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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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블록의 소설, 아버지들의 죄.

 

알콜을 상습 복용하는

범인 체포 현장에서 발사한 총알이 죽인 꼬마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퇴직 경찰이며

시답잖은 탐정 일을 맡고 있는,

매튜 스커더.

 

그에게 맡겨진 일은 난자당한 웬디란 여성의 살해범을 찾는 일.

살해범으로 수감된 청년은 감옥에서 자살하지만, 웬디를 죽인 이유를 찾고자하는 부친.

 

이 소설에선 흥미진진한 스릴은 없지만,

웬디란 아이가 살아온 삶 - 가족에게서 분리되어 애정결핍의 상태에서 창녀 생활을 하는 삶

리처드란 아이가 살아온 삶 - 엄격한 부친 아래 모친 없이 살아온, 동성애적 삶을 살다 살인자로 몰린 삶

이런 삶들을

'죽어도 싼 인생'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 봉건 시대의 통념이었다면,

근대 이후, 아버지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로서,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이런 책도 읽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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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11-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에도 이런 아버지의 위치에 대한 고찰이 있나봐요.
아버지란 위치 참 막막한것 같아요. 제 아버지 세대와 지금 아버지는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지내시죠?

글샘 2013-11-11 13:36   좋아요 0 | URL
참 오랜만이죠? ^^
근대 생산 사회는 아버지의 위치를 집에서 분리해버린 거 아닐까요?
변화에 적응하긴 늘 쉽지 않습니다.
 
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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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적막한 기분...

 

이런 기분을 아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도시화가 일어나기 전, 농촌 사회는 사람들은 적지만, 아는 사람뿐이어서 늘 목말하했을 사람들이,

이제 도시에서 살면서 고독해진다.

 

도쿄는 3.11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진흙탕 길을 포장하고,

하수도나 하천을 정비하고,

욕망의 리비도가 오로지 수직 상승하는 스카이 라인으로 '발기'로 비유되는 대도시.

그것이 한 순간에 다시 진흙탕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반성을 하게 한다.

 

잡지 '바일라'에 연재한 글들이라 간단하고 짤막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한 구석을 이렇게 돌아보는 일도 재미있을 듯 싶다.

<다시 서울을 걷다> 같은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여러분 중에도 '자기 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 같은 건 없습니다.

있는 것은 지금 거기에 있는 자신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안의 모순을 그대로 껴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찾기'의 여행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각오와 담력입니다.(21)

 

자이니치(재일조선인)로 살아온 강상중이,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으며

필요한 것으로 꼽은 것이 '각오'와 '담력'이다.

이 '각오'와 '담력'은 이 책에서 제법 등장하는데, 그것이 '살아가는 힘, 고민하는 힘'일 수 있다.

 

인생의 드라마트루기(연출법)에도 저는 이 '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가족이나 배경 등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과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가요?

일단 거리를 둔 상태로 인생을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어딘가에 또 하나의 눈을 갖지 않으면 자신과 그 역할의 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연출가처럼 조감할 수 있는 시점을 갖지 않으면 이야기를 잘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점을 갖기 위해서는 인생에서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뒤로 물리고 볼 수 있는 정신적인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4)

 

그는 남들이 흔히 가는 순례길이나, 전국일주를 택하지 않는다.

매일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도심의 어떤 골목들의 의미를 곰곰 궁리한다.

거기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오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어디에나 '이것이 인생'은 있는 법.

그것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만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주고, 자신을 옳게 보기 시작하는 여유를 갖게해준단다.

 

우리는 고민을 순수하게 사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며 그사람의 내면적 문제이므로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어떤 고통된 원인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사는 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저는 좀더 고민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다시한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살아가는 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형화된 행복감이 아니라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역시 고민하는 힘이 필요함니다.(75)

현대인은 고독하다.

그러나 현대인의 고민은 카프카의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처럼 이해받기 힘든다.

그 고민을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철학'일 것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면 '연대'일 것이다.

