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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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참 성의없다... 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 가니, 앞으로 '읽다'와 '말하다'를 더 펴낼 생각이라나.

 

부제는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로 달았다.

이렇게 영어를 쓸 때는, 적어도 그렇게 쓴 이유를 토를 달아 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영하라는 소설을 소비하는 계층은 지식인 상위 몇 %의 독자들이 아니라 대중이라고 본다면,

이 책 역시 대중에게 보여주는 '통찰, 외부사물에 대한 관찰'의 힘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한

우리말을 진지하게 찾아봐주는 역할을 해 주었어야... 번역도 하신다는 이의 글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공감하는 한편, 뭔가 찜찜한 불편함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그것은... 그가 <본다>고 한 대상이 주로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었고,

그렇게 세상을 보고 있는데 그 세상은 보편적인 인간 세상이기도 하고,

대책없이 질주하는 자본의 대한민국 세상이기도 한데,

왜, 그의 <보다> 속에는 이토록 현실 감각이 덜할까...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던 것인데,

이것 역시 에필로그에서 '천안함, 세월호, 용산'등을 외국에서 바라보았다고... 변명을 했다.

 

'힐링 캠프'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가라면...

이 시점에서 <보다>인 대상이 '영화'보다 더 리얼한 '현실'이었다면... 하고 바라는 것은,

삐딱하게 박힌 내 시선 때문이라 치자.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라는 네루다의 시구가 적힌 ...

그 어린아이는 영원히 우리 안에 있다.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모든 비극과 희극이 여기에서 시작된다.(81)

 

김영하를 보고 있노라면... <아웃사이트(관찰력 정도인 듯 한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보다는 <아웃사이더>가 아닌가 싶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시니컬한 시선을 작품으로 엮어내는...

하루키의 아류라는 생각이...

성장하는 어린아이가 아닌... 성장이 멈춰버린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는...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영화는 어쩐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모스크바행 기차처럼 무지막지하게 달려온다.(131)

 

톨스토이에게 '기차'라는 근대 문물의 상징은 조선의 이광수에게도 이어진다.

김영하가 영화제의 도시 부산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산문집'이란 명목으로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이런 책을 내는 데 대하여

그러면서 영화를 소재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엮어대는 글솜씨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심히 시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이 부족한 책이란 생각이 무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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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생...

우리나이로 55세면, 이제 한창 저술에 물이 올랐을 나이인데,

그이야 워낙 활발한 저작 활동으로 이미 숱한 책들을 펴냈으니 그게 위안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대학이나 교수들의 풍토는,

저작, 저술 활동은 연구 실적에 들어가지도 않는 모양이다.

자기들만의 끼리끼리 연구 논문 같은 것에 열을 올린다.

 

야매 학자 남경태는 동서양의 역사를 종횡무진 질주한다.

다행이다.

남경태가 대학에서 진을 빼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쉽다.

한창 나이에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진 아침...

건강 검진을 하면서 아쉽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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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4-12-2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컴온타스 2017-06-0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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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은 대숲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잠들어 숲은 고요했다.

새들이 가지를 떠날 때 빛은 흔들렸고,

새들이 가지에 머물 때 빛은 깊고 편안했다.

우륵은 숲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오동나무 널판에서 이슬이 스러지고 있었다.

널판은 비와 이슬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말라갔다.

이슬은 널판을 미끄러져 내리다가 나뭇결을 따라 맺혀 있었다.

우륵은 망치로 널판을 두들겼다.

가장자리로부터 가운데 쪽으로 두들겼고,

나뭇결을 따라서 두들겼다.

나무의 안쪽에서 소리는 젖어 있었다.

소리는 재료에 들러붙어서, 재료를 뚫고 나오지 못했다.

소리는 재료의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92-92)

 

김훈의 문체는 담백하고 화사한 건조체이다.

그는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묘사하면서 상황을 보여주고,

몇몇 단어들의 대조를 통하여 속내를 드러낸다.

이 책은 '소리'를 언어로 잡아내려는 노래인데,

그 속에는 삶의 소리보다는 죽음의 소리가 더 흔하게 겹쳐진다.

