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봐요, 호오포노포노 - 부와 건강과 행복을 부르는 하와이언들의 말 판미동 호오포노포노 시리즈
타이라 아이린 지음, 김남미 옮김, 이하레아카라 휴 렌 감수 / 판미동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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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 힙겹다.

재미있는 날도 있지만, 힘겨운 순간들도 많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좀 무시당하기도 하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낮아 불만이기도 하고,

태어난 국가나 사회가 맘에 안 들기도 한다.

부모자식 간에도 가족간에도 가까울수록 불평도 많다.

 

왜 그럴까?

정답이 여기 있다.

 

왜 내 잘못이 아닌데도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하고 살기 힘든가.

그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도중에,

우리가 돌발적으로 개입해서 끼어들어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불평,불만,불안은 내 잘못은 아닌 셈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극장에 들어간 것과 같아요.(36)

 

그런데 인간은 수많은 기억들을 마치 자신이 다 조합한 것처럼 느끼며

죄책감을 가지거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마음을 '정화'하는 마법이 바로 '호오포노포노'다.

 

마법이라 한 것은, 인과관계가 없이 현상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인간 기억 속의 잠재 의식을 <우니히파리>라고 부르는데,

기억을 축적하고 재생하는 감정적 측면을 일컫는다.

 

정화를 한다는 것은 '제로'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안해, 고마워, 용서해 줘, 사랑해...

 

이런 말들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을 잃어갈 때,

우리는 그 순간을 되찾아야 한다.

순간을 되찾으면 안도감과 안전, 창조력과 생명력,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158)

 

인간이 내면을 정화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불교나 다른 마음 챙김 이론의 기본과 흡사하지만,

정화라는 말과

스스로를 깨닫는 법으로,

구체적인 언어들을 반복하라고 일깨우는 것은 효과적일 듯 하다.

 

정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하루를 마치면

우니히피리는 숨을 쉬지 못해요.(198)

 

힘들 때,

뭔가 답답하고 부정적 상상이 떠오를 때,

정화하라는 말은 중요한 한 마디다.

 

결국 마음 챙김은, 마음이 있다는 게 아니라,

정신을 챙겨서 마음에 가득 밝은 빛을 채우는 사람이 되라는 뜻일 것이다.

 

보고 듣는 모든 정보는 지난날의 내가 축적해 온 기억을 전부 정화하고

내려놓게 하려고 나타난 신성한 존재들입니다.(맺음말, 222)

 

신성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인간이

고통 속에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마음을 정성껏 돌보는 일 뿐이라고 한다.

 

부정적이고 초라한 기억을 일깨워

삶에서 만나는 순간과 사람들에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안다면,

눈물로만 이뤄진 삶은 없을 거란 이야기.

 

아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속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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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창비시선 374
안현미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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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다니던 80년대는

서양의 68 시대의 후일담이 넘실거리던 시대였다.

자유와 혁명의 이념 아래서 여성의 문제도 같이 출렁였다.

그래서 여성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과 함께가야 하는 과제라는 것을 책에서 배웠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서 살아보니

이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결혼해 보니 어머니도 여자였고, 아내도 여자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채, 이십 년이 넘어버렸다.

 

안현미 시집을 읽으면서 '여자'의 일생을 느낀다.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류의 발설이 등장한 것은 요즘 젊은 작가들 이후의 이야기다.

최영미가 말 잘 듣는 컴퓨터, 그 매력적인 존재에게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잔치가 끝난, 서른이 발설하기엔 쑥스러운 것이었다.

화끈하긴 하지만,

솔직하긴 하지만,

난 그런 것을 시라고 읽고 싶지 않다.

발랄, 명랑하다고 여기는 이도 있을지 몰라도,

은은, 담백하지는 않다.

난 아무래도 은은, 담백 애정남인 모양이다.

 

안현미의 시를 극찬한 한창훈에 꼴딱 넘어가서 그의 시집 3권을 샀다.

한창훈이 극찬한 내간체를 보았다.

