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4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자가 추렸단 노래 305편.

조선조에선 아마도 과거 시험의 바이블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충성, 효도' 같은 것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기대하던 난 깜,놀했다.

이 책에선 조선조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남녀상열지사'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무슨 '교훈'을 찾는다면, 어불성설이다.

물론 국가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있지 않던 시절이지만,

노래의 기본 정서는 사랑이고, 남녀간의 연정이다.

 

교동(狡童, 얄미운 사나이)

 

저 얄미운 사나이 나하고 말도 안해

저 사나이 때문에 밥도 안 넘어가

저 얄미운 사나이 나하고 밥도 안 먹어

저 사나이 때문에 잠도 아니 오잖아.

 

이런 것이 '風' 부분에 가득하다.

뒷부분의 '雅'와 '頌' 부분에선 재미없이 지루하게 봉건 국가의 질서 유지에 대한 말로 그득하다.

마치 용비어천가를 읽는 느낌이다.

 

시삼백, 사무사...가 이 책에 대한 평이다.

시를 삼백 편 모았다... 삿된 마음이 없는 것들이다.

또는 이 시 삼백 편 읽으면, 삿된 마음 사라지리... 이렇게 본다.

여기서 '삿된 마음 사라짐'이 추구하는 바가 곧 '충'과 '효'였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달달 외웠어야 할 조상들이 참 가엾다.

그들이 공부랍시고 했던 것들이 한심한데,

요즘 아이들이 달달 외는 것들 역시, 영어 단어, 수학 문제에 불과하니 역시 한심하다.

 

누굴위해 아름답게 꾸밀 것인가.

 

첨피기욱 유비군자

 

군자호구 요조숙녀

 

전전반측

 

절차탁마

 

벌목정정

 

이런 말들이 조선의 가사나 현대시에서도 등장한다.

온고지신이라고...

옛 말들에서 이끌어온 비유들도 제법 그럴듯 한 것이 많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고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언급된,

벌가벌가 기즉불원~ 같은 구절이다.

 

원래는 혼례의 법도를 노래한 것이라는데,

이윤기 선생은 진리 탐구의 방식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인용했던 듯 하다.

 

아~ 새삼, 이윤기 선생을 만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난,쏘,공의 한 부분을 가르치다가...

다시 이 책 전체를 읽게 되었다.

 

열두 편의 소설은 각각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30년도 더 전이다.

공간은 서울의 한 철거촌과 은강이라는 가상의 항구도시...

 

그러나, 이 소설 속 알레고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권력자와 결탁한 가진자들.

그리고 못가지고 다 빼앗긴자들.

그 대립항의 간극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가까워져가는 것이 아니라,

아스라히 멀어져서,

도저히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여기기 힘들 정도로 낯설어지고 말았다.

 

마치,

1950년대의 혈육간의 정을 못잊어 통일의 염을 잠시도 잊지 못하던 시대가 흘러서,

이제 통일은 금전적 문제나 경제적 사정에 따른 외교적 사무로 변질된 것처럼,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교섭 조차도,

섣불리 손대기 힘든 그곳으로 옮겨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땅에선 '노동'이라는 '가치 중립적' 용어를 두려워한다.

'근로'(사용자의 맘에 맞게 열심히 일만 하는 착한 존재)자에게만 밥을 주고 싶은 것이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구미에 맞는 취향의 노동자다.

그걸 '노동자'로 부르면,

은강의 '살인자' 난쟁이의 큰아들처럼,

함부로 가진자들을 짓밟으려는 눈빛을 빛내기라도 할 듯...

 

영희의 팬지는 키가 너무도 작다.

고물상에서 가져온 줄이 하나 모자라는 영희의 기타는 참으로 초라하다.

 

아직도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평면이 3차원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주어진 하나의 의미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클라인 씨의 병처럼,

3차원이 4차원으로 접어드는 그런 시간과 환경이라면,

그제서야 난쟁이들은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쟁이라서,

꼽추라서,

앉은뱅이라서,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환경 때문에,

세상을 낮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곳이라면,

참 비루한 땅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조차 고민하지 못하도록,

산소 흡입구조차 틀어막으려는 세력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없애고, 한국사 교과서조차 자기들 맘대로 쓰려 한다.

 

그래.

난쟁이 일가의 이 역사책은,

언젠가 스르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라는 자들은 득의 만만하겠지만,

지금도 그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천안함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부정투표를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지만,

그 손바닥 너머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 손바닥을 치워버리면 뭔가가 있단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희가 세상에 치를 떨며 썼을 이 소설을,

30년이 더 넘이 읽는데도.. 아직도 치가 떨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책방 -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고단하고 외로운 당신을 위한 독서 처방전
구정은.김성리.윤지영.홍선영 지음 / 아고라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고단하고 외로운 당신을 위한 독서 처방전...

 

이런 부제를 달고 있다.

 

한국은 인간 해방의 면에서 젬병이다.

역사적으로 최근까지 노예제가 존속되었고,

아직도 '자네 어디 정씨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거 보면, 양반 의식이 그득하다.

