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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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 아노 고로노 다레카...

 

그무렵의 누군가...

이 소설집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고 운동이랄까,

 

단편이지만,

하나씩의 이야기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잘만 기르면 장편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의 씨앗들을...

 

그 무렵의 누군가가...

어떤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 작은 파동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하는 법이다.

 

일상적인 사고를 조금은 뒤집어 해보는 습관이 그에게는 들어있는 듯 싶다.

가볍게 읽을 미스터리물을 찾는 사람이라면 행복해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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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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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바르고 착한 일을 한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겁니다.(1347)

 

고전을 읽는 일은,

한 시대의 사회상을 읽는 일이고,

지금-여기의 나를 '시-공간적 이동'을 통하여,

'그때-거기'로 보내주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일은 '지금-여기'에서 살아온 몇십 년과,

내가 읽었던 세계에 연관된 것들이지만,

이런 고전을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로 뒤섞여 살았는지,

그 사람들의 생각들과 변화하는 사회상은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범죄 소설, 치정 소설, 그리고 바람직한 인간상의 제시에 공을 들인 도스또옙스키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음울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 인간상들은 모두 그 시대의 반영물들인 셈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탐욕에 찌든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

그는 첫 아내에게도 냉혹한 남편이었고,

세 아들은 모두 다른 집에서 성장해서 모이게 된다.

그 아들들은 드미뜨리처럼 군사학교, 군인의 삶, 열정적이고 욕심으로 가득한 삶과,

이반처럼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반 교회적 지식을 가진 삶과,

신앙심이 깊고 겸손한 조시마 장로의 후계인 알료샤로 집약된다.

부록처럼 따라붙은 스메르쟈꼬프는 범죄 소설을 더욱 치밀하게 만드는 존재로,

표도르의 사생아이다.

 

결국 욕심 끝에는 비극이 따라오게 마련이고,

그 법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러시아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늘 죄는 벌로 갚아지게 된다.

다만, 현실은 소설과 다른 구렁텅이로 미끄러져 들어감을 억제할 수 없지만...

 

근대 과학에 대한 신비감과 찬미가 곳곳에서 보이기도 하고,

이반 같은 사람은 불어, 라틴어로 명제들을 말하는 등

시대의 요소들을 읽을 수 있다.

 

뇌신경들이 뇌수 속에 들어있으니...

뇌신경에는 이런 꼬리들이 달려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 꼬리들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데...(1021)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30년 전에 읽었다.

그때는 줄거리를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상황들과

난삽하고 지루한 주제에 대한 토론들이 지겨웠던 기억이 난다.

열린 책들의 이 책은,

두께에 비하여 지질이 가볍고,

등장인물에 대한 해설 같은 배려들이 책을 즐겁게 읽게 한다.

 

아무튼 이런 천 페이지 이상의 대작을 읽기 시작할 때는,

큰 숨을 한 번 들이 쉰 다음,

긴 호흡으로 읽어가야 한다.

 

드미뜨리를 미쨔, 미쩬까, 미찌까, 미뜨리 등으로 부르는 애칭도 자꾸 읽노라면 정감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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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소래섭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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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2002년 개정된 교과서부터이다.

그 이전 1987년 해금이 되기는 하였지만, 교과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여승'이 교과서에 실렸고,

그의 시집에서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여우난 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등은

읽는 일 만으로도 힐링되게 하는 짜릿한 맛이 있는 시들이다.

 

달콤한 연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백석의 시편들을 읽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달밤에 참지 못하고,

'요기요'를 너무 눌러서 '배달의 민족'임을 확인함으로써,

아랫배가 몽글몽글 볼록하게 나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구수한 음식 내음새와,

추억에 잠긴 어린 시절의 조금은 쌀쌀한 기억과,

조금 쓸쓸하고 외롭고 서늘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그이의 평안도 사투리나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 조차도,

조곤조곤 도란도란 들려주는 시골 할머니 말투 같아서,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

그 낡은 빛깔의 누런 앨범의 한 페이지를 만나는 기쁨같은 것이 그득 밀려든다.

 

요즘 안도현의 평전도 나왔더라마는,

이 책으로도 충분히 백석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평전이 가지기 쉬운

삶의 곁가지들에 대한 묘사에 대한 지루한 고증을 이 책은 과감히 생략해 주신다.

 

물론 그의 여성 편력이 설명되긴 하지만, 그것은 가볍게 터치하는 정도이고,

그의 시들에 대한 아름다운 설명들에 푹 빠져 매료될 법 하다.

 

고야古夜/ 백석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뒤로는 어늬 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두 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끊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경성의 모던 뽀이~의 대표 인사로 잘 생긴 백석.

 

 

 

 오죽하면 수능 언어영역의 사진에 대한 비문학 지문 이미지로 백석을 활용했을라구.

우리 수능 언어팀의 노 팀장님이 백석 팬인 모양이다.

 

이 책은 긴 시간 지루하게 백석을 만나지 않고도,

그의 인생 역정과 그 시대,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딱 맞춤한 책이다.

