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 콘서트
홍승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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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추방'을 동시에 주장한 이유는 뭘까?

철학은 '이데아'의 이상을 추구하지만, 시인은 '현실 세계'의 삶을 그것도 잔인한 용어로 읊조렸던 시기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플라톤의 '시'는 요즘의 서정시가 아니라, '서사시'나 '비극'을 일컫는 것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그리스 비극은 가르칠 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었을 게다.

 

왕조 국가엔 적어도 철학이 있다.

한국 지폐의 이황, 이이의 존재 가치는 조선 왕조의 철학 수립에 막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철학은 조선의 철학을 이어받는다는... 애매한 상황인데,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도 50년이 없어져서 사라진 '국민학교'란 이름처럼,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것이 60년이 넘었는데도, 봉건적 성리학자들의 면면이 지폐를 장식함은 통탄할 노릇이다.

 

지금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ㅋㅋ 그때맹키로 철학?

 

물론 서양의 자연철학과 그리스 철학, 근대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철학사'의 핵심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양의 철학 역시 '태극'과 '오행' 그리고 '팔괘'로 시작하는 주역으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제자백가의 사상이 가득하다.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전통 철학 역시 불교 철학, 성리학, 그리고 근대의 개화기 운동 들이 그득하다.

 

예수믿고 천국가자~?

 

유일신이 모든 철학을 휩쓴다면 예수만 믿으면 되겠지만, 그럼 책도 성경만 두면 될 것이지만,

세상은 복잡다기함을 인정하는 쪽으로 진작부터 방향을 바꿨다.

 

이 책의 장점은,

한국사 속의 유명한 사람들을 콕 집어서,

그 사람들의 철학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리고 쉽게 대립항이 드러난다.

원효와 의상은,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은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

과연 그들의 철학적 기반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어휘가 어렵지 않고 길이도 길지 않아서,

읽고 싶은 꼭지만 찾아 읽을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가려진 동학의 최제우나 조소앙의 삼균주의 같은 것도 소개되어 의미가 크다.

 

허자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30년동안 은거하며 공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달았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알아듣지 못했고,

중국으로 가서 수많은 선비들을 만나 이야기했으나,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홍대용, 의산문답)

 

세상에 통하지 않는 공자의 후예들, 성리학의 이름으로 백성을 도륙한 이씨 왕조.

그 왕조의 헛됨을 '허자'라는 선비를 등장시켜 비판한다.

 

하늘에서 봐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중화와 오랑캐가 똑같지 않은가.(328)

 

그래. 이 땅에도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실학자 최한기는

일본이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던 때, 외세를 믿고 방비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상소를 올렸다가

탄핵을 받고 유배를 갈 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말 때문에 죄를 받을 수 있으니 영광이라 할 만하다.

화와 복은 근심할 바가 못 된다.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백성의 처지는 더욱 비참하다.

그들의 처지와 비교하면 한 개인의 불운과 행운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425)

 

언론의 자유가 5공 정부때처럼 뚝 떨어졌다고 한다.

'백성의 처지는 정말 비참하다.'

개그콘서트에서조차 정치를 풍자할 수 없다.

개그맨을 고소하는 등,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 미친놈이 텔레비전에 나와 웃기는 소리를 한다.

속이 뒤집어진다.

 

시대의 움직임이 뜻한 바와 다르면 학문을 갈고 닦을 일이다.

생각한 바와 어긋나는 사물을 만나면 학문을 고치고 바꿀 일이다.

근심과 즐거움에 요란을 떨고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운동과 변화가 차차 이루어짐에 유념하라.

그래야 때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잃는 바가 없고,

평화로운 때든 어려운 때든 언제든 얻음이 있다.(425)

 

이 책의 작가는 철학 박사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글이 난삽하지 않고 읽기 좋게 되어 있다.

원전도 같이 실어두고 있어 관심있는 고교생 정도라도 너끈히 읽을 수 있는 정도다.

