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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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야하다고? 좋은 생각이나 샘터, 탈무드 같은 책인데...(허지웅)

 

뭐가 그 책들 같냐면... 페이지 수가 아마 그렇지 싶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그 본류를 관통하지 못하고,

토막토막 짠한 인간사를 담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면 그럴지 모르겠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는 농담 한줌이라는 걸,

별 볼일 없는 무대 위의 별 볼 일 없는 만담가가 내뱉은 그저 그런 콩트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다.(17)

 

그건 그러하다.

삶이라는 거, 세상이라는 게 참 시시껄렁 시답잖은 거야...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걸 깨닫게 해주고자, 이런 책을 쓰고,

그것도 심지어 하드 커버에... 종이도 무지 두껍다.

나무에게 많이 미안해 하지 않을까?

 

연애든 섹스든 결국 신라면 같은 겁니다.

신라면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찌됐든 요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감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34)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관계가 변하는 건 늘 너 때문이다.

내가 라면이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징징대기 전에

스스로 라면처럼 굴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48)

 

어찌됐든 스스로를 저열한 자라 선언할지언정 언제나 솔직했다.

그렇다 갑수씨는 내가 만나본 모든 치들 가운데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순되고 일그러진 세상의 풍경 앞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것만큼이나,

윤리를 내세워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았다.

더러움 안에 뛰어들어 함께 몸을 더럽히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강직함이었다.

때로는 위악처럼 보일 정도로 과감한 것이었다.(129)

 

소설인 듯 소설아닌 듯한 책을 읽노라면... 스스로 이 책을 왜 쓰고 있는지를 골똘히 궁구하는 작가가 보인다.

인간은 참 찌질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찌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치열함은 더 찌질하다.

작가는 스스로 그 찌질함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면서, 그것을 강직함이라고, 과감함이라고 밝힌다.

 

작가의 '사정'이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데, 독자에게 감동으로 어필하기보다,

그렇게 읽어 달라고 '사정'하는 듯도 보인다.

 

우리가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 보았자

인생에 대해 뭘알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되지요.(167)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볼모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니면오직 저뿐이라며 세상만사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과거만이 오직 숭고하고 고단했다는 자신감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진심에 취해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조금은 덜 까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171,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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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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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백세시대라고 한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겪어야 할 노화와 죽음의 과정 또한 더 길어진다는 뜻이다.

빛이 비치면 반드시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이 성찰하고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며

이 초고령 사회가 장차 어떠할 것인지,

그리고 장차 어떠해야 할 것인지,

신속하고 심도있는 전 사회적 차원의 성찰과 설계에 나서야 한다.(249)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들이 제대로 판단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된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부모가 각각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아이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거기가 '도와주십시오~'하는 앵벌이 작전까지... 언제나 노인들이 동정을 사게 생긴 짓을 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노인이 많아진다.

나라가 팍팍해지면서 아이를 낳는 속도는 세계 1위일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는데,

노인의 죽음은 역시 가파르게 유예되는 나라다.

 

노인의 삶도 고찰의 대상이지만,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고찰 역시,

단순한 '요양보호' 차원을 넘어,

노인이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죽어갈 자유를 고려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소설가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한 사건의 과정을 통하여 통찰하고 고찰한 '늙음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또한 담겨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시간이라고 추상적으로 답한다.

내가 시간이라고 말한 것은 희망이 없다는 뜻이었다.

희망이 없는 시간은 고통스럽다.(224)

 

죽음에 대하여 '종교, 과학'의 입장에서 바라본 책들은 추상적이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의 얼굴에 대하여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삶의 가장 기본 조건인 먹고, 소대변을 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노인을 쉽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유기하면 그 이후는 또 얼마나 무료한 비극이 이어지는지...

그리하여 작가는 스스로부친의 임종까지 1254일을 함께한다.

