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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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여러 번 읽었다.

그 이야기는 성장소설이면서도, 광주 학살의 보고서였다.

그의 '홍합'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수필집을 읽노라니, 그런 것들이 다 취재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생생한 형상화가 가능했던 것이 온몸으로 밀고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시답잖은 수필집들은 그저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십상인데,

예를 들면 자연이 아름답다거나, 환경이 중요하다거나,

삶의 작은 일들에서 어떤 것을 생각해 냈다거나...

한창훈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아주 '개성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개성적인 인물은 비극적일 경우조차도 개그 드립 작렬이다.

 

좀 우울한 날이라면, 이 책을 들고 비내리는 창가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읽기를 권한다.

커피 사레 들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도...

 

그의 인물들이 개성적이지만 또한 '전형적'인 민중의 삶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남도의 진득한 <변방의 말과 노래>를 담아 낸다.

그러니 그 인물이 개성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문도.

절해 고도에서 나서 지금도 거기 산다는 작가.

 

몸 한 조각을 잘라내 정신의 진물로 반죽한 다음 빚어놓은 느낌 -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적막을 맞대면한다는 것은 혹독한 짓이었다.

하여, 저곳 정리해 다시 육지로 나간 다음,

간혹 이곳을 찾아와도 발보아지지 않았다.(104)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때는 저린 팔을 주무르는 마음이 된다.

 

당신이 두고온 것들중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고 몽골에서 유학온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독한 바람. 극도로 추웠던 바람.

너무너무 지겨웠던 그게 가장 그리운 거란다.

허락한다면 고향에서 한 사흘 그 바람만 맞다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됐다.(109)

 

그 고독하고 사나운 파도 소리로 가득했던 자신의 과거를

마치 무진 기행의 무진처럼, 안개로 가득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고향을 그는 이해한다.

 

한창훈의 문학 수업 이야기는 무대뽀다.

그러다 백석의 '여승'을 맞닥뜨리고 깨닫는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의 큰 작가들 글을 한번 찾아 읽어보고

하늘의 뜻과 맞닿아 있는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한 일연 고민 좀 해봐."(164)

 

결국 김수영의 말처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글이 아니고서는 글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남준에 대해 쓸 때는 애정이 지나치다 못해 철철 넘친다.

 

박남준 시인을 두고 사람들이 칭하기를

풀잎 같고 이슬 같고 바람 같고 수선화 같고

처마끝 빗물 같고 나비 같고 눈물방울 같은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니까 오십 넘도록 홀로 스님처럼 지내며 시와 음악과 새소리, 매화를 동거인으로 두고 살고 있습니다.

삶은 정갈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가인입죠.(233)

 

안현미를 극구 칭찬하는 대목도 구성지다.

 

슬픔이 많으면 일찌감치 죽어버리거나

살아남았다면 웃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은 데 듣고 나면 공연히 쓸쓸해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이를테면

웃음 직전의 침묵, 웃음 직후의 허전함, 그리고 웃지 않을 때의 고단함,

그것들의 총화였다.(256)

 

유용주, 이정록 등속의 술꾼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것이고,

새롭달 것도 없는데, 그이의 안현미 사랑은 급기야 나를 안현미로 이끌었다.

그의 시집을 주문한다.

 

삶의 비애를 적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나를 보아 너무 서둘지 않아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어리고 영민한 여자가 현모양처가 되기란 동서남북 이 천지간에서 얼마나 얼얼해야 하는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너도 곧 엄마가 되겠구나 무구하게 당도할 누군가의 기원이 되겠구나

여러 계절이 흘렀으나 나는 오늘도 여러 개의 얼음을 사용했고 아무도 몰래 여러 개의 울음을 얼렸지만 그 안에

국화 꽃잎을 넣었더니 하루 종일 이마 위에 국화향이 가득하였다 그 향을 써 보낸다 그저 얼얼하다 삶이

(내간체, 부분)

 

여성의 삶은 참 초라하면서도 고단했다.

힘겨우면서도 어쩔 수 없었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얼얼하다고 쓴 안현미는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글로 드러낸 '온몸으로 밀고나간 시인'격인 셈인가?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아졸라를 들아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부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한데, 안현미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책깨나 읽는다던 소리는 이제 말아야겠다.

안현미를 모르면서 문학을 가르쳤다고...

뭐, 워낙 시인도 많으니 그렇다 치고... 읽고 볼 일이다.

 

 

고칠 곳...