 

  결혼 후 한 계절이 지났습니다 입덧이 시작되었고 제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있습니다 너무 서

둘러 시집왔나 생각해봅니다 입안이 얼얼하고 간혹 어린 엄마였던 언니가 너무 사무칩니다 

 

  삶의 비애를 적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나를 보아 너무 서둘지 않아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어리고 영민한 여자가 현모양처가 되기란 동서남북 이 천지간에서 얼마나 얼얼해야 하는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너도 곧 엄마가 되겠구나 무구하게 당도할 누군가의 기원이 되겠구나

여러 계절이 흘렀으나 나는 오늘도 여러 개의 얼음을 사용했고 아무도 몰래 여러 개의 울음을 얼렸지만 그 안에

국화 꽃잎을 넣었더니 하루 종일 이마 위에 국화향이 가득하였다 그 향을 써 보낸다 그저 얼얼하다 삶이(내간체, 전문)

 

여러 번 읽었다.

아름다웠다. 은은하고 담백하였다. 좋았다.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아졸라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부분)

 

삶은 그렇게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도 하지만,

삐아졸라를 들으며

무념의 경지가 되어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

 

  언젠가 나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 열아홉 혹은 스무살

봄에. 사랑을 시작해도 부동산 투기를 시작해도 외국어 공

부를 시작해도 실패하기 딱 좋은 나이, 실패해도 상관없는

나이, 즉흥적이어서 아름다운 나이, 열아홉 혹은 스무살 봄.

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양식은 가난뿐이었지만 가난한 나라

의 백성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열심히 서로가 서로를 향해

찬송가 불렀지. 찬송가책도 미래도 없이. 누구는 그걸 사랑

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었

지. 언젠가 나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 전생 혹은 전쟁 같

았던 그 봄 춘천에.(춘천, 씨놉시스, 부분)

 

서른, 잔치는 끝났을지 몰라도,

기억은 남는 것.

기억은 완벽하지 않지만, 기억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기다림이 된다는....

에셔에게서 빌려온 무한대...처럼...

그에게 기억은 '나의 힘'이 된다.

 

뜨겁거나 화끈 달아오르기보다는,

담담해서 편안하고 은은해서 오히려 아름답다.

 

'전갈'에서 '아산을 지날 일이 있으면 연락하렴'의 연락과,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막의 고독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전갈의 뒷모습을 닮았던 선생님'

의 곤충을 떠올리듯,

'이별'을 '이 별'과 환치시키기도 한다.

 

그이 시에서는 이런 여자도 나온다.

 

  결국 공식 속에 모든 사람들의 말을 백 퍼센트 담을 수

있다는 여자가 공모에 당선되었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

갔으나 결국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혹독한 추위가 전국적으

로 선포된다 다시 백 퍼센트 겨울 공화국이 시작되고 있다(눈사람의 공식, 부분)

 

여자라고 다 여자가 아니다.

여자보다 더 독한 족속이 있는 법이다.

은은하게 여자의 삶이 겪어온 슬픔을

쓴 소주 한 잔 없이 엮어온 그였지만,

 

마지막 시인의 말은 쓰디 쓰다.

소주 대신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

 

  어떤 슬픔은 새벽에 출항하고 어떤 아픔은 영원히 돌아

오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겨우 살아 있다. 어쩌면 저주가

가장 쉬운 용서인지도 모르겠다.(시인의 말)

 

새벽 출항,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어떤 아픔.

20140416

이런 것들은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아릿한 아픔과 진한 눈물을 부르는 상징이...

 

장미가 다시 피는 계절

여자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장밋빛 향기가 슬픈 시집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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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5-1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소개 받으러 들어왔다가 맘 아파서 어쩌지 못하고 앉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참 비겁했는지라,
일부러 애써 외면하려 했었는데...
기어이 보고야 말았고,
그래서 가슴에 무언가 얹혀서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하루 하루지만,
제 그것은 호강이고, 사치네요.

글샘 2015-05-20 12:28   좋아요 0 | URL
맘에 얹혀서 올리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고 사는 게
어쩌면 우리가 세월호를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땅이 될 것이다 - 한 권으로 읽는 이오덕 일기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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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일기가 5권으로 나오고,

그런데 그 책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반성이 있었나보다.