전쟁터의 죽음도, 임금의 죽음과 순장자들의 죽음도... 모두 소리로 승화된다.

 

우륵의 가야금이 내는 소리를

나무의 안쪽으로부터 살려내는 솜씨가 김훈답다.

 

방 안의 울음소리는 가팔랐고 마당의 울음소리는 느렸다.

방 안의 울음이 잦아들면 마당의 울음이 일어섰다.(100)

 

임금의 죽음이 울리는 울음도, 이렇게 묘사되면서 현장감이 살아난다.

 

야로는 온도의 오묘함을 생각했다.

불의 온도는 몸을 찌르고,

물의 온도는 몸에 스몄다.

장적이 타는 열기가 쇠를 녹이고 물을 덥혔다.

불이 세상을 녹이고 날을 세우고,

날을 또 무너뜨려, 불이 세상을 가지런히 하는 것인가...

불과 물과 쇠의 틈바구니에서 야로의 피로는 깊고 황홀했다.(117)

 

대장장이 야로의 경험을 통하여

불과 물과 쇠의 이야기를 적었다.

경험은 어떤 세상이든 한 세상을 가지런히 하는 역할을 한다.

 

굵은 더덕뿌리가 우러난 술은 몸속에서 낮게 깔리면서 퍼졌다.

깊은 산 바위틈에서 가뭄을 견디어낸 더덕 뿌리는 오히려 물의 성정이 깊어서,

술은 크게 굽이치는 강과 같았다.

술이 사람의 몸을 찌르지 않고 먼곳을 돌아서 다가왔는데,

유역이 넓어서 깊고 느리게 스몄고, 그 취기는 들뜨지 않았다.

여자들의 비릿하고 물컹거리는 속살을 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속살들은 늘 깊이를 알 수 없이 모호했고 정처없이 보였다.

야로는 몸속에서 크게 굽이치고 낮게 깔리는 더덕술의 흐름과 무게를 좋아했다.(122)

 

더덕과 물과 강과 술과... 여자...

비교가 될성싶지 않은 것들이 얽혀서 깊이와 무게를 그린다.

그 언어의 결이 깊다.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소리는 덧없다.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153)

 

악기란 소리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소리는 숨소리를 따라 길게 울리기도 하고,

현의 울림에 따라 인간의 손을 떠나기도 하고,

쇠가죽이나 징의 울림이 길게 길게 여운을 남기며 조금씩조금씩 스러진다.

 

소리는 널판의 빈 통 속을 돌면서 흐르다가 밖으로 퍼져나왔다.

통이 소리를 누르지 않았고,

소리가 통 속을 돌면서 퍼졌다.

우륵의 눈에, 소리는 통 속의 나뭇결을 따라서 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소리는 나무의 소리이기는 하지만, 빈 것을 지나온 소리였다.

빈 통이 단단한 나무의 소리를 펴서 둥글게 돌려내고 있었다.

-- 니문아, 봐라, 비어야 울리는구나. 소리란 본래 빈 것이다.

비어있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있는 것이다.(217)

 

이 구절을 읽으면,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떠오른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던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들이 모두 무언가를 결핍한 것으로 등장하다가,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서 허수아비가 뇌를 원했지만 지혜로웠음을, 양철나무꾼은 심장을 원했지만 다정다감함을,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원했지만 친구를 위해 용감한 행동을 보여주었음을 알려 주는 스토리이듯,

인간이 없음이라고 느끼는 거기서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일깨움이 '소리'이기도 하다.

 

악기와 소리는 인간 사는 세상의 당파와는 무관하다.

가야의 악사들이 신라로 넘어가 살게 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요즘 세상 혼란한 정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니문아, 이제 신라 왕 앞에서 춤을 추고 소리를 내야 하는 모양이다.

죽은 가야 왕의 무덤에서 춤을 추는 것과 산 신라 왕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다르겠느냐?

아마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소리는 스스로 울리는 것입니다.