151. 내 마음은 호수요,식의 직유를 배운 모양이다... 비유라고 하든지 은유라고 해야한다. 직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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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0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0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위한 책을 만드는 판미동 입니다.

출간 예정 도서 <나를 숨쉬게 하는 것들>의 가장 빠른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가수 이효리가 추천한 ‘나를 바꾸는 요가 에세이'

‘남이 보는 나’를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나’를 찾아간다는 것


“나도 변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도 날, 사랑할 수 있을까”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5월 4일 ~ 5월 11일 (당첨자 발표 : 5월 13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숨, 나, 자유의 발견

그리고 요가를 통해 배우는

내가 만든 사슬을 끊어내는 법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홀로 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뭐든 해도 상관없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다.’


어느 날 발견한 소설가의 꿈. 그러나 지금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김혜나 작가는 꿈과 의욕만 있을 뿐, 아무리 노력해도 등단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은 결국 그를 우울증과 비만에 빠트리고 끝내 자살에 대한 충동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이대로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스스로 정신 병원을 찾아가지만, 삶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그를 더욱 더 큰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그러다 문득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요가. 이를 통해 저자의 삶은 조용히 그러나 놀랍도록 변화하기 시작한다. 현재도 요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나 작가는 그 당시 요가 덕분에 ‘작가 등단’이라는 자신의 꿈 이면에 감춰진 명예욕과 탐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알아차림과 더불어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가던 강박과 편집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그때부터 그는 절망과 수시로 찾아오던 무기력을 서서히 떨쳐내기 시작한다.


오 년 전 다시 요가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변화되어 갔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경력을 쌓아도 쉽게 얻기 힘든 일자리 들이 저절로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새로운 요가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일 년 사이에 여러 기업체 및 학교, 문화센터, 공공 기관 등으로 강의를 하러 나가는 요가 강사가 되어 있었다. 칠 년 전 처음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해 수련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노상 걱정하던 생계와 창작, 집필, 건강의 문제들이 어느 순간 다 해결되어 있음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것들은 그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기를 쓰고 애를 태워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금이 물에 녹듯…… 자연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것들이 해결되던 순간에는 해결되어진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뒤돌아보니 이미 다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 만들어내던 고통의 사슬을 잠시 내려놓기. 김혜나 작가는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다면 요가를 통해 잠시 삶의 속도를 멈춰보기를 권유한다. ‘본래 나는 이렇다.’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자신은 이미 내 안에 숨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요가란 그렇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오늘 하루를 스스로 초라하고 비참하게 보냈다면 잠시 요가를 통해 멈추어 보자. 거기서 우리는 숨과 자유,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혜나 지음ㅣ252쪽 ㅣ 12,800원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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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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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노벨문학상이든 이상문학상이든 별달리 찾아 읽을 만한 감흥이 없는데,

여기저기서 가끔 쉼보르스카의 시가 인용되는 걸 보고 사 두었다가 몇 년에 걸쳐 야금거리며 읽었다.

 

그이 시의 주제는 인생 전체다.

인생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원어로 읽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시'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과 시작... 역시 그렇다. 원어로 발음한다면 훨씬 다른 뉘앙스를 얻는 단어일 것이다.

 

그이 시를 읽는 일은,

삶에 대한 간단한 수필을 읽는 것과 같다.

시적 감수성을 살린 수필.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433)

 

인생은 모든 순간을 모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모든 삶은 순간의 적분이고, 모든 시 역시 '순간'의 모음이다.

 

시를 좋아한다는 것-

여기서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확실한 대답들은

이미 나왔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무작정 그것을 꽉 부여잡고 있을 뿐.(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부분)

 

재미있는 비유다.

왜 꽉 부여잡고 있는지 스스로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시를 좋아하고, 쓰게 되는 이유.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이유 역시 그러니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끝과 시작, 부분)

 

인터넷에서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먹어 보면 보이는 지점이 있는 것.

그러나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는 것.

그런 생각들을 글로 잡아내는 시인이다.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올 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이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이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 - 자, 모든 게 이상 없죠?

(잔뜩 쉬어 터진  거친 목소리로

막 뒤에서 헛기침으로 미리 귀띔을 해주는 일조차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의 간단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정교한 무대장치 아래 서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소품들의 정확성과 견고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대를 회전시키는 장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작동 중이다.

저 멀리서 성운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틀림없는 개막 공연이다.

