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문장강화 - 이 시대 대표 지성들의 글과 삶에 관한 성찰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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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많은 욕망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다 거기서 거기이고, 우뚝한 사람들을 따라가기엔 그 높이가 너무 높다고 느끼기 쉬운데,

그들 역시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올라갔을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래서 '지식인의 서재'의 한정원이 다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은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의 '눈길'을 읽듯 마음이 편안한 어둠으로 가득 찬다.

비록 걸어온 길은 험난하고 구질구질한 시궁창같은 길이었을지라도,

이제 돌아보니 눈으로 하얗게 덮인 그 길은

더럽지도 그렇다고 고귀하지도 않은 길이었던 것이다.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고은, 눈길)

 

같은 이야기가 김영현의 이야기에서도 '추사적거지'에서 만난

'만휴'로 돌아온다.

 

만휴는 모든 것이 다 평화롭다는 뜻.

김정희 선생이 마음이 평화로워서 그런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배가신 분이 뭐가 그리 편했겠어요.

마음이 들끓었겠죠.

그 듫끓는 마음이 만휴라는 글자로 나왔을 때의 심정이 느껴졌던 거예요.

그때의 나도 들끓고 있었거든요.

단 두 글자지만 정말 훌륭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285)

 

많이 쓰고 잘 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들의 노트를 읽노라면, 저절로 읽고 싶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그리고 릴케의 '말테의 수기'

 

이것은 고 남경태 선생의 도서 목록이다.

 

드라마 작가 김영현은 '대장금'의 작가라는데,

그가 글쟁이 출신이 아님은 새롭다.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우석훈의 이야기에서 '에코'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에코의 아메리카노에 대한 표현은

미국사람이나 마시는 커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요.

세상에 어느 누가 커피를 구정물이니 시체 썩은 물이라고 하겠어요.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내죠.

그런데 에코는 개의치 않아요.

글은 에코처럼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눈치보지 않고 용감하게.(375)

 

그러나, 눈치보지 않고 쓰기 얼마나 힘들랴.

 

오죽하면, 주제 사라마구도 죽지 전에야 '카인'을 세상에 내놨을라고.

 

암튼, 이 책은 책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재미있게 대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 읽어볼 법한 책이다.

 

최재천과 김정운, 남경태 등 꽤 괜찮은 사람들 이야기가 제법 읽음직 하다.

 

 

고칠 곳.

260.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한자가 틀렸다. 헤아릴 상 商이 들어갈 자리에 항상 상 常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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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3-0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은 이제 달인이시잖아여
 
오른손이 아픈 날 문학과지성 시인선 476
김광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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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오페라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시는 멋진 아리아가 될 수 없다.

시인이 아직도 무엇인가 읊조린다면

그것은 레시터티브에 불과하다.

하지만 노래와 연기를 연결시키며 오페라를 끌고 가는 레시터티브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판소리에서 아니리르 빼놓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창으로만 판소리가 될 수 없고,

아리아만 가지고 오페라를 꾸밀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주어진 위치에서 시가 예술로서의 필연적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뒤표지, 시인의 말)

 

멋진 시론이다.

시가 독재자를 벌벌떨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생들이 허리춤에 끼고 다니며 탐독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이제 시집은 가난한 시인이

탁발승에게나 건네줄 법한 것으로 추락했다.

 

이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그럼

말로 절을 짓는

시인이 살고 있단 말인가(고금, 부분)

 

종심소욕불유구... 마음에 따라 하고자 하는대로 해도, 절도를 넘지 않더라는 공자의 말에 따라,

70을 종심으로 부르는데,

이제 일흔을 넘은 그의 글들은 해설을 쓴 이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자꾸 죽음을 기웃거린다.

예측할 수 없던 그때의 앞날이

어느새 슬픈 옛날로 굳어버린 오늘

시간의 긴 흔적 간곳없고

온 세상이 조여드는 듯

마음은 왜 이렇게 답답한지(지나간 앞날, 부분)

 

동숭동과 이화동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젊은 날을 돌아보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나이를 먹어 이제 지나간 앞날이 되었다.