깊이가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깊어서 빠져죽을까 두려워 뛰어들지 못하느니보다는,

만만하게 즐길 수 있는 물이 좋은 물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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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오륜... 바퀴 륜 輪으로 쓴 것은 오타다. 인륜 륜 倫으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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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씨모마씨모 2014-12-2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녕하세요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에서 ˝애매하다˝라는 말을 저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
어떤 술어가 적용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는 기준이 부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http://textexture.tistory.com/21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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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눈사람 여관, 부분)

 

눈사람 여관이라...

여관에만 잠시 머무는 건 아니다.

내 애인이랑만 잠시 친한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곳은 여관보다 금세 비켜줘야 하고,

내 애인이든 아내든 금세 시들고 죽는다.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운 달도

나흘 정도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모든 애인은 눈사람처럼 애잔하게 녹아버릴 존재냐?

그럼 모든 사랑은 잠시 여관에 들러 몸 녹이고 갈 정도로 짧은 것이냐?

문득, 김이듬의 '겨울 휴관'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마, '관'자로 끝나서 그런가보다.

'장미 여관'도 떠오른다.

뇌란 그런 웃긴 거다.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
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
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
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
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
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
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
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
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김이듬, 겨울 휴관 전문)

 

 

'이별의 실패'는 아마도 김이듬이 이야기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하는 깨달음과도 비슷한 거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병률의 이 시집에선 사랑을 본 느낌이 든다.

사랑을 말로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명가명비상명... 이름을 이름지을 수 있다면, 진짜 이름 아니듯,

사랑을 이렇게 사람 마음에 실루엣으로 남게 하면 잡는 데 가까울 수도 있다.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붉고 찬란한 당신을, 전문)

 

붉고 찬란한 당신이니,

붉은 심장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잡으려 들지 않는다.

두 번이나 '놓아줄까'라는 말을 써서, 놓아주기 싫은 심사를 드러내지만,

허공 속에 풀어지고,

물 속에 번지도록 놓아줘야,

거기가 당신 있을 자리고, 그게 자신의 사랑을 유지하는 법임을 본다.

 

눈으로 본다.

눈사람 당신이 녹는 것을 바라보듯...

 

가령 콜트레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겐 그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과,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설령 그를 만난대도 그 본질은 알 수 없으리라는 체념,

나의 환영과 황홀의 정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본능적 뉘우침이 뒤범벅되어 떠오른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했으므로, 더 알고 싶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다.(유희경 발문 중)

 

유희경의 '애정론'에 맞춤한 시가 있다.

'애별'이란 시다.

 

어찌된 일이길래 마을 이름이 애별인가

 

태어났으니 감옥이란 말인가

 

한번 안았으니 이별 또한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저기 저 내리는 눈발의 반은 사랑이고 또 절반은

이별이란 말인가

 

어제는 미안해서 오늘은 이별을 하자는 말인가

 

아름다웠던 날들의 힘으로 달은 뜬다는 말일까

 

마음을 주면 표정의 한쪽이 파인다는 말을 듣고도

한 사람 등 뒤에 영원히 앉아있으란 말인가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저릿저릿할 때는 사람의

눈발을 외면하자는 말일까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단 말인가(愛別 전문)

 

애별 -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 이름

 

 

시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듣는 사람이다.

듣고 적는 사람이다.

그렇게 언어의 변방에서 놀라운 속도로 혹은 이동으로) 중심에 닿는 이다.

그들에게 언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리될 수 없다.

계시와 예감으로 가득찬 그들은 순수 언어의 여과기이다.(유희경 발문 중)

 

 

독자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병률의 시를 두고,

유희경이 애를 쓴다.

애를 쓰나, 역시 '거리감'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역시 그 거리감을 인정한다. 발문 제목이 '조용한 거리'니까.

 

유희경이 애쓴 잔에,

툭 성의 없이 부딪는 이병률의 술잔은 가볍다.

