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6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봉수 미생 6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출근하는데 신호대기 차량의 줄이 확연히 짧다.

생각해 보니, 메이데이다.

노동자라는 말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근로자의 날...

그래. 차 몰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많이 쉬는구나...

 

윤태호의 미생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장그래의 정규직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다.

 

평소대로만 하면,

이대로만 하면 정사원 되는 거죠?(6권, 181)

 

그래서 빨간 눈의 오상식 차장 눈시울을 더 빨갛게 만드는 만화.

페이소스가 작렬이다.

 

보들레르의 시 '취해라'(파리의 우울 중)도 멋있다.

 

취해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시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물어 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149)

 

오 차장, 김 대리, 장 그래....

모두 환상의 궁합이다.

그들을 일컬어...

 

그에게 있어 한 사람의 벗은 한 쌍의 귀를 의미한다.(100)

 

동료, 벗

한 사람의 벗은 한 쌍의 귀라...

이 한 구절을 찾은 것 만으로도, 미생을 읽은 일은 잘 한 일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할 대숲이 이발사에게 필요했듯이,

사람에게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쌍의 '귀'가 필요한 법.

고마운 벗.

 

며칠 전, 시험 문제를 낸다고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옆방의 선생님을 보았다.

그날 나는 기숙사 당직이어서 툴툴거리며 기숙사 사감실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그 기간제(계약직) 선생님은 이제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원래 선생님이 복직을 하고,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신세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5권)

 

내가 숨쉬기 힘들 정도로 압박을 받고 스트레스 받는 이 직장이,

누군가에겐 꿈꾸며 들어오고 싶어하는 곳임을 잘 알지만,

날마다가 스트레스인 건, 직장인이면 매일반인 것.

 

아직 집이 지어지지 않아서,

아무리 대마처럼 보여도, 삶이 늘 불안한... 未生의 말...

아등바등 애를 써서 하루를 살아 내면,

쓴 소주 한 잔 만큼의 위로만이...

그러나, 노동자여,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도 바둑, 그래봤자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왜 이렇게 처절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4권)

내게 허락된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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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5-0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면서 주문해 놓은 책입니다. 직장의 신에서처럼 비정규직에 대해서 황당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펴보면 그저 눈물만 나오지요.

글샘 2013-05-02 10:30   좋아요 0 | URL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ㅋ~
정말 멋진 만화고, 만화가예요.
 
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알라딘 소개글)

 

논픽션이라고 해서 흥미로운 요소가 적을 줄 알고 시작했는데, 착각이었다.

토막난 사체를 둘러싼 범인 잡기를 중심 사건으로 해서,

그 사건은 오히려 왜소해 보일 만큼 신문들의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진다.

 

잉크와 펄프로 만들어진 놀이동산.

 

이런 것이 '선정적인' 언론의 본모습인 것이다.

1890년대 뉴욕의 '월드'지와 '저널'지의 경쟁은,

선정적인 볼거리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옐로 키드'라는 만화를 계기로

옐로 저널리즘, 즉 황색 신문이란 말로 비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상이 이 이야기에서처럼 생생하게 전개되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추리물의 흥미진진함과 사회물의 현실성이 아찔할 정도로 독자를 이끈다.

 

1898년 초, 쿠바에 정박중인 미 해군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어 배와 승무원 대부분이 아바나 바다에 수장된 일.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라고 저널이 선언했다.

전쟁도 폭파범도 확실하지 않았는데도(갑판 아래서 발생한 석탄 화재가 원인이라 보는 사람이 많았다.)

허스트는 확고했다.

전국이 전쟁의 열기로 요동친다고 <저널>은 주장했다.(361)

 

아, 이 부분을 읽으면 천안함이 떠오른다.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아니,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사실조차도, 기사로 대서특필하는 뭔 신문이랑 하는 논조가 비슷하다.

 

그 시대, 살인 사건을 둘러싼 황색 저널리즘의 행보를 읽는 일은 코믹하고, 흥미롭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도 여전히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는 생생하게 약동하는 현실을 느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뒷입맛은 쓰디쓰기만 하다.

