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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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박경리 '토지'의 '길상'이는 이름이 벌써 '길하고 상서롭다'는 뜻이어서,

주인집 아씨 곁에서 집사 노릇을 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리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 이름인 반면,

이 소설의 '히스 클리프'라는 이름은 들판의 잡초인 '히스'가 가득한 '절벽'이란 의미가 떠올라서,

그 잡초같은 인생의 기울기가 가파르게 시련에 직면하고 말 것임을 예고하는 이름이어서 아프다.

 

'폭풍의 언덕'이란 집 이름 역시,

바람잘 날 없는 인간사를 예고한다.

 

예기치 않게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와 살게 된 이방인 '히스클리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가진자들의 시선에서는 읽어낼 수 없는 분노와 혼돈 속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아픔을 차마 정면에서 바라보지 못하여,

세입자와 하녀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로 인물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것이어서,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라고 할 만큼,

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하던 캐써린도,

현실 세계에서는 히스클리프와 맺어지지 못한다.

 

춘향전이나 옥단춘전같은 소설에서는,

계급을 초월하는 결합이 소설같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차마 두드릴 수 없는 문이 거기 놓여있는 것.

 

이런 소설을 읽는 일은 마음 아프다.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계급이 없다고 해도,

인간들은 또 다른 위계질서를 심리적으로 가지고 있다.

 

의사 신랑, 교사 신부 같은 직업군들이 절찬 판매중인 한국 사회에서는

또다른 워더링 하이츠와 히스 클리프가

여전히 재연되고 있지나 않을는지... 생각하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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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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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쯤 전.

철학 고전을 20권쯤 고르고,

그 책이 왜 재미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하는 교양서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다.(서문)

 

철학 고전으로 고른 책 중에서 재미난 것도 있고, 별로 읽고싶지 않은 것도 당연히 있다. ^^

그렇지만, 이 책의 장점은, '왜 재미있는지'를 나름으로 설명해 보자는 의도가 강해서

철학을 설명하려드는 책들의 딱딱함에 비하면, 부드러운 크림맛으로 그 이물감을 둔화시킨 느낌이 든다.

 

학문의 세계에서 경의를 품고 싶지 않고,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경의를 품는 철학서가 있고 존경하는 철학자가 있지만,

그것은 비판과 대결, 격투를 거쳐 자라난 경의이고 존경이지,

그 앞에서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는 경의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논어'는 경의를 강요하는 성가신 책이다.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주제넘은 책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명구나 금언을 만나도 설교투가 흠집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78)

 

하~ 철학자들도 이러하구나.

이런 솔직한 실토가 아마추어에게는 덩달아 반갑다.

그러나 이런 불평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책으로서의 가치는 누리지 못할 터.

 

간결한 표현 속에 깊은 생각이 담긴 말을 읽으면,

공자의 많은 말도 '독백 혹은 자기와의 대화'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가슴 한구석을 스치지만,

단언할 자신은 없다.

그렇게 단언하려면, 전통적 논어 독법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알겠지만.(88)

 

안연의 죽음에,

"선생님은 아까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셨습니다."

"그랬느냐, 그 사내를 위해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겠느냐.(87)

이렇게 말하는 공자를 대하고 나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어주는 부분은 쉽게 이해를 도와준다.

 

칼뱅은 신에게 예속, 굴종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도가 자기 경제활동을 '현실 생활'로 파악했을 때,

거기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했다.

그것은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을 '천직'이라 여기고,

직업을 합리적으로 영위하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 정신이다.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서 특별히 고귀하고 고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던 영리활동이

신의 영광과 결부됨으로써 신성한 의무의 차원으로 격상되었던 것.(98)

 

막스 베버의 철저한 연구 태도 역시 경의를 보내고 있다.

 

소란과 내란은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겠지만

인민의 참된 불행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자유를 제한하는 멍에를 짊어진 채 억눌렸을 때, 바로 그때 모든 것이 쇠퇴한다.