 

김치수 선생의 영전에서 웅얼거린 시

 

우리도 곧 갈 터이니

기다려주게 그대 가 있는 곳

어디인지 아직도 모르지만(그대 가 있는 곳, 부분)

 

지독한 아픔도 잠깐

몸이 어딘가 차갑게 굳어졌다

눈앞의 바깥 세상이 덜컥 닫히고

물속에 가라앉은 노란 조약돌이 보였다

조상의 잔해와 같은 색깔

처음 보는 세상의 안쪽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걸렸나(여기까지, 부분)

 

삶의 끄트머리가 가까워오는 지점에서 쓴 시들은

날카롭고 서늘하기보다 다소 안온하다.

 

외지에서 포도주를 너무 마셨나

아니면 그 검은 시간이 나에게도

성큼 다가온 것일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다가오는 시간, 부분)

 

비행기에서 잠시 실신한 뒤 쓴 시와

수술실에서 마취당한 기분을 쓴 시들이다.

 

세상이 온통 길인 것 같지만

걸어 다니기 힘든 나라

진실로 사람이 가야할 길은

길 없는 길 아닌가(길 없는 길, 부분)

 

몽골에서 느낀 이야기다.

삶을 살아보면,

주어진 길을 따라 걸어온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캄캄한 밤과

안갯속을 헤치고 온,

돌아보면, 길이 아니었던 곳을 길삼아 걸어온 것이다.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 앞에서

통곡하는 수밖에 없는가

*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까지 '그렇다' 아닌가.(바다의 통곡, 부분)

 

세월호 앞에서

짐승만도 못한 어른들을 돌아보는

치욕이 통곡으로 남아있는 시도 담겨 있다.

 

나이가 들면 오른손만 아프겠는가.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울음이 타는 가을강처럼,

속이 새까맣게 타는 일이 나이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김광규의 젊은 시들이 발산하던 풋풋함과는 다르지만,

삶을 응시하는 눈빛이 훨씬 누그러졌고,

힘은 쫙 빠졌지만,

돌아보는 힘이 느껴지는 시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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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킨 사람들 - 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
김형민 지음 / 다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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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을 만났다.

 

이 책에는 한국 현대사도 등장하고, 신라시대나 조선시대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상식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처럼 슬픈 속담이 다 있을까?

'낭중지추'는 행낭에 숨겨져 있어도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뛰어남을 칭찬하는 말인데,

뛰어남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비극적인 곳이 이 사회다.

 

조영래에게 조갑제가 쓴 조문은 명문이다.

조갑제같은 우익 인사도 친구의 위대함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세상이 참 더럽고 험하다.

그렇지만, 작가의 다음 말에 수긍이 간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결국 바뀌는 건 없지 않느냐 한숨짓는다면...

세상은 아직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지만,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라도 온 것...이라 말하겠다.

 

굽은 건 저들이고 곧은 건 저인데 도리어 도망간다면 장부가 아니지요.(24)

 

범죄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검군의 이야기는 가슴 서늘하다.

 

지혜롭되 비겁하지 않고

용감하되 무모하지 않을 것(56)

 

곽재우와 황진의 진주성 이야기는 슬픈 역사의 표상이다.

 

형평사 운동은 일제 관헌보다 평범한 조선 농민들이 더 이를 갈았다.

인간이란 때로 기묘하다.

차별받는 이들이 더 차별하며,

공격당해 본 사람들이 더 지독하게 공격한다.(95)

 

하늘에 천도는 있는가?

그 고귀한 사람들... 사기 열전에 등장한 백이 숙제가 그리 죽어갔으니,

세상에 '도'가 있는가?를 물은 사마천의 시대에서 요만큼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사마천이 기록한 이야기들처럼,

이 책의 이야기들은 '박정희'보다 '이승만'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편지 속에 '돌베개'라는 말이 있거든 탈출한 줄 아시오.(120)

 

유명한 장준하의 편지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던 시대를 지나 다시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나는 빛을 찾으려면,

양심의 금속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꽃피우기를 서슴지 않던 비루한 자들에 비하면,

이육사처럼 <차라리 봄도 꽃피지 말아라>라고 하는 의기를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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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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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더러운 돈이라도 마다않는 저질 변호사인 미키 할러와

명형사 해리 보슈가 뭉쳤다.

