의 소방관은 불에 물을 뿌리는 사람이었다면,

이 시절의 소방관(방화수)는 등유를 뿌린다.

 

책이란 것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시대.

사람들은 벽의 텔레비전(브라운관이 달린 텔레비전도 낯설던 시대의 상상치고는 대단하다.)을 주야장천 바라보며,

텔레비전에 동화되어 사고가 제어되는 상태로 살아간다.

 

과연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짚어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가공할 노릇이다.

책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기보다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 넣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이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움츠러들거나 스스로에 대립되는 판결을 내리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책이란 옆집에 숨겨 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버려야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사람들 마음을 파괴하는 거지.

다음엔 누가 박식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99)

 

지식, 과학, 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 기술의 노예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신선하다.

 

주인공 몬태그가 만난 소녀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과연 네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너의 것인지, 텔레비전에서 말하는대로 따라하는 것인지를...

 

차를 타는 사람들은 녹색 얼룩을 보면, '아, 이건 풀이야' 그럴 거예요.

분홍색 얼룩? 그건 장미꽃 정원이지, 하얀 얼룩들은 거리에 늘어선 집들이고...

아침에 잔디밭에 나가보면요. 이슬이 맺혀 있어요.

하늘을 보실래요? 저 달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저씬 행복하세요?(25)

 

21세기에 '느리게 살기, 천천히 살기, 명상, 마음챙김' 들의 언어로 세상의 속도감을 늦추고 바라보라는 책들이

이미 그 시대에 의문 부호로 도드러진다.

과연, 행복한가?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주어지는 것만이 행복이라 착각되며 살아가진 않는지...

 

세상이 참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건 물론 좋지요.

그렇지만 그저 떼거리로 모여 있기만 하면 뭐해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개 침묵한 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해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죠.

요즘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사납게들 대하는지 아세요?(55)

 

사람이 사람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속도의 시대.

군중 속의 고독을 강하게 맡을 수밖에 없는 시대.

극복하여야할 근대, 를 헤치고 나온 '현대'라는 괴물은 인간을 더 소외시키는 자본의 힘에 예속되고 만다.

인간과 질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텔레비전 리모콘이 삶의 웃음을 대신한다.

아니, 텔레비전은 웃음마저 대신 웃어준다.

 

나는 지금 사물 자체를 애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사물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앉은 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123)

 

산다는 것은 이래야 하는데....

내가 여기서 살아 있음을,

사람과 사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글과 아이디어와 은유에 대한 저의 사랑을 통해서라면,

아무리 기이한 것일지라도 당신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275)

 

작가의 인터뷰에 담긴 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감겨있는 시대.

소방관이 등유를 뿌리는 역설적 상황을 통하여,

이해하기 힘든 세상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담아내는 소설.

 

모든 책을 태우는 온도... 파렌하이트 451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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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식사 - 위화 산문집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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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은 나로서는 큰 흥미를 느끼게보다는,

유사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을 받은 책.

그렇지만, 중국이란 국가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양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삶은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하게도 되었다.

 

치과의를 하던 위화.

그러던 어느 날 창밖 거리를 바라보다가 마음 속에서 처참한 느낌이 용솟음쳤다.

얖으로 평생 이 거리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앞으로의 일생을 어떡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고,

내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177)

 

중국 남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던 그에게는,

그 '거리'가 갑갑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평생 읽고 쓰기를 낙으로 삼는 그는 역시, 독서인일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동안 나의 가장 큰 수확은 고전작품들을 읽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와 조상들이 읽고 남긴 작품들을 믿어야 한다.

그 작품들은 이미 시간의 검증을 거쳤고, 고전작품에는 절대 속을 일이 없다.

그것들은 인류의 지혜가 낳은 결정품이자 인류의 영혼이 지나온 기나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소년 시절에 고전작품을 읽는다면 그의 소년 시절은 고전작품 속의 진실한 사상과 정서에 이끌리게 되고,

성인이 된 후 인류가 공유한 지혜와 영혼이 자신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99)

 

고전을 읽는 이유.

게다가 '문학의 역량'에 대한 생각도 멋지다.

