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잃고...

"이게 나라냐!"

했는데,

석 달이 지나도록, 확인한 것은,

"이건 나라도 아니다."뿐.

답답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합니다.

참교육 25, 전교조를 지키겠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수많은 목숨들이 희생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들은 절망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동료교사들이, 무고한 시민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희생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배후에 자본의 탐욕이, 부패한 관료와 정치인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스승의 날,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했습니다.

제자들을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며 전국 15천여 명의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후속대책마련이 시급하게 이루어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과 동료교사들의 희생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어둡고 불안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기를 소망하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 다시 분노하였습니다.

사과의 눈물을 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이후 돌변하였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지지부진한 채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성역 없는 조사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지만, 유가족과 국민들의 요구인 특별법 제정은 외면 받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가족의 간절한 염원인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참사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대개조의 자격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는 더욱 참담합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총리 후보가 낙마 하자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 한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켰습니다. 제자 논문을 상습적으로 강탈한 사람을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대선자금 차떼기의 주역인 인물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온갖 편법과 탈법으로 권력과 부를 얻은 사람들을 긁어모아 국가대개조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개혁의 대상자들이 국민을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꼴입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공식선언이며, 국민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행동입니다. 반성과 성찰은 부재와 독선과 오기만 가득합니다. 이런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이들의 미래를 맡기기에 너무나 위험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만이 더 이상의 제자들과 동료들을 잃지 않는 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는 국민들을 불행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들의 안전이 중시되고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6/4 지방 선거가 끝나자마자, 송전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려는 밀양 할머니들의 농성장을 짓밟았습니다.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구속영장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의료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교육영리화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해고자의 조합원 인정 여부는 노동조합에 맡기라는 ILO, EI, OECD 등 수많은 국제기구들과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았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국정 기조가 강화되면서 양육강식의 야만성이 확산되고 사회적 약자의 삶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교육감 선거를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전교조 법외노조화로 인해 참교육 25, 정성들여 쌓아 올린 학교혁신, 교육민주화, 무상교육 등의 소중한 성과들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합니다.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는 반교육적 학교 모습이 도래할까 두렵습니다.

우리는 지난 교육감 선거를 통해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주라는 국민 염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국민 염원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성장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되찾을 수 있도록 헌신할 것입니다. 경쟁과 서열 중심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참교육 전교조를 굳건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전교조를 지키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새로운 교육염원을 앞당기는 길입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우리 제자들과 동료교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2014. 7. 2

 

 

세월호 참사 제 2차 교사선언 참가자 일동

(김정훈 외 1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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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여행> 서평단 모집!
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여행 - 왜 하기 하마는 아프리카 대륙을 홀로 떠돌게 되었을까?
시슬리 반 스트라텐 지음, 이경아 그림, 유정화 옮김 / 파랑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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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아기하마 후베르타가 1600 킬로미터를 떠돈 기록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주의 :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닙니다~

요 그림들은 이경아의 그림이 이뻐서,

자그마한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평화롭게 놀던 아기 하마...

어느 날 인간의 총에 희생된 엄마 하마와 떨어져 홀로 길을 가게 된다.

 

 

 

길은 멀고 멀고, 힘들기만 한데,

인간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을 내보인다.

바야흐로 동물원에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가두던 때라, 그는 위기에 여러 번 부딪힌다.

 

 

 

 

 

 

 

슬프게도 총을 맞고 죽게 되는 아기 하마 후베르타...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책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삶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숱한 위기와 오해도 살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어느새 이 거대한 동물은

감금 생활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헤매는

아프리카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었다.(184)

 

 

 

이렇게 아기 하마의 장정은 사람들에게 감명 깊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금빛처럼 환한 미소가 얼굴에 번져 있었다.

유순한 지성을 빛내던 갈색 두 눈은 묵묵히 닫혀 있었다.

외로운 방랑자, 강의 위대한 자가 떠났다.(194)

 

환경은 보호하거나 보존, 보전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그 속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공존해야 할 것이다.

혼자서 쓸쓸하니 길을 걸었을 후베르타를 생각하면... 먼 공간, 시간을 떨어진 나조차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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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발칙한 생각들 - 이야기로 만나는 창의성의 비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공규택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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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기준으로 남의 생각을 자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치가 금연운동에 앞장서서 흡연자를 죄악시했다고 한다.