 

소세키의 '마음'에는 '선생님'이 '나'에게 "당신은 진지합니까?"하고 몇 번이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진지함이고, 진자하게 타자와 대면하는 일입니다.(76)

 

진지하게 타자를 대면하기 시작해야하는 일이 근대의 과업이었다.

그렇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사람을 울리는 글이란다.

근대 이전의 <본질>에 주어진대로 살아온 삶들은 고민할 필요가 적었을 테지만,

근대 이후의 <실존>은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이방인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태양은 이글거리고, 자신이 총을 쏘고도 그 상황을 확정짓지 못한다.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은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 시대를 살아가는 자와 진지하게 마주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탄생된 또다른 나 '뫼르소'인 셈이다.

 

애초에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왜, 무엇때문에라고 묻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들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무엇이든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고,

인문학적 테마도 모두 내마음이지 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적 물음에는 정답이 없기때문에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뇌해보았자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란 것입니다.(122)

 

엊그제 수능을 마친 아이들의 머릿속에 한결같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달려온 걸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진로 지도는,

소위 돈벌이가 된다는 '사'자 달린 직업군에 대한 쏠림이외의 기준을 달기 어렵게 된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시대...

 

'고민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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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11-1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자기같은 건 없다는 말이 딱 와닿네요. ^^ 지금 거기에 있는 자신에서 출발한다는 것.
요즘 온갖 멘토와 미래설계타령에 질릴 것 같은데 말이죠.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 고민하는 힘이 필요하다가 맞을 것 같네요. 저말 한마디때문에 이 책이 끕 땡깁니다. ^^

글샘 2013-11-11 13:3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토막글들인데, 생각이 참 깊더라구요.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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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마음 사전'을 참 좋아했다.

어떡하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도 살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의 빛깔을

그렇게 빗질하듯

그것도 한방향으로가 아니라

염색할 때 한올도 놓치지 않으려

이런저런 방향으로 훑어내려가듯,

마음의 빗질을 해서 건져낸 언어들로 살아있는 '사전'이었다.

 

바닷가에 가면 '비치 콤'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여름 한철이 가고 나면, 바닷가 모래사장에 온갖 쓰레기와 함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들도 흘리게 마련인데,

해변을 빗질하듯 훑어 보석 같은 것을 찾는 사람들...

 

마음을 빗질하면 어떤 것들이 걸려 나올까~

 

그런데 그의 시집은 뼈가 있는 눈물들로 튀어나온다.

그래. 삶이란 눈물투성이이며, 그 눈물이 그저 스러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뼈를 가진 어떤 생체가 마음 한켠을 묵지근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그 마음을 빗질하고 또 빗질했으리라.

 

마음이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면

바람결같은 것이라면,

빗질 끝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으련만,

그의 빗질에 걸린 눈물은, 뼈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눈물은 생체다.

 

목덜미에는 입술

허리에는 두 팔

등 뒤에는 매미처럼 당신이(그리워하면 안 되나요, 부분)

 

마음의 욕망은 늘 여전하다.

다만, 현실 속 생활은 거울처럼 욕망의 저편에 서있어 닿을 수 없는 아련함으로 가득할 따름

 

창창한 입사귀를 부비고

울울한 잔가지를 부딪쳐서

차분한 소리를 내어주어 고맙다

 

네 육체에선

소쇄원에서 듣던

그 소리가 난다(너라는 나무, 부분)

 

이런 감성의 시인에게 주어진 삶은 역시 현실.

 

위로이리라, 수백년을 더

서로에게 가지로

닿아도 된다는 건(라이너 쿤체, 위로 중)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짐승으로 태어나 울울대는

발 대신 팔로써 가 닿는 나무의 유일한 전술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너를 이루는 말들, 부분)

 

그의 마음들은 가지로 벋어있다.

그 가지가 다른 가지에 닿는 전술로

위로를 얻는 시인의 마음은 소금밭일지도 모른다.