잘게 다지고 으깨서 먹고, 소변줄을 꽂고, 관장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요양보호 현실까지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의대 학생들에게 간병 실습 과목을 반드시 그리고 아주 엄격하게 이수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환자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해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 그의 수족이 되어주어야 하는 자리에 서보면,

사람이 아프다는 게 무엇인지, 아픈자를 치유하는 게 무엇인지 훨씬 더 잘 보게 될 것이다.(193)

 

실현 가능성이 쉬워보이지는 않은 제안이지만,

정말 필요한 제안이 아닐까?

약을 먹이고, 수술을 하는 것은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처방이지만,

누구나 늙고 자연사를 향해 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모든 사람'이 비껴갈 수 없는 일이므로,

의사가 정말 정통해야 할 한 가지가 이것 아닌가 싶다.

 

요양 등급은 일 년마다 갱신되었다.

아버지는 3등급을 두 번 받고 그 다음에 2등급을 받았다...

내 판단으로 보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1등급에 해당되는 환자였다.(170)

 

현실은 이렇게 굼벵이고 달팽이다.

 

나에게 영감을 준 쇼펜하우어를 인용하자면,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은 점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강력한 렌즈로 확대하여 엄청나게 큰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111)

 

죽음에 대하여도 그렇고, 삶에 대하여도 우리는 지나치게 과장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인이 아니어도 아픈 사람 곁에 밀착해 있으면 마치 이슬비에 옷이 젖듯 그 환자의 고통이 간병인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그거 피할 수는 없다.

반면 환자에게는 병든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는 바로 그 사실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85)

 

간병도 의료인도 힘든 지점이 이곳이다.

아픈 사람 곁에만 있어도 힘들다.

감정 노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어려운 일이어서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려움과 보람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붙어다니므로, 삶은 늘 생각하게 마련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현대화한 병원은 대개 진료 과목별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서

의사들은 오로지 자기 분야에만 신경쓴다.

아버지처럼 심신이 전체적으로 망가져가는 노인 환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통합적인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67)

 

내가 의학적 전문성이 없을 뿐, 24시간 관찰한 바를 전달했는데도,

그들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버지에게 정신과적 관심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앞만 볼 수 있도록 눈 양옆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꼴이었다.(61)

 

배뇨곤란의 경우라서 비뇨기과에만 다닌 환자인데,

겪어 보니 정신과적 요소인 섬망이 심해서 주변사람 역시 고통을 겪었던 경험을 적고 있다.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노인 환자들의 경우, 광범위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함은 당연지사이다.

한두 과목의 진료로 치료를 운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노인 전문 병원이나 간호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적고 있는데, 역시 소설가라 읽기 수월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착각하고 있다.

살 만큼 산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27)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것도 힘들다.(26)

 

유명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참 열심히도 살아왔지만, 사는 게 참 힘들었음니데이~~하던...

 

그래.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시설과 계획과 교육과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의료인이나 나이들어가는 이들, 간병하는 이들 모두에게 큰 시사를 주고 위안을 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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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2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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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2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4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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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박노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새벽'을 썼고,

사노맹을 결성한 죄목으로... 뭐, 이런 건 '국가보안법'으로 ㅋ 사형 선고, 무기징역을 살다가,

7년여만에 풀려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박노해.

 

그가 계속 '노동 현장'을 돌면서 르포를 쓴다거나,

노동 문제를 제기하는 눈엣가시처럼 산다면... 삶이 참 팍팍할 것이다.

다시금 '국가보안법'의 유신 시대가 돌아왔으니, 공안 통치의 와중에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다른 나라의 길들을 걷는다.

그 길들에서 길어올린 생각의 두레박들이 제법 깊어서 읽을 만 하다.

 

버마의 아이들은 일생에 한 번, 단기 출가를 한다.

출가 축제인 '신쀼의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던 아이들은,

사원에 들어오는 순간 가사 한 벌, 밥그릇 하나, 빈 몸만 남는다.

이른 아침 맨발의 스님들이 찬 이슬을 밟으며 밥동냥을 나간다.

일곱 집을 돌아도 밥그릇이 차지 않으면 가만히 돌아와

이렇게 모자란 밥을 씹으며 가난한 민중의 배고픔을 함께 느낀다.