물론 흡연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그렇다면 담배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할일 아닐까?

 

우리는 너무도 주어진 환경에 ???를 던지지 못하고 살아왔다.

왜 학교를 꼭 다녀야 하나?

대학을 졸업해야만 하나?

텔레비전 수신료를 꼭 내야만 하나?(광고 다 하면서 말이다.)

데모하면 왜 경찰에게 잡혀가야 하나?

 

아직도 이런 발칙한 생각들에는 온갖 법적, 물리적 제재가 가해지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인권을 중시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어선지,

이런 책이 반갑고,

또 뜨악하다.

뜨악한 것은... 교육 현실과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능 문제를 반복학습 하는 길은 전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살인적 경쟁일 따름이고,

필요없는 영어 학습에, 원어민 교사 충당에 혈세가 낭비되는 일도 무의미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싹에 물을 주는 일이다.

그것은 혁신학교로도 되지 않고, 토론수업으로도 되지 않는다.

한방에 되는 '쾌도난마'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 떨어뜨린 한 알의 밀알이 밀밭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 교정 인간'은 잘못된 언어 사용을 용인하지 않으며,

문법과 표준어,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에 집착하는 사람을 말한다.

표준어와 맞춤법 등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나 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 만든 규정인데,

과잉 교정 인간은 이를 융통성 없고 엄격하게 적용하여 살아 있는 말과 글을 교정하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자칫 다채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언어의 생동감을 훼손시킬 수 있다.

언어는 틀에 박힌 제약이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서 생명력이 증대된다.(ebs N제, 국어영역, 31)

 

한국에는 '과잉 교정'이 너무 많지 않나 싶다.

그것이 '독재'의 이름이든, '개조'의 이름이든, 자유와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면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창의성'은 위대한 것보다는 '기발한 것'에 가깝다.(6)

 

아이들에게 일률적인 성적의 성취를 요구할 것이 아니다.

수행과제를 통하여, 운동을 잘 하는 아이도,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도,

또 책을 읽고 발표를 잘 하고,

친구를 잘 배려하는 아이도 모두 '창의적'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공간이 학교라면 얼마나 좋을까?

 

'the great Getsby'를 '위대한 개츠비'로만 읽는다면,

사실 그 소설을 읽었을 때, 개츠비는 지질한 인간에 가깝고, 사기꾼 놀음에 가깝지, '위대한'에 가깝지는 않다.

물론 그의 사랑은 조금 'That's great.' 하고 말해줄 만 하지만,

그의 파티 같은 것을 '위대한'이라고 보기에는 좀 우습다.

개츠비란 이름 역시... [수입을 살아가다]는 자본주의적 명명임을 생각하면,

그레이트...란 것이 단순히 '위대한'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반어적'인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굉장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맞나 찾아보니, 외화번역가 '이미도'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 'great'의 세 가지 뜻~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domiho&logNo=80208599111

 

단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는 교육은... 해악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 속에서,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각의 전환을 통하여, 돈을 번 사람들,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가득 나온다.

 

집단 지성의 힘을 믿은 위키디피아... 백과사전에 대하여,

'피라니아의 힘'을 믿은 이야기도 재미있다.

특히 '집단 사고'의 폐해와 비교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비판해야 할 지점을 짚어주고 있어서 좋았다.

 

돈이 없던 서머셋 모옴이, 자신의 책을 광고한 쪽지.

 

마음 착하고 훌륭한 여성을 찾습니다.

저는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고 성격이 비교적 온화한 젊은 백만장자입니다.

제가 바라는 여성은 최근에 나온 서머셋 모옴이 쓴 소설 주인공과 모든 점에서 닮은 여성입니다.

자신이 서머셋 모옴이 쓴 소설의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즉시 연락해 주십시오.(162)

 

희대의 성공적 광고였다고 한다.

 

나무 레고로 성공한 집안에서,

플라스틱 레고를 만들려고 하자 반대에 부딪힌다.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196)

 

작은 것이지만, 출발은 미약하더라도, 나중에는 창대해 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과학이기도 하고, 사회학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철학적 기반과 바탕이 무엇일는지

나는 남은 15년의 교직 생활에서 고민하고자 한다.

