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감 - 지친 나를 일으키는 행복에너지
이주은.이준 지음 / 예경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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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이 글을 쓰고, 드문드문 이준이라는 셰프가 나와서 이야기를 거드는 식의 책.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은

반드시 그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많은 소설 이야기, 영화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가득 들어 있고,

그 틈틈이 그림 이야기도 곁들여 있다.

아, 당연히 음식 이야기도 함께 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이런 생각도 들지만,

뭐, 사는 일은... 어쩌자고 사는 게 아니므로...

그냥, 좋은 것들을

좋은 이야기들을, 영화 이야기들을, 좋은 그림을...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펼칠 만 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나온 이야기.

 

행복한 사람이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뿐.

꿈꿀 수 없을 만큼 지쳤을 땐, 맛있는 걸 든든하게 먹자.(67)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한국에서는 더더군다나.

그건, 가족 내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는 밀폐된 아파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 이야기 중,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한 감독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니까요. 제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죠."(204)

 

몹시 힘들어서

침대에 푹 엎드려서 잠들고 싶을 때,

그냥은 아니고, 와인이라도 한 잔 하고 암막을치고 하루는 푹 자고 싶을 때,

읽으면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될 이야기들과 그림들을 원한다면,

'미감'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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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다는 것 - 채운 선생님의 예술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5
채운 지음, 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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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들면서

예술에 대한 감흥 역시 세대를 거쳐 물려받게 되는 것이라 했다.

 

느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 집니다.

그냥 느낀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44)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7,80년대에는 서양 중심의 느낌이 주류였다.

미술도, 음악도, 예술 전반이 서양의 독무대였다.

미국 중심의 서양이 문학 권장도서 목록에도 수두룩했다.

 

물은 어떤 맛인가?

아무런 맛이 없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면,

천하의 그 어떤 맛난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으리라.

지금 그대는 목마르지 않다.

그러니 저 물의 맛을 모를 수밖에.(박제가, 47)

 

그리하여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민중 예술이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금세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하여,

자본의 시대로 접어든다.

 

느끼는 것은 고독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도 통할 수도 없으니까요.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 가는 것.(52)

 

시간, 공간, 인간...

이 개념들에 '사이 간'을 넣은 것은 절묘하다.

그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느낌이다.

사람 사이의 느낌, 장소에 깃들인 느낌, 어떤 시간대에 얽힌 느낌.

 

그러나 그 느낌은 한결같지 않다.

관점이 달라서다.

'응답하라 1988'의 절묘한 스토리 라인의 재미에 푹 빠지면서도,

왠지... 우리의 1988이 그렇게 아름다웠던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관점이 달라서이다.

 

우리는 뭔가를 바라볼 때 어떤 시점, 혹은 관점을 갖게 됩니다.(58)

 

가장 적절한 관점은 모든 인간 사이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두 개의 눈으로는 부족하다.

 

관세음 보살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보는 보살입니다.

모든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주는 보살입니다.(67)

 

이 책은 예술 공부에 대한 책이다.

느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얽매여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느낌이 얼마나 해방되기 힘든 것이고, 관계 사이에서 자리매김되는 것인지를 쉽게 읽어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하나가 달라지면 전체가 달라지고 마는 그런 그림(95)

 

예술가들은 느끼기에 더 민감하다.

 

민감하단 건 차이를, 오로지 그것만의 '그것임'을 느끼는 것.(112)

 

칸트에 와서 '물 자체'와 '감각적 경험'을 구분한다.

우리가 느낀다는 것은 '물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에서 주어진 감각적 경험을 통하여 갖게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죠.(127)

 

평범한 태도, 통념적으로 휩쓸리는 태도와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의 태도를 정립하게 된다.

그래서 잔재주로 이름을 얻어 시류에 영합하는 예술가를 보면, 저속하고 비루해 보인다.

 

달라이 라마는 말합니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고 행복감을 준다고요.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비심을 끄집어 내서 타인들과 교감하라고요.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이미 感-動 입니다.(146)

 

소질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독자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고 같이 눈물 흘리는 작품들이야말로,

심장에 꽂힌 가시처럼 아프게 느껴질지라도, 오래 교감하게 될 것이다.

 

논어에서 문질빈빈이라고 했다.

바탕이 모양새보다 크면 투박하고,

표현이 바탕보다 뛰어나면 번드르르하니,

표현과 바탕이 반짝이며 조응한 연후라야 군자다.

어느 하나도 버리기 힘든 것이지만,

이 시대에 표현이 번드르르하고 본바탕에 공감이 부족한 책팔이들이 있어

새삼 논어의 한 구절을 음미하게 된다.

 

子曰 質勝文則野요 文勝質則史니 文質彬彬然後君子니라(논어, 옹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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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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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이름만큼 하는 짓도 발랄하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친구들보다 행동반경도 크다.

동서남북 재바르게 구석구석 들쑤시며 다닌다.

앵두는 신명나는 세상을 산다.

풍물가락에 맞추어 그려내는 곡선이 내겐 생의 마땅한 우회로로 보인다.

앵두의 초롱초롱한 눈은 세상의 어느 한 구석도 놓치지 않는다.

 

앵두는 진정한 웰빙족이다.

밤이 되면 아직 놀고 있는 친구들과 조용히 거리를 두고 홀로 잠을 청한다.