 

<시사상식> 옐로 저널리즘

접힌 부분 펼치기 ▼ (네이버 지식 백과)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들을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경향을 이름

1890년대에 뉴욕 시의<월드(World)>지와<저널(Journal)>지 간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사용된 술수들을 지칭한 데서 생겨났다.

조지프 퓰리처는 1883년에 뉴욕의 <월드>지를 인수하여 화려하고 선정적인 기사와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미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확보했다.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만평과 사진을 화려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 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함으로써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1895년 캘리포니아 광산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시로 옮겨와 경쟁지인 <저널>지를 인수하면서 퓰리처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그재미너(Examiner)>지를 대규모 발행부수로 대단히 성공적인 신문으로 만든 경력이 있었던 허스트는 선정주의와 홍보, 일요특집판 등을 이용하여 경쟁지들을 물리쳐 뉴욕시에서도 같은 업적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는 편집진의 일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려왔으며 또 일부를 퓰리처의 신문에서 스카우트해 왔다.

그 가운데는 <선데이 월드(Sunday World)>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던 연재만화 '옐로 키드(The Yellow Kid)'를 그린 시사만화가 리처드 F. 아웃콜트도 있었다. 아웃콜트의 변절 이후 <월드>지의 만화는 조지 B. 룩스가 그렸는데 두 경쟁지의 연재만화가 사람들의 열띤 관심거리로 등장하면서 두 신문 간의 경쟁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되었다. 이러한 총력적인 경쟁과 그에 따른 판매촉진방법들은 두 신문의 발행부수를 크게 늘렸으며 또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신문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옐로 저널리즘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든 직후 <월드>지가 점차 선정주의적 경쟁에서 물러서면서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옐로 저널리즘 시대의 몇 가지 기법, 예를 들면 전단표제라든가 천연색 만화, 풍성한 화보 등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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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 기르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거침없는 대화 지식여행자 1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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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네하라 마리 여사가 사망한 것이 2006년이니 벌써 7년이 다돼간다.

그렇지만, 그 이후 한국에선 마리 여사 책이 부지런히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마리 여사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담한 내용이다.

역시 유쾌하고 재미있고 흥미롭고 배울점이 많다.

 

친구를 선택하려면 책을 읽고, 6할의 의협심과 4할의 정열.

책을 읽는 것도 친구의 조건으로 중요하죠.

그렇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현실적인 데다 사고에 깊이가 없으니까.(31)

 

나이들면서, 친구라는 말처럼 허망한 게 없단 생각을 한다.

친구야~ 하는 이름으로 만나는 모임은, 무슨 동창회 행사 할 때 인원과 돈이 필요할 때이기 쉽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서 답답한 일을 이야기나눌 직장 동료도 필요하지만,

참 한국에서는 지적 작업에 종사하는 교사들조차도 책읽는 사람 만나기 힘들다.

책을 읽지 않는 데 대한 문제 의식도 별로 없는 듯 해서 답답하다.

 

요네하라 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전염되고 말아요.

그런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머리가 무척 좋다는 증거지요.(59)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똑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유쾌하다' 같은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이에 상관없이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머리가 좋은 게 맞다.

 

성차별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저에게 중요한 주제였어요.

선생님이 "여자는 존재고 남자는 현상"이라는 정의를 내리셔서 무척 반가웠어요.(68)

남자들은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못 가지거든요.(196)

 

성차는 분명 존재한다.

여성적인 것은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는 '음'의 기운에 가깝고,

남성적인 것은 '존재의 현상'을 반영하는 '양'의 기운에 가깝다.

일양일음 하는 것이 존재의 양태지만, 음양의 차이를 이렇게 정의하는 일도 재밌다.

 

이웃나라를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할 때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그 나라 자체가 이상한 경우가 많다.(89)

 

한국은 무지 폐쇄적인 지정학적, 역사적 환경을 가지고 있어 이렇게 살기 쉽다.

마리 여사처럼 세계적 마인드를 품은 사람이 본다면,

일본도 한국도 참 갑갑한 우물안일 것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얼마나 재미있고 알기 쉽게 가르쳐주는가 하는 점만으로 선생님을 평가해요.