인류를 번영하게 하는 것은 평화보다는 자유다.(113, 사회계약론)

 

이런 이야기는 아직도 이땅에서는 요원한 무지개일 따름인데,

프랑스 혁명보다 이전에 이런 논의가 오갔다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평화는 보수주의자들의 로망이다.

세상이 조용하게, '이대로'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 '보수'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 자유의 물결이 물을 살린다.

 

다른 사상과 공존하며 서로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본적인 힘(129)

 

밀의 '자유론'에서 말하는 이 비판과 공존은

기독교를 유일한 원천으로 삼았던 시절에 대한 비판이고,

기독교 아닌 사상에 대한 공존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직도 기독교라는 맹신의 틀에 갇혀 '백정'들과 어울리기 싫고, '좌빨'들을 '미개'하다고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사들이야말로, 300년 전의 책을 읽히고 싶은 노릇이다.

 

아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이마코소 요미타이 테츠가쿠노 메이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것이라기보다,

<지금이야말로>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자본주의에 나름대로 저항하며 느리게 가더라도 사람 생각하며 가자던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이전에는 수정되고 개선되어 사회적 복지 개념과 소수자, 약자를 고려하던 정의를 고려하던 자본주의는

화로에 떨어진 눈 녹듯 스러지고,

이젠 온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가진자는 못 가진자를 더욱더 철저하게 착취하는 구조인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는 현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이런 철학서들을 다시 한번 펼치고 싶고,

강론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라틴어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프랑스어로 썼던 <방법 서설>의 의미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맞서는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가 '인간'을 담아낼 때,

'신자유주의'라는 십자군의 폭력에 맞서 '신르네상스'를 만나게 될는지도 모를 노릇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라고 생각한다.(131,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중)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피의 냄새가 흐르는 곳에 자유가 흘러드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살아내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자유~

조금 더 자유~ 이런 세상을 만나게 되지도 않을까...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팡세에서 파스칼이 일컬었든,

인간은 나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여서, 존귀한 존재가 된다.

 

우주가 그를 파괴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를 죽인 자보다 존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170)

 

인간이 존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얼마나 처절한 자기애에 넘친 발언인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비판서라기보다

종교를 인간의 유적 의식에 바싹 끌어당겨 다시 읽으려 한 책이다.

신을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닌 무한성, 완전성의 상징으로 파악하여,

종교를 새롭게 살리는 시도라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186)

 

사랑은 대등한 관계 아래에서 성립하는 것.

신앙은 하위에 있는 존재가 상위에 있는 존재에 대해 품는 것.

포이어바흐는

사랑이야말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묶기에 어울리는 심성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깊어지고 확산되면

저절로 신앙을 슬데없는 심성으로 여겨 파기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랑 안에 신앙이 용해되는 것이다.(187)

 

세계를 뒤덮고, 온갖 전쟁을 불러온 '권력'의 신앙과 교회에 대하여,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새로운 사회 제도의 대두에 따른 논의의 시점에 등장한

포이어바흐의 고민들 역시,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돌아봐야할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신이 아닌 '신-자유주의' 물결 아래,

세계화와 지구촌이라는 그물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시대에,

왜 이딴 철학 책을 뒤적거리는 리뷰집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없다면... 삶의 가치를 논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싶어,

자세를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고,

책을 잡게 한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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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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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어떤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다.

그것을 본 하녀가 그를 비웃는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의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고추장이 어떤 사보에 다달이 적어두었던 꼭지들을 모은 책이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철학자들에게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소재의 제공처일는지 모르겠다.

어찌 그 지나간 사건 사고들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구태의연하고 옛스럽지 않고, 마치 오늘에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새로운 것인지...

 

그리하여, 이 책의 철학은 '가난한 자, 낮은 자'들이 '깨달음'을 얻는 철학에 대하여 쓴다.

현학적이고 박식해 보이는 철학이 아닌 것이다.

'하녀'의 철학에 대하여 쓴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블리주(책무)는 한번도 가져본 적 없이 사회의 권력층에 앉은 노블하지 않은 노블리스들이...