세계 최장기 군부 독재 속에 버마 불교의 고위층은 타락했어도

이 가난한 절집의 어린 출가승들의 맑은 뱃속에서 울려 나오는

독송은 성성하고, 눈빛은 푸르기만 하다.(233)

 

이 책 말고 화보집이 있는데, 그 책은 무려 10만원이다.

이 책도 컬러 화보지도 아닌데, 값은 19,500원이다.  배부른 책이다.

 

장소에는 고유한 시간의 흐름과 무드가 존재한다.

장소가 바뀌면 시간의 기운도 무드도 바뀐다.

인디아의 전통 마을 입구에는 침묵의 성소가 있다.

외부이 다른 시간으로 넘어오는 '시간의 문턱'이다.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마음의 옷깃을 여미면서

새로운 만남과 세계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이 신성한 '시간의 문턱'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어디서나 대체 가능한 획일적 존재로 쓸려가고 만다.(289)

 

지구상 가장 빠른 LTE 속도를 자랑하는 땅에서,

지하철에서 다들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나라에서,

시간의 문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낯설다.

과연 우리의 문턱은 '시간'에 관한 것일까?

더 위험한 것은...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문턱을 점점 높이는 나라에 사는 것이나 아닌지... 두렵다.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못지 않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지요.

모든 것은 물결처럼 사라지겠지만

사랑은 남아 가슴으로 이어져 흐르겠지요.(222)

 

가난하지만 날마다 물 위의 밭인 '쭌묘'에서 재배하는 꽃 한 송이를

부처님께 바칠 줄 아는 마음 가진 이들...

 

 

 

농촌은 망해버린 나라에서

다른길을 걷는 그는 느림의 미학을 애써 예찬한다.

이제 그야말로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유신의 시대가 창궐하여,

전태일의 후예들이 크레인 위에서, 굴뚝 위에서 목숨건 고공 농성을 펼치는 땅에서 떠나...

 

 

씨앗이 할 일은 단 두 가지다.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고 지켜내는 것.

자신의 대지에 파묻혀 썩어내리는 것.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는 것.

진정한 자신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

 

그대, 씨앗만은 팔지마라.(194)

 

 

다 좋은 말인데...

젊은 시절 그가 그렸던 '노동자의 신새벽'이나 '새벽 시린 가슴 위로 쓴 소주를 붓는' 마음,

동료의 '손 무덤'을 안쓰러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켜보던 글의 힘에 비하면,

씨앗이 훨 힘이 덜하다.

 

대지에 파묻힌 힘을 일어버리고, 다른 길로 떠도는... 부평초같은 느낌이랄까...

 

 

 

 

 

 

 

 

 

 고산족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이 중심 자리엔

한 생을 마친 오백년 된 고목이 솟아 있는데

그 머리에는 다음 생을 이어갈 종자 싹이 트고 있다.

짐승들이 종자를 먹어치울까봐 그리했겠지만 내겐

희망의 싹을 모시는 종묘사직의 성소처럼 느껴진다.(168)

그의사진을 보면서 쌍용자동차 굴뚝이 오버랩되는 건...

오늘 바람이 유독 추워서 그랬을까...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떠올라서였을까...

 

나라와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는 없지요.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음'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찌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90)

 

힘없는 민중을 그렇게라도 스스로 위안을 얻어야 할 노릇일지도 모르지만,

깨어있지 못한 민중들 위에서 독재자들은 떵떵거리고 배불리는 나라를 다니면서,

낭만적인 시선으로 렌즈를 들이대는 일은, 글쎄... 역시 다른 길인가?

왜 이런 글을 읽으면,

"아부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이것이 주된 메시지인데도,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충성'하는 국민이 되자는 말을 하는 위정자가 떠오르는 건지...

 

이 의자는 아이가 처음 말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이 목마는 아이가 첫걸음마 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오늘은 대나무를 갂아 새장을 만들어 줄 거예요.