한 권으로 엮인 책을 만나니 또 반갑다.

 

이오덕 선생님이 교사하던 시절은 박정희 집권기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교사를 했다.

보릿고개가 있는 세상이었다.

 

너희들이 방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

어머니는 정지에서 밥을 잡수신다.(30)

 

이런 훈화까지 해야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삶의 글 쓰기'를 강조하신 것이다.

삶 속에는 모든 전통과 인습과 사고방식이 녹아들어 있으니깐.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삶이 없어져 버렸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토라지는 모든 것이 삶인데,

아이들도 학원을 다니는 일터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른들의 연애놀음을 흉내낸다.

그러니 삶의 글이라고는 쓰기가 힘들다.

 

 

 

이 시를 잔혹 동시라고 몰아붙이면서 폐기시킬 만큼 어른들은 떳떳한가?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할 만한 시가 아닐까?

아이들의 마음 속이 이렇게 썩어문드러져 가는 걸, 그저 모른 체 고개돌리고 있지나 않았나?

 

이오덕 선생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부끄러워한다.

선생은 그 어둡던 시절 부끄러워하며 일기로 남겼는데,

난 이 부끄러운 세상에... 뻔뻔스럽게도 잘 산다.

 

선생이 교류하던 권정생, 전우익 선생들 역시 세상을 뜬 분들인데,

어둡던 세상에서 스스로 빛이 되어 살아가신 분들이다.

 

찍는 모양이 온 교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보이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총을 멘 경비원이 교실 바로 앞에서 어정거리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니 참 가관이다.

나도 0표에 아무 주저 없이 찍을 수밖에 없었다.(73)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던 현장이다.

투표소에 총을 멘 경비원이라니...

정보부에서 온갖 사찰을 다 일삼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던 날들...

 

현대 회화라는 것도 추상화는 물론 주로 색채를 중심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 생활이라든가 사상 같은 것을 죽여버리고 있다.(100)

 

그렇다. 삶이 없는 추상은, 휘발된 세상이다.

사상의 자유가 없기에, 사상을 휘발시킨 색채만의 세상을 그렸을 터.

 

1980년 6월 1일 일기에는 욕이 적혀있다.

5월 27일 도청에서 학살을 벌인 직후다.

 

이런 시간에 문인협회에서는 무슨 시 낭독회를 한다고 신문에 나 있었다.

개새끼 같은 연놈들이다.(131)

 

아이들에게 반공 포스터, 표어, 글짓기를 숙제로 내 놓았단다.

이게 무슨 놈의 교육인가.

망하는 것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을 것 같다.(135)

 

그 시절이면 내 중학 시절이다.

나도 반공... 많이 적었더랬다. 6월이면 으레 하던 미친 짓...

 

올해 이렇게 역사에도 없는 흉년이 들었는데

쌀 3800만 석이 생산된다는 공보실장은 어떤 낯가죽의 사람인가.(140)

 

광주학살이 있던 그해에는... 여름내 냉해로, 유례가 없는 흉년이 들었다.

어린 내 기억에도 그 여름은 추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일신의 안위를 걸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이제 나는 그런 때를 맞은 것이라 깨닫는다.(172)

 

더럽게 선생일을 하다, 교장까지 했지만,

교육청의 말도 안 되는 탄압은 치사하기 짝이 없다.

 

제가 봐도 학교 관리며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고 있었어요.

오늘 장학사를 장학지도 보내겠습니다.(178)

 

이게 교육청이 하는 일이었다.

눈에 난 교장은 '직무감사' 하듯 탈탈 털던 시절.

교사를 털려면 무조건 근무 태도가 불량하다고 했다.

 

87년 6월 항쟁도 적혀있다.

 

학생들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고 '우리의 소원'도 불렀다.

아, 이럴 때 한번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감격의 노래를 왜 우리는 갖지 못했는가.