이 순간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지른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동작으로 영원히 굳어져 버린다.(인생이란... 기다림, 전문)

 

인생이란 늘 낯설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면서도,

때때로 비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그 '경이로움'을 찾아내는 시인이 쉼보르스카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사람인 걸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 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여기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경이로움, 부분)

 

삶의 우연성.

그것은 비참함과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만일의 경우, 부분)

 

아, 만일의 경우...

삶에서 이런 경우란 얼마나 많았나...

돌아볼 시점이 되면, 내가 어디 서있었던지를... 생각하지 싶다.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단어로 표현되기를.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은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저란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단어를 찾아서, 부분)

 

인생의 경이로움은 불확정성에 있다.

모든 인생이 다르다.

선재동자가 찾아다닌 보살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꽃처럼 뒤덮고 장엄하고 있는 <화엄>의 세상의 주인공은, 모든 인류여야 한다.

그 꽃이 금세 지고 만다.

그리고 유전자만 남길 뿐, <두 번은 없다>

 

 

 

 

 

아마 그의 시 중, 가장 자주 회자되는 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유한성, 그래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카르페 디엠~

 

1923년에 태어났으니, 그이 젊은 시절은 그대로 2차대전의 지옥이었을 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살아 있는 자를 포옹하는 것, 감싸 안는 것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심장의 박동 뿐

 

시효가 만료된 죽음과의 포옹 속에서

그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살아있는 자, 부분)

 

극한 앞에서 '실존'은 가냘프다.

한 떨기 풀잎처럼 흔들거리는 실존은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다.

그저,

거기서 흔들거리며 피어있을 따름인데,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풀잎은 꺾이고, 짓밟힌다.

 

그걸 보면서, 낱말을 찾아내려 애쓰는 시인의 글을 읽는 일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는 작은 호사라고나 할까?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 방울들을 탐닉하는 왕거미처럼...

 

<여기>라는 그의 시집 표지에서는

'지금'을 붙잡은 왕거미의 행복한 한때가 포착되어 있는 것 같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말따위나 하는 '담뱃값인상론자'는

저 '지금'에 대해서 거미 똥만큼이나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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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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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또는 폭력에 대항한 어떤 양심

 

독일어 원 제목을 읽어보면, 음률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카스텔리오와 칼뱅의 첫소리가 비슷하지만 그 세계관은 정반대였듯이,

게비센과 게발트의 앞부분이 비슷하지만 반대의 뜻을 가진 낱말들을 찾으려 애썼을 것임이 느껴진다.

 

흔히 칼뱅을 유명한 종교개혁가라고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칼뱅은 좀 다르다.

기존의 썩어빠진 가톨릭을 개혁하는 데 성공한 제네바에 등장한 칼뱅의 청렴함은 금세 폭력이 된다.

지극히 살피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듯, 칼뱅주의는 곧 독재의 그늘을 드리운다.

 

도시와 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것은 모조리 그의 관전한 권리 아래 종속되고...

그의 가르침은 곧 법이었다. 그에게 반대하는 듯한 눈치만 보여도 곧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지 않으면

화형장의 장작더미가 기다리고 있었다.(12)

 

그에 맞선 카스텔리오라는 남자는 '코끼리 앞의 모기'에 비유된다.

이 모기는 힘없고 고독하지만 인문주의자의 역할을 다했다.

 

이 지상의 어떤 사람에게도 세계관을 이유로 박해할 권리는 없다.(14)

우리 인간 종족의 영원한 비겁성을 생각해볼 때,

시대의 권력자들에게 대핳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추종세력을 억기 어려운가.

그렇듯 카스텔리오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그림자 외에는 뒤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싸우는 예술가의 유일한 재산인 불굴의 영혼에 깃든 굽히지 않는 양심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15)

 

이 책의 머리말만 세 번 네 번 읽었다.

이 책을 읽기 힘든 사람이라면,

이 책의 머리말만이라도 읽어 보기 바란다.

 

정신적인 면에서 승리와 패배라는 말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때문에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한다.

다시 말해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지상에서 인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이 진짜 영웅임을 기억해야 한다.(27, 머리말)

 

 

 

 

조선 왕조의 상징 광화문 앞에서,

현대 폭력의 앞잡이 경찰(사실 저들은 군대를 가려고 지원한 의경들이다. 위법한 일이다.)들에게

캡사이신 물대포를 맞는 유가족이라니... 참혹한 현실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런 말이 일상화된 나라...

슬픈 이 나라...

