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그의 '보다', '말하다'에 이은 3부작인데,

이 책이 제일 낫다.

작가는 온 몸을 감각기관으로 삼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글로 나올 터인데,

아무래도 이 작가가 한국 현대사에 정통해 보이지는 않고,

뭐니뭐니 해도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이

작가의 본질에 딱 맞는 듯 싶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삶의 양식을 전달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그리하여 그의 읽기에는

당연히 최초의 이야기로 회자되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만담가 수준인 돈 키호테와 천 일일 밤의 이야기, 보바리 부인도 등장한다.

카프카가 거론되고 까뮈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는 나의 만족도는 10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말들을 들었지만,

문학적인 이야기들에 대하여 김영하의 '읽다'는 소중한 책이다.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낄 때,

'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21)

 

오이디푸스와 오디세이아도 그렇다.

연대기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지루할 따름이다.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이야기로부터 배웠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걸 인간은 과연 무엇입니까.

인간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69)

 

그렇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텔레비전에서 이야기한 것을 철두철미 믿었다.

 

전두환 각하가 혼란스러운 국가를 안정시키신 분이라 믿었고,

한국에 '정화'와 '질서'를 내리신 분이라 믿었다.

대학생들은 '좌경화'되어 '의식화' 된 인간들이라 믿어,

입학 후 대자보도 읽지 않고 에둘러 다녔다.

 

그러나, 밥 사준다던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

독서 모임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읽은 책들, 백기완, 리영희, 한완상 선생 등의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듣고 읽은 것들과 상반된 주장들을 접했다.

 

이런 것들이 지금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하께서 '복면 금지', '폭력 금지'에 대해 말하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대신 욕을 한다.

책이 나를 이렇게 바꾼 것이다.

 

'롤리타'에서 나보코프는 쉴새없이 영어를 가지고 언어유희를 벌입니다.

강간범 the rapist과 치료사 therapist를 비교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치료사를 강간범으로 인수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126)

 

김영하와 함께 하는 책 이야기는 재미있다.

카프카와 카뮈가 재미없거나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고 다시 도전해 본다면,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자기가 이전까지 살던 세상에서 스스로 '에뜨랑제(이방인)'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

냉혹한 심사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책의 힘임을 알기에,

영화 '변호사'에서 보듯 어두운 시대에는 독서도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다만, 책은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길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고,

그 길을 부정할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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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읽어 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는 글이 있는 반면,
흥미로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이야기하는 글도 있거든요.
이책은 전자에 속할듯한 리뷰..잘 읽었습니다~
 
상(차리는)남자? 상남자! - 삶이 따뜻해지는 다섯 남자의 밥상 이야기
조영학.유정훈.강성민.이충노.황석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가 왔다.

게다가 남자 셰프들의 허세가 안방을 주름잡고 있다.

 

이 책은 셰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다 음식을 만들게 된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아이를 위해 밥을 차리게 된 아빠의 이야기부터,

번역가 부부의 공동주방 이야기도 재미있다.

비교적 전문적 용어를 술술 구사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내공이 있어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방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 된다는 것.

 

<집밥>에 대한 환상에는 지난 시절 여성들의 삶이 생략되어 있다.

모든 집에서 맛있는 집밥을 먹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여러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집밥의 추억은

외식을 하거나 패스트푸드로 대충 때우는 현대식 식사와 대비되어 자주 등장한다.

 

아직도 한국의 남녀평등 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거기는 가정의 역할 분담도 필수적인 요소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성역할의 연장선인 <시월드>까지 여성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음식에 있어 나를 키운 건 8할이 인터넷이다.(112)

 

레시피를 찾는 일은 간편하다.

인터넷을 뒤적거려도 제법 괜찮은 레시피를 만나기 쉽다.

 

주방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개운하다.

음식물찌꺼기 통까지 세제를 묻혀 싹싹 닦고 여기저기 튄 물을 행주로 다 훔쳐야 설거지가 마무리된다.

주방의 불을 끄기 전 한번 뒤돌아본다.

정리된 주방과 정리되지 않은 주방은 천지차이다.

잡티와 물기 없이 잘 닦인 식탁과 싱크대, 겹겹이 쌓인 그릇들은 마치 누군가 마법을 부린것 같다.

아니 저게 좀 전까지 폭격 맞았던 주방이 정녕코 맞단 말인가.

흐뭇하게 불을 쓰고 돌아서면 주방은 다음 끼니때까지 정적에 잠긴다.

주방의 휴식이 정갈하고 깊다는 건 삶의 은밀한 기쁨이다.(99)

 

나는 이런 성격이 아니어서 도저히 이 수준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저런 세밀한 노동의 강도 이상을 직장에서 에너지 소모하도록 탈진한 몸이

집에 가면 도저히 에너지를 낼 염이 나지 않는다.