고독은 즐길 만한 값진 정서가 아닌가.

아침이면 친구들은 자고 있어도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먹는 것에는 그리 매달리지 않는다.

소식으로 만족하고 경쾌하게 꼬리를 돌려 미끄러져 간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친구들에 비해 몸집이 크게 불어나지 않고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67)

 

앵두는 플래티라는 물고기 이름이다.

이 물고기와 작가는 남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글들로 가득한데,

오래 매만진 외할머니네 윤기나는 툇마루처럼 그이 글은 반들거린다.

 

험한 세상에 수필은 자칫 시평으로 번지기 쉽다.

그는 애써 세상에 대한 뉴스는 다루지 않는다.

앵두처럼 어항 속에서 발랄함을 누린다.

 

입 안에 물기가 번지며 눈이 열리고 엎드려 있던 감각들이 일렬종대로 일어선다.(44)

 

그의 말들은 반들거린다.

 

구하지 않으니 행복이라는 말도 없고

내치지 않으니 불행이라는 말도 없다.(무비 스님의 신심명 강의 중, 서문)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강의와 달리,

그의 글에는 짠한 마음결이 그대로 묻어난다.

 

난 시장 이층집 옥상에서 바라본 놀보다 더 멋진 풍경은 본 적이 없어.(50)

 

이런 마음결을 채집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무릇 일은 느닷없이 일어나 휘몰아치듯 덮치곤 한다.(54)

 

이렇게 글을 시작할 줄 아는 솜씨는 굉장하다.

백일장에서 상깨나 탔을 솜씨다.

 

몸피를 키운 해가 제 목구멍을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세월을 먹는다는 것은 뜨거운 불덩이 하나 꿀꺽 삼키는 일.(126)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의 어원을 '앓음다움'에서 찾았다.

앓음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애쓰는 상태를 말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의 작용이다.(143)

 

나이의 몸피만큼이나 언어의 깊이도 폭넓어지는 느낌이다.

세상을 늘 똘방똘방 응시해야 하는 앵두같은 눈길이 느껴진다.

 

영화를 몇 번 보았을 듯 싶은 감상문이나,

문학 기행 후기도 수십 번 되썼을 근기가 느껴진다.

부럽다. 한편...

글솜씨와 함께, 그렇게 글에 홈빡 빠질 근기가 부럽다.

허나, 그런 건 부러워한다고 이르기 힘든 경지이니...

 

앞으로도 프레이야 님의 건필을 빈다.

 

 

 

고칠 곳 두어 군데...

이병주 문학관을 '젠 스타일'이라 했는데 한자를 '仙'으로 썼다.

일본어 '젠'은 禪을 일본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해설에서 박상륭을 박상률로 잘못 쓴 것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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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혜경님 수필집 읽으면서 글 정말 우아하게 잘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글샘님이 바로 그걸 말씀해주시네요. 백일장에서 상깨나 탔을 솜씨, 라는 표현에 웃다가, 문득 부러워집니다.

글샘 2016-01-26 15:34   좋아요 0 | URL
남의 이름을 바꾸시다니. ㅋㅋ 맞아요. 참 잘 쓰시죠.

다락방 2016-01-26 15:39   좋아요 0 | URL
앗 ㅋㅋㅋㅋㅋ 말씀 안해주셨으면 잘못된 채로 계속 둘 뻔 했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2016-01-22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6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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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아, 사형을 언도 받고,

이런글을 머릿속에 그려 놓으셨는데...

이제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기를...

차별 없는 곳에서,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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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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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은 나름의 맛이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묘사를 위해 말들이 물결쳐 일렁이듯 겹쳐지고 늘어지지만,

그 말들은 헤설프게 흩어져버리진 않고,

마음 속에 더 짙은 생각들의 앙금을 가라앉게 만들면서 수런거리며 퍼진다.

 

이 수필집은 수이 읽히지 않는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겹치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그렇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형상화되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나의 의식을 이리저리 뒤척여보는 경험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는 별로 뒤척일 것이 없었다고나 할까.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사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 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120)

 

'돈'이라는 파트의 한 구절이다.

그래.

돈이 세상을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글이 찰지게 나오기 힘들겠구나 했다.

 

국가 개조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176)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는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함석헌)

 

글에 슬픔이, 한이 가득 묻었을 때는

글이 매끄럽게 죽죽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뭔가 이물감이 들어 껄끄럽게 자꾸 뒤적거리게 될 뿐이다.

 

김훈의 재치가

성석제의 그것처럼

한들거리면서 '인간 삶의 던적스러움'에 대해서 넌덜머리를 내고 있음이 보이는 글들이다.

 

아,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려나?

하긴, 응답하라 1988에서 묘사한 것처럼, 세상은 분홍빛이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올림픽이 일어나던 그 해에도,

구사대의 폭력과 노점상들에 대한 국가 폭력은 여전히 징그러웠던 것이니...

 

얼마 전에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먹고 싶어 하는 거라고.

무지개를 찾는 소년처럼 헛되이,

저 멀리에서 황홀하게 빛나는 그 시절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성석제, ‘라면의 맛중에서)

 

 

이런 재미난 글을 읽으면서 낄낄 거리는 날들이

다시 올 수나 있을 것인지...

날이 흐리고 다시 기온이 급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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