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 단편소설로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인문학
김병섭.박창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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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시한의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소설이 있다.

'왜냐 선생'이라고 불리는 교사는

허생전을 소재로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전교조 원년의 폭풍기...

토론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는 여고의 독서토론 방과후 학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세상과 조우하기도 하는 십팔 세 소녀들.

 

얼마 전,

아이들은 실제로 그 방송을 보기도 힘든 시간에

열 여덟의 아이들은 학교 자습실에, 학원에 파묻히는 시간에 방영된

학원물, '후아유'가 인기를 얻었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도 등장하고,

자아가 분열된 아이도 등장한다.

물론 미남 미녀들로 캐스팅된 드라마는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청년들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려 노력했던 긍정적인 드라마였다.

 

세상은 뫼르소의 '이방인'처럼,

자신이 평가받는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

이유도 없이 타인의 지시로 삶을 재단당하는 '부조리'한 공간이다.

 

소설은 부조리에 대하여 말하는 문학이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학생들은,

소설 속에서 마찬가지로 '피투성'을 가진 존재들에 공감하게 된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하여 느끼는 불안감을 그린 소설들이

부조리한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과 엮어내는 이야기들이 읽을 만 하다.

 

물론, 이렇게 수업하는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어떤 아이들이 모이는가도 관건이 된다.

수업료를 내고 듣는 방과후 수업 시간에 독서 토론을 하는 일이

그야말로 학생 희망대로 듣게 되는 수업이라면 바람직하겠으나,

지금처럼 울며 겨자먹기로 차선을 찾아 다니는 수업이라면... 제대로 이뤄질지... 두렵기도 하다.

 

책읽기 좋아하는 고딩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

자식에게 책읽으라고는 하지만, 과연 책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얻을지 모르는 부모도 함께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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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8-16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백배 공감!!

글샘 2015-08-20 15:27   좋아요 0 | URL
네. 독서토론 지도하는 분은 반드시 읽어야 할... ㅋㅋ

푸른희망 2015-08-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야겠군요 저 마지막 문장을 보니~^^

글샘 2015-08-20 15:28   좋아요 0 | URL
청소년 소설이지만, 독서 지도 방법이 잘 나와있습니다.
 
집에 가자 삶창시선 43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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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아팠다.

집에 가지 못하는 혼령들에게 주문을 거는 만신의 주절거림 같았기 때문이다.

그 배에 탔던 아이들에게

엄마 목소리로 들려주는 웅얼거림인 것 같아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아팠다.

많이 아팠는데,

아플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더욱 아팠는데,

그 아픔은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굳은 옹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리고 아픈 사람과 아파야 할 일은 너무도 많아서...

그 아픈 사람들 곁에 가서 잠시 웅크리고 앉았던 일만으로도,

이미 많이 아픈 시인은,

몸소 위로가 되어주는 시들을 길어 올렸다.

 

한 우주가 사라질 때

오, 천사여

당신 날개는 어디 있었는가(문자를 애도함, 부분)

 

꼭 아이들의 혼령에게 바치는 진혼곡만이 아니라,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에게,

밀양 아리랑까지...

마치 스스로가

속이 터져나올듯 울어제치는 '버버리 곡꾼'마냥

언어나 문자로 이루어져 나오지 못하는 마음을 어버버버 거리는 그 심사가 전해진다.

 

살아서 죽음과 포개진 그 여잔 꽃 바치러 세상에 왔네 세상에

노래하러 왔네 맞으러 왔네 대신 울어주러 왔네

어느 해 흰 눈 속에 파묻힌(버버리 곡꾼, 부분)

 

참 착한 시인이다.

착한 사람의 마음에는

짠한 과거도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 남는 법.

그래서 착한 사람은 오래오래 아프다.

 

이상하기도 하죠 스무 해 전에 도망쳐 왔는데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다니

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요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

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있다니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제자리에 선 뜀박질이었다니요(어진내에 두고온 나, 부분)

 

앞으로 달려온 줄 알았는데... 다시 수십년 전으로 회귀한 세상이라니...

