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만화 삼국지 1 - 난세의 영웅들 이현세 만화 삼국지 1
이현세 글.그림 / 녹색지팡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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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게 워낙 팍팍한 날의 연속이고,

어떻게 하루 살고 나면 다음날도 역시 팍팍하다.

 

이럴 때, 선이 굵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 속 서늘한 죽비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의리를 지키고, 삶의 줏대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현세의 삼국지가 만화로 나왔는데,

이렇게 간추린 만화로 읽으면서 놓치는 것도 많겠지만, 얻는 것도 많다.

우선 시대적 배경을 쉽게 간추릴 수 있고,

졸가리를 훑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

 

물론, 상상력을 통해 전장의 장수들의 심리전과 박진감 넘치는 삶의 현장을 느끼는데만은 못하겠지만...

 

이제 2권까지 읽었는데,

황건적의 난이 어떤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일어난 것인지,

만화로 읽으면서 좀더 금세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에게 특히 중고생에게 열 권이나 되는 장편대하를 읽게하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 스러지는 사람들의 면면을 읽게하려면,

이런 만화 정도는 옆에 두고 틈틈이 펼쳐보게 하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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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읽기 쉬운 텍스트는 아니다.

식민지 알제리의 한 청년이 횡설수설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횡설수설이 오역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신선하다.

 

새로운 <이방인>이 나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번역된 것이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펴낸 바 있는 이정서가 번역을 맡았다.

 

아, 김윤식은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하나의 성채였다.

그의 표절 문제를 다룬 사람이라니,

이 남자, 충분히 불온하다. ㅋㅋ

불온한 남자는 멋지다.

비록 그의 논리가 온갖 기득권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지라도...

그래서 결국 피를 흘리며 장렬하게 전사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불온한 전사는 그럴수록 더 멋진 법.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기묘한 역설을 안고 있었다.

이방인의 말뜻 그대로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와서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작품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이방인>이 얼마나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인지는 당시 원고를 처음 접했던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날 오후 <이방인>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갈리마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_게르하르트 헬러(허버트. R. 로트먼 저, 한기찬 역, 한길사, <카뮈, 지상의 인간>, 481쪽)
그렇다면 저들이 느꼈던 저 감동을 우리는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문제는 번역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역, 민음사, 135쪽)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이정서 역, 새움, 161쪽)


이번에는 불어권의 성채를 공격한다.

불어 번역의 바스띠유 김화영의 번역을 웃기는 짜장으로 치부한다.

암튼,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번역의 문제를 쉽게 손댈 순 없는 것. 문제 제기는 신선하다.

 

 새움판 새 번역 <이방인>에서 역자는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는 문장을 근거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라고 '탄핵'했지만, 나는 '사이렌 소리' 대신에 '뱃고동 소리'라고 옮길 만한 근거도 있으며 그렇게 옮긴 번역본도 적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면,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뱃고동파'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번역은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고 단언할 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그런 번역이라면 구글이 더 잘할 수 있다). <이방인>의 인용 준거가 되려는 번역이라면, 좀더 많은 걸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로쟈)

 

이쯤 되면, 점입가경이다.

인터넷 서점 최고의 서평꾼 로쟈가 그를 깐 것이다.

이번엔 알라딘 서재에서 '외롭고 웃긴 책방'이란 사람이 로쟈를 깐다.

은근한 반박이 아니라, 정면 반박이다.

 

이쯤이면 로쟈의 지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지적이 새로운 번역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경스럽다.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로쟈가 좋아하는 지젝의 문장을 보라. 얼마나 기막힌 역설과 시적 진술로 가득차 있는가. 비판을 위한 비판처럼, 전체의 맥락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극히 지엽적인 부분만 가지고, 그것마저도 아무런 근거 없이 달랑 케이스 하나만 가지고, 누군가의 고된 작업을 깎아내리는 짓은 삼가야 한다. 그게 진정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곡학아세! 지식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짓 아닌가?(외롭고 웃긴 책방)

 

헐~

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자에게 던지는 욕치고 가장 쎈 걸로 던졌다.

곡학아세라니... 경멸하는 지식인이라니...

