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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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나라는 꼬마가
발레학교에가서
유망주로 인정을 받고
또는 좌절을하는 과정을 그리는 만화

예술은 결국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유명해지지만
그와 무관한 세게에서
진심전력하여 절차탁마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는 것

이런 여술가들의 고뇌를
크로키의 세계,
또는 굵고 가는 선들의 어울림으로 그려낸
수준높은 만화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의 공감을 부를 만한 훌륭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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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14-12-07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스티앙 비베스는 표현력이 정말 참신하고 좋아요 ㅎㅎ

글샘 2014-12-09 22:59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 저는 잘 모르던 작가인데, 이 책을 보니 선이 예술이더라구요.

새아의서재 2014-12-07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림체 함보고싶네요..한 컷 사진으로 올려주심 안되나요? 여기 외국이라 책을 구하기가어려워용.

글샘 2014-12-09 22:59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읽어서... 아래 다른 사람 리뷰 보시면 됩니다. ^^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 운명에 대한 과학적 논리석 해석
이영돈 지음 / 동아일보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점치고자 한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주, 궁합, 관상, 굿에 대한 신뢰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검증하려 한다.

 

논리적 타당성이란,

전체가 성립한다면, 그 부분에 속하는 것은 성립한다는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가 타당성이 있으려면,

어떤 사주쟁이에게 물어도 유사한 답이 나와야 한다.

 

정말 사주로 운명을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도 알고 있다.

역술가들은 사주가 70% 정도의 운명을 예측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운명이 꼭 사주대로 가지는 않는다.

후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수 또한 사주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 사실은 자신의 사주대로 운명이 진행된다.(74)

 

실험을 위해 가짜 사주쟁이를 투입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이라기보다는,

불신을 키울 수 있는 실험이어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궁합은 왜 보는 겁니까?

 

일종의 참고서라고 보면 됩니다.

궁합이 좋게 나오면 좋은가보다 하고 서로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궁합이 나쁘게 나오면 서로 더 조심하고 노력하는 거죠.(105)

 

결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부부의 궁합을 보았더니,

비슷하게 예측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답을 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몇 건의 사례 조사로 '논리'적인 해석을 내렸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궁합이나 사주를 이렇게 바라보라는 관점은 한편 도움이 된다.

 

일기예보에서 내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한다.

당신은 우산을 들고 나가겠는가, 아니면 출근을 포기하겠는가?

선택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믿고 견지하느냐, 재미로 보고 넘어가느냐를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논리'적인 해법을 찾는 사람이 제시할 답은 아닌 것 같다.

논리적 타당성을 따져서, 이것은 옳다, 합리적이다, 어느 정도 옳다... 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제목에서 '논리'를 적용한 것은 무리다.

 

그저, <그것이 알고 싶다> 수준이 좋았지 싶다.

 

관상서에는

'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주보다는 관상이, 관상보다는 심상이 우위다'라는 말도 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의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는 반면,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얼굴은 반대의 느낌을 준다.

결국 관상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아닐까.(166)

 

어떤 화가가 '예수 모델'로 선한 이를 그리고,

나중에 '유다 모델'을 찾으러 다니다 적합한 이를 찾았더니, 갸가 바로 예수 모델이었단 이야기도 있다.

사는대로 얼굴에 인상이 드리워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한편 옳고 한편 옳지 않다.

 

영어권의 [i] 발음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이는 발음인 반면,

한국어의 발음은 입이 별로 움직이지 않고 소리난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이 사진찍을 때 '치~~이즈'하면 웃는 입이 되지만,

한국인은 '김~~치이~~'해도 입이 뚱하게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한국인들도 그렇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누군가가 있으면 서로 낯을 돌리는 것이 낫다.

환하게 웃으면서, '좋은 아침' 운운했다가는, 오버하는 치한으로 오해받기도 할 것이다.

문화에 따라 관상도 달라질 것이니,

동안 열풍이 부는 요즘, 철부지 부모들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군대까지 쫓아가는 엄마들]

이런 기사를 보면, 마냥 한심해할 노릇도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라는 말도 있지만,

가짜 약도 믿으면 좋은 효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적절한 처방이나 약도 정작 환자 본인이 믿지 않고 의구심을 가지면 악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다.(207)

 

주역 공부를 하고, 사주명리학이나 관상을 공부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점쟁이가 로또를 맞히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그런 것이 '논리적'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생로병사의 인생 행로에,

고통뿐인 사람이라고 힘겨워한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인생의 골목길에는 자그마한 정거장에 핀 들꽃도 있게 마련이고,

험난한 산 구비구비마다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전망도 있게 마련이다.

 

등산이 힘들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자는 없다.

