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스티브 잡스>

 

리뷰쟁이 이권우가

독특하게 여행에 관련된 책을 모아 읽고 리뷰집을 냈다.

 

여행이라 하면,

일단 가서, 사진을 찍고, 풍경을 찍고, 사람과 민속을 읊조리는 기행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권우의 독서는,

보통의 여행담에서부터 역사를 훑어내는 여행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여행의 세례를 맛본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이전까지의 이권우의 박학다식, 다양다종한 리뷰집을 읽을 때처럼,

풍성한 미각을 모두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이 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온갖 풍미로 가득한 식탁을 기대했다가,

한쪽 취향의 독특한 식탁을 만난 실망감 정도~

그렇지만, 배를 두들기며 일어설 때는,

또하나의 경험을 만족하며 일어선다.

 

어젠가?

직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자리를 둘러보니,

미국인 원어민 교사 혼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0.5초 당황. ㅋ~

5명이 앉은 자리에 가서 끼어앉을 것인가, 그 원어민을 구출해 줄 것인가.

결국 난 소심하게 원어민 앞으로 가서 앉았다.

 

뭔가 말을 하면서 밥을 먹어얄 텐데,

마침 국수가 나와서,

화이트 누들, 더 푸드 오브 웨딩 세레모니~

이러면서 국수 문화 전도사처럼 이야기가 가버렸다. ㅋ~

 

칸지데~(이건 일본어~)

화이트 앤 헌드레드, 세임 프러넌세이션~

흰 백, 일백 백.

누들 심볼라이즈 롱 라이프, 앤드 퓨어리티~~

 

뭐, 중얼거리면서도 그 원어민은 잘 알아 듣는다는 걸 확인했다

미국엔 결혼식 음식이란 게 특별히 있느냐 물으니, 특별한 건 없단다.

 

행간이 많고 품이 넓은 원작을 번역할 때 좋은 문구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자가 모어의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까닭에 문장을 성숙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외부의 맥락과 부딪히는 와중에

내가 모어 사회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35,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셋' 중)

 

원어민과 이야길 하노라니,

당연히 그가 낯설어할 우리것을 이야기해야하는데,

그는 일본에서도 8개월 살았고, 한국의 경주도 가봤다고 그러는데,

제주도를 가보고 싶고, 중국도 가보고 싶다는데,

막상 언어가 안되는 것도 안 되는 것이지만,

설명할 내용의 컨텐츠에서 막히는 일이 더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외부와 부딪히면,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몰랐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여행은 그렇게 낯선 곳에서 끊임없는 질문에 부딪는 시간들이니,

잡스 말처럼, 여정 자체가 보상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앞두고,

연명치료보다 죽음에 맞선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란,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이다.

비록 당신의 소원이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턱없이 미친 짓으로 보인대도 상관없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당신 내면에 있는 예감하지 못했던 능력이 깨어난다.

굉장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당신을 사로잡으며,

당신의 삶과 병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다.

당황스러운 모든 일도 자신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써 최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야 큰 충족감과 깊은 내적 평온을 찾을 수 있다.(86, 쿠르트 파이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중)

 

죽음 앞에서,

사람은 다른 모든 가치가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살아있음은 곧 '느낀다'와 동의어이다.

느끼지 못하고,

피곤해, 지쳤어, 힘들어, 짜증나~ 이런 날들은 살아있는 날들이 아니다.

온 몸의 감각 기관을 활짝 열어 펼치고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투쟁들이 이토록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154, 다니엘 에버렛,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중)

 

자연을 스쳐지나가며 차창으로 볼 때와,

발 끝에 채이는 꽃들과, 코를 간질이는 향기로 만날 때는 삶의 여정이 다를 것.

 

남미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의 노동운동, 학생운동의 한계와 공동체 커뮤니티 붕괴에 대한 이야기를 얻기도 하고,

미국을 다니면서,

신자유주의 광풍이 대학을 장삿속으로 밀어넣는 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꼭 낯선 곳, 자연 속

이런 곳이 아니어도 여행은 여정을 가지고 의미를 줄 수 있다.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 생일에 받은 책인데,

아직이다.

 

이렇게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생각나게 하는 독서의 여정도,

여정 자체가 온 감각을 춤추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운 나무 창비시선 368
정희성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그리운 나무, 전문)

 

참 시가 멋지다.

