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3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 아고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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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5년.

잠에서 깬 주인공에게 '당신은 지금 2128년에 살아있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준다면...

과연 어떤 변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글쎄.

지금 이 시대는 자본의 힘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이며,

자본의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던 시대에서 이미 변곡점을 지나,

점차 그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세계적으로 보나 국가내에서 보나 점점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어,

100년 뒤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폭발의 징후를 보인다.

그 폭발은 2001년 9.11의 폭발일 수도 있고,

2010년의 3.11 폭발일 수도 있다.

요즘 IS 같은 이슬람 폭도들의 '인질 장사'는 그 폭발의 산발적 장면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벨러미의 이 책은 미래를 상상하는 책들의 효시가 되었다는 책이다.

부분부분 '사회주의'에 대한 공상적 환상을 가득 담고 있으며,

과학 부문에서도 '컴퓨터'나 '신용카드' 세상을 점치고 있다.

마치 1908년의 '강철 군화'가 미래 사회를 '형제 인류애 시대'라고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

잭 런던의 강철 군화에 비하면 20년 이른 연대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이 더 강렬했을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세상의 부는 거의 전부 개인의 사치에 쏟아 부은 모양이더군요.

지금은 반대로 잉여 재산은 모든 사람이 같이 누리는 도시 정비에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39)

 

생산성이 수천 배는 늘어났을 현대 역시 '부'는 개인의 사치에 쏟아 부어진다.

모든 사람이 같이 누리는 도시 정비는... 글쎄, 관심 밖이다.

 

평범한 일반 시민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으니

사실 '자본 주도'라 불러야 하는데도 '민간 주도'라 부륻ㄴ 방식이 성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서민 개인이 얼마나 더 직접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을 통제하는지...(171)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많은 부를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려던,

그래서 '공상 사회주의자'들로 분류되던 사람들도 있었던 시대.

루카치가 그랬던가.

 

이 빛나는 창공(蒼空)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地圖)를 읽을 수 있던 시대(時代)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대통령은 의학과 교육 기능에 아무 관련이 없고 이 분야는 독자적인 평의회가 통제...(178)

 

의학과 교육은 인간을 다루는 곳이어서,

어떤 이권도 개입될 수 없다는 신성한 구역을 설정한 듯 하다.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내세우는 것 역시 그러하다.

쿠바나 독일이나... 생산력 차이는 나지만, 의학과 교육을 모두 경쟁의 도구로 삼을만큼 잔인한 곳은, 곧 지옥이다.

 

한국에서 교육의 최고 지향은 의학과로 가는 것이다. 참 비극적이다.

 

우리는 모두 제대할 날을 처음으로 타고난 권리를 즐기게 되는 때.

처음으로 진정한 성인이 되어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나 인생의 수업료를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기로 고대합니다.(181)

 

45세에 정년을 하고,

이제 비로소 인생을 즐기게 된다는 미래상은 환상적이다.

 

선생이 살던 때의 범죄는 95퍼센트가 개인이 겪는 불평등으로부터 비롯되었지요.

가난한 자들은 궁핍 때문에 유혹을 받았고,

부유한 자들은 더 큰 이익을 얻거나 이미 가진 이익을 지키려는 욕망 때문에 유혹을 받았어요.(186)

 

범죄 없는 미래 사회.

곧 불평등의 심화는 범죄 사회로 이행될 것임을 상정할 수 있다.

범죄 없는 사회에 살고 싶다면,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키를 틀어야 한다.

 

자본은 본래 겁이 많다.(221)

 

빈곤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가용 자본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자본을 집에 묶어 두고, 현금만을 노리는 월세의 기승 등을 생각하면,

집 사는 데나 은행권에서 대출을 해주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사회의 미래는 절벽이다.

 

존재할 수 있는 정당 중 가장 애국적인 이 당은,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를 진정한 아버지, 그저 국민이 자기를 위해 죽기를 기대하는 우상이 아니라

국민을 살게 하는 아버지의 나라로 만들어서 애국심을 정당하게 학

또 단순한 본능에서 합리적인 헌신으로 끌어 올렸습니다.(234)

 

어찌 보면, 내셔널리즘... 곧 나치즘의 긍정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현실의 제국주의 분쟁에서 벗어난 유토피아적 국가이므로,

그런 잔인한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진보를 믿던 시대의 지식인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이 좁은 땅에서도 이권을 앞에 두고 이전투구를 일삼는 정치가들을 바라보면서 그저 구역질이나 하고 있고,

서민들은 월급을 빼앗기고, 담배에, 소주에, 자동차에 세금을 늘려나가는 현실에 개탄할 뿐이고,

어떻게든 내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좀더 나은 경쟁력으로 내몰기 위해 초등, 아니 유딩부터 고통을 주는 시스템에 적응시키려는

<계발 서적들>을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망상에 빠지게 만드는 곳.