아무리 등산로에 대하여 지도를 통해, 블로그를 통해 공부한다고 해도 등산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주를 보고, 관상이나 점을 보고, 굿을 해도,

인생은 '고(苦)'인 것은 변치 않는 진리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사는 것인지...,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와 미리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

맺히게 두지 말고 푸는 지혜...

이런 것들을 두루 생각하게 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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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소설은 미국이라는 나라만큼이나 역사가 짧다.

그래서 미국 소설을 읽으면, 아무래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 대표작이 '위대한 개츠비'나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 비극같은 심금을 울리는 운명의 장난도 없고,

세익스피어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도 없고,

오랜 시간 검증된 '리얼리즘의 승리'도 없다.

 

그런데, 세계문학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듯,

미국의 팽창기를 틈나고 문학의 목록에 그득하게 들어앉아 있다.

그 저변에는 '노벨상'이라든지 '출판의 힘'이 뒷받침되어 있었을 것이고,

한국의 '문학 선집' 편집 위원의 많은 수가,

김동리를 위시한 '반공주의 문학'의 기수들로 독재시대에 편찬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창기에는 청소년들에게 읽혀서는 안 되는 소설이었다가,

이즈음에는 필독서로 꼽힌다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작품은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과 시기를 같이한다.

소위 '냉전의 시대' 산물인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덮던 갑갑하던 시대.

 

 

주인공 홀든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유명 사립학교에서 퇴학당하기를 밥먹듯하는 '반항아'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여기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밥맛'이다.

 

스펜서 선생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그냥 코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사실은 엄지손가락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20)

 

선생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말하고 있을 때는 남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21)

 

 

 

그렇지만, 그 꼰대들은 아주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는 홀든.

 

훌륭하다니. 난 정말로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그건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20)

 

'멋지다'라니. 내가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멋지다는 말이다.

너무 가식적인 말이기 때문이다.(144)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은 앤톨리니 선생에게서 극도로 표현된다.

 

갑자기 난 눈을 떴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뭔가 귀두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손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난 정말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런데 내 귀두를 만지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선생은 어둠 속에서 긴 의자 옆에서 바닥에 앉은 채로 내 귀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하고 계세요?"

"별일 아니야. 그냥 여기 앉아서, 감탄하고 있었지..."(253)

 

늘 입으로는 도덕, 정의를 외치는 어른들의 속내는 이렇듯 추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홀든이 묵은 호텔의 맞은편 창으로 비치던 어른들의 우스운 몸짓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247)

 

이렇게 그럴듯하게 말했던 선생님이,

갈 데가 없어서 찾아온 아이를 성추행하는 현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의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230)

 

 

이 구절은 자못 감동스럽다.

현실에서는 부적응하는 반항아가, 꿈으로 가진 것이 평화로운 세상의 지킴이라니...

그런데, 내가 삐딱하게 읽어 그런가,

홀든의 이 꿈에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의 모습이 비친다.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위험한 <악의 축>을 지키려는 평화의 사도 '미쿡'

슈퍼맨처럼, 배트맨처럼, 스파이더맨처럼, 지구를 구할 것인지...

 

지금 피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칼라에 코끼리 무늬가 새겨진 파란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 애는 동물 중에서 코끼리를 가장 좋아했다.(217)

 

호이트씨(택시 기사), 센트럴 파크에 있는 연못을 지나가 본 적이 있으세요?

센트럴 파크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연못이요.

아주 작은 연못이 있어요.

오리들이 살고 있는 곳 말이에요.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오리 말이에요.

누군가 트럭을 몰고 와서 오리들을 싣고 가버리는 건지,

아니면 남쪽이나 어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건지 말이에요.(113)

 

피비를 묘사할 때,

또는 홀든이 오리를 떠올릴 때,

이 소설은 멈칫, 순수를 동경하고 지향하는 듯 하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그토록 잔인했던 영화 '친구'에서

그 폭력배, 살인자들의 어린 시절,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나?"

하면서 순수를 그리던 송도 앞바다의 묘사가 드리우는 씁쓸함을 떠올리게 된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 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 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278)

 

메리-고-라운다... 회전 목마는

신흥 부국 미국의 허상을 상징하는 번득이는 빈공간이 아닌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았다.

샐린저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은 채 2010년 죽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사후 70년인가 지켜야 하니, 내가 생전에 이 영화를 보기는 글렀다. ㅋ

 

이 소설이 '고전'이라고 무작정 집어들고 읽었다가는 낭패보기 쉽다.

여느 고전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로 가득 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은 부모라면, 이 책을 자식에게 권해도 좋을까? 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존 레넌의 암살범이 이 책을 읽고 있더라는 유명한 일화와 함께,

이 책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영화도 숱하며,

전세계에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유명한 책.