 

또 하나 아무리 그래도 기존의 번역이 0일 수는 없을텐데 그게 마치 0인걸로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걸로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걸로 취급해버린다. 이게 가당키나한 일일까? 자신감인가?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해줄 말이 이거다. 과유불급 특히 노란색 띠지의 워딩들은 어찌나 닭살돋는지 아무리 영업상 과장을 어느정도 한다는걸 감안하더라도 진실이 어쩌고 비밀이 어쩌고 속았다는 둥 어쩌고 하는건 너무 심하다 나라면 닭살돋아서 그런 워딩은 못골랐을텐데 ... 아무튼 그렇다.
그런 식이라면 기존의 역자와의 대화는 불가능해보인다. 사실을 지적하기만 하면 대화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역자와 출판사의 생각에 일부 공감이 되면서도 마치 죽일놈을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기존 번역을 취급해버리는 순간 서로간에 한 마디도 말이 오가기 힘들거라는 생각이다.(옥탑방, 과유불급)

 

이 책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아니 읽는대도, 불어라고는 보아시 응 갸르송~~ 보알라 윈느 퓌어~ 이런 거 조금 읽다 말았으므로,

책을 읽어도 요령부득일 노릇이다.

그렇지만, 나의 심정적인 동조는...

아무리 과유불급이라 해도,...

비판이 지나치면, 그 비판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슬픈 만화 26년 처럼...

공고한 성채에 부딪치는 일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일이라고 여겨 미리 포기하라는 말로 비칠까 우려되었다.

 

이 나라는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가진자들의 권력은 정말 공고하다.

외화 번역계의 이미도 씨가 정말 얼마나 훌륭한 번역가인지~

불어 번역계의 김화영 씨가 어떤지~

내가 비판하긴 쉽지 않지만,

번역이란 세계가 돈이 쏟아지는 돈방석도 아닌 바에야,

이런 불온한 시도가 더 많아져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말랑말랑해지고, 민주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지나친 비판은 불편하다.

하지만, 주례사 비평이나,

번역 세계처럼 돈이 안 되는 분야의 권위자에 대한 도전 없음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시대는 가야 한다.

 

책을 읽기도 전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만,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과유불급이군... ㅉㅉㅉ 혀를 차는 보수적 세대임을 확인하고 말는지도...

 

인간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 (노엘레 노이만)

 

'침묵의 나선이론'이란 것이 있다.

침묵하긴 쉬워도, 발언하기 어려운 소수 의견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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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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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핑크와 블루가 있다.

뭐가 다른가 봤더니, 표지가 다르단다. 참 기이한 일이다.

책도 암수가 있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아류쯤 되시겠다.

그런데 그 책만큼의 깊이는 없고,

그러니까, 어디 가서 사랑학 개론이라고 늘어놓을 만한 깜냥의 깊이는 없고,

다만,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들에 대하여...

어떤 낱말엔 어원의 풀이를, 어떤 낱말엔 가벼운 상념을,

어떤 낱말엔 유럽 어족의 말들을 써내려간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뒤표지만 참고하여 책을 구입하면, 책값 14,800원이 심히 아까울 수 있다.

뒤표지에 적힌 아름다운 말들은,

이 책에서 내가 가려 읽고 싶고 누군가에게 읽어주고 싶은 구절들을 쏘옥~ 뽑아 둔 것들이었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아니,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 없는 삶은 제대로 된 삶에 이르지 못한 삶이다.(5)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지만, 여기서 쓰인 '사랑'의 의미조차 뒤섞인 말이다.

자연을 사랑하자~부터 오늘밤, 사랑하고 싶어라~까지...

 

서문의 제목이 <사랑의 알고리즘>이다.

아포리즘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알고리즘엔... 글쎄? 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히 정의된(well-defined) 유한 개의 규칙과 절차의 모임.

명확히 정의된 한정된 개수의 규제나 명령의 집합이며,

한정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알고리즘 [algorithm]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2011.1.20, 일진사)

 

명확히, 한정된, 정의나 규칙, 절차, 명령의 집합이라고 설명된 '알고리즘'을 스스로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사랑의 말들에 대한 잡감>이라고 쓰고 있으니 자승자박인 셈이다.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볼 수라도 있을까?(몸)

 

이런 젖은 말들을 듣는 일로도 마음은 아슴아슴하다.

 

내 정인 情人의 마음자리(살갑다)

 

그 느낌은 이해가 가지만,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하다>거나 <닿는 느낌 같은 것이 가볍고 부드럽다>는 원뜻도 예쁜데,

정인의 마음자리...만으로 퉁친 것은 불만스럽다. 심히...

그의 서술 방식이 일관성이 없고 지나치게 들쑥날쑥 울퉁불퉁한데서 미감이 떨어지는 느낌...