애국가는 그걸 부르기만 하면 그만 용기도 상기도 푹 죽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지는 노래다.

통일의 노래란 것도 눈물 짜는 노래밖에 안 된다.(214)

 

그 뜨거운 현장에서 울리던 애국가, 통일의 노래가 구슬프고 한심하기만 하다.

누군가가 보면 이런 것이 빨갱이로 보이려나.

 

조선일보에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 운운한 것에 격분한다.

 

그 젊은이들의 자살은 포악한 정치권력이 죽인 것이다.

운동권 사람들이 죽음을 부추겼기에 죽었는가?

정치권력의 포악에 항거하고 항의한 행동으로 죽었는가.

어느 쪽인가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 억울하고 기막힌 분신자살 학생을,

남의 선동으로 죽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장하다니...

조선일보는, 이 김지하의 글 옆에 또 운동권 학생들과 인사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글을 실어 놓았다.

더러운 신문이다.(250)

 

이제 무슨 커다란 비극 같은 사건이 갑자기 일어나

이 사회가 엄청난 지각 변동을 하게 되는 일이라도 생겨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정신이 돌고 마취가 되고,

그래서 괴상한 동물로 상태가 변해서 차츰 시들고 망해갈 것이다.

그 길이 너무나 훤하게 보인다.(257)

 

전두환의 민정당으로 기어들어간 김영삼이 당선되어 쓴 글이다.

그나마, 비극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지각 변동이 생길 것을 기대했나본데,

작년, 그 커다란 비극이 일어났다.

모두 돌고 괴물로 변했다.

시들어가고 망하고 있다.

 

선생의 수십 년 일기를 이렇게 묶어서 날짜가 훌쩍 건너뛰는 것을 보니,

세상이 조금은 나아졌음을 알겠다.

허나... 미래가 캄캄한 것은 여지껏 마찬가지다.

 

생활을 말한 글이나 노랫말이 없음을 한탄하던 선생.

아이들의 삶이 사립대학의 노예가 되어 학원가기 싫은 날...

엄마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해버린 그 심성을 생각하면... 세상 살기 두렵다.

 

나는 분노하는 데서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어쩌면 분노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이게 잘못인가.

그러나 비뚤어진 것, 악한 것에 대한 분노가 없으면 죽은 목숨 아닌가.

분노야말로 살아 있다는 표현이고 생명의 표적이다.(327)

 

세상은 잠시 밝아지는 날도 있지만,

캄캄한 어둠 속을 걸을 때가 더 많다.

밝아보일 때도 구석구석 보면 어두운 곳투성이다.

분노야말로 삶의 힘인지도 모른다.

 

저를 묻는 날은 모두 즐겁게 찬송가나 부르면서 웃어 주세요.

즐거운 잔치판이 되도록 해주세요.

이 세상 온갖 얽매인 사슬에서 다 풀려나 즐거운 저세상으로 가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412)

 

이 일기를 쓰고 나흘 뒤

2003년 8월 25일 돌아가셨다.

 

칼칼한 그의 의식을 느낄 수 있고,

캄캄한 시대 정신을 더듬을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일기 다섯 권을 찬찬히 읽고 싶다.

 

 

 

 

94. <에세닌 시집>을 <에세느 시집>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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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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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은 사립대의 비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나라다.

초라한 국립대는 10% 남짓이고, 날로 기승을 부리는 사립대는 80%를 훌쩍 넘는다.

유럽의 모형이 아니라 미국 모형을 본따 그렇다는데...

사립대를 손대려 했더니 촛불 집회를 열었던 부자들이 연달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았다.

욕망의, 욕망을 위한, 욕망에 의한 그것.

 

왜 대학생들은 같은 직업에 열광하는가.

수가 많은 게 안전했다.

누군가 그것을 하는 걸 보고, 그것이 가치있는 게 틀림없다고 추정하고, 결국 그거을 원하는 것이다.

마치 연어의 회귀나 컨베이어 벨트처럼...(40)

 

연어의 회귀나 컨베이어 벨트의 공통점은... 사고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다수가 움직이는 쪽으로 사고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

이런 것들이 한국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위험에 대한 격려한 반감으로 나타난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회피하기 때문에 실패할 일이 전혀 없다.

