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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all things shining이다.
에필로그에서처럼 '빛나는 모든 것들'이 옳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세상은 너무 구질구질하고 더럽기 짝이 없어졌다는 데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라고 되어 있다.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라는데, 모든 것이 빛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허무하고 무기력한 시대라 해도, 빛나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폐허처럼 우중충한 지구별에서 <아직 남아있는> 그런... '빛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스승님 : 제자들아. 이제 너희는 세상에 나가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너희들의 인생은 복될 것이다.
........... (오랜 후)..........
제자 1 : 나는 세상에 있는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지. 하지만 여전히 불행하네.
슬프고 실망스러운 것들 역시 많이 보았기에.
솔직히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 말이야.
제자 2 :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지.(에필로그)
이 책은 서양 고전의 몇 구절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려는 의도를 가진 책이다.
다시 말해,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씌어진 책은 아니다.
부제인 'Reading the western classics to find Meaning in a Secular age'란 말은,
'세컬러'한 시대의 의미 찾기~인데, 세컬러의 의미는, 레귤러의 반의어로 <세속적인, 종교적이지 않은>이란 뜻이란다.
정해진 시각에 수도원 안에서 <레귤러>하게 규칙에 따라 의식을 행했던 반대쪽인,
세속의 <세컬러>는 종교적이지 않은~ 시대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이 책의 뜻이 통한다.
서양 고전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집어든다면, 뭥미? 하고 당황할 수 있겠다.
그건 순전히 책팔이들의 농간에 놀아난 결과이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재미있는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양 고전을 읽고 싶어 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지만,
그런 책이라면, 이미 '로쟈의 인문학 서재'나 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를 우리 문화는 가지고 있으므로,
이 책은 이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는 해법의 하나로 고전 몇 권 읽기를 권할 따름이다.
특히 모비 딕을 열심히 읽게 하는데,
모비 딕을 떠올리면서 <스타 벅스>를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멋도 모르게 입에 익혀버린 커피맛처럼,
세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문화'에 접하게 된다.
서사시의 시대에는 인간이 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모자란 존재~일 뿐이었고,
그리스 비극의 시대에는 인간의 모든 삶은 신들의 행위에 의한 결과~일 뿐이었다.
그 고대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퓌시스>라는 '반짝이는 생동감 넘치는 세계'를 본다.
그 세계는 <포이에시스>라는 '예술적 세계'로 반영되는데, 현대에서는 다양한 테크놀로지 등의 융합으로 이 세계가 단조롭게 한다.
그를 위해 작가는 <메타 포이에시스>의 삶을 제안한다.
<메타>란 것은 <기반>이 되는 구조나 <틀>을 읽어내는 시각인데, 그런 것들을 읽어내기 위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이 책에는 장자의 <모든 고전은 찌꺼기>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무늬만 목재인 것들을 절대로 쓰지 않는 구식 일꾼들을 안다.
그들은 숙련된 일꾼은 결심 판사와도 같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무는 대패나 도끼 아래서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성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손으로 느꼈기에 나의 눈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문외한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해본 사람들만이 그것을 안다.(356)
장자의 이야기에서는, 목수가 일의 진실된 고갱이는 말로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마님이 읽는 책은 모두 <옛날에 죽은 사람들이 지껄인 찌꺼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실제로 참여해 본 사람만이 몸으로 느낄 줄 아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것은 삶의 진실에 다가가기 보다는, <장인적 기술>, <창작의 오묘함>을 드러내는 데 머무르는 인용이다.
장자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해석이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인용에서 일관성 없이 프로 야구나 커피 등으로 널뛰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싱겁기도 했다.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한, 뜨겁고 아름다운 책.
이 책에서 강력하게 던진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허무주의와 싸우며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다.(뒤표지,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저자)
이런 사람들이 싫다.
과연 이 책을 읽고나 이런 말을 썼던 걸까?
이 책이 정말 뜨겁고 아름다웠을까?
하긴, 저 사람은 이 책이 '빛나고' 뜨겁고 아름다웠을지 모르겠다.
그냥, 제목과 부제를 읽고 상상력을 발휘했을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의 서평 참고 자료를 읽고...
그거나 다 읽었을래나?
나는 그런 거 받으면 바로 버리는데... ㅋㅋ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6장의 모비 딕이다.
<서양 문학 속의 철학적 이슈 읽기>라는 팟 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니,
이 책은 그 강의를 어찌어찌 얽어매어 책으로 만든 느낌이다.
부제 그대로.... <레귤러>한 시대, 고대의 작품이나 중세의 작품과 비교하여,
<세컬러>한 시대, 현대의 작품을 읽어 보면서,
인간은 어떻게 파편화되어 왔는지를 철학적으로 읽어주는 내용이라,
철학적 기반이나 서양 고전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