 

신형철이 이렇게 덧글을 붙인다.

 

소연의 시는

소이연(所而然)의 시 - 그렇게 된 일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적는...

 

시인에게 최고의 찬사가 아닐는지...

 

 

딱지를 긁어내는 것이 손톱이 아니라 혀일수도 있다

흘러내리는 붉은 것이 피가 아니라 달콤한 딸기과즙일 수도 있다

 

뜨겁거나 차갑지 않기 때문이다 꿈틀대다 출렁이고

솟구치다 철철 넘친다

 

피부를 혀로 핥는다는 것과 껍질을 손톱으로 긁는다는

것의 차이 손놀림과 혀놀림의 차이

차이의 삐걱거림

 

당신은 입이 아니라 팔을 벌려야 하리라

당신은 속옷이 아니라 가면을 벗어야 하리라

 

말의 덩어리가 번져간다

말의 껍질이 틈새를 벌린다

말의 젖꼭지가 아리다(말과 당신이라는 이상한 액체, 전문)

 

 

상처에 딱지가 아물어 가면,

지독한 소양증이 찾아온다.

그 간지럼은 급기야 딱지를 뜯게 만든다.

그런 욕망도 드물다.

 

시인에게 '당신'은 그런 '소이연'이다.

'시' 역시 그렇다.

 

혀로 맛볼 수 있는 당신은 역시, 당신이 아닌 소이연으로,

당신은 가면을 벗어야 하지만,

아무리 혀로 당신을 맛보려 한들,

젖꼭지만 아릴 뿐,

핵심에 닿는 일은 아득할 따름인 느낌을 쓴 시 같다.

이런 시를 읽으면, 딱지도 없는 심장이 마구 가렵다.

긁을 수도 없는 소양증...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모른다, 부분)

 

이 시가 마지막인 소이연...은 작가의 말 대신, 고백이리라.

 

신형철은 시 해설 대신 이런 뜬금없는 얘길 한다.

 

어느 기녀를 사랑한 선비.

기녀가 말한다.

100일을 내 문 앞에서 지새우면 님의 사람이 될게요.

나날을 지새운 선비.

99일째밤, 그 자리를 떠난다.

 

이런 여운이 남아야 이야기고, 시라는 걸까?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

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

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

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행을 해

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밑

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을 간호하던 암늑대의 긴 혓바닥이 나뭇가지처

럼 딱딱해질 때, 비로소 아이는 늑대의 섭생을 이해

하는 한 그루 어른이 되는 거래. 그때 바람은 떠났던

숲으로 돌아가지 못해 더 큰 목소리로 운대. 눈물이

사라진 어른들을 믿을 자신이 없어.(눈물이라는 뼈, 부분)

 

그래.

그리지 않고 그리기.

 

눈물의 뼈를 그리기.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힘이라고...

 

이런 것이 시를 쓰는 힘이란다.

소이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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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성 겨울 민음의 시 148
장승리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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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리라는 이름이 시적이거나 문학적이라 느껴져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장그래~란 이름이  always yes!란 뜻으로 풀리듯,

장승리~는 always victory!가 되려나?

 

그런데 그의 시집은 온통 깨진 거울처럼 신산하다.

차갑고, 상처받은 언어로 가득한 이 시집은 신선하기보다는,

짙은 향수가 첫 매혹 이후에는 금세 질려버리듯,

따가운 담배빵의 고통이 주는 쾌감도 금세 자동화되어버리는 것처럼,

아픈데 지루하다.

 

, 칼금, 모서리, 깨진 거울

 

이런 소재들이 반복 출현하면서 상처를 자동화하는 듯 하기도 하고...

 

 꼭지점, 젖꼭지

 

이런 단어들이 주는 날카로움이 결이 살아있지 못하고,

생채기와 무르춤하게 나열되고 있어 그런가.

 

우리(we or cage?)