이것이 엘리트 교육의 폐해다.(41)

 

인문계열의 회피, 로스쿨의 인기, 의대의 인기 이면에는 이런 욕망으로 부글거린다.

그 욕망을 더 부추긴 것이 대통령들인데,

자립형 사립고들의 바람을 불러 왔고, 각종 특목고가 양적으로 팽창했다.

 

이 책의 제목은 엑셀런트 십(뛰어난 양)이다.

양떼는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 독창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다수의 행동을 따른다. 안전을 위해 획득한 형질일 게다.

 

이 책을 보니 <스펙 중심의 입시>를 만든 것은 미국 사립대의 꼼수였다.

<스펙>은 우수한 학생이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체육 특기생 같은 경우 승마, 골프 같은 종목은 정윤회 딸처럼

몇 억 짜리 말을 몇 마리는 가지고 있어야 <스펙>이 되는 셈인 것이었다.

 

아이는 칭찬받기 이해 끝없이 추구한다.

그런데 칭찬이란 사랑과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충분히 칭찬받을 수 없다.(84)

 

작년부터 고등학생도 성취평가제라는 것을 적용했다.

그런데 성적이 2원화되어 처리된다.

상대평가인 등급제와 절대평가인 성취평가가 병기되는 것.

문제는, 절대평가인 성취평가 등급은 학교마다 다를 수 있어 신뢰도가 없다는 것.

한국처럼 서열화된 사립대 중심의 입시가 임금 설정의 기준이 되는 나라에서는

상위권 대학에서 '성취평가 등급'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하위권 대학은 어쨌든 학생만 모집하면 되므로, 성취평가 등급을 활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

 

유럽형 학교라고 모두 학생의 성취 수준에 도달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그랑제꼴 같은 정치, 외교 전문 학교에 진하하기 위해서는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경우 죽도록 공부하는 지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핀란드의 경우 성취수준에 도달하도록 가르치는 대표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읽었던

콜롬비아 대학의 '그레이트 북스 프로그램'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다.

고전을 통해 철학, 과학 등의 역사를 배우고, 필수 교과의 의무화가 좋다 싶었는데, 역시 인기가 없었나보다.

 

문제는, 하면할수록 점점 더 못하게 되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부족해진다는 데 있다.

소용돌이 요인.

너무 잘하려고 노력한 탓에

결국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상.(103)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듣는다.

결국 <스펙>이란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야 하는 뺑뺑이다.

군대에서 가장 고달픈 체벌이 '선착순'인데,

선착순 몇 명 안에 드는 사람은 죽으라고 달리지만, 그걸 포기한 사람은 쉬면서 달린다.

어차피 그 안에 들지 못한다면 죽자고 달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한국의 학교 역시 그런 형국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고등교육의 상업화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교육기관이 학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소비자'로 바뀐 것.

지금의 학생들은 A 학점을 받기 위해 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107)

 

재벌 중심 교육과정을 좋아라하는 정권 이래,

대학의 기업화, 상업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전에도 각 기업이 대학에 번드르르한 건물, 도서관 기증하고 기업의 이름을 붙이곤 했었는데,

이제 아예 성대는 삼성대로, 중대는 두산대로 바뀔 판국이다.

 

투자수익률,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119)

 

대학을 가는 이유는 투자수익률 때문이다.

한국은 4년제와 2년제의 월급 차이가 크다.

오히려 2년제와 고졸의 임금 수준이 비슷한 정도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대학이 받는 고액의 등록금은 투자수익률을 담보하는 것일까?

 

대학은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필요한 기관인가?

교육의 유일한 목표는 일자리를 얻게 하는 것인가?

각설하고, 대학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119)

 

그 답은 위에서 말한 것이다. 대학은 <상업적 이윤 추구 기관>이 되어버린 셈.

불안한 아이들을 획책하여 말 잘 듣는 양으로 만든 것.