이제 신라가 가야를 토멸한다 해도 그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냐?

소리는 왕의 것이 아니니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287)

 

김훈이 '소리'에 집중한 것도 이런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소리는 스스로 울리는 것이고,

소리는 어떤 국가나 단체에 소속된 것이 아니듯,

인간의 삶 역시 스스로 태어나 살게되는 것이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듯...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하여 '너희들'을 억압하는 법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인간의 삶은 '우리 편'과 '너희들' 어느 쪽에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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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요다 2014-12-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님의 문체 정말 좋지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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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쿄에서 독신으로 살던 소노코가 사체로 발견된다.

오빠인 야스마사는 자살이 아닌 살인으로 정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범인을 잡으려고 추적을 시작하지만,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여 야스마사의 추리와 쌍벽을 겨룬다.

 

이 소설의 재미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당신이 범인이야' 하고는... 실제 범인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뭥미?

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별도의 '봉인 해설'이 붙어있을 정도로 황당한 결말이다.

 

일반적인 독자의 기대는

범인을 밝혀낸 오빠 야스마사에 의하여

범인은 응분의 처벌을 받고,

씁쓸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가가 교이치로가 오빠를 압송하는...

그야말로 김전일 식 결말을 추리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인 셈이다.

 

야스마사와 가가는 범인을 밝혔는데,

도대체 왜 독자에게 속시원하게,

가요코나 츠쿠다의 둘 중 어느 쪽인지를 밝히지 않는 것인지...

추리 소설의 한 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좀 심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 사람쯤은 있지 않았을까?"

"그게 없었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우리 누이동생이 인간관계에는 서투른 편이었어.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게 더 성격에 맞았던 모양이야."(102)

 

시끌벅적 시답잖은 이야기나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게 더 좋은 나는 이런 대목에서 뜨끔~하다. ^^

그러나 뭐 어떠랴~

사람 사는 일에 정답이나 비교적 정답은 없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고민을 털어놓기보다는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지갑을 열어야 할 나이가 되면,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게 행복한 날들도 많다.

 

그나저나... 눈이 책을 거부하는 나이가 천천히 와야 할 터인데...

바늘에 실을 꿰기 어렵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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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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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범죄 스릴러는 아니다.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다.

 

첫 장면... 쓰루가 다카시는 평행 진행하는 지하철 노선에서 묘령의 아가씨를 바라본다.

다음 장면... 다카시의 절친 도모히코가 여친을 데리고 온다. 당연히... ㅋㅋ 그 묘령이 아가씨다. 그 이름은 쓰노 마유코.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는 '이건 뭐하자는 시츄에이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한 설정이 나온다.

마유코는 다카시와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두 세상의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버추얼 리얼리티'(가상 현실)인가...

 

인간의 '기억'은 어디까지가 올바른 것일까?

쉽사리 결론내리기 힘든 것을 작가는 파헤치고 든다.

 

슬프고, 괴롭고, 혐오스러운 경험 때문에 쌓인 마음의 아픔을

모두 잊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오히려 인간은 그런 마음의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467)

 

'애도'라는 말을 이런저런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살아 남은 자를 위하여 잊는 일을 애도라 하는 이도 있으나,

살아 남아 슬픔을 안고 사는 것이 애도라는 이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다.

 

기억을 개편하여 손쉽게 잊도록 하는 기술이 생긴다 하더라도,

인간은 갈림길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의 모습인지 모른다.

 

히가시노게이고의 <변신>, <분신>, <패럴렐월드~>를 '나 삼부작'이라 칭하기도 한다.

'나'를 테마로 한 소설들이라 한다.

 

'변신'은 뇌 이식수술 받은 후 성격에 큰 변화가 생겼다 여기는 주인공이 풀어가는 수수께끼이고,

'분신'은 가족과 함께 자살하려 했던 어머니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궤적을 조사하던 주인공이 자신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제인간이라는 명제를 추궁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의 추리물 못지않게 '나에 대한 탐색', '어디까지가 나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책들인듯 싶어

히가시노게이고에 대한 여행을 계속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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