참으로 침통한 시들만 연달은 것이 아니다.

 

제일 첫 시는,

사람의 삶이 그토록 비극적일지라도,

오늘 하루 사는 그 힘을 적는다.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도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인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소 새겨진(니가 좋으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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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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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산 적은 없지만,

아이를 기를 때, 직소퍼즐을 맞추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은 직소퍼즐 맞추는 경험과 비슷하다.

 

처음엔 테두리부터 맞춰나가기도 하지만,

가운데 조각들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야기는 통근 기차의 레이첼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점이 겹쳐진다.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마치 다른 소설을 읽듯 꾸미는 소설은 흔하지만,

이 소설의 시점들은 시간까지 일치하지 않아 조금 까다로운 퍼즐 조각들이

일치와 발견의 쾌감을 지연시켜 준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기억...

알콜리즘으로 고통받는 레이첼의 기억과 살인 사건의 고리는 갈수록 혼미해지는데...

 

우리는 기억을 상실한 동안에는 기억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137)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금세 풀려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빈약하고 불완전한 증거에 근거하여 애먼 사람을 경솔하게 체포한 수많은 사례 중 하나'라고 말한다.(221)

 

재미있다.

하나의 스토리가

하나의 범인을 쫓기 위해 올가미를 조여가는 전형적인 미국식 헐리우드 스릴러와는 다르다.

여럿의 시선이 서로를 의심하는 중에

뜻밖의 범인을 등장시키는 조금 느림을 추구하는 색다름이 있다.

 

광고를 무진장 때리는 작품이 읽어보면 시시한 경우도 흔한 요즘,

광고만큼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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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독서 - 국어샘과 진로샘이 함께 만든 우리학교 독서 시리즈 1
김영찬 외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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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중에도,

아직 목표 대학이 없다거나

희망 직업이 없다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꿈이 없는 것은 지금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막상 본인들은 답답해 하기도 한다.

 

직업 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하니 당연한 일.

이 책에서는 제빵사, 야구선수, 농부, 고고학자, 물리학자, 적정기술자, 광고디렉터, 미용사, 가수,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경영인, 정치인, 피디, 기술자, 은행가, 법조인에 대하여 설명하고,

거기서 파생된 유사 직업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함께 읽을 수 있는 문학 작품이나 기타 글들도 간단하게나마 엮고 있어서,

어떤 직업의 세계가 있는가~

휘 둘러볼 수 있는 한 판의 박람회로는 충분하다.

 

관심을 가지고 더 깊이 찾아볼 수 있도록 씨앗을 심어주기에 좋은 책.

중고생들이 방학에 한번 뒤적거려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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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07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되려 꿈이 없어보이는 아이들이 답답해 보였는데 지금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방증일 수도 있군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유배중인 나의 왕
아르노 가이거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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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매는 dementia라고 한다.

멘탈이 딜리트된... 정신이 없어지는... 상태를 일컫는다.

치매의 원인으로는 알츠하이머가 50%쯤 되고, 혈관성이 또 나머지의 절반, 그 나머지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다.

나이가 들면서 뇌가 경화되고 쭈그러들면서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는 치매.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기억력의 손상은 심하지만,

언어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신선하다.

 

아버지는 프란츠 카프카나 토맛 베른하르트의 소설 주인공이 말했음직한 문장들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심하게 무능력해

정말 심하게 무능력해.

나는 모든게 이해되지 않아.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128)

 

아버지의 입에서는 낱말들이 거침없이 쑥쑥 나왔다.

아버지는 느긋했다.

생각나는대로 말했고, 그렇게 생각나는 것은 종종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깊이가 있었다.