 

우리가 꿈꿔야 할 미래는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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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언진 책을 읽지 않은 것들...

 

 

 

 

 

 

 

 

 

 

 

 

 

 

2. 과학하고 앉아있네

 

 

 

 

 

 

 

 

 

 

 

 

 

 

3. 이상국, 미인별곡

 

 

 

 

 

 

 

 

 

 

 

 

 

 

 

4. 어느 중국 책벌레의... 고양이의 서재

 

 

 

 

 

 

 

 

 

 

 

 

 

5. 역사 라디오 : 조선 1

 

 

 

 

 

 

 

 

 

 

 

 

 

 

6. 남덕현, 슬픔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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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한입 - 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
박찬일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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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글을 읽노라면... 질투가 느껴진다.

 

시기 :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

질투 : ①자기()가 사랑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거나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거나 하여 미움을 느끼고 분()하게 여기는 것. 강샘 ②잘나거나 앞선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

 

시기는 일방적으로 샘이 나는 감정인 반면,

질투는 삼자간의 감정에 가깝다. 두 번째 의미로 치자면 시기나 비슷한 의미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같은 요리사 입장이라면 잘 되는 그를 보면서 내 능력에 비해 '시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나는 다른 업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글재주까지 가진 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좀더 복잡한 것이겠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뜨거운 한입―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blog.changbi.com)에 ‘박찬일의 영혼의 주방’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라고 소개되어있듯, 연재된 글들이다.

 

그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단초는 '재료'다.

홍합, 쌀, 간, 메밀, 달걀, 대구, 비계, 아귀, 콩나물, 토마토, 감자, 조개, 어란, 떡볶이, 쏘세지, 그리고 라면 등...

한 가지 재료에서 자기가 어린시절 경험한 식단, 요리를 배우면서 경험한 이딸리안 레시피에서 쓰이는 것들,

이런 풍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무엇보다 요리사라는 양반이 뭐이리 입담이 좋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글에서는 프라이팬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면 스스로 육수를 내는 재료들처럼

졸깃하고 풍부한 육즙을 입안 가득 맴돌게 하는 말맛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한두 시간 후 우연히 잇새에 낀 참깨가 잘근 씹힐 때의 그 고소함이란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동의해줄 사람들이 많다고 믿는다.

고춧가루나 김치쪽이 나오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그 충만한 고소함을 기억한다면 말이다.(100)

 

그러게... 많다고 믿을 수는 없으나... 나 역시 동감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음식은 단순한 유래나 전통보다는 역사적인 흐름을 같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현대사가 역동적인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전쟁 후 원조가 없었다면,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수제비나 국수 등을 혼식의 이름으로 장려할 수 없었을 것이고,

떡볶이같은 불후의 명작이 탄생할 수 없었음도 이 책에서 잘 나온다.

 

냉면 가락을 빨아들이다보면 어느샌가 노른자가 살살 육수에 풀려서 흐물흐물해진다.

풀린 노른자는 밋밋한 육수에 탁한 기운과 고소한 맛을 선사하게 된다.

그저 시고 짠 육수가 노른자의 기운을 받아 두꺼운 밀도를 얻고

결국 포만한 뒷맛을 남긴다는 설이다.(151)

 

다들 그렇고 그랬을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을 맛보면서

이런 표현으로 형상화해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탁월한 말 놀림 능력이 대뇌에 탑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구는 살아서 피부와 아가미로 호흡하고,

죽어서 그 부위에 소금을 받아 다시 살아난다.

살로 온전히 죽음과 부활의 운명을 받는다.

호흡의 강고한 증거인 아가미에 소금을 처넣고 깊이 잠든다.

그 죽음의 미라.

결코 영생을 꿈꾸어본 일 없는 슬픈 미라가 우리 입에 들어온다.

대구를 먹는다.

그건 소금처럼 짜고 먼 일이다.(15)

 

이런 건 숫제 시다.

 

소금을 뿌려 쓴맛을 죽이고,

술에 재어 단맛을 돋운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숯불에 굽는다. 껍질이 거뭇거뭇해지고

숯덩이처럼 보일 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그러고 마침내 속까지 충분히 익으면 배를 갈라 그 위에 가다랑어포를 올려 낸다.