선생님은 하나의 무대를 만들듯이 매번 평생 잊지 못할 수업을 해주었어요.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네요.(94)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아이들과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가를

학교에서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공교육인데,

나는 지금... 점수 올리기 위한 공부를 가르치는 사교육에 가까운 선생이다. 부끄럽다.

 

9.11 폭파 영상을 보고... 20% 정도는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어요.(103)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여기저기서 그보다도 훨씬 더 심한 짓을 해왔잖아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북베트남, 한국전쟁때 북한군에게, 이라크...

 

이런 솔직함과 넓은 사고가 그의 매력이다.

아~ 진정 마리 여사의 책은 시나브로 종결지어지고 있단 말인가?

내가 빌려왔다가 읽지 않고 돌려보낸 책으로 '올가의 반어법'이 있는데,

이제 그 책마저 읽으려고 주문해두고 있다.

 

마음산책에서 내 마음을 산 마리 여사 책을 더 부지런히 내주면 좋겠다~

 

--------번역에 대한 시비 두어 개

 

번역의 과정에서 '아와레, 오카시'에 대하여 '모두 감탄사'라고 한 부분은 유감이다.(207쪽)

아와레, 오카시는 일본 고전문학의 '정취'를 일컫는 말인데...

 

그리고 '스카토로(대변 등을 소재로 하는 변태 행위)', 혼네와 다테마에(진심과 겉으로 드러난 친절) 같은 말들을,

독자들에게 특별한 해설 없이 들이미는 것도 좀 낯선 번역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입장보다는 일본어에 문외한인 독자들의 편에서 글을 고려할 수 있어야 훌륭한 번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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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4-3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요네하라 마리 언니님의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대단하다 싶어요.
너무 일찍 가셨다 싶어 항상 아쉽습니다. 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좋은 글도 좋은 말도 많이 나누어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글샘 2013-05-05 23: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설렁설렁 농담을 섞어가면서 말하는 중에, 다부진 뜻이 가득 들어있지요.
시야도 상당히 넓어서, 일본인들에게서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koh 2013-05-12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 김옥희입니다. 우선 관심을 갖고 꼼꼼이 책을 읽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번역과 관련하여 지적하신 사항에 대해 역자로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우선 '스카토로'에 대한 지적에서 '특별한 해설 없이' 그런 용어를 쓴 걸로 되어 있는데 62쪽에 분명히 옮긴이주를 달았으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혼네나 다테마에 정도는 신문기사에서도 그냥 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는 단어라서 주를 생략했습니다. 지나친 옮긴이주가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리듬을 깰 수도 있기에 역자로서는 조심스럽거든요. 학문적인 서적이 아니라 가벼운 대담집의 경우에는 더더욱 조심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카시'와 '아와레'에 대한 지적입니다. 분명 둘 다 일본의 미의식인 것은 지적하신 대로입니다. 제 전공이 일본고전문학이기에 그 단어들이 그런 미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물론 숙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후문맥으로 봐서 과연 그런 깊이 있는 뜻으로 쓰였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는 거창한 미의식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볍게 처리한 것이지요. 미의식에 대해 상세한 옮긴이주로 인해 대담의 경쾌한 리듬이 깨질까 염려한 결과입니다.

역자로서 항상 어디까지 옮긴이주를 달아야 할지는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과잉친절과 불친절 사이에서 적정한 선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역자에게는 있습니다. 적절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견이 있으시면 다시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글샘 2013-05-21 08: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번역자께서 친히 댓글을 남겨 주셔 영광입니다.

제가 시비를 건 뜻은~ 일반적인 독자로서 그렇다는 것이지, 역자의 전문적인 식견에 시비를 걸고싶었던 건 아니구요.
1. 스카토로는 제가 잘 몰랐던 단어여서 그랬는데, 일반적인 일본어 단어도 아니고... 주가 달려 있었군요.
2. 혼네나 다테마에가 보편적인 단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구요. (저만 무식한 건가요? ㅋㅋ)
3. 오카시와 아와레란 단어가 그 대담에서 '감탄사' 정도로 번역된 것도 조금은 아쉽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맞아요.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는데~
과잉친절은 가독성을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바빠서 댓글을 못 달고 지나가서 늦게서야 몇자 붙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
 
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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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일본어로, 쯔키노 우라가와...