그리운 마음을

벋은 나무가지 하나에 얹어서 표현하다니...

 

이런 시인을 우울하고 화나게 하는 것이 세상이다.

 

평화의 시는 평화라는 말 한 마디 없이도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할 터.

나는 거기서 너무 멀리 있다.

내가 사는 시대가 그러하듯이.(시인의 말 중)

 

시대가 평화롭지 못한데 시만 평화롭다면, 위태롭다.

그래서 정희성의 시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현실에 한켠을 적시고 있다.

현실에 젖은 리트머스 시험지는 푸른 빛을 붉은 눈물로 바꾸기도 하고,

붉은 현실을 푸른 들판으로 변화시키기도 하면 좋으련만,

시는 힘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파르르 떨면서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느끼기만 하는 것이다.

 

내 눈을 뜨게 해준 사람

망막 뒤에 가려진

참세상 보게 해준 삶...

그는 나를 장애로 만든 사람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미워해서는 안될 사람!(눈 밝은 사람-리영희, 부분)

 

눈감고 싶은 현실,

눈돌리고 싶은 현실을

눈뜨게 해준 지성의 스승에게 바치는 헌시다.

 

아아, 묵침의 님이여

이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묵침의 님, 부분)

 

한 시대가 이렇게 가는구나

나더러는 조시나 쓰라 하고

김근태가 또 먼저 갔다(그대를 잊지 못하리, 부분)

 

주여 용서하소서

그가 왕이 되었으니

나는 평생 역적으로 살았습니다(고백, 부분)

 

그가 누굴지... 알만한 세상.

 

현실은

날마다 눈물

피눈물

피바다

 

거기서 눈돌린 시는 시가 아니다.

거기서 눈 돌릴 수 있는 돌덩이 마음을 가진 이는 시인이 아니다.

 

빛 고운 이 낙엽 나라

가을은 얼마나 깊은가

아름다운 이 세상 보았으니

그대 향한 이 마음과

좋은 시 한편 쓰는 일 말고

무엇이 나에게 더 남아있겠는가(가을 엽서)

 

편지를 '엽서'라고 표현한 사람은 시인이다.

낙엽에 글을 썼을까? 일본어로도 하가키는 잎에 쓴다~는 뜻인데,

그래.

우리말 '깊은'은

사람 마음도,

숲도, 가을도 다 깊어지게 만든다.

 

깊어가는 가을,

그리운 나무에서 떨쿤 낙엽 하나 주워

엽서를 쓰자.

시를 쓰자.

분노를 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자키 쓰쿠루... 多崎 作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다.

 

쓰쿠루는 '만들다'는 뜻의 일본어 동사인데,

그는 '역'을 만드는 엔지니어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역'은 어느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도의 연결지점이란 면에서,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반영하는 직업이다.

 

궁금증 유발?

살인 사건?

여행...

 

이런 소설로서의 재미를 다 가지고 있는 소설인데,

하루키가 쓰쿠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놓인 '관계'는

케미스트리(화학, 궁합, 공감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처럼,

그 케미스트리가 '화학적 결합'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의 기본 속성 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

그런 사이는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일본과 핀란드라는 어떤 머나먼 거리라도 한 순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케미스트리가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의한 것이라면

뒤섞여있는 '혼합물'과도 같이,

근본 성격은 변함없는 것이 되어,

따로 놀게 되는 것이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는 하나의 공유 결합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쓰쿠루의 이름처럼, 다자키(많을 다, 곶 기)... 울퉁불퉁 튀어나온 곶이 상징하듯,

삶의 여정은 평탄하게 닦인 길이 아닐 때가 많다.

그 평탄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또 쉽게 잊히게 된다.

 

고등학교때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끈끈하게 엮였던 결합이라 해도,

결국 남는 사람은 남고 스러지는 사람은 스러진다.

세월이 증명한다.

그 결합이 두 사람을 변화시킨 화학적 결합이었는지,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오나 아카처럼 16년만에 다시 만났어도,

멀뚱멀뚱 각자 살아가는 길을 제각기 살아가는 결합이라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 따윈 나눌 틈이 없을 것이지만,

지구를 반바퀴 돌아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 만난 구로처럼,

여전히 꼬옥~ 껴안고 다독거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한 명인 친구라 해도,

그런 친구를 만드는(쓰쿠루) 일은 행복하다.