아빠가 아이에게 주었던 것은'시간의 선물'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먼 훗날 한숨지으며 내 살아온 동안을 돌아볼 때

'아,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으로 함께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그의 인생이 아니겠는가.(68)

 

'오래된 미래, 라다크'가 감동을 준 이후, 라다크 사람들은 돈독이 올라 닳아 빠졌더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자본의 세상은 인간에게서 '시간'과 추억을 앗아가 버렸다.

아니, 몸소 선뜻 나서서 시간과 추억을 자본의 속도에 팔아넘긴 것은 인간의 편이다.

어쩌면 그의 시선이... 퇴행의 시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미 다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마을에 가서,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그 장면을 애써 찾아내는...

그 장면들을 담아온 장면들은 다시 '십만원' 짜리 자본으로 변화하는 세상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야 어디서나 흐뭇하지만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은 특별히 감동이다.

네덜란드, 일본의 350년 식민지 나라.

그들은 저항운동의 싹부터 말리고자

초등학교부터 아예 운동장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62)

 

쓰나미가 휩쓸고간 아체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는 일들은 애잔하다.

 

박노해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참 예술감이 뛰어난 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을 요리하는 솜씨도 뛰어나고, 순간을 포착하는 힘과 이야기를 엮는 힘이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의 '다른 길'이...

류시화나 한비야 류의 여행담이 가지고 있는 한계처럼... 낭만적 시선에 머무른다면...

그저 '다른 길'을 갈 따름이지... '대안'을 가진 '다른 길'로서의 힘은 얻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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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01-0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해라면 뭔가 너머의 더 나은것을 보여줄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다가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던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건 무리지 않을까 하다가....
하여튼 딱히 뭐라고 집어서 얘기하기가 힘든 그런 감정입니다.

글샘 2015-01-07 09:0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열심히 살았던 그였으니...
사고가 깊어진 만큼 더 간절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찍고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 투덜댄 거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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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집'은 사랑하지만 '선집'은 별로로 친다.

'전집'은 이미 작고한 이의 모든 작품을 가치있는 유산으로 여긴다는 관점이 서린 '예찬'의 마음이 담긴 오마주라면,

'선집'은 상업적으로 팔기 위하여 대중적인 작품들을 골라 가려 실었다는 관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그리운 부석사 중, 111)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137)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풍경 달다, 140)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수선화에게 중, 141)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폐사지처럼 산다 중, 225)

 

눈이 깊어지면서 좀 현실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1부의 '서울의 예수'와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꺼움은

언어 속으로 헤설프게 풀어져 들어가 형상이 약해진다.

 

그동안 나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사치를 부려왔다

내 뒷모습에 가끔 함박눈이 내리고

세한도의 소나무가 서있고

그 소나무에 흰 눈꽃이 피기를 기다려왔으나

내 뒷모습에도 그믐달같은 슬픈 얼굴이 있었다.(뒷모습 중, 227)

 

나이가 드는 만큼,

체온은 식게 마련이다.

서늘함을 느끼는 만큼,

세상을 향한 뜨거움도 눅게 마련.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눈부처 전문)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으나 이런 시처럼,

삶의 지향을 오롯이 드러내는 시들이 그의 작품들을 어루만진다.

 

시를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결국, 상업적인 책-선집-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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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주제탐구세미나
주경철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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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자전'이라는 전형이 있다.

자유전공...이라는 것인데,

서울대 법대도 없는 현실에서, 법학대학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려는 곳이다.

그렇지만, 자유전공...이라는 취지에 맞춰 여러 가지 리서치 주제를 주고 탐구하도록 한다는 의도는 좋으나...

글쎄. 이제 갓 스물이 된 새내기들,

그것도 대부분 공부에만 이골이 난 아이들에게 '사랑'은 과분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책은 세 분야에서 사랑을 탐구한다.