우리는 달의 앞면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니, 우리가 볼 수 있는 면을 앞면이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면을 뒷면이라 할 수 있겠다.

 

삶이란 그렇다.

내가 보고 있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진실인 것 같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 하고, 공감각적 느낌을 함께 끌어들이면,

진실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철학적 사유를 던지며 여운을 남기고 엔딩이 마무리된다.

 

물의 도시,

물과 연관된 실종과 재생,

그리고 그 비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사람들.

 

그런데, 동화되지 않은 몇 명이 물의 기운에 동화되어버린 끈적하고 찝찝한 기운의 그것들을 관찰한다고 착각했던 순간,

인간을 실종되게 하는 미스터리의 비밀을 찾아다니는 자신 역시,

'그것들'의 족속이 아닌 것인지... 미궁의 소용돌이로 사고는 빠져 든다.

 

인생은 명쾌한 진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곳에 숱한 비밀을 장치해 두고 있다.

그곳을 달의 뒷면 이라 이름붙일 수도 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을 '진실, 진리'라고 우기면,

자신이 달의 뒷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제한된 존재', '유한한 존재'임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

 

뭐랄까,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71)

 

그래. 굳이 설명하려 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가는 하고 있다. ㅋ~

미스터리 작가 치곤, 꽤나 직선적이다.

 

전문가들로 골라 팀을 편성하면 순위와 실력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가 한 사람 끼면 레이스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해진다.

여자란 늘 변수요, 미지수다.(88)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늘 말한다.

여자는 '본질'이고 남자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ㅋ

달의 세계는 '음'의 세계이다. 여성적인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하는데, 거기다가 뒷면이라니...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음파의 감응은 '본질'에 가까운 여자들에게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어째 무섭다."

"인간의 상상력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다몬은 어릴 적 빗소리가 낙하하는 소리인지, 착지하는 소리인지가 궁금한 나머지 비가 올 때마다 귀 기울여 듣던 것이 생각났다.(93)

 

다몬...은 多聞일까?

눈으로 보기보다 귀 기울여 듣기에 몰입하는...

세상은 다양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인간의 공포는 보는 것 외에도, 소리로도 극대화되기도 하니깐...

 

일본인의 뇌는 벌레 울음소리라든지 빗소리처럼

본디 인간의 뇌가 잡음으로 처리해야 할 걸 정서를 관장하는 부분을 써서 듣는다.

그러니까, 원래 단순한 현상으로 처리해야 할 거세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정보 처리를 하는 바람에

보통은 보일 리가 없는 게 정말로 보이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거지.(135)

 

이렇게 듣는 일 역시 단순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 이면을 듣게 된다면, 상식이나 지식은 한 순간 무너질 터.

 

방 안에 이렇게 화살표 모빌이 잔뜩 매다려 있다 쳐.

남자는 말이지, 가끔 따로 노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는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잔뜩 매달려 있거든.

하지만 여자는 방향이 다른 화살표가 잔뜩 매달려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자기 화살표하고 여자 화살표의 방향을 맞추려고 하는데,

여자 화살표는 방향이 전부 같은 게 아니니까

어느새 다른 화살표하고 정면충돌한다든지 입체적으로 교차하고 그래.(146)

 

남자와 여자의 다른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극'처럼,

삶의 모든 국면은 변화하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은,

여자의 측면처럼 화살표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끝이란 참 조용하게 시작되누나.(259)

 

끝의 시작이라.

달의 뒷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존재, 진실을 끝으로 볼 수도 있겠다.

 

나라는 건 뭘까, 나란 누구였을까?(386)

 

나를 도둑맞는 이야기와 '나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숱한 변형을 안고 반복된다

부처의 고민도 그것이었고,

모모의 여행도 거기서 출발했다.

 

하루가 골뱅이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끝난 사람들에게,

빤히 올려다보이는 달의 희뿌윰한 빛 말고,

그 뒷편에 보이진 않지만, 거기 있는

쯔키노 우라가와가 있을 수 있음을...