 

쓰쿠루 :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52)

사라 : 누구에겐가 이야기해 버릴 필요가 있었던 거 아닐까.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자기 안에 침잠하여 사는 스타일의 삶에겐, 이런 열린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들은 모두 제각기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빨강, 파랑의 남자친구와 하양, 까망의 여자친구.

이야기 속의 미도리(초록)도 모두 색채다. 후배 하이(회색) 역시 그렇다.

 

색상은 제자리에서 머문다.

그러나 쓰쿠루는 그 색상과 색상, 채도와 채도 사이를 '순례'하면서,

인간이 아닌 '인간 관계'를 탐색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자기 색채에 함몰되지 않은 상태로....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인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 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는 이윽고 사라진다.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 떠나버리는 것 같다.(150)

 

쓰쿠루의 가치는 그렇게 제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지구 반 바퀴도 마다하지 않고, 순례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깨달은 쓰쿠루에게 '색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244)

 

아카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하루키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의 대표 작가다.

툭 튀어나온 덩어리란 뜻으로, X- 세대나 마찬가지 표현이다.

이전까지의 공동체 사회를 버리게 되는, 상실의 세대인 셈이다.

 

현대인의 상실감에 집착하는 하루키는,

이전 세대라면 삶의 공간에서 당연히 획득하게 되는 '케미스트리'에 천착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364)

 

지구 반바퀴를 돌아 만난 친구 에리에게서 쓰쿠루는 진정한 케미스트리의 의미를

상처로 연결된 마음으로 배운다.

마음과 마음이 상처로 깊이 연결된 '사이'에서는 용서할 것도, 수용할 것도, 더이상의 언어도 불필요한 것.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381)

 

친구 에리가 그릇만드는 사람이어서 발견하게 되는 이런 이야기는,

상실의 '실존'들 '사이'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릇은 그릇이다.

그릇에 꼭 무엇이 담겨 있어야만 그릇이 아니다.

텅 비어 있음으로 오히려 그릇은 쓰임이 있다.

아름다운 그릇이라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그릇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것이니 말이다.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388)

 

사람의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고독한 실존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면,

이 가을,

하루키를 만나도 좋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수영은 자유 그것 자체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시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라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김현)

 

김수영의 시는 짧은 한국의 현대에서 우뚝하다.

그의 시는 다양한 모순의 얽힌 얼개를 잘 드는 칼로 썩둑, 잘라 보여준다.

자유에 대한 노래여서 절창이라기보다,

그의 시는 절규라는 김현의 평이 짜릿하다.

 

자유에는 어째서 피냄새가 나는지...

 

이런 것이 그의 절규다.

산문에서 최인훈의 '광장'이 이명준을 내세워,

'중립국', '중립국'만을 외치다 사북자리에서 뒤돌아

삶을 버리고 푸른 벌판 바다로 뛰어내리듯, 이 땅의 삶은 노래하기보다 절규하기에 가까웠다.

그러니, 시가 읊조리거나 노래하기보다,

침을 뱉듯, 강렬한 절규와 비평으로 두드러졌을 게다.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의 향수가 문화의 세계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징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발효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403, 시여, 침을 뱉어라 중)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

박정희의 독재 시대에 '혼란'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고 외쳤던 시인이다.

시는 그리하여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써야 한다는 그의 시론은,

말이 아니라 절규요, 투쟁이었다.

 

그의 시작 노트에서는 시에 대한 고민들을 언어로 표현하였다.

 

행동을 위한 밑받침, 행동까지의 운산이며 상승,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의 총화가 행동이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 그때는 3할의 비약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때인 동시에 회의의 구름이 가시고 태양처럼 해답이 나오고 행동이 나온다.

시는 미지의 정확성이며 후퇴없는 영광이다.(431)

 

아아, 행동에의 계시.

문갑을 닫을 때 뚜껑이 들어맞는 딸각 소리가 그대가 만드는 시 속에서 들렸다면

그 작품은 급제한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읽은 일이 있는데,

나의 딸각 소리는 역시 행동에의 계시다.

들어맞지 않던 행동의 열쇠가 열릴 때 나의 시는 완료되고

나의 시가 끝나는 순간은 행동의 계시를 완료한 순간이다.

