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1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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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 : 그 마지막 법칙이 정말 마지막일까?

동진 : 음... 모르지.

중혁 : 또다른 변수가 있는 건 아닐까?

동진 : 그것도 모르지.

중혁 : 또 다른 법칙이 있으면 어떡하지?

동진 : 또 다른 변수가 있겠지.

중혁 :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어.

동진 : 나도 그러고 있어.

중혁 : 우리가 하는 사랑은 너무 불안해.

동진 : 누구나 다 그래. 사랑은 다 불안해. 우리는 조금 다를 뿐이야.(강풀, '마녀' 중)

 

영화로 유명해진 '관상'이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인물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짜게 마련이다.

원작에서는 관상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원작은 뛰어난 부분도 있고, 좀 지루한 부분도 있다.

내가 관상에 대해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주 팔자나 관상 같은 것은 통계학적 결과에 기댄다.

통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오차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마녀'라서...

그 여자가 마녀가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강풀의 '마녀'에서는 통계학을 응용한다.

 

삶은 늘 통계적이다.

진리라는 것도 통계적이고,

특히 '통념'이나 '상식'이야말로 통계적으로 우열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언제나 현실은 견해보다 치열한 것>(작가 후기에서)

 

통계적인 견해는 우월할 순 있으나 치열하진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은 '회색의 이론'보다 늘 생명력이 약동하는 '초록의 나무'에 가깝다.

통계나 '관상' 또는 사주나 주역은 '회색의 이론'이지만, 삶의 하루하루는 '푸른 나무'다.

 

허나, 인간인 바엔, 또 '일관성'이나 '필연성'에 대한 관심 역시 버릴 수 없는 것.

 

등을 더 훤하게 밝혀.

술 냄새를 풍기구.

사내들을 위해서 등을 밝히지 마.

자신을 위해서 밝힌다고 생각해.

사내들을 위해서 술을 따른다고 생각하지 마.

자신을 위해서 따른다고 생각해.(하, 49)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인가?

인간의 삶은 운명론적 통계에 기대기보다는,

관상보다 '심상'이 삶의 성패 또는 만족에 가까이갈 수 있는 열쇠인 것일까?

 

"심상이 천한 자는 꽃에다 코를 갖다 댄다.

심상이 고귀한 자는 향기를 소리로 듣는다.

꽃에 코를 갖다 대지 마라.

심상이 천해지니.

꽃을 꺾지 마라. 네 목이 꺾일 테니."

심상이 고귀하지 않고는 아무리 귀골이더라도 인생살이가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상, 46)

 

관상쟁이는 늘 '사물'에서 진리를 얻으려 한다.

그것이 <격물치지>다.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을 물리치고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 앎에 이르기 위함이다.

이를 양지라 한다.(상, 174)

 

줄거리는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책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윤태호의 '미생'에서 '바둑'이라는 사물을 통하여 인생의 행마를 읽어준다.

 

관상 역시 그렇다.

소설은 늘 주제를 <형상>으로 만들어 낸다.

거기 사람 냄새가 들어가고, 갈등이 엮인다.

 

회색 이론을 조금이나마, 푸른 나무에서 얻어보려는 노력이다.

백금남이란 작가의 필력도 제법 탄탄한 셈인데,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인물간의 갈등과 사건의 필연성이 조금 더 응집된 소설이 나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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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평전 - 정쟁의 격랑 속에서 강호미학을 꽃피운 조선의 풍류객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고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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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이면 으레 고전도 등장하는데,

개중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들이 '연시조'다.

말투가 옛스러워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고,

그 놓인 상황 안에서 읽지 못하면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 많아 그렇다.

 

윤선도의 '견회요', '만흥', '어부사시사' 등을 가르치면서

그 말맛의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스트레스의 강도를 가르쳐야 하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수업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견회요~는 함경도로 유배를 가서 완전 고생하던 시절 쓴 시조다.

그러니, '임금님, 싸랑해요~ 알라뷰'가 5연에 절절하다.

 

그렇지만 '만흥'이나 '어부사시사'는 고향인 해남에 가서 쓴 것들이라,

'흥이 넘쳐 흐르고' '어부의 생애'가 만족스럽다.