요즘 '하녀'들을 <백정> 내지는 <미개한 백성> 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요즘은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도를 닦에 만든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물을 것도 없다.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저것이 정부입니까? ㅋㅋ 슬프면서도 웃긴다. 하는 짓거리가...

역사는 되풀이 된댔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유신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 애비는 비극으로, 딸은 희극으로...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9)

 

이 말은 철학을 정의하는 훌륭한 말인듯 싶어 적어 둔다.

흔히 철학은 세상을 보는 시선, 시각으로 정의하기 쉽지만,

그것은 학문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늪에서 나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필터링이 철학인 셈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30)

 

조선의 권력자들은 탐관오리들에 있었고,

일제 강점기엔 친일파에 있었고,

군사 독재 시기엔 정경유착의 재벌에 있었고,

이제 국가독점 자본이 세계 경제에 재편되는 시기엔 국가와 재벌의 유착이 고착되는 데 있다.

(국가 조직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회는 자본의 힘으로 선거를 획책하고, 자본은 언론까지 장악하는 복합체)

 

한 번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지나면서 처절한 배신감을,

전쟁시기 이승만의 만행으로 죽어간 수십만을 보면서 생존의 처절함을 몸소 겪어온 사람들에게는

세포 알알이 들어찬 두려움의 유전자가 불안감에 떨게 만든다.

 

절대로 '빨갱이', '종북', '좌빨'에 들면 안 된다는 초조함을 조장하는 사회인 것이다.

국가의 예산으로 있지도 않은 '보수' 알바들을 동원하여 '맞불집회'라는 쑈를 벌인다.

어떤 조직의 힘이 뒷받침 된 것인지 '보수논객'이란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막말을 한다.

아직도 여전히 불안감으로 초조한 나날을 살아가기를 권력은 바라는 것.

 

초조해하지 않아야 한다.

쉽지 않은 말이다.


요즘들어 '외부세력'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왜 이해당사자도 아닌데 끼어드느냐고 말한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구경꾼들의 맘속에 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을 넘어 인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일이 아닌데도 아파하고 고통을 무릅쓰는 그것 때문이다.(76)

 

청와대 뺀질이가 그랬다.

'순수 유가족'이 아니면 나대지 말라고...

그 뺀질이는 모르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아프고,

그래서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어깨를 겯는 사람의 마음을...

 

신자유주의 정부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이때 정부가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을 지키자는 강조는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181)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서, 한국의 광화문에서,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서,

아주 사소한 법을 어겼다고 경찰들은 몽둥이를 들고 채증을 하고 '법치'를 떠들어 댄다.

그 이유가 참 명확하게 적혀있다.

 

그런데, 법을 지키려면 좀 제대로 지킬 일이지,

겁을 주려고 해산하는 시민들을 연행해서 불편하게 만들고,

카메라 수십 대로 불법 채증을 하고, 심지어 유가족을 미행하는 사찰을 하고,

(하긴, 국가의 사찰이란 불법을 저지르고는 내부고발자를 아주 비참하게 만든 역사가 3년 전에 있었지)

자기들은 명찰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법을 어긴다.

 

소수자들은 많은 경우

사회에서 식별되지 않도록 자신을 스스로 말소한다.

그리고 다수자들의 목소리를 제 것인 양 그 누구보다 열심히 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말소는 정반대의 사실을 덮고 있다.

다수자가 자행하는 말소의 폭력 아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역으로 자신을 말소하는 것이다.(206)

 

한국에서 '빨갱이'가 된다는 것은 26년 감옥생활을 해서 나름 장기수라고 뻐기던 만델라가,

한국 감옥에 와 보고 자기는 얼마나 잔챙이인지를 깨닫게 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3,40년 정도 돼야 장기수인 나라가 이 나라이니, 만델라는 한국에서는 장기수 축에도 못 드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는 증명으로 교회를 그토록 열심히 다녔나보다.

헌금을 내고, 군경가족이 아니면 '골'로 가서 학살을 당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아직도 '좌빨',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서늘하다.