 

한 국민의 상당수가 내면적으로는 독재체제에 반항심을 갖고 있다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통합된 계획과 확고한 구조로 결집되지 않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독재자의 권위가 처음으로 흔들리고 난 후에도 실제로 무너지기까지는 정말 길고도 험한 길이 놓여 있는 것.(98)

 

1935년 씌어진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작품은

전체주의로 흐르고 있는 유럽의 분위기를 이미 예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종교전쟁 시기의 <특수한> 사건을 다룬 이 글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언제나 도발적 인간에게 굴복하곤 하는 인류는,

단 한번도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에게 굴종한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진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진리이며,

자신의 의지가 세계 법칙의 기본 공식이라고 선포할 용기를 가진 위대한 편집광들에게만 인류는 굴종해왔다.(54)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나치하의 독일 국민이,

일제 강점기 전쟁기의 일본 국민이,

그리고 박정희 독재개발 시기의 한국 국민이 떠오른다.

그들은 왜 박근혜를 찍는가...

저 '편집광'이라는 단어가 어떤 현상을 설명해주는 요약적 어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칼뱅과 카스텔리오 사이에는 <세르베투스>라는 돈키호테가 등장한다.

 

역사는 수많은 인간들 중 단 한 사람을 선택해 세계관의 대립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최고 수준의 천재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자주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주 우연한 이름을 골라서 후세의 기억에 뚜렷하게 새기곤 했다.(123)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런 말투가 좋다

전기 같은 것을 쓰다가도, 툭툭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들려준다.

마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사실, 이런 부분을 만나려고, 지루한 세르베투스와 칼뱅의 대결,

카스텔리오의 '반박문'들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그런 세르베투스를 그림으로써,

핍박받는 인격, 인권에 대하여 그렸다.

최소한의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추잡한 권력의 만행을...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198)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인 것일 뿐이다.(227)

 

세르베투스의 화형에 대하여, 카스텔리오는 <관용 없음>에 관한 글을 쓴다.

그것은 곧 독선자 칼뱅에 대한 저항이 된 셈이다.

 

<모든 칼뱅에 맞서는 어떤 카스텔리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제목들은 참 멋지다.

칼뱅의 독재를 '금지, 금지, 금지'로 표현하고,

이에 맞서는 카스텔리오는 '칼뱅은 유죄, 유죄, 유죄'로 쓴다.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카스텔리오, 의심의 기술 중>

 

아, 이 구절을 읽으면서

민주주의가 온 줄 알았던 지난 날이...

그리고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든 칼뱅에게는 어떤 카스텔리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날, 칼뱅주의에 금이 쩌적 가는 날

카스텔리오는 잊힐지라도,

그렇게 빛은 오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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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5-05-0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선생님....이 글은...참...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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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희진의 '리뷰'들을 모은 책이다.

여느 책벌레들의 책을 갈무리하는 '책'이라는 카테고리로 넣지 않고,

이 책을 '사회'에 넣는 것은, 이 책은 여느 리뷰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책벌레'들의 리뷰집은 책에 대한 소개, 자신의 느낌을 적는데 그친다.

그러나, 정희진은 거기에 뭔가를 넣어서, 확 자신만의 맛을 낸다.

아마 자신만의 <미원 味元>이라도 듬뿍 치는 모양이다.

 

마지막에서 자신의 <아지노 모토 味元>의 비법을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기>다.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다.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알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독후감은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작용이다.(299)

 

도대체 이 좋은 책의 리뷰를 어찌 쓰나 하고 책을 덮는데,

뒤편 책날개에 <정희진처럼 쓰기(근간)>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정희진의 읽기는 <생각하기>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물론 재미로 읽는 책들도 많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만,

그가 몰두해서 읽는 책들로 말하자면, <삶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정희진의 글을 읽고 '이 여자 밥맛일세, 재수없어~'하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특히 폼 좀 잡고 교양인인 체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하긴, 그런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지 않으려나?

 

며칠 전 베트남에서 온 따이한 성폭행 피해자들의 행사가 있었다.

그 앞에서 뻔뻔스럽게도 군복을 입고 난동을 부린 인사들도 있었다.

부끄럽다.

죄스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평지가 아니다.

한국은 온갖 울퉁불퉁 뒤집어지고 기울어진 공간이다.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입된 생각을 <상식>이자 <교양>이라 암기하며 살아왔다.

 

한나라당 3, 무소속 1...

어제 재보선 결과다...