 

물론, '인간'이 멀수록 좋다거나,

'파돗소리'가 '세상 잡소리'를 가려준다고 해서 속세의 이물감을 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견회요의 '스트레스'에 비하긴 어렵다.

 

시조의 달인 윤선도.

그의 시를 설명하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금쇄동은 평범한 산자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경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 했던가,

심신이 모두 지쳐있던 고산에게 금쇄동은 온갖 시름을 잊기에 충분한,

나아가 마치 자신을 위해 숨겨둔 '시크릿 가든'처럼 다가왔다.(144)

 

윤선도와 보길도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 할까,

암튼 고미숙이 읽어주는 윤선도의 삶은 신산한 속에서 얻어진 결정으로

'시조'를 청태낀 옥돌 닦아내듯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본문에서 보완해야할 곳 하나...

 

160쪽. 오우가의 본문을 제5수까지만 실어 두었다.

오우가는 원래 서장 + 5우 = 총 6수의 연시조이다. 마지막 '달'에 대한 시조가 더 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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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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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이나 은희경의 '징징대고 궁상맞은' 소설들이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작품들은 시니컬하고 시크한 것이 별로라고...

뭐, 나도 그런 사람이다. ㅋ~

 

그렇지만, 일본의 하루키처럼

전쟁이나 식민지의 삶을 겪어온 사람들이 징징대는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어온 세대는

그 궁상에서 벗어나고 싶을는지도 모른다.

 

징징대고 궁상맞은 사고가 오래 지속되면 '한'이 된다는데, 그것이 몸에 밴다.

향을 오래 싸고 있는 종이처럼,

비린내나는 생성을 오래 묶고 있던 새끼줄처럼...

그런 것을 <정서>라고 한다.

 

이 작가는 새로운 <정서>를 보여준다.

일단 이 소설은 금세 읽힌다.

범죄가 나오지만 추리소설은 아니다.

스릴은 있지만 결과는 열려있다.

학생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 소설도 아니다.

 

기성 세대의 세태를 풍자하지만,

탄탄한 이야기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청소년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불쌍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감싸안고 눈물흘릴 줄 아는 양심이 있다면,

이 사회는 아직 어둡지만은 않다.

 

엄마도 방법이 없어서 방 변호사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방법이 있었다면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좀 우아해졌을지도 모른다.(43)

 

그래.

어른들의 삶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방법이 없어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넌 꿈이 뭐니?'라고 묻는 어른이라고 해서,

어렸을 적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이 소설은 돌아보게 해준다.

이 소설을 읽고 '파렴치한 패륜'이라고 떠든다면 ㅋ~

그건 아직도 성리학적 질서에 얽매인 '소학'이나 읽어야 할 사람인 게다.

 

엄마는 1년에 360일 가량 빠지지 않고 피트니스에 다닌다.

몸매 관리는 SKY감이다.

몸의 피하지방은 잘 태워 없애면서 감정의 지방질은 오히려 늘어나기만 한다.

난 엄마의 가장된 흐느낌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짜니까.(105)

 

한국의 '아줌마'들이 '속물적'으로 하는 일을 홀라당 벗겼다.

가짜의 삶.

감정의 지방질에는 무관심하면서, 외모의 지방질에만 관심있는,

그걸 가짜라고 부르니 뜨끔하다.

 

니가 살인자라 부모를 죽인 걸까?

아니면, 부모가 널 살인자로 만든 걸까?(149)

 

이 소설의 기본 사건은 살인사건이지만,

그 사건으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회'다.

기본이 없는 사회. 되는대로 사는 사회.

공적 개념이 없이, 사적 사유만 가득한 '소유 중심의 사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득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187)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 소설의 '존속 살해'는 알레고리다.

독립해야 자존감을 살린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강한 비유다.

제발, 패륜 운운하지 말았으면 한다.

부모의 마음에서 자식을 죽이고,

자식의 마음에서 부모를 죽여야,

그래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던 이도 있듯,'

독립이 시작된다.

 

부모를 죽인 뒤, 편안해진 아이를 과외 선생이 만난다.

 

과외는 계속 나를 본다.

괜찮으면 안 된다는 듯.