 

문학의 진정한 역량은,

바로 단테의 시 속에서, 보르헤스의 비유 속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지와 생생하게 숨쉬는 독백 속에서,

절묘한 동시에 현실보다 더 생생한 묘사 속에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유약하지만 비할 데 없이 풍부하고 예민한 영혼이 창조한 것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고, 흥분시켜 잠 못 들게 하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게 하고,

영원한 이별 가운데서도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인간은 불행을 감당하는 지축이다.

세상에 어떤 물체가 지축보다 더 의지할 만하단 말인가?"

 

이런 '고전'과 '문학'을 읽는 것은, 삶의 유한성 때문이다.

 

세상에 중복되는 길은 없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한 사람의 인생을 대체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경험은 자기 삶에 한정되고,

세상의 다채로움과 달리 개인 공간의 협소함은

독서로 하여금 우리 눈앞에 개인의 공간을 열어 젖히고,

하늘의 무한함과 대지의 광활함을 느끼게 하고,

우리의 인생의 길을 단수에서 복수로 변형시킨다.

타인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247)

 

문학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또 그는 창작의 한계도 이야기한다.

 

창작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사실뿐이다.

어떤 지식도 까놓고 말하면 결국은 어떤 입장이나 각도에 대한 강조에 불과하다.

사물에는 언제나 두 개 이상의 설명 방식이 있고,

각기 다른 설명 방식은 자기가 장악한 세계의 진실을 표방하고,

진실은 영원한 처녀이고,

모든 이론은 결국에는 제 잘난 맛에 까부는 수음에 불과하다.(299)

 

창작의 지난함에 대하여... 이렇게 처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쓰면서도 늘 가슴에 묵직한 맷돌 하나 얹어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

유쾌한 필체로 글을 적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그래서 더 무게가 있다.

 

뜻밖에 그가 광주 이야기를 한다.

 

내가 본 광주항쟁 희생자의 사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눈이 감긴 것이 없었다.

그들의 무심한 눈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눈이 한국의 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142)

 

그의 아이를 대하는 눈에서부터,

세 테너에 대한 감상까지(154),

온갖 것에 대한 감정을 나름대로 잘 정리해 둘 수 있는 것이 그의 필력처럼 보인다.

 

이 책은 중국의 현대 이야기보다는,

위화의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치만... 여러 곳에서 짜깁기한 이런 책들은... 역시, 단행본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더 많아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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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4-1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토론하고 들어왔습니다.
글샘님, 눈물 겹도록 좋은 책이었어요. 제겐 글빨, 생각빨, 구성빨 다 먹히는 책이었어요.
그럼에도 동어반복이라면 이 책은 다시 안 읽어도 되나요?

위화처럼 산문을 쓸 수 있다면 소설은 무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고 힘을 실어주시어요.^^*


글샘 2013-04-15 15:40   좋아요 0 | URL
틀렸습니다. ㅋ~
위화의 소설은, 그 생각을 '형상화' 한 사람들과 시대가 그대로 이야기로 드러나는 거죠.
이 책은 3부로 이뤄졌는데,
1부. 아이를 기르는 단상 위주로... 삶의 단편적 모습을
2부. 문학에 대한 상념들
3부. 여러 가지 책들에 쓴 발간사 모음
이렇게 잡다하답니다.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충청 편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이근원통 耳根圓通

이근을 닦아야만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으며,

편벽되지 않고 두루 통할 수 있다.

그 수행은 소리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윽고 소시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소리는 듣는 것인지 (觀聽), 보는 것인지(觀音)...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 충청도 편

 

이지누의 글은 정갈하게 흐르다

감정의 골이 푸욱 패인 골짜기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마음을 풀어 헤치기도 한다.

그래선지 그는 가득 차있는 전각들 사이를 누비기보다는,

텅 빈 곳,

그래서 햇빛보다는 오히려 달빛의 으스름이,

고요한 수직의 파문을 즐기는 한적한 시간이,

빈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폐사지를 찾아 거닌다.

 

그의 사진들에서도 서정은 가득 묻어난다.

이근원통이 깊어지면 반문문성 反聞聞性에 이른다고 한다.