그럼 나는 쌍놈이라서 집에 있는 족보가 가짠데요~ 이러는데,

그럼 정말 나를 쌍놈 보듯 본다. 헐~ ㅋㅋ

 

남자가 그런데, 여자는 뭐~

쌍놈~이란 욕은 그럭저럭 어른이 애들을 야단칠 때 쓸 만 하지만,

썅년~이란 욕은 계집애들이 친구들과 애칭으로 부를 때 빼곤, 아주 험악한 욕설이 된다.

그것이 한국여성의 지위에 유추할 수 있는 말이고,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임이

한국인의 삶의 질, 특히 여성의 삶의 질이 세계 최하임을 방증하는 표지가 된다.

 

이 책엔 네 명의 여성 화자가 나온다.

전문직인 교사, 교수, 기자, 변호사들인데,

여성으로서의 삶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그러고도 오히려 더 억울한 일들이 많은 여성의 이야기도 나온다.

 

주어야 할 것을 주고,

해야할 의무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것들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기 마련이다.(47)

 

초반부엔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을 소개하지만,

중반 이후엔 꼭 여성문제가 아닌 것들도 인간으로서 고민해야할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엄마들만 읽어야할 것은 아니고,

남성들도 독서 길라잡이로 읽어볼 만 한 책이다.

 

책 속엔 길이 없다.

다만, 책 속엔 길을 찾아 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비추일 따름.

그들이 모두들 가고 있는 그 자취를 길이라 할 수도, 길이라 부르지 않을 수도 없다.

 

원래 길을 몰라서 헤매이는 사람은 없다.

내가 가서 그 길이 생긴다는 말은 헤매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들 사이(사람 인, 사이 간) 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던 어느 시인의 시구절처럼,

고독한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책들을 읽음으로서,

주어진 삶을 그대로 뚜벅뚜벅 지쳐서 걸어가는 '즉자적 존재'로서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회복하는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대자적 존재'로서의 삶에

아주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이 독서 활동이라면,

그래,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길은 탄탄대로라기보다는 가시덤불 속의 숲길이기 쉽다.

숨어있는 산딸기를 맛볼 수 있는 자유는 만끽하는 자의 태도에 달린 것.

 

책을 읽자.

 

----------------

 

 

166. 선생님들은 지나가면서 반장 어깨를 다독다독, 나는 Tap... 부반장 어깨를 토닥토닥...

   영어로 저게 뭔가 하다가 ㅋ~ 깨달았다. 컴에 있는 일정 간격 탭으로 미는 기능? ,Tab으로 적혀있는 그것을 말하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와 혁명'이란 책을 알라딘에서 얼핏 보고,

이게 레닌의 그 책? 이러고 깜짝 놀랐다.

 

음...

왜 다시 이런 책이 나와야 하는 걸까?

레닌이나

마르크스, 엥겔스는 벌써 사문서가 되어버린 지 오래 아닌가?

 

신자유주의 광풍이,

그리고 한국의 정치적 퇴보가 다시 레닌을 불러오는 건가 싶어 입맛이 떫다 못해 쓰다.

 

정치에는 환멸,

사회에는 신물,

문화에는 구토,

교육에는 오심,

 

그래, 개혁으론 안 되겠나부다.

다시 레닌을 읽어야 할 시기가 올지 모른다.

어둡다.

하늘 덮은 쇠 항아리가...

 

 

 

 

<알라딘 책 소개>

 

출간된 이래 사회주의 혁명사상의 고전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의 사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혁명가, 정치가는 물론 지성계와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상을 소개한 책이라면 <국가와 혁명>은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어느 정치학자는 이 책에 이르러 “서양 정치학 전통에서 쓰여왔던 어휘와 문법이 갑자기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의 이 핵심 저작은 사회변혁의 의지가 옅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연히 사라져갔다. 한때 대학가의 스테디셀러로 각광받았던 이 책은 지금은 헌책방에서조차 찾기 힘든 귀중한(?) 아이템이 된 것이다.

 

 초판 서문
제2판 서문

제1장 계급사회와 국가
1. 국가―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
2. 군대, 감옥 등의 특수기관
3. 국가―피억압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
4. 국가의 ‘사멸’과 폭력혁명

제2장 국가와 혁명: 1848∼51년의 경험
1. 혁명의 전야
2. 혁명의 총괄
3. 1852년의 마르크스의 문제 설정

제3장 국가와 혁명: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마르크스의 분석
1. 코뮌 참가자들의 시도는 어떤 점에서 영웅적인가
2. 파괴된 국가기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3. 의회제의 지양
4. 국민통일조직
5. 기생적 국가의 절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예수님,

한 삼십 여년 전에 여기 한번 다녀 가셨을 겝니다.

너무도 가슴이 터지도록 아파서 다들 비명을 지르고 그러다가 넋이 나갔던 그 시절,

예수님이 오지 않았을 리 없지요.