가다랑어포가 춤추듯 꿈틀거린다.

가지의 속살은 뜨겁게 몸을 뒤채다가 젓가락으로 헤집을 때마다 김을 뿜어낸다.

극도로 건조한 청주 한 잔을 마시고 입에 넣은 갖는 녹을 듯이 감미롭다.

미처 열기를 털어내지 못한 가지 속살은 입천장을 벗겨버린다.

그러므로 이 요리는 아주 느긋하게 입에 넣고, 마치 설탕을 녹이듯 살살 달래가며 먹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라도 술은 반드시 차가운 청주를 시킨다.

그 궁합이 절묘하다.

응축된 가지의 단맛이 폭발하고, 술잔은 비워지게 되어있다.

 

밖에 천둥이 치든 폭설이 내리든 가지는 구워지고, 술잔은 엎어지고.(183)

 

마치 '설국'이란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이거나,

다자이 오사무가 고향 쯔가루에서 유학 와 머물던 곳을 묘사한 장면의 형상화 같기도 하다.


전주의 콩나물국밥.

그 맛을 나는 '어른이 되는 맛'이라고 하겠다.

어른들만이 아는 맛이라고...

무심하고 밋밋한 콩나물이 전부인 그 국물은 자극이라고는 모르는

요즘같은 선동적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맛이다.

아니, 그렇기때문에 어른들은 더 콩나물국을 찾는 것일지도.

남부시장의 국밥집 아낙은 막다진 매운 고추와 마늘, 파를 내가 시킨 국밥 그릇에 쏟아넣는다.

막 터진 그 양념의 액포들이 콩나물과 함께 휘발한다.

노랗고 맑은 콩나물국을 한숟가락 뜬다.

거기에 내 어린 날의 냄새가 자욱하게 번진다.(198)

 

눈물이라도 금세 질금 번져나올 듯한 구절이다.

 

그런 그게 '감자탕'을 <감자가 들어있어서 감자탕인 이 요리>라고 설명하는 구절은 갸우뚱?하게 한다.

이 인터넷 검색의 시대에... 그런 실수는 옥에티다.

 

감자가 들어 있어서 감자탕인 이 요리에 감자가 빠지기도 했다.

감자가 비싸졌기 때문이었다.(225)

 

요즘엔 다들 알듯이 '감자탕'은 그가 지켜본 '노동자들이 무언가 거대한 뼈를 들고 뜯었던' 그 뼈의 이름 '감자뼈'에서 유래한 것이다. 돼지의 등뼈와 척수같은 부산물을 넣고 끓인 그야말로 가난한 식품이 감자탕이었던 셈이다.

 

요즘처럼 갈수록 서민의 등골을 빼먹으려 혈안이 된 정부아래서 사는 한 사람으로서,

뜨끈한 국밥같은 음식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찬일의 맛있는 문장들 역시 헛헛한 심사를 달래주는 든든한 한 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띠지에 적힌 한 마디 문장이 눈시울 달구는 위안이 된다.

<인생이 차가우니 밥은 뜨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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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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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칼과 황홀...을 읽으며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의 '짜장면'같은 수필을 기대하며 읽었던 탓이었겠지만, 아무튼 먹을거리에 대한 찬사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이제 우리 시대에 박찬일을 만난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랑 비슷한 연배의 그가 건강을 지켜준다면 앞으로도 더 깊은 책을 내줄 수 있을 것이어서 기쁘고,

무엇보다 그는 '조리'나 '요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문화에서 '요리'나 '조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하여 깊이있게 찾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오래된 유명한 식당 순례기에 불과한 종이뭉치는 아니다.

적어도 문화 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통시적으로 역사와 삶 속에서 그러한 무늬가 빚어지게 된 연유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고,

공시적으로 이곳과 저곳의 음식이 차이지는 맛을 그 음식을 빚어내었고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말맛까지 살려 기록해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온건하지만 폭력적인 행정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적어 둔다.

아마도 전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 이야기일게다.

 

우리는 피맛골이 사라진 발단과 경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조사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피맛골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향후 수없이 발생할 제2, 제3의 피맛골 사태를 막는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339)

 

2008년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때, 주말에 서울엘 간 일이 있었다.

곧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던 때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청진옥에서 뜨거운 해장국을 훌훌 마신 적이 있다.

6월이어서 땀을 줄줄 흘리며 다들 한그릇씩 들이켰다.