 

여태 내 속에서 나는 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매달리며

소리 자체에 대한 집중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서 닿아야 하는 곳은

모든 소리에 대한 집중을 놓아 버리고,

소리로부터 떠나버리는 무설시 無說示의 경지가 아니겠는가.(219)

 

'견,문'을 기록하는 것을 기행이라고 하는데,

그는 보고 듣는 것에 매달리지 않으려,

아니 거기서 벗어나려든다.

그곳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아니, 무엇도 없는 그곳에서 '두루 통하는' 원통의 지경을 얻게 될지는 직접 밟아볼 노릇이다.

 

지붕 정도는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밤새 낙엽 지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귓전에 맴돌아 잠 못 이뤄도,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다람쥐 발자국 소리가 외할머니 잔기침 같아서

자꾸 신경이 쓰여도 말이다.

까짓 벽도 없어도 괜찮겠다.

한기를 가득 머금은 찬바람이 몸을 어르고

지나가 며칠째 선잠에 시달리더라도,

맑은 별빛과 형형한 달빛을 담뿍 받고 떨어져내린 나뭇잎을 이불로 삼으면

추위에 뒤척이며 추슬러야 할 일은 없을 것.

지붕 없고 벽 없는데 바닥이 있을 것은 무엇인가.

낮이면 이미 바닥에 깔린 낙엽을 포단 삼고,

밤이면 그 자리 그대로 깔고 누우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한 철 나면 법당이 화려한 들 무슨 소용일 것이며,

찾는 이 드물 것 뻔한 법당에 장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단풍이 물들어가는 판에 울긋불긋 단청을 할 일은 또 무엇일까.(216)

 

이렇게 폐사지의 지붕도, 벽도, 바닥도 없이

그것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것처럼 묘사한 그의 언어가,

부처님의 연꽃 가득한 세계를 치장한 '화엄'의 경지 아닌가 싶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은 아름다운 안화가 되어 달려들고,

낙엽은 나풀거리며 닥쳐오니 제대로 눈도 뜰 수 없었다.

하지만 뜨지 않아도 좋았다.(208)

 

일본어에 '꼬모레비'란 단어가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을 아예 하나의 단어처럼 숙어로 굳어져 쓰는 말이다.

그걸 이지누는 '안화', 눈에 비치는 꽃살무늬...로 보고 있다.

모두.... 아름다운 이의 눈에만 보이는 세상이고, 말의 잔치다.

 

꽃조차 귀양살이를 할 만큼 적막하고 고요하기만 한 곳.(66)

 

그런 마음일 때가 있다.

정호승도 그런 시절 쓴 시가 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그의 깨달음을 좇아가는 마음의 길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웃음으로 가득할 수 있다.

 

사랑이 깊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 무엇을 한들

그가 드러나기보다

나 스스로가 드러난다는 것.

그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일 뚠

결코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315)

 

사랑이든 우정이든,

무엇에 대한 애정이든...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것이랬다.

깊은 사랑은

상대방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크고 깊을수록,

자기가 크고 넓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시나브로...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조금씩 전염되고 물들어가서,

번지고 퍼져서...

세상에 가득 사랑으로 미만(彌漫, 널리 가득차 그들먹함) 할지 모를 노릇이다.

 

글씨 또한 그렇다.

 

내가 느낀 김생의 글씨는 그 어떤 것도 부러뜨리거나 헤쳐놓지 못할 만큼 견고하며 동시에 부드러웠다.

글씨가 어찌 손끝의 재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겠는가.

그것은 수행의 결과이며 마음의 통로가 아니겠는가.

글씨를 두고 사람들이 신품이라고 하는 것은

글씨로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수행이 깊고도 단단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350)

 

글씨가 스르르 풀어져

종이로 번져나가 버릴 것 같은 사람도 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박또박하기가 송곳으로 종이에 새겨놓은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글씨도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는 한 단서인데,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내 글씨를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비칠까를 돌아보기도 하게 되는 경험.

 

폐사지를 훑고 다니는 이지누의 눈길과 귀와 발길을 따라 거니노라면,

환하게 다사로운 봄볕도 만나게 되고,

뉘엿뉘엿 이울어가는 초저녁 노을빛도 감상할 수 있고,

한겨울 시리도록 새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섰는 석탑의 무료함도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니,

마음이 한뼘은 열리는 기분이다.

한 뼘 안으로 그만큼 환한 햇살이 번질 공간을 열어주게 하는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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