 

밤이 되면 도로는 브레이크등으로 붉게 강물을 이루고,

주택가 곳곳에서 예수님이 참으로 넓은 팔을 벌리고 오셨지요.

삼십 년 전 광주에서도...

교회들이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평화의 사도들이 아마도 길거리에 김밥 나눠주러 나와서 교회를 꼭꼭 걸어 잠갔을 터입니다만,

그 거리에서 예수님도 같이 피흘리셨을 겝니다.

 

이 나라의 교회들은 이제 문을 활짝 열고 '시주함'을 활짝 펼쳤습니다.

아, 교회는 '시주'가 아닌가요?

뭐, 중놈들 배불리던 시주나, 문닫아 걸고 숨었던 그자식들 처먹는 '헌금'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상인 자본주의와 개신교 정신 사이의 친화성은 구원적이었고(16)

 

그래요.

그렇게 시작된 개신교였는데,

어쩌다 이땅에 오셔서 그렇게 친자본적, 친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착실히도 젖어 들었는지요.

 

B는 동시대 수많은 장삼이사처럼 워낙 불교 신도인듯하게 살아왔다.

여성에게 우호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곳으로 그 당시 빈발하고 있던 교회라는 기이한 장소가 한결 평했다.

교회당은 일부 소외된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장소적 가능성을 현시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설교라는 언어적 치유의 매개가 외로운 심금을 치고 있었던 사실...

여자들의 (살이 아닌) 말에 도통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에서...(27)

 

그렇죠.

이 땅에선 빨갱이가 아니려면,

군인가족, 경찰가족, 그도 아니라면, 교회라도 다녀야 했던 겁니다.

 

폭력적이거나 무능한 부모와 변덕스러운 남편 대신 '전지전능한 사랑의 신'...으로서의 교회(31)

 

아, 이 땅의 교회는 참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여왔던 모양입니다.

 

불행과 고독을 위로하는 낭만적 슬픔의 장소... 이자,

어린 우리에게 그곳은 잠시나마 가난이라는 현실을 잊고 남의 땅에서 벌어진 만화경적 고사에 취하는 환상의 자리...(95)

로서의 교회는 이제 바뀌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아.(96)

그렇군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자기에게 타락한 현대사회의 치료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자기가 치료하는 척하는 그 질병의 증상이다.(110)

 

군대간 아들이 주말마다 천주교회를 꼬박꼬박 갔답디다.

주님의 은총으로 초코 과자와 콜라를 영접받았다더군요.

이제 자대배치받고 아직도 가냐고 그랬더니, 축구한다더군요.

훈련소에서나 그 핍박을 피하는 곳으로,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는 곳으로 기능하는 예수님의 처소가,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예수님,

이 땅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합데까?

명박스럽게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고, 차근차근 축적되길 간절히 기도드리옵디까?

가난한 사람들은 취업을, 진학을, 사업을 그렇게 기도합디까?

 

물도 썪도록 강을 파헤쳐 돈을 벌었고,

원자력 발전소에 부정한 부품을 주고받아 돈을 벌었고,

온갖 공기업의 임원이 되어 엄청난 돈을 벌었던 고위층들이,

교회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빌었는지 예수님 잘 아십니까?

 

나는 종교의 완성 - 종교는 결국 믿는 자의 일생에 근거한

한시성과 실존성에 제한적으로 유효하므로 완성이라는 말 그자체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 -

이 어떤 정서와 분위기에 젖어있는 생활 양식,

그리고 그 생활 양식에 의해 검질기게 몸을 끄-을-고 다가서려는 어떤 희망에 의해서만 가능해지리라고 전망한다.(132)

 

이 책의 지은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종교란 것은 교회에 있지 않고,

그 종교를 믿는 자의 삶에, 그 몸으로 증거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제 이 교회많은 나라에 오셔서,

저 교회들은

그 교회의 기독교는 나 '기독(크리스트)'의 이름을 빙자한 삿된 무리들의 거처라고 알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있었으니 '기독교'가 필요치 않으나,

굳이 기독교인으로 남고자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에 불과한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 그러니까 어렵사리 몸을 끄-을-고 남을 따르려는 삶의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제자란 '차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입니다.

쉽게,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고쳐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루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쓰레기통의 파리처럼 번성합니다.

이제 신자의 파리떼와 그 파리대왕들의 틈 속에서 유일한 가능성은 '제자'이지만,

예수처럼, 다만 불가능한 꿈을 지피면서

걷고 걷다가, 죽어버리십시오.(머리말에서, 5)

 

예수님,

예수님의 신자들만 이렇게 부패하고 나태하겠습니까.

세상이 그렇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고난의 길이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어서,

예수님께서

부디 같이 걸어 주시라고...

몇 마디 당부를 적습니다.

 

아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3-10-21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나한테 교회다녀야 한다고 열정을 바쳐 강요하던 선생님께 내가 했던 말이 여기 써 있네요.ㅋㅋ
우리 아들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두루 섭렵했는데, 요즘은 어쩌는지 휴가오면 물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