물론, 더 많은 부문에서 탐구할 수 있으리라만,

주경철이라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서양의 사랑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정재승이라는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사랑은 신체와 어떻게 호응하는 것인지를,

박지현이라는 '중국문학자'이 입장에서 사랑이 중국 문학에서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실제 강의에서는 서로 넘나드는 대화 담론이 펼쳐질 수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세 분야의 의견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어서 좀 아쉽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육욕에 따른 사랑은 실로 사악한 것이다. (54)

 

아직도 일부 보수적 단체들이 학생들에게 '순결교육'이란 것을 시키고 다니기도 하는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자들의 행태같기도 하다.

 

짧은 역사적 고찰 끝에,

우리는 단정적 답을 얻기는커녕 더많은 수수께끼를 떠안았다.

역사상 언제나 청춘남녀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부모, 공동체, 교회, 국가와 끝없이 갈들을 겪었고,

고된 싸움 끝에 새로운 시대를 맞아도

이전의 문제들이 풀린만큼 다시 새로운 문제들이 터져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뿐.(95)

 

결국 사랑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 가는 속성을 가진 것임을 인식하는 정도가 역사적인 고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과학적인 측면의 호르몬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읽는 일도 재미있다.

 

섹시하고 도발적 눈빛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의 동공을 넓혀라.

르네상스 시대 이미 동공이 크면 섹시해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아가씨들이 동공확대를 위해 안약을 넣었다.

이 안약은 아트로핀 제제를 주성분으로,

아트로핀은 원래 동공을 키우고 심장박동을 가속하고 입술을 마르게 하고 손을 가볍게 떨게 한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졌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약의 이름도 의미심장. 벨라 도나. 이태리어로... 아름다운 부인...(110)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 상태.(135)

 

사랑은 질투 역시 유발하는데,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입 속의 검은 잎)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롭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롭고,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롭고,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봐 괴롭고,

또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 괴롭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147)

 

칠레의 로프라도 시에서는 노인들에게 '비아그라'를 공짜로 나눠준다.

시장은 '삶의 질 향상에 활발한 성생활이 필수'라는 취지로 노인 1,500명에게 한달 4정 발기부전 치료제를 받게 했다.(172)

 

이렇게 사랑과 육체적 현상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중국 문학은 '시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경은 대부분 사랑노래이다.

요즘 인기 영화 '국제 시장'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이라고 읽는 덜떨어진 이도 있는 모양이다만,

시경의 주제는 '개인적 연정'과 '공동체적 유대' 등이 주제이다.

 

중국 문학에서 섹스의 욕망이 미학적으로 탐구되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는데,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다.

 

전국시대 말 초나라의 송옥이 지은 <고당부>에서 '운우지정'이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초 양왕이 멀리 고당의 누대를 보고 '운기'의 변화무쌍을 궁금히 여겨 묻는다.

구름이 일어날 때의 모습은 어떠한가?

처음 나올 때는 무성하기가 곧게 뻗어 있는 소나무 같습니다.

조금 지나면 밝아지는데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소매를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 사모하는 이를 바라보는 듯 하고,

홀연 모습을 바꾸는데 빠른 기세가 네 마리 말을 몰아 오색의 깃발을 세우는 듯 하고,

시원하기가 바람 부는 듯 소슬하기가 비가 오는 듯하다가,

바람이 그치고 비가 개면 구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197)

 

이런 것이 남녀간의 육체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운우지정'의 비유다.

 

금병매와 홍루몽 등의 소설등을 살피면서 욕망과 '마음'을 살펴 본다.

 

욕망은 변화의 주범이 아니다.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내 안에 변함이 없다.

욕망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일정하고 균일하다.

오히려 변화의 주범은 이 욕망을 어떻게 발현할까를 결정하는 내 안의 '마음'이다.(261)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

중국 문학을 탐구한 결과,

사랑의 본질은 욕망과 관련이 깊지만,

핵심에는 내 마음의 변화가 욕망의 갈길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사랑에서 '욕망'은 그것이 '성적'인 것이든, '관계'적인 것이든, 본질적이다.

그렇지만, 그 욕망의 흐름을 잘 콘트롤 할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기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소중하다면, 욕망을 잘 제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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