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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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둥지를 튼 유레카라는 분이

포토에세이를 내시고는

희망자에게 보내주신다고 해서 책욕심에 받아 들었다.

 

요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참 찾기 쉽다.

나는 기계치는 아닌데도 기계를 사고 다루는 일을 좋아하진 않는데,

그 무거운 사진기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이들 보면 신기하다.

 

글을 매일 쓰지만 신통한 글 만나기 쉽지 않듯,

사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게다가 그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일 듯.

 

사진은 빛을 기록에 남기는 일이고,

사물에 의미를 더해 포착하는 일이다.

 

그것을 '소리 없는 빛의 노래'라고 부른 것은

얼마나 머릿속에 고심한 끝에 나온 말일지가 이해가 간다.

아마, 목욕탕에서 '유레카'하고 떠오른 생각일 게다.

아니, 화장실이거나. ㅋ

 

기억은 잔영의 일부,

우리가 살아가며 체득한 모든 것은 일부만이 스케치된다.

때로는 가까워서 진하게,

때로는 멀어져서 연하게.

 

그러고 보면 지나고 나니 사는 것은 다 환상의 흑백 편린.

사진이라는 게 내가 팔 뻗어 닿을 만한 것들에서 부닥치는 현실의 모순적 잔상.(89)

 

시간이란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시간은 없다.

느낄 수도 없고,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말로 붙들어 두려는 일 자체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듯,

사진 역시,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다.

 

잡을 수 없는 '노래'에 대한 애정이 인간에게 가득하듯,

잡을 수 없는 '빛'과 '시간'에 대한 애정 역시 가득한 것이 사진이다.

 

같은 것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산내면에는 별다방이 있다.(110)

 

읍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으레 산내면이 있다.

스타벅스를 농삼아 별다방이라고 하는데,

시골엔 진짜 다방이 있다.

텁텁한 공기에 훈훈하고 좀 답답한 실내,

그리고 반드시 있는 마담, 또는 새끼 마담.

사진찍고 다니는 이들이 훈훈하게 잠시 쉴 수 있는 다방일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것도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여 잡는 이가 사진가이듯,

나도 이 구절은 달리 들린다.

 

산 내면에는 별 다방이 다 있다...

산은 '깊다'고 말한다.

깊이는 수직적인 거리를 의미하는데,

산의 경우는 물의 깊이와 다른데도 깊다고 한다.

사람 마음이 속 깊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별 사람도 다 있고,

별 일도 다 있다.

 

갈매기가 알을 물고 있는 사진이 표지에 선정되었다.

소리 없는 빛과 노래를 잡으려는 작가의 노력이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고 쉼표인 책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글을 써주기를 바란다.

나처럼 게으른 이는 무거운 사진기 들고 산을 오를 계획이 없으니,

남의 어깨에 올라타 무임승차하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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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1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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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1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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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69호 - 2015.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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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한 다정다감/ 박성우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 장모님도 '김정자'다

내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고

내 장모님은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둘 다 산골짝에서 나서 산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다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가 아까운 터에

봉화 김정자와 함께 정읍 김정자한테로 갔다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를 위해

간고등어가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겼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를 위해

시금시금 무친 장아찌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 내외에게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한 방을 내주었으나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 방으로 건너갔다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내 장인님을 독숙하게 하고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로 건너가 나란히 누웠다

 

두 김정자는 잠들지도 않고 긴 밤을 이어갔다

두 김정자는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소리는

아내과 내가 딸과 함께 자는 방으로도 건너왔다

죽이 잘 맞는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는

다정다한한 얘기를 꺼내며 애먼 내 잠을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이른 아침,

한 김정자는 쌀씻어 솥단지에 안치고

한 김정자는 화덕불에 산나물을 삶고 있다

 

 

책을 뒤적거리면서 읽고 싶은 글을 찾노라니,

읽고 싶은 꼭지를 찾기 힘들다.

삶이 팍팍해 그럴 게다.

그나마, 박성우의 이 시가 참 좋았다.

얼마 전 읽은 백무산의 시도 좋았다.

 

서민의 메르스 사태 소론이 읽을 만 했는데, 결론은 너무도 뻔한 것이어서, 아쉽다.

그가 좀 더 책임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런 아쉬움.

 

신경숙은... 신물나고 시들하며,

세월호는... 혈압만 치솟고 눈물이 앞을 가려 못읽는다.

 

요즘 소설들은... 왜 전망을 가지지 못하는지,

과거와 분리된 현실은 전망을 갖지 못하는 불임이 되는 것인지...

 

시대를 분석하는 글들 역시,

힘이 없어도 너무 없어... 이 두꺼운 책이 참 힘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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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5-09-1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선생님......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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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의 마력은,

신선한 스토리의 발단 이후로,

이야기가 냅다 내달리는 글의 힘에 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참신한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실종된 여친을 찾아 나서는 찌질한 남자의 이야기부터는

내가 읽기 싫어하는 류의 지지부진함이 이어진다.

 

웃을 일이 아니야.

쳇, 기왕에 피를 나눈 사이라면 어디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타났으면 좋았잖아.(94)

 

미래에서 온 아들이라는 설정에,

아버지라는 작자가 내뱉는 언사는 철부지다.

아들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남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고,

한심하지 않느냐고 묻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한심해요.

멋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의 음식까지 훔쳐 먹다니 들개랑 다를 게 없잖아요.

그래. 나는 들개야.

개나 고양이랑 똑같은 인생이야.(130)

 

이런 아버지의 인생에 주는 아들의 교훈.