 

 

무엇에도 닿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말은 있다.

어쩌자고 불[火]이라고 써놓고 불[不]이라고 읽는다.

아무리 무심하려 해봤자 어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것을 세상의 나머지라 부르겠다.(뒤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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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전집
신동엽 지음, 강형철.김윤태 엮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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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과서까지는 말당(ㅋ) 서정주 선생, 박두진의 시 같은 걸 시라고 배우다가,

대학 입학하고 들은 신동엽과 김수영의 시는 청천벽력이었다.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통해 세상의 어두움을,

'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순수의 열정을 보았다면,

그의 장시 '금강'을 읽으면서 민족의 역사가 피를 더워지게 함을 배웠다.

 

이제 그의 시들을 다시 찬찬히 읽노라니,

한국 시에도 이런 기둥들이 있었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이조 오백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383, 종로 5가, 부분)

 

1967년 쓴 작품인데, 이렇게 날카롭다.

이조 오백년... 그래,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국의 정부가 힘이 있어야 함을 절절히 깨닫는다.

공화국의 이념을 철저하게 염두에 둔 정부가...

대륙의 정부, 섬나라의 정부, 은행국의 정부는, 이조 시대와 똑같다.

일제 강점기라면 북간도라도 가지만,

이 빈익빈부익부 시대는 일제 강점기만도 못하단다.

아~ 참혹하다.

 

무엇을 보았는가,

이조 오백년, 억울하게만

살아온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 주먹을 보았는가, 이제야

자기의 얼굴

자기의 가슴을 보았는가.(193, 금강 중)

 

익산면에선

영수증 없는 삼천 팔백 석의 세미 거둬

저희끼리 나눠먹고

다시 고지서를 내돌렸다.

곤장질, 단근질, 주리 틀기로

난리 피우며.(200, 금강 중)

 

이런 조선을 되찾자는 '광복'의 후예들은 아직도 한국사를 '조선사'로 연계하고자 애쓴다.

<한국사 교과서 시정 명령>은 박정희 시절의 유물이 아니고, 오늘 자로 발표된 거란다.

'독재 이승만'은 안 되고, '광주 민주화'도 안되나?

 

하늘 덮은 쇠 항아리,

이걸 깨뜨리지 못하니, 계속 망령들이 살아 돌아온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산문시, 부분, 399)

 

4.19로 쫓겨나고, 총맞아 죽고, 이런 놈들만 보다가,

기어코 저런 대통령 하나 가져보나 했더니,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서럽다.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로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에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전문)

 

이런 예쁜 연애시도 쓸 줄 아는 사람인데,

신동엽을 역사에 빼앗기고 말았구나. 슬프다.

 

바람이 설스렁

귓전을 스치면

언젠가 울다 말은

애상의 버릇처럼

못내 마음 고허(孤虛)해 오다가

밤털이 데리고 가려픈

너 빨래 갔음이사

생각고

진정 오늘 가을만은

나 쓸쓸치 않아라.(가을, 전문)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아름다운 청춘의 심장에

분노의 화염이 불길처럼 일게 한 이 역사는 참으로 통한의 역사다.

 

신동엽을 읽는 일은, 통곡 소리를 가슴 깊이 받으며 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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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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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농담으로 '인문대 금속 공학과'라고 부르는 철학과.

사주 운명 이사 취업... 포렴을 늘어뜨리고 관상과 운명을 읽어주는 철학관.

정신병자 내지 또라이와 실업자 사이의 유사성을 가진 것으로 등장하는 소설 속 인물 유형, 철학자.

 

이리 보아도 뜬구름, 저리 보아도 헛손질이다.