    

이런 언어 유희를 나는 좋아하는 편인데,

'우리'라는 말이 주는 포근함과 편안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그것이 '사랑'일텐데,

그것을 씁쓸하게 '우리'에 가두는 것과 겹쳐놓는 마음이라면,

'사랑'은 늘 넘사벽으로 답답하게 보일는지도 모른다.

 

    가려워서 긁는다 긁다보니 긁는다 가렵지 않아도 긁는

다 눈보라처럼 버짐이 일어난다 창문을 긁고 가는 바람의

메마른 웃음을 분석하고 싶은 밤 네가 내 앞에 서 있다 거

울을 통해 자기 등 뒤를 살피던 고양이의 매서운 눈매를

하고 있는 너 네 앞에서 나는 왜 거울인가(습관성 겨울, 부분)

 

사랑하는 사람과는

서로 눈을 바라보거나, 매서운 눈매로 관찰하는 사이여서는 안 된다.

내 등을 맡기고,

내 손을 맡기고,

잠자리에서 내 다리에 떠걸린 무게도 긍정해야,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3차원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것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아우라 사이에 벌어지는,

자못 신비로운 소통의 경험을 느끼는 것이다.

 

그의 시에 사랑의 결핍이

사랑을 쓰지 못하게 한다. 

 

그녀의 유언을 반복해서 중얼거릴 뿐이다

펴지 마라 접힌 순간을

 

물결이 번지다 말고 멈춘다

나는 물결을 믿지 않는다

겹쳐지고 겹쳐지는 그녀

그녀는 시간이다

시간은 반투명 유리다(투명 나비, 부분)

 

 

유서는 언제 어디서 만난 것이든, 펼친 사람을

그 종이를 펼친 순간을 기억나게 만들 것이다.

이 시집이 벽을 넘지 못하고 퍼질러 울고 있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접혀진 시간과

접혀진 마음때문이라면,

그가 그 벽을 넘고 사랑의 물꼬를 튼 시를 쓰기를 기대해 본다.

 

습관성으로 겨울은 냉랭한 것이지만,

사랑 역시 습관성으로 변하고 나면 자기장이 여려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장그래처럼, 그도 장승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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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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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이 돌아왔다.

1인용 식탁이란 단편집으로 출발한 작가는 이번엔 제법 긴 장편에 도전한다.

내 느낌으로 그는 장편을 얽어맬 소질이 충분한 듯 하다.

단편때의 느낌이 더 좋긴 하지만, 장편 소설의 얼개가 제법 탄탄하다.

 

주제도 제법 튼실하다.

이 소설을 읽어가노라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내 주변의 존재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해외 여행에서 여권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가이드를 놓쳐버리기라도 하면,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얼마나 금세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던가.

 

소설의 주인공은 '정글' 여행사 직원이다.

상사의 성추행과 직장에서의 경쟁에서 도태되기 직전,

그는 퇴물 아이템을 점검하기 위한 해외 출장이란 동앗줄을 잡는다.

 

거물 여행사 직원으로서 그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는 계기를 갖게 되고,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알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시점 이후에선,

그는 어떤 곳에서도 어떤 보호와도 멀어지고 만다.

 

인물과 배경이 생동감 넘치게 펄떡거리도록 그리는 연습을 조금 더 가미한다면,

윤고은의 소설이 '고요나'를 아바타의 여전사처럼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공산주의의 견제를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

자살률 단연 1위, 출산율 단연 꼴찌, 행복 지수 단연 꼴찌인 '정글'로 변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정글의 '덩굴 식물'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아있는 아이들 역시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미덕으로 여기고 자라나며,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의 일탈은 중심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을 윤고은이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어 주목을 끌만한데, 필력이 조금 더 뒷받침되기 위해 힘써야 할 것같다.

조정래처럼, 현실을 튼실하게 뒤에 받치고 있어야, 판타지도 힘이 날 것이다.

 

184. 누군들 엄한 사람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엄한'은 '엄하다'의 관형형일 것이고, <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는 <애먼>이다. 누군들 애먼 사람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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