 

어머니가 될 레이코에게

달려온 도키오가 들려준 말은...

 

계속 열심히 살아 주세요.

분명히 훌륭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470)

 

도키오라는 이름은,

때 시, 살 생... 時生....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다.

 

삶이란, 시간을 살아가는 일인데,

자칫하면, 도키오의 아버지 다쿠미처럼 되는대로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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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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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아, 이 나라를 어쩔꺼나.

이제 '인양'이라는 글자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되었으니...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

고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

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아우슈비츠도 731 부대

도 거기서 행한 생체실험으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하지 않

았느냐고 공이 7이지 않았느냐고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

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

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 사회를 들어올리

는 부력이라는 것을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그걸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

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제올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인양, 부분)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노해'는 이제 인간 사랑을 외치는 쪽으로 갔다.

무산자 프롤레타리아 편에 섰던 '무산'은 아직 인간의 폐허 곁에 머무는가.

 

뒤집어라 그들의 명령과 지시를

그리고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르라,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스물두살

4월을 품은 여자 박지영, 그가 최후의 선장이다

그 푸른 정신을 따르라, 뒤집어진 걸 바로 세우게 하는,

죽음을 뒤집는 4월의 명령을!(세월호 최후의 선장, 부분)

 

세월호 이후, 이 나라는 죽음의 골을 향해 전진중인 것 같다.

아니, 뒷걸음질로 나락을 향해 기어드는 형상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낯을 쳐들고 뱀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독사들로 가득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도저히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새벽 잠결에 듣는 도마질 소리

놋그릇 부딪는 소리

바가지 물 붓는 소리

마른 감나무 가지에 산까치 짧은 날갯짓 소리

 

감은 눈에 비쳐드는 흰빛

깊은 곳에서 뼈를 적셔오는 흙의 온기

꾸던 꿈과 뒤섞여 흩어지는 바람 소리

 

낡은 놋주발에 김 오른 고봉밥

질그릇 보시기에 고추채 올린 백김치

들기름 내 묵나물 찬에 까만 간장 종지

거뭇거뭇한 놋수저 한 벌

 

문틈에 스며드는 솔가지 타는 연기

옻칠 벗겨진 개다리 소나무 밥상

상을 들이고 가는 감물 들인 옷 내

마당 가득 고여드는 푸른 산기운

 

내가 제사상을 받은 걸까

밤길 더듬어 잔설 밟고 오르던 길

질기게 기억을 물고 따라오던 슬픔들

저 길 밟고 간밤에 나의 여럿이 돌아가고

 

저승에서 맞는 신접살림

말간 동치미 국물 그 신맛의 첫날 같은(지리산 그곳, 전문)

 

지나간 시간들의 체취는 온몸을 간질거린다.

이런 기억들을 품어 주어 감사한다.

그리고 청맹과니가 되어

바라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도록 눈 띄워주는 시의 힘을 일깨워줌에 감사한다.

 

여기서 저기 붉은 깃발 손짓하는 지점까지가

비무장지대다

이로써

우리는 무장지대에서 살아왔다(무장지대, 부분)

 

비무장지대... DMZ

그곳을 마치 무서운 곳처럼 생각하지만,

그렇다. 비무장지대가 아닌 곳.

여기는... 핵무기로 무장한 무장지대인 것이다.

그것을 잊고 살았다.

무섭다.

 

빈집을 보면 사람들이 쑤군거리지

사람 떠난 집은 금방 허물어지거든

멀쩡하다가도 비워두면 곧 기울어지지

그건 말이야 사람이 지독해서야.

 

벽과 바닥을 파먹는 것들

기둥을 물어뜯는 밤의 짐승들

쇠를 갉아 먹는 습한 이빨들

사람 사는 걸 보면 질려 달아나지

사람 사는 일이 모질어서야 그건(빈집, 부분)

 

신선하다.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던 걸인

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어이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상인에게 상술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걸인에게 동냥의 공

정거래를 요구할 참인가 정치꾼들의 쇼는 전략이라는 건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

장하고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

겠다던 정치인들의 계급 위장은 고상한 전략인가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뿐인가

진화를 교란하고 기적을 연출하는 인간들이 그들뿐인가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 멀쩡하게 일어나는 기적과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깛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 기적인가(호모에렉투스, 부분)

 

유추도 이 정도 되면 예술이다.

사기꾼 걸인과

사기 정치인...

걸인을 지탄하는 손가락에 비하면, 정치가에게 향하는 손가락은 조심스럽다.

법은 10,000인 앞에만 평등하기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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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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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가가 형사가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탐문을 다닌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들은 각자 독립적이면서,

서로 조금씩 공통인수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다.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인가 싶어 좇다 보면,

사실은 결정적 살인 사건의 단서이기보다는,

인간 관계의 꼬인 지점에서 가가 형사의 인정이 돋보이게 되는 소설.

 

가가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278)

 

유추가 되는 사물들도 예사롭지 않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188)

 

사소한 소재들 하나하나도

뒷이야기의 복선이 되고,

신선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전 말이죠.

이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몹쓸 짓을 한 이상 범인을 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알아낸 진상으로부터 배울 점도 많을 겁니다.(426)

 

가가의 이런 말은 그저 훈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또 하나의 매듭을 풀게 하는 것이다.

결자해지의 방식으로...

 

이야기와 이야기가 조금씩 연쇄적으로 겹치는 기법도 재미있고,

사람간의 갈등을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통해 녹여내는 스토리텔링도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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