 

이 책을 읽고는 싶으나,

아무래도... 몇 페이지 안 넘겨서 눈이 빙빙 도는 독자라면,

이유를 모르고 종영된 아쉬운 방송, ebs 고전읽기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http://home.ebs.co.kr/humanandclassic/replay/3/view?courseId=BP0PHPK0000000050&stepId=01BP0PHPK0000000050&prodId=10316&pageNo=50&lectId=10147195&lectNm=&bsktPchsYn=&prodDetlId=&oderProdClsCd=&prodFig=&vod=A&oderProdDetlCls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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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2-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저는 하루키의 소설속에 언급되었기 때문에
호밀밭의 파수꾼과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요
그게..참...이런게 고전인가? 그런가? 하는 의문만 잔뜩 생겼었어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아서 제가 잘 읽을줄 몰라 그런가보다 했었네요....

글샘 2014-12-03 11:18   좋아요 0 | URL
호밀밭과 개츠비는... 워낙 `고전` 목록에서 많이 봤지요.
주어지는 것이 모두 고전이 아닌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독서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 읽는 사람이 맨날 그러죠. `논어` 속에는 길이 있다고. ㅋㅋ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게이고의 초기작이라고 한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상당히 두터운 복선을 깔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흥미 위주의 미스터리 풀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인생에서 '숙명'은 어떻게든 엮이고 풀리게 마련...이라는 삶의 미스터리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때부터 인간의 두뇌와 조작에 대한 관심도 드러난다.

 

기업은 인간의 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걸 무시하면서 성장해가는 거죠.

의사는 필사적으로 기업의 뒤처리를 하고 있고요.

불도저가 짓이긴 모종을 한 그루 한 그루 다시 심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나 할까요?(27)

 

처음부터 이 이야기에서는 '끈'이 등장한다.

미사코의 끈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를 궁금해하며 읽게되는데,

뜻밖의 끈을 만나면서 대단원을 맺는다.

 

우류가의 나오아키가 죽으면서 '아키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기는데,

마칠때까지 그 부탁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상상을 불허한다.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없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내가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

단순히 가정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남편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134)

 

미사코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읽으면,

무언가 남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데,

그 의심의 눈길이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한 쪽으로 독자를 끌게 된다.

이런 것 역시 트릭이고 재미다.

 

그렇지만, 이런 속에서 결혼 생활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역할도 담고 있다.

부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단순히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머무는 집이 얼마나 많을지...

 

내 인생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조종되고 있어요.(196)

 

삶에 이런 비밀을 간직하고 산다는 일은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또 인생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 인간은 그 '끈'에 관심을 갖기 쉽다.

삶은 숱한 끈의 연결 고리들로 엮이는 것인데,

과연 그 연결 고리들을 다 안다면 또 얼마나 싱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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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옛 문헌을 옛 사람들의 발자국에 비유한 장자의 주장을 매우 좋아한다.

발자국은 신발은 아니고 발은 더더욱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자의 가장 큰 매력은 시대를 초월한 유연성에 있다.

나는 그의 발자국을 더듬어 따라가면서 장자라는

지금 살아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사상가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를 부활시켜 그의 맥박소리를 듣고, 그와 함께 논쟁을 벌이고,

그에게 갈채를 보내고, 또 그와 얼싸안고 춤을 추고자 했다.

장자와 함께 춤을 추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후기)

 

이 책의 제목은 '쾌활한 장자'이다.

중국어의 쾌활~은 '즐거운, 유쾌한'이란 뜻이니까,

    快活 [kuàihuo] [형용사] 즐겁다. 유쾌하다.

한국어의 쾌활( : 명랑하고 활발하다.)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천지는 만물의 여관,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이백, 춘야연도리원서)

 

이런 이백의 시와,

장자의 '지북유' 편과,

스메타나의 교향시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를 같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학자들의 덕을 보는 셈이다.

 

숲이나 들판에서 노니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뒤따라온다.

슬픔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것을 우리는 막을 수가 없고,

그것드링 떠나는 것도 붙잡을 수 없다.

슬프도다. 세상 사람들이란 외물이 임시로 머므르는 여관일 뿐.(560)

 

이 얼마나 자유로운 숲과 초원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들이 노래하고

새들이 춤을 추네

소녀여, 무엇을 고민하고 슬퍼하는가?(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중)

 

노자가 하나의 뛰어난 '정치사상'이라면,

장자는 '양생'을 위한 삶의 지침이 되는 우화집이라 볼 수 있다.

노자를 읽을 때는 항상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이라는 입장에서 읽으면 이해가 쉽고,

장자를 읽을 때는 '삶에 끄달려 사는 일반 인간 존재는~' 이라는 입장에서 읽으면 좋다.