철학을 사전에서 의미발견하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사물의 진리를 탐구한다거나 궁리하는 일이라고 아무리 적어 놔도,

그건 철학의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철학을 나는 엉뚱하게 배웠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배우는 커리큘럼은 (수업 말고, 언더 서클의 세미나에서)

철학 에세이라는 책이었는데, 그게 변증법인지도 제대로 모르겠는데, 암튼 공부를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상태가 변하고 있으며,

양이 쌓이고 쌓이면 질적 변환을 일으키는 법이고,

부정된 것 역시 부정되도록 생겨먹은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

그래서, 세상은 변혁의 대상이기도 하고, 인간 역시 변혁의 대상이라는 것.

그 다음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에 대하여 공부하고,

멀리 세계사적 모순에 대하여도 공부했다.

러시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베트남 전쟁, 중국 혁명, 쿠바 혁명,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같은 책들...

그리고 리영희 선생의 저작들과 경제학 서적들...

 

이런 공부를 조금 하고 나면, 세상은 이전에 인식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데모하는 빨갱이들은 나쁜 놈들'이었는데,

그들이 데모하는 이유를 알게 되니, 그들이 변혁의 주체라고 이해하게 되고,

변혁의 주체인 목동 아줌마, 사당동 아줌마들의 도시빈민 투쟁을 이해하게 되고,

곧 이어 노동자 투쟁, 농민 상경 시위, 교사의 교육 민주화 운동의 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투적으로 변해버린 내 철학은,

시방도 뉴스를 보면 뒷골이 당기게 굳어져 버렸고,

종일 세상을 향해 시빗거리를 천만 가지도 더 뇌까릴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철학은 뭘까?

철학은 '인간이 있는 시간, 장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오묘한 일을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도대체 우리 나라는 왜 이런가.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는가.

도대체 지금 일어나는 일은 왜 저럴까.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하는 일.

 

천안함이 북괴 도당의 폭격으로 침몰하였습니다.

--- 바보의 반응 : 저런 죽일 놈들...

--- 철학적 반응 : 북한이 폭격했으면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남한은 뭘 하고 있으며, 전쟁때 죽은 사람은 다 영웅인가?

 

국정원이 모 직원이 대선 관련 댓글을 졸라 달았습니다.

--- 바보의 반응 : 저런 바보같은 넘을 봤나.

--- 철학적 반응 : 국가 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고도 개인적 문제로 넘기려 하는군.

 

그래서, 철학이란 것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모든 공부의 기저에 깔린 '공동의 사고'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공부한 학생들에게 철학이 없는 이유는 단답형을 외워서가 아니다.

철학을 가지지 못하도록, 단답형 주입식 교육만을 하며,

교사는 중립이란 이름으로 가치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학생들은 이유도 없는 무한 경쟁으로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방식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 봄으로써,

흔히 우리가 현실, 정상적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는 얇은 껍질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한다.

(62)

 

진짜 나가 무엇인지를 계속 찾아다님으로써, 정확한 나를 생활 속에서 절대 발견할 수 없음을 사고하게 한다.(28)

 

버스가 정상적으로 나를 목표지점까지 태워줄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해본다.

버스가 사고가 나거나, 납치를 당하고, 또는 기사가 외계인이거나 특이한 세계로 가는 등,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에는 언제든 미세한 균열과 틈이 생길 수 있음이 사실이다.(90)

 

톱가수 수지가 엄마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올해부터 동지에는 낮과 밤이 길이가 같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나라당의 반성으로 내년 초 새로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답니다.

이런 말도 아닌 기사를 떠올리노라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이 사실은

얼마나 똑같은 소리의 반복인지를 실감해보게 한다.(186)

 

철학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또라이가 되는 길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워낙 자주 접해서 '자동화된 기제'를 조금만 벗어나도,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

해외 여행만 가도, 내가 가진 돈, 내 언어, 내 지위, 내 지식이나 상식은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 되고 말지 않는가.

 

나와 다른 인생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

독서 자체가 철학의 하나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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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2-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을 하면서 너무 멀리, 자세히 보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이상과 현실과 괴리감, 고독감, 무기력감 등, 본인 당사자는 감정적으로 너무 힙듭니다.