딱 이만큼이 한국의 오늘날 정치현실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우익(이란 이름을 뒤집어 쓴 권력)은 저 베트남에서 온 분들에게 보낸 시선을 보낸다.

여기서는 자기들과 다른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감히 동성애나, 성매매 금지 폐지 등을 말한다면 패륜이라는 둥 방방뜰 것이다.

 

정희진의 글들은 재수없다.

아마도 이런 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읽으면 참 짜증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아마 성경을 읽으면... 예수에게도 재수없다고 하고, 짜증내지 않을까?

그런 이들은 아마 교회는 가지만, 성경 강독은 하지만, 예수의 뜻은 전혀 모르고 올는지 모른다.

 

한국은 그야말로 비탈진 축구장이다.

낮은 편에 선 팀은 늘 <페어플레이>의 강압 앞에서 주눅든다.

높은 편에 선 팀은 언제나 우아하게 신사적 경기를 펼치고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분노, 고통, 복수에 비해 용서, 화해, 평화는 우월한 가치로 간주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다.(44)

 

영화 '밀양'의 원작 '벌레이야기'의 리뷰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금의 한국 현실을 바라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높은 편에 선 팀은 언제나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좀 교양있게 내라고 강요한다.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 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고정희, 사랑법 첫째, 92)

 

외롭던 시인 고정희의 시를 입으로 굴리는 그.

사랑에 대하여서도 그의 생각은 자유분방하면서도 폭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보여준다.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가장 추잡한 남자는 헤어지면서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 희망고문을 지속하는 자,

두번 째 저질 남자는 거절 못(안)하고 질질 끌면서 여자의 감성과 자원을 착취하는 부류.

이런 분들은 코끼리에게 밟혀 죽어야 한다.(저자의 표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113)

 

한용운 시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곱씹는다.

 

모든 예술은 남겨진 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부재하니까 침묵인 것이다.

반면 남겨진 자의 눈물은 마를 길이 없다.

그리움, 슬픔, 체념, 자책, 희망, 저주... 그래서 예술은 고통받는 이의 필수품이요, 특권이다.(119)

 

평범한 글을 써도 절묘한 대구와 역설을 뒤섞는 정희진의 글쓰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성판매여성 비범죄화 추진연합의 소속단체라는 문구가 탁월한 개그다.

 

곰팡이와 싸우는 세입자 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 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 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안돕는딸년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 반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131)

 

곰곰 읽어보면,

생각해야할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은 결핍을 결핍한 완전한 존재다.

자기 위치를 알기 어렵다.

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 아는가. 포말이 일 때다.

큰 물줄기라는 것을 어찌 아는가. 포말이 클 때다.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없는 주제 파악, 나부터...(140)

 

그의 읽기는 중단없는 주제 파악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된다.

한국의 기울어진 문화는 모든 문제에서 생각을 유발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한국이 기회의 땅인 셈일까?

그가 공약을 걸고싶은 말은 멋지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적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150)

 

가진자들은 적당한 지식인들을 좋아한다.

대충 넘어가는 자들을 좋아한다.

조금 나눠주면 흔쾌히 콜~ 외치는 멍청이들을 좋아한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은,

예수처럼... 언제나 비참한 삶을 살다 갔다.

 

박정희에 대한 그의 판단.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라,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151)

 

그렇군. 그의 딸도 똑같다.

기울어진 국가, 한국의 가진자들(지배 규범)

 

한국 사회는 지배 규범을 객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이 있는 집단은 편협하다고 낙인찍히기 쉽다.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고 질문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 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

이건 불가능.

균형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고,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므로...(203)

 

그의 글이 참 독자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다.

중립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불편한 선배 때문에 늘 마음 불편했던 바로 그것.

 

배제되지 않기 위해, 포함되길 거부한다.(216)

기존 규범을 문제삼지 않고 그 안에서 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것.(217)

 

한국에서 여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인간해방을 다루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해방의 조건은 배제가 아니라 '독립'이기 때문이다.

독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포함'되는 것은 '자립성'을 말살하는 것이므로...

약자는 빌빌거리며 포함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든지

독립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튼튼하게 가지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은 이미 골을 넣기 쉬운 윗지방의 선수들이 '기준'을 정하고 '객관'을 가장하고 있으므로,

아랫지방의 선수들은 그 편파성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는

<생각>을 기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런 리뷰들을 기른다.

 

그의 건필과, 다음 책을 기다린다.

 

 

고칠 곳...

80. 익사...의 한자는 溺舍가 아니라 溺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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