왜 나는 저런 말이 안 떠오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현이 어찌나 정확한지, 어조가 어찌나 적절한지,

또 단어 선택은 어찌나 능숙한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116)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주소는 맞지만,

그건 누가 문패를 훔쳐서 여기다 갖다 붙여놨어.(60)

 

치매 환자는 모든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오히려 엉뚱한 사고력은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치매 환자는 천차만별이어서 일반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환자의 본성을 헤아리기는 어려우며

치매는 환자마다 제각각 능력과 감정, 병세가 다른 특수한 병이다.(108)

 

흔히 치매 환자는 어린아이 같다고들 한다.

이것은 화가 치미는 비유다.

아이들의 본성은 앞을 향해 발전하는 것인데,

다큰 어른이 어떻게 어린아이로 뒷걸음질 하겠는가.

아이는 능력을 얻고, 치매 환자는 능력을 잃는다.

아이와 같이 지내면 발전을 보는 안목이 날카로워지고,

치매 환자와 같이 지내면 상실을 보는 안목이 날카로워진다.

노년은 일종의 미끄럼틀이고,

노년이 안겨주는 커다란 걱정거리 하나는 그것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17)

 

그렇겠다.

비슷한 천진함을 보이지만,

아이들은 급격히 재바르게 발전하는 반면,

노인들은 완만하게 상실의 경험을 두고두고 반복하는 지루한 날들이라는 것.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알지 못하거니와...(시편 103:15)

 

스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 백세의 시대. 장수만세의 꿈이 이루어졌지만,

인간의 고귀함이 함께 담보되지 않아 쉽지 않은 문제다.

 

뭘 해도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어.

하지만 많은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잘해내면 같이 기뻐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내 태엽은 빠져버린 것 같아.(177)

 

노인이 죽음에 다가가는 것은 쌍곡선이 직선에 다가가는 것과 같다.

아주 서서히 방향이 달라지고 있어서 서로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언제 만나게 될지는 불확실했다.(토마스 하디, 164)

 

저항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어.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쌍한 개나 다름없지.(153)

 

아내가 요양병원에 근무해서 듣는 일이 많은데,

치매도 착한 치매가 있고 나쁜 치매가 있단다.

이 할아버지는 평소에 착하게 살았나보다.

나쁜 치매 환자는 계속 욕설을 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하니...

 

상태는 급변했고, 얼마나 성심껏 보살핌을 받느냐에 좌지우지되었다.(118)

 

치매 환자에게는 심리적 안정과

가족의 지지가 참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건 아내의 대학원 논문 준비과정에서 주워들은 말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아버지가 생각에 잠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마치 마음 속의 마지막 용수철이 튕겨나간 것만 같았다.(24)

 

결혼 과정에서 이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보통 결혼생활동안 높은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한다.(91)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바벨탑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각자 자기만의 언어로 '당신은 날 이해 못해'라고 말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중대한 주제는 안식처, 안주, 안정감이었고,

어머니는 자극을 찾았다.

어머니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새로운 것을 열망했다.(93)

 

결혼을 잘못한 부부는 많다.

그들의 성격 차이가 그리 큰지는 살아 가면서 알게 된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낳고 스스로를 닳게 하면서 살게 되지, 쉽게 헤어지지 않는다.

헤어지는 것 역시 고통의 하나니까.

그렇지만, 배우자의 상실은 심리적 지지의 측면에서 상실감 지수가 가장 크다고 한다.

고통이 치매를 유발할 수 있겠다.

 

 

아버지, 사는 동안 언제 제일 행복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랑 형제분들이요?

 

아니, 내 아이들이.(85)

 

치매 환자들에게 가까운 과거는 잊히지만,

먼 과거는 추억의 앨범으로 남는다고 한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조차 잃는다면, 치매 환자가 반추할 양식이 없으니,

그나마 하느님이 주신 노후의 선물이 아닐까?

 

어제 '지중해 심연으로 사라진 프리다이빙의 여왕'이란 기사를 보았다.

 

9분 이상 잠수할 수 있었던 이 여성이

잠수한 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사고일 수도 있지만,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 자신만의 집을 물속에 지어 두고

스스로 왕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폐되는 일은 슬프다.

그렇지만, 왕은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노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

 

http://blog.daum.net/hanjeonman/1130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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