 

백석의 시를 닮은 식빵이 있다.

빠리바게뜨에 가면 하얗게 기다란 식빵이 있는데,

그 맛은 어떤 자기만의 맛을 주장하지 않는 겸손한 맛인데,

그것이 그 식빵의 매력이다.

그래서 기품이 있어 보이고,

도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어서,

오히려 어떤 차와도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맛이랄까.

뜯어지는 느낌도 아주 부드러워서 폭신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이 빵은 백석의 말로 하자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다.

 

 

 

백석의 시들이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일류의 풍모를 잃지 아니한 한 권의 시집을

그는 실로 한 개의 포탄을 던지는 것처럼 새해 첫머리에 시단에 내던졌다(김기림, 66)

 

이렇게 놀라운 시집이었는데, 그것이 금기로 되었던 시대가 참 아쉬웁다.

그렇지만 뒤늦게나마, 백석의 시를 만나서 이렇게 풍미할 수 있음이 또 다행이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다양한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즐겁고 편안한 세계(79)

 

일제 강점기, 그의 시대는 조화롭지 못하고 냉혹한 시대였기에,

그의 시들이 담고 있는 포근한 동홧속 세계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것이다.

 

하나의 통합된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여우난 곬족'의 '무이징게국'입니다.

국이 끓고 있는 모습은 이 작품에 제시된 모든 장면들에 대한 상징과도 같습니다.

한국 음식 문화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국'은 다양한 재료들이

끓는 물의 열기 속에서 하나로 녹아들어야 맛이 나는 음식입니다.

이 작품의 무이징게국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맛있는 냄새를 풍깁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것은 갖가지 재료들이 하나로 어우려졌다는 것을 알려주지요.

그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인간은 즐겁고 편안해집니다.(87)

 

이 책은 '참고서'보다는 맛갈나게 설명하면서도,

'평전'보다는 간결하고 명쾌하게 백석을 접하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도 맛난 음식 같은데, 아쉽게 아쉽게 이 책을 넘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음식을 즐기는 법이다.

푸지게 많은 음식을 앞에 두면, 질리기 십상.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은 안다

'도스도이에프스키'며 '조이스'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 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 안에 굴러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아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 냥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104, 허준, 부분)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백석 오빠를 위한 시였다니...

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의 시는 슬프지만은 않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

친구 허준에게 바치는 글에서 이런 멋진 구절을 얻는다.

그래. 사람에게는 넋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넋의 소통이지, 몸이나 빵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넋의 소통이 가로막히면, 세상이 다 싫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18)

 

그의 나타샤는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한 같은 거였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148)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인터넷을 검색해 볼 지어다. ㅋ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175, 흰 바람벽이 있어)

 

이런 시어를 마음 속에 궁글리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스산하랴.

그렇지만, 또 그런 시인이 아니었던들,

그 시대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은 또 얼마나 답답해 했으랴.

 

정지용의 시에는 명편이 주는 눈부심이 있어요.

명장이 수려하게 빚어낸 단아하고도 견고한 미학이

근대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경험되어야 할 세계이지요.

그런데 정지용에게 가장 빈곤한 부분이 바로 백석의 득의의 영역입니다.

그게 좀 감각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게 없다는 겁니다.

 

백석의 후기 거의 모든 시편이 명장이 빚은 아름다운 수공예품이라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삶의 진정성을 전해 주는 놀라운 힘이 담겨 있어요.

그게 정치적 삶도

미학적 삶도 아닌,

일상적인 삶까지 다 전해 오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서정주에게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급 텍스트로서 놀라운 대중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유성호, 좌담 중)

 

백석의 시를 어떠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유성호가 정지용을, 서정주를 이렇게 잔뜩 칭찬한 다음에,

그들에게 없는 것들을 가진 백석이라고 비교우위를 설명함으로써,

최상의 칭찬을 바치는 표현 역시 멋지다.

 

이 책은 얇지만, 결코 그 기품까지 얕지는 않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179)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역시 백석을 극찬하는 것은 이런 이유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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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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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 추리 노트' 같은 책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그의 장편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구성과

인간사의 복잡한 단면들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로 흡인력이 있는데 비하면,

여기 등장하는 소설들은

삶의 한 토막들에서 씁쓸하게 느껴지는 비애가 가득 묻어 나온다.

 

범죄 옆에는 복잡 다단한 애증이 서린다.

그래서 간혹은 범죄의 진상을 추측하면서도 굳이 밝히지 않으려는 형사들도 있다.

범인은 악랄한 죄인일 수도 있지만,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나쁠 때도 있다.

 

"나는 보험금이 지불되기를 바라.

일 년 이내의 자살이건 아니건

야지마 가문이 집안의 기둥을 잃은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이건 범죄야."

"롤 위반인지는 몰라.

그렇지만 일 년이라는 수치에 무슨 의미가 있어?"(232)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에서는 빤히 보이는 범인과 범죄라도,

인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끝도 없이 복잡한 것이 삶이 모세혈관임을 보여주는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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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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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상징하고 있다.

일단, 액자.