 

'전라도 홍어'라는 비아냥을 일삼는 인간 말종들을 사회가 정화하기는커녕,

아직도 광주는 '폭도'와 '사태'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금지와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하는 날들은,

다시 세상을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로 몰아 소수자로 지목하려 드는 셈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소수자 아님을 증명하려 애쓸 것을 바라는 의도가 다분하다.

 

인문학 강연도 많고 책도 많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말들은 모두가 쓰고 버리는,

심지어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상품처럼 되었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252)

 

결국 말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만이 힘겹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자유를 말하는 것은 피의 냄새를 맡는 일이며,

고독한 혁명을 견디는 일이라고 김수영이 말했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인지 날마다 투덜대며 신경질이 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일보다는,

길가에서 서명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광장에 나가서 노란 팻말이라도 한 번 더 드는 일이, 더 철학적인 일임은 자명하다.

그런 것을 이 책은 일러준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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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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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인 '질문의 책'

 

이 책 속에 담긴 상상의 꼭지들은 마치 젤리처럼 말캉하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뇌가 연두부처럼 말랑하고 젤리처럼 부드러운 사람이라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캉한 질문들을 잊거나,

되려 질문하는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는다.

 

죽은 시신처럼 뻣뻣한 사고를 가지고,

"그렇게 해서 어찌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 안녕을 꾀한단 말이오?" 거만하게 말한다.

쥐뿔도 모르면서...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좇는 거지?(44)

 

누구나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아이적의 순수함은 어디로 갔는지,

다른 삶을 사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보고도 스스로를 자신이라 믿는다.

30년만에 만난 동창들은 모두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사랑도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일는지도 모르고,

변해가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인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확신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뿌리들은 어떻게 알지

빛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는 걸?

 

그 많은 꽃들과 색깔들로

대기와 인사해야 한다는 걸?

 

그 역할을 되살아나게 하는 건

늘 똑같은 봄일까?(72)

 

이유없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 같지만,

아기의 눈처럼 말랑한 마음은 계속 질문을 찾아낸다.

 

죽음의 통로를 끝까지

간다는 건 뭘 뜻하나?

 

소금 사막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다에서

입고 죽을 옷은 있을까?

 

뼈들도 사라져버리면

마지막 먼지 속에는 누가 사나?(62)

 

삶은 과정.

통로를 지나 언젠간 끝을 맞는 것.

인생은, 세상은 소금 사막.

생존 조건은 팍팍하고 잔인한 곳.

그러나, 다 사라지리라.

마지막 먼지조차 사라지리라.

그때도, 살아남은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삶이란 그렇게,

혹독한 조건이라 해도 살아남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이 아닐는지...

 

날마다 불이 나고, 사람이 죽어나간다.

이것이 국가입니까?

이러면서 묻기 시작한다.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은

단단하게 고착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공고화하려는 자들의 기도다.

 

물어야 한다.

자꾸 질문하는 것만이,

삶을 조금이라도 더 말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신은 지구가 가을에

무슨 명상을 하는지 아는가?

 

(첫 황금빛 나뭇잎에

왜 메달을 주지 않을까?)(16)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네모난 것들로 가득하다지만,

원래 자연은 네모난 것 하나 없었다.

 

제멋대로 생긴 존재들을 바라보는 눈.

그것이 시인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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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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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이명박근혜 정부가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는데,

그 말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그르다.

 

전두환의 집권 시절, 세계경기는 호황이었으나,

5공 말기부터 세계경기가 다운되고,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 요구에 따라

외세의 정치적 개입보다는 경제적 개입이 강화되는 물결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세계화를 외친 김영삼 정부 이후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책없는 외국자본의 유입은

얼어붙은 발에 오줌누기 식이었고,

그 고통은 이명박근혜 시대의 각종 규제 철폐로 노동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미룰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란 국가의 '사회 구성체'는 이미 '정경유착을 통한 국가 독점 자본'이 판을 휘어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국가 독점 자본은 이제 세계 자본의 하위 블럭으로서 기능하고,

또다시 한국보다 하위 레벨 국가의 상위 구성체로 기능하게 된다.