썩은 밀알이 싹을 틔울지 어쩔지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 말이다.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칭칭 얽매여 있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관점을 바꾸면 세계는 좀 더 유연한 것이 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232)

 

한자로 '보다'는 뜻에는 '볼 시, 볼 견, 볼 관, 살필 찰'등이 있다.

'시점, 시야' 등에 쓰이는 視는 외과적으로 안구에 비치는 것이다.

'견본, 견문' 등에 쓰이는 見은 상업적으로, 피상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관점, 참관' 등에 쓰이는 觀은 자신의 주체적 해석을 거친 생각이 함께하는 것이다.

'관찰, 시찰' 등에 쓰이는 察은 무엇인가 시사하는 바를 배우기 위해서 곰곰히 살펴보는 것이다.

 

창의적 관점, 창의성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피상적으로 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반복, 또 반복하여 고찰'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 낸다.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뉴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

 

아인슈타인 역시 상대성 원리를 어떻게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까."(똑똑한 식스팩, 61)

 

'세렌디피티'란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거저 오지 않는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몰입이 필수적이다.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현실이 암울하여 도대체 삶을 지속해야할지 묻는 이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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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논어
주대환 지음 / 나무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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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과 좌익(좌파)가 통하게 된 것은 러시아 혁명에서 백군과 적군의 대립이 최근 대립쌍이겠지만,

한국에서 흔히 '좌빨'이라는 이름으로 좌파를 욕되게 하는 자들을 본다면,

빨강과 좌익이 아직도 이렇게 찰싹 들러붙어서 '낙인'처럼 보이는 곳은 드물지 싶다.

 

좌파는 강한 진보를 추구하고, 구체제를 수호하려는 수구 세력과 대립한다.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고, 기존의 이론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돈 지키기'만을 목표로 하는 당파가 '빨간' 옷을 입고 나온 것을 보면, 웃겨도 한참 웃긴다.

아마, 민주당이 빨간 옷을 입었더라면... 글쎄, 벌써 여럿 죽어 나갔을 것이다.

 

이 책은 표지가 과하게 붉다.(그런데 염료가 과다한 것인지, 화학 염료 냄새 때문에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내용은 그다지 붉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다만, 저자가 오랜 기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일선에 섰던 사람이라,

'붕우'를 '시민 단체' 같이 바라보는 시선일 따름이다.

 

과오를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을 과오라고 한다.(47)

 

논어는 워낙 난삽한 책이어서,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논어에서 가장 핵심적인 한 마디는, '일이관지'다.

일관된 사상을 가지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인과 군자, 지자와 요자 등 많은 대립항을 상대적으로 설정하는데,

그 차이는, 소인은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세 가치,

자유, 평등, 연대 중에서 연대의 정신을 동아시아 사회에 접목할 역사적 백미로서 인을 재발견해야 한다.(90)

 

어차피 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관찰하고 사색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라.(일이관지)(132)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지만,

'각개 약진'만이 남아있는 무한 경쟁을 극복하고 '연대'의 가치를 발견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이것 없이는 미래가 없다.

 

이 책의 가치라면, 작가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로 논어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논어를 공부하려면, 이 책보다 나은 책이 많을 것이다.

다만, 논어를 그저 옛날 사람들의 옳은 소리라고 일방적으로 들어라~ 한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니, 이렇게 자신의 뜻에 터하여 일이관지하는 자세를 보는 일이 중요하겠다.

 

 

온고이지신, 술이부작...

이런 말로 유명한 책이 논어이다.

옛것을 기초로 새로운 것의 지식을 넓히고,

다만 서술할 뿐, 새로 만들 것은 없는 것이 '지식의 세계'라는 것이 논어의 전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 교육감이 된 사람들이 좀 너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한 가운데서, 학교의 중심이 '승진'이나 '행정'이 아닌 '교육'과 '사람'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

혁신 학교... 같은 걸 난 원래 믿지 않는다.

혁신은... 효율성을 위해 인간성을 버릴 때나 쓰는 말이 아니던가?

