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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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충청도지만, 충북에서도 동쪽이다.

충주, 제천은 아무래도 강원도에 가까운 이북 말투와 비슷하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나름 억세다. 별로 느리지 않다.

청주, 대전은 평야지대에 가까워 느리면서 나름 부드럽다.

 

남덕현이란 사람의 충청도 이야기는

음식이라면 별로 강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심심한 이야기들 속에서

제6의 맛, 감칠맛을 찾아내는 <미원>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인생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삶의 희로애락과 애환, 페이소스와 좌절 속에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란 것이 남아있다.

 

사랑 이야기도 재밌는데, 이런 말은 자못 심난하다.

 

인연은 미수꾸리가 안 되는 것이구,

현다 혀도 헐렁하게 쩜매야지

흘릴께비 꽁꽁 묶으믄 못쓴다.

낭중에는 반다시 도로 풀르야 쓰는 것이 인연인디

꽉 쩜매믄 손톱 발톱 다 빠져두 절대 못 푼다.

그라니께 집이를 지 옆이다가 꽁꽁 묶아 둘라고 허믄 못쓴다 맴먹었슈~(111)

 

인연이란 미수꾸리가 안 된다는 말이... 쓸쓸하게 들리면서도, 그려, 그게 진리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덜 사는 꼬라지는 이 지경인디

여섯시 내고향 같은 거 보믄 시골 사람덜 죄다 부자여, 부자.

우덜 고향은 고향두 아니래니께. 우덜만 빙신인겨 빙신...(217)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나, 세상에 대한 자조...

이런 것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권 획득'만을 정말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렇게 냉소적으로 자조적으로 변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지은이는 '논설문'을 쓰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 속을 무지르는 '느릿한 어조'를 통해서,

<소통>이 중요하지,

내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의 <미수꾸리>는 풀어질 것이 이치임을 알아야 한다고 드러낸다.

 

그래.

모든 인연은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잡아 두려고 하면, 오히려 애만 쓰다 망치게 된다.

 

------------------ 어색한 쓰임 몇 가지...

 

46. 조시(시작)를 살피지는 못할 망정... 조시...는 일본어다. ... '시작'으로 번역하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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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0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왜 저 말을 다 알아듣는 저는 역시 충청도군요...."현다 현도 헐렁하게 쩜 매야지" 오랫만에 들어 보는 말입니다. 충청도 사투리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제가 대학에 와서 MT를 갔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상추를 올려 놓을 접시를 후배에게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야! 가서 앞사라 부셔와!" 그 후배 한동한 멍하더이다.^^;;
 
철학자, 철학을 말하다 토트 아포리즘 Thoth Aphorism
강신주 엮음 / 토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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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하고 습한 남도 지방에서는 생선을 보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장을 손질한 생선에 소금을 가득 뿌려서 젓갈로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썩지 않고 삭은 것은

이전의 원재료와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을 내준다.

상큼하고 발랄하던 미각을 희생하여 만든 그 맛은,

진득하고 깊어진 것이 미각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오랫동안 웅숭깊은 맛을 감돌게 한다.

 

이 책은 남도 젓갈같은 그런 책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추천하고 싶은 철학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영어, 한문과 함께 모아 두었다.

 

처음엔 얄팍한 상술인 줄 알고 심드렁해 했는데,

곰곰 읽어볼수록 깊은 맛에 빠져들게 된다.

원래 철학이란 그런 것 아니었던가.

독서의 달콤함이나 싱싱함을 던져버리고,

곱씹고 곰삭아 원래의 맛과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을 느끼게 할 때 철학은 비로소 발효의 미학을 드러내는 법.

 

이 책 역시 한 번 읽고 만다면, 그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된 부분까지 섬세하게 읽고 음미하며

오랜 시간을 곰삭도록 반추한다면 제 마음 속에서 몇 가지 줄기는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진 젓갈로 발효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는 '양주'다.

 

옛날 사람들은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서

천하게 이롭데 된다고 하여도 뽑아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처세술이라기보다는, 정치 철학이다.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야 좋은 정치다.

천하를 한 사람에게 바친대도 받지 않아야 좋은 정치다.

정치의 기본은 이렇게 쉽다.

'최선을 다 하자', '하면 된다'가 판치는 세상은 그래서 나쁜 세상이다.

 

온전한 삶이 가장 위이며,

부족한 삶이 그 다음이며,

죽음이 그 다음이고,

핍박받는 삶이 가장 아래다.(화자)

 

이 역시 정치 철학일 것인데,

인간을 인간으로 온전케 하는 것이 최상의 정치이자 삶의 철학이다.

왜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지... 이 철학은 보여준다.

가난한 삶은 온전한 삶의 다음일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러나 부유한 나라에서 스스로 스스로를 핍박하여

더 높은 곳, 더 많은 곳으로 채찍질하는 삶은 최선이 아니라, 최고를 위하는 체하는 최하의 삶인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의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이 고통스런 이유다.