 

늘 집에서 음식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집밥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밥을 한다는 것은 단순이 예능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참고하여

그럴듯한 요리 한접시를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79)

 

집밥을 한다는 것의 본질을 이 책의 남자들은 알고 있다.

바로 먹는 상대가 즐거워한다는 것.

같이 피곤한 상태에서 좀 덜 피곤한 사람이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이 사회에선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물 온도를 맞추고 퍼지지 않게 수란 잡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달걀의 신선도.(75)

 

그렇다.

달걀은 프라이 하나를 해도 신선도가 결정적이다.

기술이 필요한 음식은... 백선생 말대로 ㅋ 사먹으면 된다.

 

화목한 가정에 대한 집착은 적어도 내게는 실존의 문제(38)

 

어린 시절 가정 해체를 겪은 남편이 아내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다 주는 이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요리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그러나 오직 하나.

밥상에 앉으면서 '와 맛있겠다' 하는 리액션과,

다 먹고 나서 '오늘 음식 정말 맛있었다.'는 작은 칭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실존'적으로 안다는 것.

 

음식을 같이 먹는 일만큼 '실존'적인 일은 없으니까,

부엌에 가면 고추가 떨어질 것 같은 '본질'따위 집어 치우고,

남자들도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남자가 요리 하면 더 '가오'가 사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128. 말린 청어알을 일본어로 '카즈노 코'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数の子'라고 쓴다. '數の子'와 같아 보이지만, 일본어이므로 뒤의 글자는 틀린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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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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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마음아픈 말이다.

 

산문은 이 세계를 쓸고 닦고 수선한다.

그렇게 이 세계를 모시고 저 세계로 간다.

그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271)

 

이 책의 마무리가 이러하다.

시를 필터로 삼아 세상을 읽는 일은 무정하다.

 

산문은 세상을 설명하려 든다.

어떻게든 세상을 포획하려 애쓴다.

시는 이 세계를 깨뜨리는 언어.

무정한 당신을 하염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는 인간.

 

각 이야기 꼭지의 첫 표지에는 얼룽얼룽 비치는 물빛 그림자 사이로

이야기가 드러내는 핵심 구절들이 적혀 있다.

단 한 페이지 빼고.

그 페이지는 새까만 깜장의 세계다.

황현산의 마음이 아마도... 그렇게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어느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노비가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벌써 착란이며,

나무 위에 허공이 있으니 그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벌써 투시자다.

허공은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지 않은가.

꽃나무는 여기 있지만 꽃이 필 자리는 저 허공이 아닌가.(39)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을 읽고 있다.

그는 착란을 본 사람들 중 하나였다.

허공을 포착하는 투시자.

그들이 시인이다.

 

오늘 새벽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김일성 수령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면... 아마도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교가 절단나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외환위기까지 왔던 것은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3당 합당을 통하여 대통령이 되었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김영삼 만큼의 리더십도 없는 자들이 그 지분 나누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한 시대는 가고 있다.

 

시대가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

우물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때로 맑고 때로 어둡다.

 

내일 날씨가 어떠할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든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겸허한 표현이지만,

그나마 이런 어른이라도 옆에 있어야 한다.

어른이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두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고칠 곳...

 

16. '광야'는 3행으로 된 시가 5연으로 짜여 있다.

그리고 각 연은 윗변이 아랫변의 절반쯤 되는 사다리꼴 모양이로 적혔다.

그렇게 연 구분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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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의 시 - 2014-2015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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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론은 사유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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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 마음에 용기와 지혜를 주는 황선미의 민담 10편
황선미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비룡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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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의 세계 민담 전집에서 황선미가 가려뽑아 쓴 이야기가 열 편 실려있다.

 

민담은 설화의 한 갈래로서,

평민들의 삶이 잘 묻어나는 민중의 지혜가 담겨있다.

 

보통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착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기괴한 인물을 만나 시험을 겪게 된다.

착한 주인공은 시험을 통과하면서 행운을 얻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폴란드 4편, 프랑스 2편, 스페인, 영국, 터키, 이탈리아의 민담들인데,

우리가 어려서 듣던 한국 민담들과 대동소이하다.

 

어느 나라든,

왕이나 귀족들에 비하면 민중들의 삶이 더 힘들었을 것이고,

거기서 지혜를 발휘하여야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황선미의 이야기는

조곤조곤 읽어주기에도 좋은 말솜씨를 숨겨 놓았다.

아이들 잠자리에 읽어주기엔 좀 무거운 책이지만,

책상 앞에서 같이 읽으며 놀기에 좋다.

 

이보나의 그림에 꼭 책을 읽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은연중에 독서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효과를 거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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