 

쌍용차의 문제는 단순한 경찰의 폭력(무장경찰의 폭력,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의 폭력, 경찰의 최루탄 폭탄 등)이거나

정리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본이 자본을 낳는 '악마의 연쇄' 속에서

누군가는 회사를 저평가하고, 누군가는 그 회사를 먹고 튀는 일이 벌어지는데,

국가는 그것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사회 안정을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공권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나 용산 등의 참사의 밑바닥에는 저 추악한 '악마의 금전'이 연쇄적으로 권력과 맞물려 있다.

그저 해고가 되고 복직이 되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그 근저에 쌓인 '진실'을 밝히는 데서 이 싸움은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월호와 같다.

용산에서 행한 국가적 폭력에 야당도, 국민도 저항하지 못한 것이 쌍용차를 낳았고, 세월호를 낳았다.

세월호를 잊으면, 더 큰 죽음의 연쇄가 당장 '나'에게 닥칠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한 기업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갔는데

이 땅에 살면서 방치되는 것이 맞느냐?(241)

 

스물네명의 쌍차 관련자들이 병들어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랬다.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 하는 걸 본 적이 없을 뿐.

본 적이 없어 헛짓이라 하는 것.

저는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불러요.(233)

 

힘들 때일수록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계 부품처럼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일은 지난하다.

그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현실은 팍팍하다.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칼날을 내민다.

다만 약자들에게는 희망이라는 상상력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딱 떳을 때,

그럴 때 만나는 일상에 행복해하는 사람들.

일상을 잃어본 이들이 이야기가 이 책에 그득하다.

 

모든 변호사들이 그랬어요.

법대로 하면 복귀된다고.

회사가 잘못한 게 밝혀지고 있는데 잘못한 놈이 해고시켜 놓고,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면 뭘 할 수 있겠어요.(210)

 

법은 10,000인 앞에 평등하댔다.

나머지 49,990,000인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상상력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버텨야 한다.

이런 책을 읽고, 후원금을 보내면서 버텨야 한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파장)

 

못난 놈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정몽준 아들이 말한대로 '미개'하고 '미천'한 존재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183)

 

그들만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나도 나아질 것은 없다.

반올림이 죽음들이 진실을 밝혀야 하고,

무노조 신화 삼성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시신 탈취로 신속함을 보여준 폭력경찰에게 잘못을 되돌려줘야 하고,

세상은 돈 많은 권력자들 중심으로 돌아가지만은 않는 것임을,

이건희에게나 골든타임이 적용되는 나라가 나라라고 여겨져서는 안되는 것임을,

뼈저리게 얻어맞으면서, 쫓겨나면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진짜 애도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이 생기는 것이지 않겠어요?(171)

 

대한문 앞에서, 평택에서 억압받던 노동자들이,

사실 얼마나 일을 신이 나서 했던 사람들이고,

일 잘 한다고 인정받던 사람들이고,

자동차 조립하는 기름밥을 자랑삼아 먹던 사람들인지를, 그 자부심을 읽어야 한다.

 

거짓으로 일관하는 언론은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용역들은 '일터를 지켜낼 수 없다'며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공장을 떠났습니다.

저들이 떠난 공장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습니다.

저들은 공장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파업노동자들이 보호하고 있던 부품과 생산시설까지

부수고 나갔습니다.

부서진 부품과 기계들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78)

 

용산에서 쓴 컨테이너, 그걸 가지고 와서 최루가스를 부어버렸어.

도장반도 불내고 현장에 기름 뿌리고 완전 아수라장이었어.(40)

 

용산에서도 보았듯,

폭력 경찰들은 '용역'이란 이름의 깡패집단과 한 패가 되어 노동자를 짓밟는다.

공권력의 민영화라고나 할까. 참 치사하지만 더럽게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단번에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혁명을 일으켜 지금의 권력자들을 쓸어낸다고 세상이 청소되지는 않는다.

먹물에 맑은 물을 계속 들이 붓노라면, 차츰차츰 물이 맑아지리라는 상상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먹물을 부으려는 자들과 계속 싸우면서,

맑은 물을 붓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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