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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ㅣ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신경림의 젊은 날의 책들은 떠도는 발걸음으로 가득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전문)
그의 시는 발걸음에 툭 채이는 갈대에서도 흔들리는 울음을 들어 내는 동병상련의 귀가 만든 환청의 기록이었다.
시인은 모두 신들린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내뱉는 소리와 울부짖는 비명을 남들은 듣지 못하지만,
그들은 듣고 그걸 기록하니까.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함 후보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거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전문)
그는 무신론자다.
큰 손의 존재가 어떤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바라고,
오지도 않을 미래를 바라고 살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행복했다. 그런 마음이 곧 시가 된다.
버렸던 것을 되찾는 기쁨을 나는 안다.
이십년 전 삼십년 전에 걷던 길을
걷고 또 걷는 것도 그래서이리.
고목나무와 바위틈에 내가 버렸던 것 숨어있으면
반갑다 주워서 차곡차곡 몸에 지니고
하지만 나는 저세상 가서 그분 앞에 서면
당당히 빈손을 내보일 테야.
돌아오는 길에 그것들을 다시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으니까.
찾았던 것들을 다시 버리는 기쁨은 더욱 크니까. (당당히 빈손을, 전문)
나이가 들면, 소유라든가 잡는 일의 무의미함을 실감한다.
공수래공수거의 섭리가 또한 삶을 관통하고 있음도 느낀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늘 하나 버리기도...
영어의 extra와 spare의 의미를 공부하다 보니...
우리말로는 둘다 나머지... 정도로 해석되지만...
엑스트라는 다 있는데 더 남아있는 개념이고, (박스가 넘친 것처럼...)
스페어는 필요를 위해 더 남겨둔 개념이다.(박스의 빈공간처럼...)
그런데도... 축구에서 연장전을 extra - inning 이라고 하고, 초과근무를 extra - duties라고 하듯...
안해도 되는걸 자꾸 덧붙이는 경우에 쓰는 용어란다.
스페어는 필요해서 덧붙는 것이다.
자동차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있어야 하고, spare - time은 한가로운 시간(여가)로 쓰인다.
인생에서 엑스트라를 추구하지 말고, 스페어...의 자세를 찾을 노릇이다.
양심이니 평화니 반전이니 우애니
이 신발들은 이런 것들을 가르친다지만
어쩌면 이 신발들은 묻고 있을지 모른다.
하느님은 지금
어데서 어떤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는가.(아우슈비츠의 - 신발들, 부분)
요즘 워낙 글로벌 시대다 보니,
시인들도 낯선 곳으로 다닐 일이 많다.
낯선 곳에서 시심이 발동하는 일이야 말릴 수 없겠지만,
시집에 외국의 감상이 많은 시집을 나는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아무래도 생활 속에서 졸여지다 짙게 배인 국물 속의 감칠맛과는 다른,
날것 그대로의 감상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인지,
그런 시들이 싫은 것인데, 이 시집에도 상당 부분 외국 체험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차지한다.
쓰나미가 휩쓸고간 마을.
저들 중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개미가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바가 없는 것.
하느님은 카운터에 놓여 있던 성모마리아상만은 거두시었을까.(카운터에 놓여 있던 성모마리아상만은, 부분)
그의 시에 가득 담긴 연민과 공감의 감정들은
하느님의 시선 되어 세상을 본다면 얼마나 부질없는 일들일지를 생각한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서른해 동안 어머니가 오간 길은 이곳 뿐이지만.
이렇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세상은 이해된다.
그 이해는, 지적으로 알게 되는 지점이 아니다.
그저, '아래 - 서서, under - stand'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해하게 되는 그런 관점이다.
세상의 흐름은 어떠한 유목적적인 것이라는 혁명 투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지적 활동보다는,
강물인듯, 뻘물인듯,
하늘이 잔별들 하나하나까지 보이는 나이가 되면,
무엇 하나 마음에 생채기 낼 수 있는 건더기는 없게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산하를 파헤치는 포크레인 삽날 앞에서,
대합실에 모로 쓰러진 노숙인 앞에서,
그의 눈은 불타오르지 않는다.
다만, 국파산하재...를 썼던 두보의 시대보다 못한 시대임을,
예수가 살아갔던 시대보다 더 쓰라린 재림의 시대임을,
번히 두 눈 뜨고 지켜보며...
낙타처럼 늙어가는 이만이,
이 노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듯,
이 시집은 끔뻑끔뻑 필름에 담듯 기록을 남긴다.
사진관집 이층방 그 썰렁한 기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