소줏잔에 비치는 달님은

소줏잔을 아래서 본다면 ㅋ~

그 뒷면을 볼 수도 있잖을까를 농담삼아 안주삼아 기울인다면,

아, 소줏잔을 기울여 입안에 그 액체를 털어 넣는다면,

달의 뒷면까지를 내 안에 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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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지음 / 양철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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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이오덕 선생님 생전에 아이들의 글, 교사들의 글 속에 살아 숨쉬는 교육의 현장과, 삶의 들숨, 날숨이 오롯이 살아있음을 기록하자고 모인 사람들의 단체다.

 

글에는 글만의 필터가 있다.

특히 아이들의 글에는 없는 필터가 어른들의 글에는 있다.

이 책 역시, 교사들의 필터로 걸러진 세상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글에는 보이지 않는 필터가 어른들의 글에는 보인다.

 

이런 글들의 장점은,

어린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교사의 시선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에 있다.

아이들을 교육과 훈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또, 날마다 성적 향상에 골몰하는 것을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다가,

가끔 한번씩 본질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글들이 가진 한계는,

아픈 것을 아프다고 쓰고, 행복한 것을 행복한 것으로 쓰는 것만으로,

어떤 변화의 힘도 가져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1980년대 교육운동의 앞자리에, 'O양의 유서'가 있었다.

중3 여학생의 절규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반성을 가져오게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학교는 또다시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메커니즘에 수동적으로 끌려간다.

숱하게 목숨을 버려가면서 저항하지만, 학교에서 아예 행복 따위는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과속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선 감동적인 교실, 흥미로운 교실, 교감하는 교사와 학생 이야기가 가득하다.

 

교실의 현실은 왕따와 이지메, 집단 폭행과 일진, 교사에 대한 반항과 욕설, 폭력까지...

지도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감동적이지만, 한계 앞에서 힘을 잃는다.

 

초등 2학년 아이들이 가위를 들고 목을 그으며 싸웠다.

가위로 목을 그었다는 말에 그냥 흥분해 소리치고 때렸다.

더한 일도 있는데 슬기롭게 풀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처음 선생 시작했을 때나 열여섯 해 지난 지금이나 똑같다.

"선생님, 지금 우유 먹어도 돼요?"(119)

 

아이들은 이렇게 대책없다.

즉흥적인 다툼은 늘 있어 왔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의 문제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생긴 문제가 아이들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

 

강남의 부유층 자녀들이 부유한 깡패가 되고,

부모가 돌봐주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난한대로 일진이 되고...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어른들의 파렴치한 모습을 아이들은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난 아이들을 나에게 끌어다가 맞추려는 잘못을 다시 반복했다.

끝까지 가르쳐 보겠다고 그런 것이 아니냐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그냥 내 욕심에 아이들을 다그친 것 뿐이다.

내 양심이 그걸 안다.(128)

 

내 양심이 그걸 안다.

참 고귀한 반성이다.

나도 내 양심도, 그걸 안다.

아이들 앞에서, 참으로 가치없는 지식을 마치

그 문제 푸는 비법이 무슨 물고기 낚는 낛싯대라도 되는 양, 떠벌이고 나면,

초라하다.

내 양심이 그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반가워하지 않는 보충수업을 꾸역꾸역 들어간다.

아이들이 좀 듣다가 졸다가 한다.

내 양심이 그걸 안다.

 

한 아이가 한 세계를 품고 있다.

며칠 전, 부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17개월된 어린아기를 보육교사가 얼마나 팼는지

등짝이 다 뻘겋게 돼서 입건이 되었다.

말 안 통하는 아기들이 얼마나 다루기 힘들겠는가.

맘으로야 등짝 두들기고 싶은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맘이라면, 때리거나 벌주는 것도 절도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수긍할 수 있도록 혼내고 가르칠 수 있어야 그게 교사다.

 

말대꾸를 마음껏 하는 아이가 자신있는 사람으로 자란다.(226)

 

유치원 아이들도 힘들다.

 

말끝마다 말대꾸야.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말은 다소곳이 듣고 있어야지.(227)

 

참 많이 들은 말이다.

아이들도 답답하겠지만, 어른들도 답답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하고, 대책을 의논해나가지 못하니, 더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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