 

바람이 들다 ; 권태가 치료되기 시작하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 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 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을 주사했다는 뜻이다.(설레다)

 

설레는 마음을, 보이지 않는 바람결을 흔들리는 나뭇잎으로나 표현하듯,

미약을 주사한 혈관이나 버튼 눌린 마음으로 표현한 것은 멋지다.

그러나, '사랑하다'는 옛 의미가 '생각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알면서,

설레는 마음에도 '순간적인 주사나 버튼' 이외의, 지속적인 '생각'을 포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럼이란 스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것은 스스럼이 없어지는 과정이다.(스스럽다)

 

나는 '무람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스스러운 사람에게나 대할 수 있는 태도고,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움의,

그러므로 모든 사랑의 밑감정.(애틋하다)

 

'사랑하다'에서 온갖 종류의 사랑을 늘어 놓고,

모든 사랑의 밑감정이라고 들이밀면 곤난~하다. ㅋㅋ

애틋함은 에로스적 사랑의 밑감정으로는 적절할지 모른다.

'네가 곁에 있어도 네가 그리웁다'고 할 정도의 먹먹한 상태라면 말이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임제)

 

어이 얼어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한우)

 

임제와 한우의 시조는 그 자체로 '어울림'이자 '얼음'의 수작이다.

시조가 얼어서 교접을 하는 듯한 야릇한 느낌.

찬비와 寒雨의 어울림,

제법 몸이 노곤노곤해질 법한 시다.

 

한국어에 대한 내 사랑이 끔찍이 도탑다는 사실이다.

그 사랑은 결핍으로서의 사랑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 사랑을 결핍으로서의 사랑으로 만드는 것은

모국어의 무늬가 머지않아 맞게 될 마모의 운명, 말소의 운명...(1995년 서문 중)

 

빠리~에서 보낸 시간들 중,

모국어에 대한 결핍으로서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 그가 안쓰럽게 기특하다.

2009년에 나온 '어루만지다'와 어울릴 법한 책인데,

거친대로 그의 사고의 결을 더듬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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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겠다” -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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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약하지 않다는 것,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258)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주던 활동가가 한 이야기다.

인문학은,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학 내의 학문으로서만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고병권이 각종 운동의 현장에서 이야기하고 생각했던 것을 잘 풀어쓴 책이다.

난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 해도 이런저런 잡지에서 끌어온 칼럼집 같은 책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데,

그래서 이 책을 보고도 그럴까 우려했는데,

전혀 아니다.

이 책은 무척 좋다.

 

인문학자가 데면데면하게 서야 하는 자리.

장애인들 앞에 서서 인문학을 강의해야 하는 자리.

스물 두 명이나 죽어나간 동료들의 영정을 앗기고 불태운 국가 권력에 울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강의하는 자리.

그런 참으로 힘든 자리에서 생각한 것들, 이야기한 것들에 대한 그의 감동이 이 책에선 오롯이 묻어난다.

 

시설에서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들,

삶의 터전을 국가의 전력 수급 계획과 한전의 등쌀에 빼앗긴 노인들,

그들 앞에서 그는 끝없이 좌절하고 또 배운다.

 

우리가 역사 앞에서 참 빨리 절망하는구나.

희망도 그렇고,

바로 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게 끝난 듯 절망하거나, 또 헛된 희망을 품는구나.

희망도, 절망도 필요 이상으로 크고 깊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소중한지...

아마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 중 하나가 이계삼 선생...(232)

 

세상은 반성하지 않고, 나아가기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후쿠시마의 원전이 녹아내리며 그 무섭고도 아픈 진실을 전할 때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원전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왔다고 말하는 사람.

하이데거가 <전진하는 무사유의 발걸음>이라고 부른...

성찰없이 계산기만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172)

 

나 또한 성찰없이 전진하는 무사유의 발걸음으로 오늘 하루 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돌아본다.

 

점거란 대안 없음에서 시작되는 운동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대안 없음에서 어떤 대안이 고개를 내민다.(132)

 

월 스트리트의 점거에 대하여 그는 여러 차례 글을 쓴다.

2008년의 촛불 역시 하나의 점거였다.

그 점거를 박살낸 정부는 파죽지세로 광장을 죽여버렸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점거와 철거의 사이에서 좌표가 움직인다.

 

전향력이라는 힘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자전하는데,

적도 부근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돌지만,

극지방에 가까워질수록 그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래서 적도 부근에서 극지방으로 향하는 물체는 그 속도의 차이때문에 전향력을 얻게 된다.