 

개혁하여 새로이 만들기보다는,

아무리 구태의연하여도 한국 교육의 장점들을 잘 살리고,

바꿔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지목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대학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는 이 나라의 교육개혁은 모래성이고,

국비로 월급을 다 주는 사립학교를 공립화 하지 않고서는 끊임없이 부조리의 온상이 될 일이니 말이다.

학교 몇 개 혁신 시켜봤자,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 따름이다.

 

공자가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 안회는 '불천노 불이과'라고 하였다.

노여움을 옮기지 아니하고, 허물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206)

 

속된 인간들은 자신의 노여움을 남에게 푼다.

허물을 또 저지르고 반복한다.

공부하는 인간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명'이라는 말은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북한은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이지만, 김씨 왕조이고,

남한은 민주 공화국이라지만, '아직도 이조 오백년은 끝나지 않았다(신동엽, 종로 5가)'

 

이 책을 읽다 보면, 고전을 읽는 느낌과 함께,

글쓴이의 생각을 논어와 함께 풀어내는 부분도 많다.

고전이란 무릇, 자신의 생각을 풀어낼 때,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옛 것으로 서술하는 일이라는 의도와 잘 맞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노라면, 분노한다.

왜 매일 똥통의 구더기처럼 굼실거리는 것들이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지,

이 땅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부패한 곳인지... '곧지 못한' 곳인지... 돌아보게 해서 그렇다.

 

교언영색이 선의인이라.(220)

 

말을 교묘하게 꾸며서 하는 자는 어진 자가 드물다.

 

요즘들어... 논어의 이런 말이 은근히 비판하는 것은 '노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말을 '교묘하게 하는 이'로는 노자만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상선약수라...

우리가 사소하게 얕잡아 보는 것을 일컬어 '물로 보냐?'고 하는데,

그 흔한 물을 불러 '가장 좋은 것'이라 불렀으니 그 말의 교묘함은 비할 데가 없다.

 

그래서, 지자요수요 인자요산이라...

지자는 물을 좋아하지만,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이렇게 은근히 노자의 사상을 에둘러 '지자'에 머물린 것이나 아닐는지...

 

아니면 말고~ ㅋ

 

자 절사러니,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이다.

선생님은 네 가지를 끊으셨다.

뭔가 하려는 뜻이 없고, 반드시 어떠해야한다는 마음이 없고,

고집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셨다.(243)

 

이런 부분은 어쩌면 후대에 종교적 관념과 결부지어,

금강경의 '공관'과 관련된 부분일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논어를 학습하기에 좋은 책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풀이하는데 논어를 이렇게 엮어 넣으려면,

상당한 식견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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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밝은 달빛이 유감한 까닭에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정재림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이태준은 문학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그 이름을 기억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백석이나 정지용처럼 해금 이후에도 쉽게 읽히지 않았던 작가였을 것이고,

그의 소설들이 가지는 '인물에 대한 몰입' 내지는 '비극적 삶의 표출'이 보여주는 묘사의 힘은,

보통 스토리의 힘이 가지는 '전달'과 '소문'에 밀리게 마련이어서다.

 

소설이라고 하면, '사랑 손님과 어머니'나 '소나기'처럼 핑크색 멜로물도 오래 남고,

'상록수'나 '삼대'처럼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작품들은 장편이라도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런데 이태준의 소설들은 최근들어 겨우 '달밤', '돌다리', '복덕방' 같은 것들이 교과서에 부분적으로 인용되다 보니,

일반인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이름이었지 싶다.

 

나 역시 그의 소설 중, '까마귀'처럼 음산한 판타지 소설류를 읽었더랬고,

이런저런 책들에서 '밤길'같은 가장 비참한 소설들을 읽어왔다.

이태준에 대한 감상은 단편적이었다.

그런데, 이책을 읽고 보니, 이태준에 대하여 상당한 아우트라인을 잡게 되었다.

 

비평가 김환태는 이태준 소설이 '눈물'과 기쁨' 혹은 '페이소스(동정과 연민의 감정)와 '유머'를 수반한다고 평가.

최재서도 그의 단편을 한 번 읽은 사람이면 그 작품의 인물들을 잊지 못한다.