그전엔 괜찮지 않았는데 이제야 괜찮아졌다고 말해줄 수도 없고,

그냥 손 한 번 흔들고 출발한다.

말해 준다고 해도 SKY 따위가 알아듣지도 못할 거다.(236)

 

물론 이 소설은 황당무계한 소설이다.

살인이 그렇게 쉽게 정당화되지도 않고,

살인 이후 마음이 편할 리도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은 '학생'과 '부모'를 알레고리로 넣은 '우화'로 읽혔으면 한다.

 

해리포터가 9와 1/2 승강장으로 들어가듯,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이 땅에 고착된 질서가 '가짜'라는 것을 금세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픽션 속에서라도 상상력이 번져가노라면,

하루키처럼 '돌출된 세대'(단카이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세대가

찬찬히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재찬, 기억해 둘 법한 이름이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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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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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주 독특하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 될 법한 시를 보려고 하다가,

맨 앞에 놓인 시를 보았다.

참, 매력적이었다.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糊口)

 

그래서 다음엔 '애인은 토막 난...'을 읽었다.

한 세 번을 읽었다.

시가 토막, 토막...

애인이 우는 것과 토막 난 순대는 도무지 무슨 '유사성'이 있다고,

저렇게 '직유법'을 쓴 건지...

 

비유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과

시인이 주워온 보조관념 사이에

독자가 무릎을 치며 탄복할 만한 '유사성'이 있을 때,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머릿 속의 복잡한 흐름들을,

토막, 토막, 순대처럼 잘라 준다고,

독자들이 먹지는 않는다.

 

언어 유희는 시를 만들 수 있는 일부분이다.

언어 유희와 비유법이 절묘하게 결합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유기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유기물을 먹으러 갔던 시인을 만났지만,

그와 술을 한잔 하고 싶진 않았다.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그와 술을 마시고 싶진 않은 거다.

술은...

마음이 통~해야~

술잔 부딪는 소리만으로도~

이미 그 싸~한 맛이 저릿저릿하게 뇌세포를 행복하게 하는 거 아닐까?

 

 

참이슬 먹은 그대 눈에 더러운 이슬이 맺혔다(조마루 감자탕집에서)

 

김밥들이 가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멍석말이를 당한 몸으로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잘게 토막이 나서(김밥 천국에서)

 

철들기 전에 영어를 배웠다 담장에서 배웠다

미선이는 내 거다 건들지 마라

‘mine’은 광산이란 뜻이었다 여자는 노다지였다

중학교 때 화장실에서 알파벳을 다 외웠다 대문자로 외웠다

알파벳은 WXY로 끝나는구나

스승은 세로쓰기를 했다 삐뚤빼뚤했다

영어를 잘하니 여자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엔 A

뒤집힌 양날도끼에서 왔다는 걸 알았다

감탄사였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무기로 썼지만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여자가 도처에 있었다

대학 때 처음 포르노를 보았다

남자나 여자나 퍽을 입에 달고 살았다

‘fuck’매우란 뜻이었지만

남자가 쓰면 욕, 여자가 쓰면 사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야 BC를 제대로 이해했다

나는 여태껏 문법도 모르고 살았구나

부자 되시라고 여자가 속삭였지만

봉급날은 결제일과 함께 왔다

세계화와 여성상위 시대,

어디나 영어와 여자가 있었다

여자에 사로잡힌 영어의 몸,

그게 나였다(영어 조기교육에 관하여)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하필이면 오른손에 왔다

새벽 기도 20년만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되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깜깜 어둠이 악수를 건네려는 건지,

사방이 인적 끊긴 놀이터가 되었다

이제 단풍놀이 가는 버스 안에서 막춤을 출 수도

고스톱 치며 상대가 싼 거 먹을 때

마음의 박수를 대신해서 따귀 소리를 올려붙일 수도 없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행주 잡은 손으로 플러그를 뽑은 것처럼

스치기만 해도 저릿저릿하다고 한다

처음 집 앞 놀이터로 아버지가 찾아왔던

57년 전과 똑같다고, 그때 스친 손끝 같다고 한다

다소곳한 고개를 다시 들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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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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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란 소설이 있다.

현실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6펜스) 예술적 감성을 감추지 못하고 자꾸 튀는(달) 주인공이 나온다.