그 방향은 지구가 자전하는 동쪽 방향이고 힘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커진다고 한다.

 

삶의 진자 역시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하루하루가 역동적인 속도의 변동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때는 그날이 그날인 듯, 힘의 변화를 느끼기 함들다.

그럴 때 '안정과 나태'가 스물스물 몸을 잠식한다.

 

고병권의 인문학은 전향력이 큰 사고방식이다.

위도가 낮은 곳에서 위도가 높은 곳으로 발사한 물체처럼,

그 자전 속도의 차이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를 겪게 되는 현상처럼 말이다.


삶을 살아도 각자의 삶의 속도는 다르다.

그때 속도가 빠른 지점에서 날아온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우리가 바보가 되는 것은 지능이 모자랄 때가 아니고,

의지가 꺾일 때이다.(랑시에르, '무지한 스승'에서, 96)

 

결국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지를 꺾으려는 '동풍'에 나부끼는 '풀'이라도,

다시 일어나야 하고, 끝내 웃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김수영이 '다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고 쓴 모양이다.

풀뿌리는 누워도 꺾이진 않으니까.

신경림은 말했다.

산다는 일은... '갈대' 처럼...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의식화' 되어야 한다.

 

의식화된 사람은 박식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지식과 정보에 대해 달리 보고 달리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생각에 쉽게 동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감히 비판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92)

 

의식화된 인간 만들기... 그런 것이 인문학의 좌표다.

 

한국은 '도가니'의 세상이다.

온갖 영토에 철조망의 시설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는 인권이 실종된다.

장애인, 각종 복지 시설, 감옥, 불법체류자 등에게 둘러쳐진 철조망의 안과 밖은 법의 중력장이 전혀 다르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슬픈 건 내가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71)

 

장애인들,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니체를 격렬하게 몸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부르르 떨렸다.

젠체하고 읽고 쓰기를 즐기는 나같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정서...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 같은 말을 책에서 보고 인문학의 힘을 실감한다.

 

인문학은 머리로 이해되는 공부가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에 대한 '글과 말'에 대한 '성찰'이 인문학이어야 하는 게다.

 

취업시켜주지 않는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을 논하면서,

견유주의와 냉소주의의 어원이 같음을 이야기한다.

개처럼 짖는 학자, 곧 발언하는 파수꾼으로써의 견유주의자와는 정반대 편에

냉소주의 대학이 자리잡은 현실...

현실을 바로보는 일은 마음 편하지 않다.

 

견유주의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정체를 빨리 알아채고,

그것을 인류라는 본대에 알리는 자.

아무런 보호도 없이 인류에 앞서 냄새맡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알리는 자.(32)

 

인문학도는 이런 위치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화의 스승 내지 수괴로 리영희 선생을 꼽는 것도 그가 철저한 견유주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의 지혜란 홀로 득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마찰의 불꽃이 영혼의 램프에 옮겨 타는 것, 그것이 철학의 지혜가 아닌가.

우리는 위대한 누군가로부터 그 불을 나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서 계속 기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불은 금세 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쉼없이 가꾸어 감으로써만 우리 영혼의 램프를 밝힐 수 있다.

그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참 멋진 학문이 아닌다.(29)

 

노년의 플라톤을 인용한 그의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의붓자식을 독살하려한 모친의 죄를 대속하려 '등신불'이 된 만적의 이야기(김동리, 등신불)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횃불을 든 전태일이 떠오른다.

전태일의 유서를 만나는 일은... 혁명이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이어받은 경험이었다.

 

이 책을 많이 나눠읽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 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이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 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돈의 힘)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이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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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윽 어제 주문한 책 한 상자가 오늘 오는데..
이 책은 아직 보관함에 있는데...

리뷰만 보고도 왠지 울컥합니다.

글샘 2014-04-10 16:39   좋아요 0 | URL
괜찮은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 공학도가 풀어낸 운명 코드, 사주명리
고진석 지음 / 웅진서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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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이나 사주는 사람의 미래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예측은 오직 과학의 몫일 수밖에 없다.(223)

 

명리사주학이나 주역, 각종 점술은 운명을 고정된 것으로 파악한다.

아마도, 완전 고정되었다기보다는,

예측불가능하고 관측불가능한 인생의 삶의 행보를

어느 정도 내다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이야기들은 은밀하게 미래를 내비쳤을 것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주와 팔자에 따라 운명이 정해졌을 리는 없다.