이런 원칙적인 질문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가 재갈을 물린 셈.

 

1971년 의미있는 인생철학을 배우러 오는 신입생이 73%, 부유함을 위함이 37%였으나,

2011년 이 수는 47%, 80%로 역전되었다.(121)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그물'의 비유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면 그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이 던져진다.

너는 내게 민족과 언어 그리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그물을 뚫고 날아갈 것이다.(145)

 

일자리, 실용적 학과, 대학의 레벨... 모든 것이 그물이다.

한때 삶의 안목을 넓히려 배낭여행을 다니던 젊은이들의 패기는 사라지고,

이제 어학 연수라는 그물 안에서 아이들은 '소비자'로 기능한다.

드디어 '인천 송도'에는 글로벌 빌리지가 생겼으며,

조만간 미국의 한 스테이트로서 영광스런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3월 학기제도 9월 학기제로 바꿔 주시려고 노력 중이시다.

아, 찬란한 어메리칸 코리아의 미래여~!

 

자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이 주입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실패를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실패를 장점이 아닌 허약함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마라.

두려움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 되어야 할 무언가를 방해한다.

차라리 실패가 낫다. - 사뮈엘 베케트"(163)

 

쉽지 않다.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다르다.

'프로그램'은 실패했을 경우 바꿔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시스템'은 무지무지하게 많은 것들이 엮여서 작동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났을 경우 받게될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학적 명제는 '이것이 진리인가?'를 묻지만,

인문학적 명제는 '이것이 내게 진리인가?'를 묻는다.

이것에 내게 맞는 것인가.

이 역할은 대학이 할 일이기도 하다.

고전을 읽는 궁극적 이유는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고전 속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220)

 

현실 분석이 날카로움에 비하자면,

대안 내지 대책은 무디다.

날카로운 현실의 공격적 진행에 맞서기에는 주장이 너무 구태의연하다.

아니 고색창연할 지경이다. 슬픈 현실이다.

 

위대한 스승 역시 삶을 사유할 힘을 준다.

경계는 무너지고

우리는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과 세상을 생각하며 느끼게 된다.

사물을 개별적이 아닌 유기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262)

 

위대한 예술, 스승... 이들은 삶을 사유하게 한다.

사유하면서 산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훌륭하게 사유한다고 극구 칭찬받은 그 학생이 양이라면...

다른 이의 사유를 따라할 뿐이라면... 자기 삶을 살기는 힘들다.

 

교육은 토론을 통해서만 일어날수 있는 교환과 자극 같은 것이다.(274)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토론을 조금 시도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토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는 주제를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로 잡을까 싶다.

아이들이 '과학 중점' 친구들이 많아서 인문과정 아이들과 공통으로 다룰 만한 사회적 소재를 잡아야 한다.

 

토론의 장점은 많다.

그러나, 토론의 한계는 그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토론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그 토론의 배경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되고,

왜 그러한 양식을 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다 보면,

결국 양시론에 빠지기 쉬운 것이 토론의 함정이다.

전두환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같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역사란 계급의 무덤으로

리더십보다 세습 특권층을 더 선호한다.(1964, 발첼의 신교도 기득권층)

 

WASP(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라는 개념이 나온 책이라는데,

상식적으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보다 세습 특권층이 역사의 승자가 되는 일이 잦다는 이야기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라는 멋진 직함을 단 사기꾼이자 장사꾼으로서,

이제 세습 특권층을 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영리단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고의 무상 고등교육 이상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불평등의 대물림을 방지하는 게 핵심이다.

모든 아이가 충분히 기회를 갖도록...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339)

 

글쎄.

참 좋은 말인데...

이 말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리는지...

 

승리하기 전에는 '반값 등록금'을 약속한 것처럼 하더니,

이제 그런 적 없다는 오리발을 고발한 소비자 단체 하나 없는 시스템에서

어찌 평등을 이야기할까...

 

다만 내가 있는 교실에서라도

한 명이라도 더 따뜻한 경험을 가지고 졸업하기를,

그리고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하는 돼지새끼는 나오지 않기를...