인물 자체로 보면 하잘것없는 존재들이지만, 읽고 난 뒤에 언제까지나 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야릇한 매력을 가졌다고 칭찬.(87)

 

이태준의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황수건에 대한 애정으로 흠뻑 젖어 흐드러진,

이 작품집의 표제가 될 만큼, '밝은 달빛이 유감한 까닭에'  술에 젖어 맑지 못한 목청으로...

사게와 나미다까 다메이키까... (술은 눈물이냐 한숨이냐)를 읊조리는 황수건 이야기 '달밤'이 탁월하다.

 

멋모르고 읽었다가는, 이게 뭔 소설임? 이럴 수 있으나, 이태준의 소설의 맛을 느끼게 되면, 그 맛의 졸깃함을 잊기 어렵다.

그의 '문장 강화'가 추구하는 바 역시 인물의 창조이니, 그의 소설은 역시 '인물'이다.

 

근대화가 된다는 건 황수건과 같은 인물이 더 이상 활개를 펴고 다니지 못하는 세상이 되는 걸 의미해요.

예전에는 어느 동네에 가든 황수건과 같은 '동네 바보 형'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근대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률과 효율이고,

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바보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지게 된 거죠.(102)

 

이런 설명을 듣고 보면, 더 서글퍼 진다.

마치 황수건의 서글픈 눈물 젖은 한숨같은 노랫가락이 술에 젖어 들려오기라도 할 듯이...

 

글은 개성.

자기만의 표현, 꼼꼼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어야.

날벌레 떼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하나.(정지용, '비'에서 빗방울을 묘사한 부분)

 

문장강화에서 가장 강조한 말은 '개성'이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기의 한반도는 개성을 살리기에는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시공간이었다.

 

카프 비평가는 이태준을 2% 부족한 소설가라고 평가한다.

계급적 각성이 부족하여,

삶의 부조리가 사회 구조적 모순임을 밝히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태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냥, '경칠...'하면서 짜증을 낼 뿐이었다.

사실, 이 땅의 민중들은 아직도 그러고 살지 않는가?

 

근대와 전통을 조화시키는 상고주의를 지향했거든요.

또한 일제 주도 근대화에 저항하기 위해 상고주의를 이야기했다는 점도 중요하죠.(159)

 

공산주의 사상이 휩쓸던 시대에도,

그는 전통이 없다면 어찌 존재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인물이다.

그이 '돌다리'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그러나 '패강랭', '먼지', '해방 전후' 등의 소설에서는 현실적으로 이태준이 설 공간이 거의 없음이 드러난다.

결국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의 존재는 잊혀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옳다구 인정되는 편에 꽉 밀착하시란 말이야요.

지금 시대가 어떻게 급격한 회전인지 아세요?

어름어름허구 떠도시다간 날려버리고 마십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못 되시나마 역사의 먼지는 되지 마세요.(213, '먼지' 중에서)

 

과연 이태준은 먼지가 되고 말았는가?

아니면 그의 나름의 작품 세계에서 인물의 창작과 맛깔스런 문장의 창조에 한편 기여했음을 인정해야 하는가?

김현.김윤식의 '한국문학사'와

이남호의 '이태준 단편소설 연구'를 인용하면서 그 평가를 객관에게 맡긴다.

 

이태준은 봉건주의적 풍속과 악랄한 식민지 수탈 정책이라는 이중의 중하를 감당한 폐쇄사회외서

그곳을 극복하려는 아무런 의지도 내보이지 못한 패배주의적인 인물을 즐겨 그린 작가.

그의 딜레탕티즘(예술, 학문을 취미, 여가로 하는 방식)은 개인의 안위와 골동에 대한 기호의 소산이며,

지조나 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선비 기질과 판연히 다르다...

그의 인물들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시니시즘(냉소주의)으로,

인생에 대해서는 아이러니(반어와 모순)로,

대인 관계는 페이소스(동정과 연민)로 대처해 나간다.

그들은 발전하는 역사를 믿지 않은 것이다.(김현, 김윤식)

 

그의 퇴영적 골동 취미는 비극적 현실을 확인하고 증거하는 감수성이요,

효과적인 소설적 방편이다.

직접적인 고발이나 반항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암울한 1930년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일제 통치의 야만성을 들추어내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상실하였는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옛것에 매달리는 것은 훌륭한 전략일 수 있다.(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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