 

노자가 세상을 구하는 데 주력했다면

장자는 개인을 구하는 데 치중했다.

이것이 노장의 차이점이다. 다시말해,

노자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상쟁과 잔꾀, 모함 등을 대신할 수 있는 무위이치라는

가장 높은 경지의 철학 사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제왕들에게 기여한 반면,

장자는 선비들에게 소요와 제물을 동경하고 세속을 떠나 홀로 노닐며

진인과 지인의 경지에 올라 무핞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97)

 

이전이라면, 제왕보다는 선비쪽인 우리는 장자를 읽는 게 좋겠으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민이 곧 주권자이므로 노자의 뜻도 공부할 수밖에...

 

세상은 참으로 고단하다.

외부적으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임을 느끼고는,

변혁 세력조차도 앞장서서 제자식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승자로 만들려 든다.

 

갈수록 혼란이 깊어진다.

대통령 선거의 부정을 뛰어넘는 '정윤회' 어쩌고 뉴스는 참 어둡다.

역사 발전은 방향이 있는가, 인간 세상은 진보하는가, 악은 서서히 약해지는가...

이런 의문에 힘이 빠진다.

 

지금처럼 국경이 반듯하게 나눠진 시대도 그럼에랴,

중국의 고대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혼란기에 나왔던 책이니 읽을수록 뜻이 깊다.

왕멍이 풀어주는 말도 많은 부분은 군더더기지만, 그래도 부분부분 수긍하며 보게 된다.

 

장자의 '허주'를 이야기하면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들먹이는 창의성을 읽을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저번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화를 내는 것은

저번에는 빈배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441)

 

공산당 선언도 무산계급이 혁명을 통해 '잃는 것은 쇠사슬이며 얻는 것은 전 세계다'라는 말로 맺었다.

반갑고 기쁘다.(441)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 잘못 이해되어 전해오기도 한다.

강신주판 해석에 따르면 '조삼모사'역시 그러한데,

이 책에서는 '태약목계'를 든다.

 

태약목계만 하더라도 장자의 본래 뜻과는 달리 우스꽝스럽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은 이 성어가 괜스레 놀라 두려워하고 바보처럼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본래 '목계'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속이 깊고 침착하며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413)

 

공수는 손을 움직이면 그림쇠와 곱자를 씌운 듯 딱 맞았다.(420)

 

이런 구절에 덧붙인 말은 멋지다.

 

좋은 신발은 발의 느낌을 생각할 필요가 없고,

몸이 건강하면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는 법이다.(421)

 

자연스럽게...는 '양생'의 근본인데,

자칫 잘못하면, 구차하게 살면서도 오래만 살고 싶다는 속물처럼 들리기 쉽다.

하지만, 구차하다고 여긴다면, 웰빙이 아닌 것이다.

좋은 신발이 발의 느낌을 잊게 하듯,

좋은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하는 듯 싶다.

날이갈수록, 열심히 열성을 다한다기보다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생은 양을 치는 것과 같아서,

뒤처지는 놈을 보고 채찍질을 한다.(400)

 

사람들은 가장 앞에 서있는 양에게만 시선을 빼앗긴다.

앞에서 달려가는 양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기쁨에 도취되어버리면,

뒤에 있는 양에게 채찍질하는 것을 잊기 쉽다.(401)

 

외편은 내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조곤조곤 전하지는 않는다.

좀 뻣뻣한 언어로 첨언을 덧붙인 느낌이랄까.

거기에 다시 곁다리를 설명하는 책이 이 책이다.

그렇지만, 외편만을 읽는 것보다는 이처럼 '내편'과 연관성을 짚어가면서,

현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우리에게 고전을 훨씬 친근하게 다가서게 한다.

 

성인의 말씀을 읽고 있다고 하니 윤편이라는 목수가 '옛사람의 찌꺼기'를 읽고 있다고 비평한 이야기가 있다.

 

장자는 우리가 지혜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문자-책-지식-의의-지혜'의 순서로 이어지는 가정이,

반드시 성립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형페와 색깔, 이름, 소리를 가지고 있는 문자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의미와 지식, 지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장자는 2300년 전에 이미 이런 심오한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색했던 것이다.(228)

 

그렇다.

장자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현대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론이 현실에서 멀어지고 도덕과 이익이 별개가 되면

세상은 점점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장자는 적어도 자신의 관점에서 이미 유학의 설교가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경고했던 것이다.(23)

 

이렇게 장자의 위치를 명쾌하게 짚어주는 책도 드물다.

이 책은 '외편'이라는 딱딱한 어려움.

또, 내편에 대한 첨언에 대한 해설서인 격이므로 큰 재미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이렇게 제자리에서 소소한 재미를 주는 책을 쓰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찌꺼기 언어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지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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