 

옛날 참다운 사람들은

잠을 자더라도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있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그들의 음식은 달지 않았으며, 그들의 숨은 깊었다.

참다운 사람들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고 보통 사람들은 목구멍으로 숨을 쉰다.(장자)

 

양생 - 웰빙을 이야기하는 장자의 이야기다.

웰빙은 정치철학이자 처세술의 핵심이다.

불면증과 우울증, 음식에의 탐닉과 얕은 호흡이 잘못사는 길이란다.

 

깊은 숨...

발뒤꿈치까지 호흡이 닿을 정도로 스스로를 관조하는 삶이라면,

인생에서

불면과 우울의 나날을 보낼 일은 없을 수 있을라나?

 

머리는 교환의 신체기관이지만,

심장은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이다.(들뢰즈)

 

머리로는 주고 받는 것을 따진다.

그러나 심장은 오고 가는 것을 넘어서는 '반복을 통한 익숙해짐'의 감정을 느낀다.

이 책 역시 머리로 '배울 것, 얻을 것'을 따질 책이 아니다.

심장으로, 반복을 사랑하는 책으로 삼고 싶은 그런 책이다.

 

 진지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글자 그대로,

'진짜로 무언가를 꽉 잡는다'는 뜻이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꽉 움켜잡아야

거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중)

 

곰삭은 젓갈의 맛은 입맛을 꽉 움켜잡는다.

원래의 맛을 버리고 죽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

 

그게 젓갈의 맛이자,

젓갈이 곰삭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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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8-0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자 백가의 귀환 양주와 묵자편 너무 기대되요. 언제쯤 나올런지...

이곳은 지금도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아랫쪽은 엄청나게 덥다고 하더군요.
물론 비가 온다고 해서 덥지 않은건 아니지만 ...
건강 유의하시구요...리뷰 늘 잘 읽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3-08-0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다상담 1, 2 >가 신간으로 나왔는데 관심이 가더군요.
강신주 님의 책은 어떤 책이든 잘 팔릴 만큼 마음을 끄는 것 같아요.

글샘 님, 이 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나요?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김용민 지음 / 휴먼큐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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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회 중,

건물이 아주 크고

교도가 무지 많고

그런 교회가 세계적임은 널리 알려진 일이고,

그닥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

 

간혹 그 목사들의 행태가 지옥문을 열어 놓은 듯한 경우가 있어 욕을 먹인다.

 

김용민이 '육봉기' 목사라고 지칭한 목사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목사다.

여기 있었던 일들은 모두 '허구'다.

육봉기 목사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이므로.

그렇지만, 그 목사가 하는 일들은 상당히 '사실'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참 저질스러운 책이다.

그렇지만,

이 저질스러운 책이 육봉기를 엿먹이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데서 이 책의 '진실성'은 두드러진다.

 

한국 현대사는 사회적 불안이 일상화돼 있었고

그 일상화된 사회적 불안은 한국개신교의 부흥회적 신앙이 자양분이 되었다.

그것도 기독교 대국이 된 모티브가 '국가가 아닌 개인'이라는 점이 독특하다.(203)

 

교회가 '성장'을 추구할 때,

신도들은 성장의 동력인 '인적 자원'들이었다.

그 신도들을 대상으로 온갖 못할 짓거리를 한 목사들에 대한 풍자로 이 책은 추잡하다.

 

선데이 서울~ 실화~ 어쩌고 하던 잡지보다 더 추잡하다.

다만,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선데이 교회'와 연관되었다는 점이 부끄럽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교계가 반성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이정도까지 나오진 않았겠지.

교계는 침묵하면서 김용민을 욕보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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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7-2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창피할 따름입니다.

transient-guest 2013-08-0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성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고 봅니다.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으로 꽁꽁 뭉친 현대의 대형교회에 자성의 힘이 남아있을런지요?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 소통과 어울림의 글자 한글 이야기, 제3회 창비 청소년 도서상 학습 기획 부문 수상작
김슬옹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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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님의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쉬운 학습서로 참 좋다.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생 정도가 학습서로 읽기에 좋고,

성인들도 훈민정음에 대한 지식을 얻기엔 이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많이 알면, ㅋ~ 다친다.

좀 복잡하게 들어가면 조선의 성리학 내지는 음양오행을 이해하려 들어야 하므로,

거기까지는 들어가기 힘들지만,

암튼,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 풀이와 예를 든 '해례' 같은 설명도 좋다.

 

훈민정음이 왜 뛰어난 글자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성인이 읽어도 좋을 부분이다.