그러나, 또한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면 기가 막히게 맞는 분야도 있다.

그런것은 <해석>을 통한 운명의 예측의 묘미를 익혀야지, 들입다 점쟁이를 믿을 일은 아니다.

점쟁이가 모든 일을 다 안다면, 왜 그들이 재벌이 아니고, 재력가가 아니고, 권력자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다만, 삶의 방향성을 해석할 통계학적 자료를 우리에게 들이밀 따름인 게다.

 

믿음이 있고난 후 사람들은 믿음의 이유를 발명했다.(212)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그러한 운명이 닥쳤는지를 고뇌한다.

누군가 자신을 뒷바라지해줄 사람이 불시에 죽게 되기도 하고,

뜻밖의 사건으로 삶의 스케줄이 뒤헝클어 지기도 하니 어떤 이유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래서 인간은 그 이유를 발명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주역이나 사주다.

 

무당의 본업은

모든 사람들이 한 식구가 되도록 쓸어가며 보듬어 안고 보듬어 울고 걱정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으는 것.(188)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

아주 편협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마치 자기 관점만이 옳다는 양 여기기도 한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하기에 가장 좋은 땅입니다.

일년열두달 비가 오지 않으니 일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건조하니 시멘트가 잘 말라 공기가 단축되죠.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골재 조달이 쉽고,

물은, 물보다 기름이 싸니 관을 잇든 실어 오면 되고요.

더위는 간이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기름값이 헐값이니 밤새 불 밝혀 일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185)

 

이런 사람에게 불행한 운명은 정말 깜놀하고 기겁을 하고 달아날 것이다.

천하무적 정주영이다.

남들이 중동에 돈은 많은데 사회 인프라 건설하려는 나라들에 더워서 일하러 갈 사람이 없다니,

그런 모든 부정적 요소를 긍정적 요소로 파악하는 '긍정맨'의 적극적 사고 앞에서는

운명아 비켜라~ 다.

 

이 책의 표지엔 노란 벽돌들이 가득하다.

마치 소복소복 벽돌을 쌓아 올리듯,

삶은 그렇게 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잘 보면, 이 벽돌들은 주역의 '괘'들을 늘어놓은 것임을 볼 수 있다.

 

주역은 현재 처해진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을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 의지는 의식적인 의지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의지이다.(89)

 

주역을 들입다 읽고 믿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동전을 던져서 괘를 찾고,

그래서 그 괘의 효사를 읽고는 내 운명은 이렇다~고 내다보는 일은 말도 안 된다.

집단 무의식에서 얻어지는 지혜, 최고의 선택을 향한 고민... 이런 역사의 하나라면,

주역을 볼만 하겠다.

 

관상에서는 좋은 관상이 아니라 깊은 관상이 좋다고 한다.

깊은 인상은 철학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귀하고 천하다는 것은 바로 타인을 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말하는 것이다.

좋은 관상은 귀한 관상이라는 것이다.(16)

 

좋은 관상은 귀한 관상이고 깊은 관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관상이라 하더라도,

모두 낮은 확률에 기댈 뿐이다.

 

유사한 경험일 뿐이고 낮은 확률일 뿐.(35)

 

아무리 예뻐도 마음이 날이 서있는 사람이 있고,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관상은 갈수록 귀해지고 깊어진다.

 

복합적인 통찰력이 뛰어난 것.(30)

 

사주와 관상, 모두 인생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기본적인 이론은 누구나 익힐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삶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은,

복합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의 몫이란 것이다.

 

동양에서 발달한 확률론에 기댄 점치기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지와 연관된다.

특히 삶에 복합적인 고난이 닥친 시기에,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미래를 그냥 손쉽게 보고싶은 욕망에 경도되는 것이다.

 

내 삶이 팔자가 지지리도 나쁘다고 여겨질 때,

이런 책도 한번 볼 만 하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대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 곧 삶인 것처럼,

사주명리학이 살아남은 중심에는

내가 태어난 시점의 의미를 해석하고 일관되게 설명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 것.(26)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산다.

고통은 견딜 수도 있지만, 무의미는 참기 힘들다.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이 주역을 들쳐보는 이유는 그래서다.

 

내 팔자가 도대체 왜 이러냐... 싶은 날에는,

커피 한 잔도 위로가 되고,

민들레꽃 한 송이도 위로가 되듯,

나와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의 책들에서도 한 줄기 위로를 건져올릴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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