액자에 들었으므로, 이것은 현실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나의 매트릭스다.

그런데, ㅋㅋ 가장 전경화되어있는 여성의 꼰 다리...

어휴~ 저 꼰 다리를 풀고 가랑이를 벌려보고 싶은 욕망이 든다.

밤과 낮이 구별없는 불야성의 마천루들과 무지개,

그리고 달러들은 바비 인형의 '어서오십시오'와 함께

속된 우리들을 주사위의 6을 기대하는 속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액자 밖의 현실은... 튿어진 베개 하나 주워서 잠시 몸을 눕힌 노숙자.

 

인간으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상처받지 않을 본연의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건만, 그걸 천부인권이라 하거늘,

자본주의 시대 이후,

우리는 자본의 매트릭스에 사로잡힌다.

 

5만원권에 불을 붙이면... 아마 미칠 것이다.

5만원권 몇 장이면, 못 사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여자도 사고, 집도 사고, 행복도 살 것 같이 보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욕망'에 사로잡혀,

미래를 담보로 맡긴 채, 상처받으며 불행하게 살고 있는가...

가면 갈수록 그 자본의 덫은 인간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

그리고 지구촌의 오지까지, 어린 아이의 삶까지 지배하고 있는가...

 

이런 것을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등의 작가와 짐멜, 벤야민, 부르디외 등의 철학가를 엮어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재미없다.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알아먹기 쉬운 말로 대중적 강연으로 풀어낸 것이

'다상담'의 '소비'편이나 그 외의 부분에서 녹아 있다.

몇 년 사이에 강신주의 관점이 많이 대중 곁으로 내려왔다 싶다.

 

짐멜은 기독교의 신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51)

 

며칠 전 본 영화의 한 장면,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주인공이 '끝까지 간다'에서

차지한 것은 바로 금고 속에 가득한 현찰이었던 것.

 

부동산은 어디서 났는지, 그 소유를 이전하기가 쉽지 않다.

허나, 현금은(요즘 5만원권의 3/4이 지하로 숨었다고 한다.) 증여해도 전혀 세금이 없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감사해도 자본주의의 돈처럼 황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욕망은 돈을 버는 데 자신의 시간과 육신을 소모하게 하고,

그 돈을 쓰는 데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인간은 구별짓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지으려는 인간의 허영심과 그것을 이용한 산업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논리가 결합된 현상(99)

 

당신이 어디 사는가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던 재벌 아파트의 광고처럼,

참으로 천박한 저 상징체계 속으로 침잠해도 깊이 침잠해 버린 것이다.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154)

 

바타유의 이 생각은

인간의 에로티시즘, 사랑에 편승하여 온갖 패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다.

무엇을 입느냐의 문제는 '금지'와 결합되어,

얼마나 보여주느냐의 문제로 변하는 것이다.

몸매를 잘 드러내 보여주게 만들고,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런 욕망의 현신이 패션이다.

 

1960년대 알제리의 사회구조와 아비투스를 탐구한 뒤,

부르디외는 자신의 연구 시선을

알제리 입장에서 보면 식민 본국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로 돌립니다.

교육, 예술,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저에 있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전략들을 폭로.(238)

 

아비투스란 문화적으로 물려받게 되는 유산같은 것이다.

귀족 부모에게서 우아한 문화 유산을 이어받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욕을 들으며 크는 그런 것.

식민지와 식민 본국의 아비투스는 자본의 전략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평천하'를 외쳤던 사람들이 나라를 세운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 국부가 이승만이고, 그들은 일제 강점기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아비투스는 민주공화국보다는 귀족의, 가진자들의 권력을 당연시하는 듯 싶다.

그 아비투스의 현현이 문창극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 갔을 때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비투스가 그곳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작동하기 때문.(254)

 

'방드르디'를 통하여 로빈슨이 무인도의 '아무 것도 없음'의 아비투스를 견디지 못하고

온갖 격식을 만들려 함을 들어 설명한다.

반면, 프라이디(방드르디)는 자신의 아비투스에서 로빈슨을 비웃는다.

 

방드르디는 마치 현재라는 순간에 갇힌 인간처럼 보였다.

그가 자본주의와 기독교 원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미래에 이룰 노동의 대가나

기독교가 경고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301)

 

아무리 '카르페 디엠'을 외쳐도, 인간은 이미 미래에 옭죈 죄수와 같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유하, 오징어)

 

오징어가 집어등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 빛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가 처참하게 살육당하듯,

우리도 모오든 광명을 의심하라는 시.

 

다음 시는 더 처절하지 않은가.

제목까지, '체제에 관하여'다.

이 시집 제목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다.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루뭉술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 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살아 있어 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유하, 체제에 관하여)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강신주처럼 똑똑한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멍청한 사람들은,

독자들이 알아먹지도 못할 책을 내는 일을 자랑스레 여긴다.

그래놓고 독자를 욕하고, 인문학적 토양을 욕한다.

 

다행이다.

욕들어도 쌀 독자들을 위하여,

알아먹는 말로 쓰는 강신주가 있어서...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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