어떤 점이 뛰어난지를 이해하는 것은 훈민정음을 사랑하고 올바르게 쓰려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훈민정음이 지금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과,

창제 목적이 '애민 정신' 에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세종의 정치적 입장(4대 임금으로서의 불안한 지위, 자기 자식들- 세자 문종, 세손 단종의 불안한 지위와 차남 수양대군의 위세)를 고려한다면, 훈민정음이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 만든 글자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일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강물을 정화하기 위하여' 4대강 공사를 하신 것이라고 그대로 믿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훈민정음으로 문맹을 벗어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부작용'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선의 멸망이 한자 문화권에서 지식인의 활동을 훈민정음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만약 조선이 아직 이어진다면, 훈민정음을 사용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한자음을 통일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삼강행실도>나 <두시언해> 같은 책을 집중 간행한 일이나,

<용비어천가>를 간행하여 신하들에게 배포한 것들로 미루어 보아, 그 창제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훈민정음이 과학적이고 우수성이 공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문자여서, 이전의 문자들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구형 휴대폰에 적합한 문자였던 점 등을 홍보하는 일은 좀 안쓰럽다.

스마트폰 세대에서도 과연 영어보다 낫다고 할 것인지는 좀 그렇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고려의 <금속 활자>에 비하여 200년 뒤떨어지지만 그것을 크게 치는 것은,

그 활자가 정말 '살아서' 정신의 해방을 이끌어 오는 '종교 혁명'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조선의 금속 활자는 '권력자의 의지'를 공고히하는 데 기여하였을 뿐이다.

 

훈민정음이 세계 최고의 문자가 되려면,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문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독재 국가에서 비루한 감방에서 '항소 이유서'를 쓰는 문자로,

'투쟁의 전선에서 선동적인 문자'로 쓰이는 문자가 가장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

김구 선생이 제창한 '문화적인 국가'가 이뤄져야 그 문자 역시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리는 법이다.

 

결국 한글이란 훌륭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아서

가장 훌륭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글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한글이 잘 돌아가는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서

대통령 선거를 흐트리거나 하는 국가라면, 그건 문맹국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셈이 아닐까?

 

온갖 방송이나 신문에서,

현대자동차가 무얼 잘못하고 있어서, 왜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것인지,

왜 법적으로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하청으로 미뤄버리는 것인지,

알리지 못하는 문자가,

희망버스 타고온 사람들이 술판을 벌이려고 전국에서 천여명이 모였다고만 떠드는 문자가,

국정원에서 선거에 개입한 정황은 번연히 있는데, 그것을 비판하는 모임을 알리는 힘은 없는 문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슨 문서가 이렇네 저렇네 말을 꾸며내는 데는 부지런히 쓰이는 문자라면,

문자가 사람을 위해 봉사하지 못한다면,

문맹이 낮은 국가라고 해서 결코 행복한 나라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나라 축구가 이기면 선진국이 된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치면 축구 잘 하는 나라들이 선진국인 셈? 브라질, 아르헨, 스페인 같은 나라가?)

문자가 훌륭하면 좋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품고 있어 보인다.

더 생각해야할 점이 많은 지점이다.

 

이 책에서 좀더 고려해야 할 점,----------------------

맨 앞의 만화 부분에서 '한글'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글은 주시경 선생이 만든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면, 훈민정음, 언문 등으로 부르도록 고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경상남도 상주'라는 지명도 등장한다.

경상도는 경주, 상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명이다.

둘 다 경북에 있는데, ㅋ~ 그리 치자면 경상남도는 어불성설이다.

경주도 상주도 없는데 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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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2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현 상황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끝에서 세 번째 단의 글이 마음에 깊이 파고드네요. 좋은 문자도, 과학기술도, 머리도, 모두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치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요.
 
나프탈렌
백가흠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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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옷장 안에 신문지로 감싸인 좀약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좀약이란 발음이 촌스럽다 여겼다.

'좀'이란 것이 옷이나 종이를 쏠아대는 벌레란 것도 나중에 들었다.

 

언제부턴가

좀약의 자리에 나프탈렌이란 말이 들어섰다.

나프탈렌은 그 냄새만큼이나 화한 느낌이다.

차가우면서도 열기가 느껴지는 단어만큼 그 냄샌 독특하다.

 

이 소설의 제목을 나프탈렌이 붙인 편집자는 '차가운 열기'를 잘 포착한 사람이다.

 

이 소설속 인물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눅눅하고, 누추하고, 거기다 구질구질하고 비가 내린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 속에서,

장맛비로도 아니 어떤 폭우나 호우로도 씻기지 않을 삶 속을,

액체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보송보송하니 화한 냄새를 풍기며 기화하는 꿈을 꾸었을는지도 모른다.

 

노인과 사랑.

꽃보다 중년.

이런 것이 요즘 트렌드라면,

이 소설보다는 '은교'의 문장이 훨씬 아름답다고 권해주고 싶다.

 

누구에겐가 다가서는 죽음과 공포의 미스테리,

이런 것을 맛보고 싶은 이라면,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소설을 권해주고 싶다.

 

나프탈렌은 고체가 액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기화하는 물체이다.

소설 속에서는 고체가 액체가 되어 세상을 구질구질하게 물들이는 것도 잘 포착해야 그게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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