 

미키 할러는 검사측이 되고 보슈가 멋진 파트너 수사관이 된다.

 

24년만에 새로이 드러난 증거로 <파기환송>된 사건.

증거나 증인들이 거의 인멸된 상황에서 스토리는 보슈의 멋진 스토리로 이어진다.

 

법정 드라마도 멋지게 써내는 코넬리의 능력이 돋보인다.

쌉싸래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하는 그의 소설은 언제 읽든 뇌에 착착 감긴다.

 

로이스는 다이빙 보트가 떠나버린 후

물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 같았다.

물 위에 떠있으려 애쓰고는 있었지만

망망대해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468)

 

프로파일러 월링 요원의 연쇄살인 힌트는 소설을 더욱 쫄깃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갈수록 미궁으로만 빠지는 현실.

정의나 옳음은 늘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정치현실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장르소설만한 대체물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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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이산동양고전 1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 / 이산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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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는 일은 어렵다.

'팡세'나 '수상록'을 읽는 일처럼,

토막난 생각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그야말로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의 사례를 늘어놓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어휘들, 예를 들면 '덕'이나 '충', '군자'나 '도' 같은 개념들도

알아듣기 힘들게 모호한 설명으로 뒤섞이기 쉬워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논어는 조금 더 구체적이어서 좋다.

 

'이인'의 80. 불환무위 환무위립, 불환막기지 환무가지야.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세울 것이 없음을 걱정하며

자기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가히 알 것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이렇게 맥락을 읽은 후에 문맥을 설명해 준다.

 

지위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지위에 이르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라. 남이 알아줄 가치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다.

 

여느 논어와 나란히 펴고 보면, 이치사다 논어가 더 섬세한 개념 풀이가 되어 있어 좋았다.

 

'문질빈빈'처럼 해석이 쉽지 않은 곳도 재미있게 풀이되어있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옹야 136)

 

질이 문을 승하면 야이고 문이 질을 승하면 사이나니 문과질이 빈빈한 후에 군자라.

 

실질이 있어도 문식을 결하면 그것은 야인이다.

문식만 알고 실질이 없으면 대필업자에 불과하다.

문식과 실질을 다 갖추어 빈빈히 볼 만해야 비로소 교양있는 군자라 할 수 있다.

 

'대필업자'나 '교양있는 군자'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깊이 생각한 사람의 풀이가 좋은 지점이 이런 곳이다.

 

자이사교, 문행충신.(술이 171)

 

선생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다.

표현력, 실천력, 개인에 대한 덕의와 사회상의 규칙이다.

 

문장과 실행과 충성과 믿음... 이렇게 설명하면 심심하다.

자기의 풀이를 쓰는데 억지가 없기 쉽지 않다.

틈나면 논어를 여러 책 벌여 놓고 읽고 싶으나... 그런 여유로운 팔자는 못되니...

 

헌문치, 자왈, 방유도곡, 방무도곡, 치야.(헌문 333)

 

헌이 수치를 묻자온대 자왈,

방에 도가 있으면 곡하거니와 방에 도가 없음에 곡함은 수치이니라.

 

원헌이 명예를 소중히 하는 방법을 여쭈었다.

선생께서 답하시길,

도의가 행해지는 나라라면 출사해서 녹을 받는 것이 좋다.

무도한 나라에서 녹을 받고 싶어 출사하면 큰 치욕을 겪게될 수 있다.

 

대구가 되지 않아 풀이가 모호했는데 알기 쉽게 되어있다.

 

향당의 '빈불고'(238)도 해석이 쉽지 않은데,

 

빈불고를 보통 객이 만족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갔다로 해석하는데 자연스럽지 않다.

빈객은 떠날때 배웅하는 주인에게 몇번이고 돌아보며 인사하는 것이 예의이며

또 빈객이 멀어져가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까지 배웅하는 것은 주인의 예의이다.

 

알아듣게 고전을 풀어주는 책을 만나면 흐뭇하다.

막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으나, 내 전공도 아니고 그럴 기회도 없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이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나눈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어는 전주곡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부분만 기록되어 남아있는 것이란 미야자키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정황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가 전문으로 하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해의 차원 없이 단순한 한문소양과 철학만으로 논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326)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논어가 한문 공부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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