이와 같이 나의 전진은 세계사의 전진과 보조를 같이 한다.(433)

 

그의 산문들을 읽고 있으면,

신문에 글을 싣고,

문인들끼리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

김수영은 시를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인인 만큼,

그의 시는 온 몸이 쑤실 정도로 치열하다.

 

한국의 분단 현장에 최인훈이 '광장'을 펼친 자리가 분명하고,

노동 문제에 조세희가 '굴뚝'에서 난쟁이들을 위해 작은 공을 쏘아올릴 때,

시에서는 김수영이 온몸을 '자유'를 노래한다.

 

그것이 김수영을 읽는 의미다.

 

 

김수영 "푸른 하늘은"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3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에 이어 금세 새로운 서평 이벤트로 찾아왔습니다. 


서평단 책을 소개하기 전에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윤고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혈기가 넘치는(!!) 젊은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이번 서평단의 주인공은 바로

201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인 이재찬

「펀치」입니다. 

YES24 상품 보러가기_




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는 내신 성적 5등급, 외모도 5등급인

18살 여고생 방인영이 40대 계약직 공무원 ‘모래의 남자’에게 부모 청부살해를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습니다. 


방인영은 재력과 명예를 고루 갖췄지만, 재벌총수와 사회 고위층의 비리를 변호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며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 변호사'라고 칭합니다. 


또한 자신의 성적에 열을 올리며, '방 변호사'에게 사랑받기 위해 몸무게 유지에

여념없는 어머니에게도 등을 돌립니다.


방인영은 '딸을 외고 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계급이기에 억울함'(p.12)을 가진 부모에게,

혈연이기에 잔존할 수 밖에 없는 자잘한 애정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이재찬 작가만의 경쾌한 말맛과 뒷통수를 때리는 신선한 시각은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2013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 중_

이 소설이 지닌 온갖 장점 중에서 이른바 ‘타고난 감각’ 혹은 ‘선천적 재능’으로 부를 만한 것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로서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흑마술’이라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사기다. 그러나 이 작가가 제대로 사기를 쳐 주어서 나는 기뻤다.

—심사평 중에서|박형서(소설가)

 

이야기가 경쾌하고 문장이 좋다. 문장들을 읽어 가다 보면 사물(사태)의 본질을 재빨리 포착해서 이를 발랄하게 드러낼 줄 아는 감각이 느껴진다. 우리 문단에 의미 있는 한 방을 날려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서|정영훈(문학평론가·경상대 국문과 교수)




2013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이재찬 작가, 그는 누구인가?_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버스, 정류장」이 당선되었고,
 이 작품은 2002년 3월 김민정, 김태우 주연의 동명 영화(명필름 제작)로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펀치』로 제3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장편소설 『안젤라 신드롬』으로 제5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수상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신 분들에게 
더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3 오늘의 작가상 이재찬 장편소설 <펀치> 중_
한국 여자의 몸매는 전통적으로 '상체 빈약, 하체 튼튼'이다. 
걸 그룹들은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른 '가슴 육덕, 하체 부실'이다.
몸매로는 신이 창조한 역사를 어겼지만 걸 그룹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남성이 창조한 여성의 역사에 고스란히 복종하고 있다.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이건 질투심이 아니다. p.20

"1등급이 아니면 기회조차 잡지 못해."
방변호사가 한 말이다. 1등급은 유전자와 부모의 재산이 결정하는 거다.
주인공이 될 수 없기에 난 궤도에서 이탈할 테다. 
안그러면 내 인생은 보나 마나 평생 들러리일테니까. p.25 

엄마와 방 변호사도 시장에서 만나 흥정한 거 아닌가.
각자의 가치를 높인 후 적당한 소비자를 물색하고 판매하기 전에
스스로 사랑을 세뇌한 후 결혼한 거 아닌가.
열성 유전자만 물려준 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사랑이 충만했다면 우성유전자들이 내가 됐을까. p.56

맨발로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타면서 동생한테 쌍욕을 퍼부은 
방 변호사는 누가 뭐래도 자타 공인 대한민국 엘리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p.57


이재찬 작가만의 예리한 시각과 경쾌한 말맛이 느껴지시나요?


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를 읽고 
서평을 써주실 분 들은 아래의 양식으로 해당 날짜까지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_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10.25 - 2013.11.05 (12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3.11.06 (수) 오후
★ 서평 기간: 2013.11.09 - 2013.11.23 (2주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