 

박완서는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을 등장시켜,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가 '옥희도'와는 맺어주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전기공 '황태수'와 살게 하는데,

주인공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허전한 마음을 '뚝 떨어진 나무들'로 그려내고 있다.

 

예술가의 '필선'은 그냥 무미건조한 줄이 아니다.

그 굵기의 정도와 빛의 농담, 차근차근 그린 필획과 재빨리 그린 필획의 차이가 화폭에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 것을 굳이 말로 풀어낸다는 일은 <사족>일 것이나,

그 일도 손철주 정도 눙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의 말이라면 듣는 재미도 푸지다.

 

손철주의 말 속에는 조곤조곤 읽어주는 '그림에 대한 독법'도 있고,

우리말의 맛깔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신선한 해석'도 있고,

시조나 한시에서 가져온 '화제 풀이'도 있어서,

그림을 더 풍성하게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감칠맛'이 가득해서 좋다.

 

술 마시는 사람은 술집에 가서 이런저런 삶의 얼룩을 주절주절 떠들지 않는 법이다.

그저 술 이야기, 안주 이야기만 오갈 뿐.

술도 주류 불문, 안주 불문, 청탁 불문, 남녀 불문, 원근 불문

주어지는대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잔을 주고 받을(수작 酬酌) 뿐.

 

그림을 드리워 두고, 혼잣말을 주절거리는 사람은

술집에서 윗사람 뒷담화나 떠드는 사람처럼 별로다.

술맛이 입에 착착 붙으려면, 이런 저런 말 없이,

싱긋이 웃거나 헤실헤실 웃으면서 술잔 부딪는대로 떠끔떠끔 마시는 게 좋은 상대이듯,

그림에 대해서도 자기가 아는 것이라고 많이 늘어놓는 사람은 별로다.

 

안주에 찰싹 들러붙는 맛있는 이야기를 늘어 놓고,

오늘의 재미난 술자리를 즐기는 사람과 마셔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읽는다.

더 말이 필요없다.

 

눈보라가 생애를 쓸고 간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날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시리면 절로 불우해진다.(58)

 

이 정도면, 이 대목에서 한 잔 부딪칠 만 하다.

 

김정희의 '죽로지실'을 풀이한 대목도 일품이다.

 

'대나무 화로가 놓인 방'

척 봐도 차 달이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대나무는 곧은 것과 비틀린 것이 섞였고,

화로는 다리굽이 네 개인데 불씨가 겨우 살아 있다.

지에서 향기로운 훈김이 피어오르고,

실에서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방이 금세 떠오른다.(261)

 

그림에서 방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게 읊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나면,

질펀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접어들 만도 한데,

임제와 한우의 이야기는 참으로 명문이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임제)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한우)

 

우리 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부려 쓴 사람들도 굉장하지만,

이런 것들을 적재적소에서 불러오는 재주도 대단한 힘이다.

기녀 한우의 이름을 빗대 '찬 비'를 맞았으니 '얼어 자고 싶다'(운우지정을 나누고 싶다)고 둘러 말하는 남자나,

얼어 자다를 못 알아 들은 체 눙치면서, '녹아 잘까' 하는 시를 읊는 여인네도 고단수다.

 

또, 이런 화제라면,

정지된 스틸 컷의 한 장면이어도,

그 아련한 마음이 영화 2시간 분량의 마음으로 묵지근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을 듯.

 

혼이 그대를 따라가 버리니

텅 빈 몸만 대문에 기대네.

 

나귀가 더뎌 내 몸 무거운 줄 알았더니

하나가 더 실려 있었구려, 그대의 혼.(206)

 

그의 글을 읽노라면,

푸지게 한 잔 걸치고 난 기분인데,

그의 말투를 빌리자면,

<사랑옵기> 그지없는 그의 글을 계속 읽기 위해서,

그의 건필을 빈다.

 

Cheers~!(웬 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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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1-1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아~~

글샘 2013-11-14 13:04   좋아요 0 | URL
감상을 남기셔야지, 술만 한잔? ㅋ

아무개 2013-11-14 13:19   좋아요 0 | URL
글맛이 좋아 캬아~ 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