그해 8월 3일 그 집은 헐리고 말았다.

 

"집에 있으면 아파서 차라리 나오는 게 낫고예, 추석하고 설에만 쉬었수다."

제주 돼지 순대(돗수애)는 몽골에서 전래했다는 설이 있다.(328)

 

언어까지 오롯이 담긴 기행이라 더 의미깊다.

 

평안도가 고향인 시인 백석의 시 <국수>에서도 '슴슴한 국수'가 나오는데,

이는 냉면을 의미한다.

겨울밤이 유독 긴 평안도, 밤엔 집집마다 냉면을 먹었다.

고깃국물은 만들기 힘들었고, 그저 김칫독을 퍼서 국물과 김치를 꺼내면 그게 냉면이었다. 차고 심심하게 말았다.(39)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서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자타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故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부분)

 

도대체 왜 맛있는 집은 맛있는가?

 

요식업의 뻔한 배결 중 하나가 바로 '규모의 맛'이다.

양이 어느 정도 되어야 제맛이 나오는 법인데...(155)

 

설렁탕집 잼배옥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많이 팔 규모가 예상되어야 펄펄 해장국을 끓이는 게 당연하고,

잘 팔려야 좋은 재료를 매일 구해다댈 것이야 당연한 이치지만,

어떤 집이 더 장사가 잘 될 것인지는 며느리도 모를 노릇이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집으로야 가장 유명한 '쌍둥이' 집보다도 그가 '할매국밥'을 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 책에는 내가 사는 도시가 네 번 등장하다.

나는 그 중에 '해운대 암소갈비' 한 군데를 가봤을 뿐이다.

할매국밥도 마라톤집도 삼진어묵도 아직이다.

그가 높이 치는 맛이 어떨는지... 한번 가볼 참이다.

 

오뎅은 어묵(가마보코)을 포함해서 쇠심줄(스지), 두부, 유부 같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장국에 끼린 게 오뎅이고예,

그라이까 어묵 넣은 기 오뎅이고, 어묵은 오뎅의 일부라예.(166)

 

나도 어묵과 오뎅은 이제 알겠다.

그러니까, 어묵과 여러가지 건더길 넣어서 끓인 것을 오뎅탕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통적 음식 문화의 하나인 '토렴'에 대하여는 국밥집마다 쓰고 있다.

그만큼 그가 '토렴'에 담긴 배려와 인정에 대하여 반한 모양이다.

 

해방 전에는 자기가 먹을 찬밥을 가지고 이 집(청진옥)오는 풍경도 흔했다.

그 밥을 받아 뜨거운 국물에 여러 번 헹궈 따뜻하게 한 후

국물을 말아냈다.

그걸 '토렴'이라고 한다.

세계 음식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요리기법이다.

보온밥솥이 없던 시절, 아침에 해둔 밥은 식게 마련이었다.

이것을 그대로 국에 넣어 말면 전체적으로 국물이 미지근해지고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번 부었다 헹궈내기를 반복하면

밥알 속까지 따뜻해지면서 국밥의 온도가 먹기 적당하게 변하는 것이다.(186)

 

이탈리안 셰프인 그가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깊이가 깊어서이다.

 

매년 12월 15일 밤에 손님있는 시간까지,

그러니까 한 새벽 1시쯤 될 거야.

마지막 날이니까 더 늦게까지 손님이 옵니다.

그렇게 영업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다음해 3월 1일 아침 9시에 엽니다.

닫는 날은 시원섭섭하고 여는 날은 긴장되고 그렇지요.

 

문을 닫는 12월 15일 이후에는 자리보전하고 앓는다.

"딱 열흘간 앓아요. 정확해요."

그러고는 일어나 운동을 한다.

그러다가 3월 1일 재개장날에 완벽한 준비를 해서 다시 손님을 맞는다.

그 원칙은 단순하다.

"마치 어제도 문을 열었던 것처럼."

 

두달 반을 쉬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그런 장사가 어디 있나. 방학을 찾아 먹는 장사가.

 

원래 추어탕은 가을 두어 달만 팔아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문헌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유명한 서울의 추탕집들도 사철 문을 여는데,

미꾸라지가 늘 잡히는 것이 아니고 맛도 떨어질 때가 있기때문에 다른 요리를 같이 팔았다.(231)

 

오래된 식당이 없는 한국.

그 이유는 참 다양한데, 그의에필로그에서 참으로 복잡한 현대사의 굴곡을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백년이란 시간은 자못 복잡하고 난해한 세월이기 때문이다.(332)

 

노포의 특징은 오래된 주인장만이 아니다.

