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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우리 시대 여성 멘토 15인이 젊은 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
김미경 외 지음 / 글담출판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한국은 참으로 특이한 나라인데,
여성평등지수인지... 하는 것이 거의 세계 최하위다.
교육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시켜 놓고 소득은 남성의 60% 수준이란다.
이유는... 여자라서.
수업 시간에 '각자도생'이란 한자성어를 풀이하는 데
한 녀석이 '우리 나라네요.' 한다. ㅋ
그렇다. 한국은 각자도생하는 나라다.
그래서 이렇게 교육열이 높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흔들리는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글을 쓴다.
너는 깨달았지. 지금 지구를 거머쥔 신자본주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한 시절의 트렌드일 뿐이라는 걸.
유행 타는 것들의 요동에 함께 뛰지 않고
항구적인 가치와 연대해 나가는 균형 감각.
그것만이 이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걸.(여행작가, 오소희)
불안이 극도로 강한 이 시대.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이런 말들이 위안이 된다.
갈등이 없는 사람은 정체되어 있는 사람이야.
자기 틀에 안주할 위험이 있거든.
그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고뇌의 끝을 움켜쥔 사람만이
인생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지.(심상정)
스스로 얼마나 불안하며 갈등했을까.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뿌리치고 노동 현장에서 살았던 그 삶이...
올 것 같지 않은 밝은 세상을 향해 힘을 모으던 그 시간...
울렁증은 고마운 선물이지.
새로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면
배우로서 성장이 멈추는 거야.
단점이 있다면 그걸 넘어서기 위해 두세 배 노력하면 되지 뭐.(뮤지컬 배우, 홍지민)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을,
스스로의 결단을 소중하게 보듬을 줄 안다.
물론 그 노력이 시대적 불화를 잘 이겨냈기에 지금 꽃을 피운 것이겠지만...
삶이라는 것은 네가 스스로 유지하는 균형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균형을 도와주는 거지.
마치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누는 것처럼.(만화가 원수연)
'풀 하우스', '메리는 외박 중'같은 만화를 그렸다는데,
암튼 조용한 성격이었음에도 균형을 생각하는 생기발랄 작가다.
최정화는 너무 못하는데
정말 열심히 해서
진급시험에서 떨어뜨릴 수 없었다던 여러 교수님들...
나 역시 학생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통번역가, 최정화)
프랑스로 공부하러 갔는데,
눈물나게 고생했던, 400% 노력한다는 투철한 똘똘이...
그렇다.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교사의 할 일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말이다.(화가, 윤석남)
마흔이 넘어 붓을 잡은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윤석남 할머니.
나도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수 있겠지?
쓰고 읽는 건 힘들 거니까는...
그림이거나 악기 연주거나...
숨쉬기도 힘들테니, 플루트를 계속 불꺼나.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이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근거를 만들라고,
자신감은 필요할 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작은 것, 사소한 것 하나라도 최선을 다해서 성취해 냈을 때 비로소 가질 수 있지.
나를 믿을 수 있는 근거, 희망의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였을 때
우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 역시 기를 수 있다고 봐.
그동안 네가 만들어준 희망에.(스피치 강사, 김미경)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감 부족'일 거야.(건축가, 지순)
아이를 기르며 여성의 몸으로 제1호 건축사가 된 사람.
자신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과거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자신감도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는 김미경의 말도 어느 정도는 옳다.
그러나, 살면서 천천히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하지만 정시에 출퇴근하는 너와
늦게 출근하고 중간에 자기 볼일을 보고 늦게까지 일하는 동료를
비교하면서 상사가 '박남희 씨도 야근 좀 해보지'라고 이야기할 때
너는 화를 내지 않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어.(공학도 박남희)
그런 남성들의 세계에서 사는 여성들은,
바깥 일을 하면서도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는 소리를 듣는다.
집안 살림을 해야 하고, 육아에다가 아이들 공부까지 책임지듯 맡긴다.
여자아이들일수록, 생각이 깊다.
그럴수록 더 단단하게 자라도록 다독거리고 부추겨 주어야 하겠다.
아이들을 채찍질하기만 해서는 '미쓰 리플리(거짓말 상습적으로 해서 허구를 진실이라 믿는 병)'를 양산하기 십상이다.
오직 경쟁과 비교만 하는 '비교육'이 일상인 이 나라에서나 가능한 '판타지'가
몇년 전의 신정아나, 최근의 천재소녀 보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적표의 성적을 조작하면서 얻는 판타지의 기쁨.
비교와 경쟁으로 점철된 '사교육의 광장'에서는 그 판타지를 없애기 힘들다.
'공교육'은 멸절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