예수님조차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라고 하셨듯,

내 욕심도 너무 크지 않게 살 수 있기를...

세상이 너무 극단적으로 불행해지지는 않기를...

다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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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럭키1123 2015-05-2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10 8081 2709 입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나 보기가 역겹다 - 그러기에 아직 늦지 않았어, 마야 로드 에세이
마야 (Maya) 지음 / 뮤토뮤지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폭발적 가창력으로 유명한 가수 마야.

그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의 노래라면 '진달래 꽃' 하나 기억나지만,

그래서 우리 대학 시절 대학로 가면 가장 많이 불리던 '진달래 꽃 피었네~'보다 더 유명한 노래지만...

아니, 그 노래의 리바이벌이지만,

그이 삶 역시 '힘 力'겨웠던 것이었나보다.

 

다부져 보이는 인상과 걸맞게

680cc 바이크를 끌고

그는 강화도로 해서 태안, 목포를 거쳐 제주도를 찍고, 순천, 창녕 울주 돌아 강릉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을 떠난다.

300kg이나 된다는 바이크를 끌고 빗속을 달리는 마야.

멋지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막무가내다.

사진에 대한 설명 한 장 없고,

사진 역시 마야가 찍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스캔한 것인지 설명이 없다.

 

그리고 마야가 그토록 찾아 다니던 '람사르' 늪들의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마야의 삶과 여정으로 엮인 글에 비겨서

어울리는 사진들도 있지만, 맥락에 닿지 않는 사진들도 많다.

그 사진들을 위하여 이렇게 두꺼운 종이를 쓰는 것은,

나무들에게 미안할 일이다.

 

앞 차의 트렁크에는 나무 한 그루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비닐에 칭칭 감겨있는 나뭇잎들이 얼마나 갑갑해 보이는지 지금의 내 모습같다.

내 나이 서른넷.

진공 상태다.(#1, 특이하게 페이지를 넣지 않았다)

 

서른 넷.

나는 그때 어떻게 살고 있었던가.

기록도 기억도 제대로 남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나 역시 진공 상태였던 것 같다.

그나마 아이가 없어 바이크를 타고 훌쩍 떠난 그는 용감하다.

 

집착함으로써 시야는 좁아지고

버림으로써 넓은 세상을 갖게 되는 이 순간 또 하나의 가르침으로 나에게 다가온다.(#41)

 

노래를 통해 누구나 알 정도로 스타가 된 다음,

만들어진 가수로서 갈 길을 찾지 못한 마야.

그가 애써 찾아가는 국악과 인도 음악 등의 막막한 앞길은

분명 먼지 팍팍한 오프로드일 게 뻔하다.

 

흔히 재벌가 회장의 아들이거나,

운이 좋아 스타가 되어버리고 나면, 아무 고민 없을 거라고 상상하기 쉽다.

뭐, 로또라도 되어버린다면... 하고.

그렇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개에 올라보면, 더 높은 비탈길이 저멀리 버티고 있는 것이 삶이다.

 

연주 타법의 손 모양을 개발하고,

독창적인 장단과 가락이 창작 음악에 쓰일 수 있게 새로운 연주 방식을 만들었다.

나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연주자의 모습이 아니라

진리나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다시 시작하려는 나의 음악 인생에 대해서도 아주 격렬히 응원해 주셨는데...(#50)

 

그래. 무슨 일이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구도자이다.

 

삶에서 묻어나는 진한 향기를 적으면 문학이 되고,

그 고단함을 찍으면 '인생'이 된다.

 

남의 인생은 편하고 쉬워 보이는 법인가보다.

자기 삶은 비루하고 고단해 보이고 말이다.

 

훌쩍, 바이크를 몰고 떠나는 일이 쉬워보이지만

제 몸무게의 대여섯 배 되는 기계를 안고 다니는 일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그의 노래가

우주를 쩌렁쩌렁 울릴 감성을 얻기를 기대한다.

 

 

고칠 곳...

#7. 고바우(고개)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こうばい → 오르막, 비탈, 고바이는 일본말이다.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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