오래된 종업원, 오래된 단골들이 필수다.

단골이야 그렇다 치고, 일꾼을 전문가로 치지 않아서는 노포가 될 수 없다.

 

간혹 할머니 혼자 오셔서 쓸쓸하게 냉면을 드십니다.

여쭤보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죠.

저도 함께 쓸쓸해집니다.

간혹 아래층에서 큰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부원면옥은 2층이 주 업장)

냉면을 내려달라는 거예요.

계단을 오르시지 못하게 된 노인이 저희집 냉면 한 그릇을 기어이 드시겠다고 오신 겁니다.

참 짠한 일이에요.(285)

 

맛을 내는 과정 역시 한결같이 단순하고 심심하다.

 

제일국수공장에서 맛있는 국수 만드는 비법은 단순하다.

"초리~하고 매끄리 하게 만들어야 맛있제."

그걸로 끝이다.

탱탱하고 예쁘고 매끈하게 빚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건조는 국수의 품질에 큰영향을 미친다.

"겨울에 국수가 더 맛있니더. 하늬바람 불 때 국수가 최고니더."

바람이 국수를 만든다는 얘기다.

"국수하는 사람은 발이 안 보여야 하니더. 엄청 바쁜 일이라 놀면서는 모합니더."(312)

 

경주 사투리가 묻어나는 장인의 검은 얼굴이 내비치는 말뽄새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이 고급진 '조리 장인' 내지는 '전문 셰프'로 불리는 것도 일부분이다.

모든 사람이 날마다 자기 먹을 것을 하느라 골몰하지 않느냐.

 

먹는다는 일의 문화사를 이렇게 엮어내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백년 사이에 석기시대와 우주시대를 넘나들었던 한국의 현대사에서야... 말해 무엇하리오.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건필하길 기원한다.

혹시 알랴.

우연히 할매국밥이나 마라톤집에서 등돌리고 앉아 쓴소주 한잔 기울이는 인연이라도 만날지...

 

 

 

109. 자유시장에 잇대어 있는 부평시장이 깡통시장이라... '자유시장'이 아니라 '국제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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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기사가 다녀온 나르시시즘의 도시들
오영욱 글.그림 / 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건축을 하는 오기사.

그가 가우디를 찾아서 스페인을 갔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자 없이도 구불구불 선을 그리기 좋아한다.

그리고 투시하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떠오르는데,

오기사는 자신의 그림, 이야기, 사진 등으로 이곳들을 들려준다.

 

우선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그녀가 말했었다.

"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

잠자코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40)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원인은... 내가 욕망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그런 나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위로를 던져줄 것 같았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42)

 

라스베이거스의 건물 사진들을 보면,

그가 그 버석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꽂힌 욕망의 꽃으로 들어간 이유를 알겠다.

 

찬디가르라는 도시는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예찬과 회상으로 가득하다.

그 건축가는 축복받은 인물이다.

축복받은 건축가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아닌가 싶다.

실용과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멋진 건축의 시대...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173)

 

말도 안 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인도에서 그는 자신을 만난다.

100원짜리를 1200원 붙여 놓고 깍아준다며 천원을 받는 사람들의

능글맞은 웃음 속에서

"나는 이런 인도의 오만함이 간혹 마음에 들었다."

고 할 정도면, 나름대로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이 건물들이라는데 그닥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그 유명한 롱샹 성당은 참 가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순례자를 위한 선과 면이 공간을 이룬 성당이라니...

 

시대 정신을 담느라 그랬을 뿐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232)

 

이렇게 말했다는데,

따뜻하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성당을 만든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따스하리라.

 

소설점의 도시 생트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거리를 위로의 도시라고 한다.

 

고골은 소설 '네프스키 거리'의 마지막에서...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키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311)

 

마치 고골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화병으로 죽고난 후 유령이 되어 떠돌기라도 할 듯한 네프스키 거리...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은... 도시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언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백야의 계절이 지나 어둡고 축축해지는 시기의 페테르부르크 도시는

겁에 질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312)

 

오기사가 다녀온 도시들을 <나르시시즘의 도시들>로 명명한다.

욕망의 도시, 일탈의 도시, 위안의 도시...

그리고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인간은 누구나 제 욕망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

그래서 일탈의 여행을 꿈꾸고,

푸근한 위안을 찾는다.

 

이 책처럼 제 이야기를 혼자서 떠벌이는 이를 바라보면서도,

욕망과 일탈과 위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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