글샘 2013-12-02 09:3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분노하게 되고, 하지만 독재 국가에서 사는 현실에선,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고,
쉽게 좌절하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돼서, 정신 건강에 무척 해롭습니다.

그렇다고 정신 건강에 좋자고... 바보가 될 순 없잖아요. ㅋㅋ
이건 불가역반응이걸랑요.

turk182s 2013-12-1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에세이를 지금도 공부들 하려나요?ㅎ
저도 그걸로 스터디하긴 했는데,,
당시에는 선배들 스터디가 뜬구름같고
답답해 혼자 '독일이데올로기' 보는게 더 재밌었던 기억이 나네요.

'모든 공부의 기저에 깔린 '공동의 사고'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저도 격하게 동감합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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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이 책은

이윤기가 생전에 썼던 '쓰기'에 관련된 글들을 묶은 책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의 하나가 잡문들을 모아 엮은 책이어서,

아무리 이윤기라지만,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짜증을 좀 눌러야지~ 하고 시작했다.

 

뜻밖에 이윤기의 따님이 머리말을 붙였고,

간혹 이런저런 이야기가 겹치기 출연하는 일도 있지만,

이 책은 모아 엮은 칼럼집이란 약점에 비해,

글을 쓰는 일, 글을 옮기는 일, 생각을 넓히는 일에 대한 많은 재미와 배울점을 주는 책이어서,

기쁘게 읽었다.

 

이윤기를 소설가로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번역서들은 장미의 이름, 조르바 등으로 기억한다.

워낙 강렬한 책들이어서, 번역의 정도를 분별할 수 없지만, 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할 일이다.

 

이 책에서 그의 '언어에 대한 관심'에 주목해서 본다면,

한 나라 안에서도 각기 달리 쓰이는 그 '언어라는 현상'을

그것도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쓰인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애잔한 한계의식과 극복의지'- 에 대한 굉장한 투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싱거운 소리를 애써서 옮길 필요는 없는 것이잖은가.

언어는 1:1로 세계를 번역해내는 것이 아니어서,

가장 쉬운 언니, 오빠, 누나, 형, 형님, 오라버니, 누님... 등의 언어를 브라더, 시스터로 번역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문화를 잘 이해하는 그 토박이 화자 외에는 번역을 통해 읽는 일은 맹인 코끼리 만지기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 번역의 과정에 침입하여 애쓰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거기에 <인간 존재의 한계와 극복 의지>에 대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그 책은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유사하게라도 옮기고 싶다고, 애쓰는 마음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끝, 끝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문학을 '좋은 대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올바른 물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211)

 

그의 이런 의식이 그가 평생 문학 옆에서 골몰해온 과정을 씩씩하게 드러내는 이런 책이

묵묵히 소리쳐 외치는 목소리를 담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고 박영한 선생의 딸이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듣고 '동원참치 살코기 캔'으로 번역했단다.

사람은 제 그릇 안에서 사고하게 마련이다.

 

애니팡 게임을 하다가 아내가 나한테 '하트'하나 보내라고 하는 소릴 들은 장모님,

'화토, 저 서랍장 맨 밑칸에 있어.'

 

남의 말을 제말처럼 부려 쓰는 일은, 특별한 능력이다.

분명, 다른 말로 된 것들 중에서도 <올바른 물음>이 담긴 책이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미리 읽고 우리말로 옮기려 애쓰는 이들의 혜안을 따라 우리도 지혜로움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읽고 쓰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사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같은 이를 잃은 일은 참 애석한 노릇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은 아쉬움 가득하면서 감사하게 읽게되는 책이다.

 

고쳐야할 곳...

 

21. 미당 未當... 未堂으로 고쳐야 한다.

244. 화이팅... 파이팅이 옳다.

306. 옛 어부가...어부의 한자가 틀렸다. 漁夫를 漁父로 고쳐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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