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 정의가 부재한 사회에 던지는 통렬한 질문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쉼(도서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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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자리는 어디일까?

정당과 정당 사이?

독재자와 국민 사이?

계급과 계급 사이?

재벌과 민중 사이?

이 모든 것이 부딪쳐 마찰음이 일어나는 곳에서 바로 '정치적인 것(policy)'이 싹튼다.

랑시에르가 말했던 것 처럼,

그것이 싫은 인간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치안(police)'을 내세워 잡음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려면 썩은 돈이 어디서 나와야 하는데

이른바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부대 같은 정신나간 싹퉁바가지들의 뒤에서 눈먼 돈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국가의 재정에서 나오는 나라가 이 나라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노유진은 썰을 재미있게 푼다.

 

싸드~가 싸~하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라든지,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라는 폭탄,

그리고 대부업체들의 미친 행태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혈압이 치솟아야 하는데,

사실 나는 내내 냉랭했다.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이제 좀 적응이 됐나보다.

아이들이 죽어도 자본이 앞서서 국정원이 진실 호도에 앞장서고

기레기들이 방송에서 세월호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아니 정부의 앞잡이가 되느라고 분주하던 시절을 보내면서 희망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면

양김정치의 분위기 속에서 계속 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진정한 장례식이 되려면, 양김시대를 국민적 합의로 극복해 내는 모색이 필요.(121)

 

내일 선거도 양김의 장례에서 배운 것 없이 진행될 것이어 답답하다.

 

탄이 미국에 떨어지는 것을 대비하려 한다면 미국에 있어야 하잖아요.(133)

 

싸드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읽으면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될 뿐, 갑갑하긴 한가지.

밀리터리 프렌들리...

그래, 태양의 후예들이겠지.

 

큰돈 빌린 건 국민 세금으로 갚아주고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빌린 소액은 끝까지 갚아야 되고...

근본적으로는 이자율 자체를 낮춰야...(212)

 

사채 이자에 대한 문제는 국가의 사기다.

책임 방기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온 건 맞는데,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불평등해지면 다시 3류 국가로 떨어질 거예요.

해법은 딱 하나예요.

좀더 평등해지면 분명히 선진국이 되고

세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248)

 

정치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앵무새처럼 보도지침만 나불거린다.

아니, 종편에서는 악의적으로 거짓보도를 지분거린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책을 읽고, 방송을 들어야 한다.

 

 

하나도 행복할 수 없는 내용으로 점철된 책을 두고...

행복하십시오...라니...

좀 아이러니하다.

 

힘내서 삽시다~라든지

좀 격려의 말을 썼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투표합시다~!! 라든지.

 

 

틀린 곳 한 군데...

노유진인데 10.26을 12.6으로 쓰다니... 실수치고는 큰 실수다. 그분의 아버님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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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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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저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84)

 

조지훈의 한 마디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방치해둔 듯 숙성의 기간을 가져야 깊은 시가 나온다는 말이다.

 

좋은 시를 쓰는 일은

좋은 시를 읽는 일과 밀접하다.

 

안도현은 백석에 대한 애정과 '표절'(ㅋ 그의 시집 제목은 백석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백석 시에 대한 독서에서 시에 대한 마인드가 길러지리라는 것도 충분히 좋다.

 

나는 백석의 '사슴'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 특히 '노루'가 좋다.

 

노루

                      백석

 

장진(長津)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거리다

자구나무 같은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찻떡이 흖한데다

이거리에 산곬사람이 노두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곬사람은 막베등거리 막베잠방둥에를 입고

누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등을쓸며

터앞에 당콩순을 다먹었다하고

설흔닷냥 값을불은다

노두새끼는 다문다문 힌점이 백이고 배안의털을 너슬너슬벗고

산곬사람을 닮었다

 

산곬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깜안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도 참 좋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김종삼)

 

누구나 시를 가르친다 하면,

이 책에 있는 범주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또 시를 쓰려는 사람이

이 책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하다.

 

안도현을 만나면 안도현을 죽여야 하므로...
그의 시강의를 읽다 보면...

과연 연탄재를 보면서 뜨겁지 못한 자신을 성찰했던 시인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김수영의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대목을 읽는데 설명이 요령부득이다.

어느날 고궁~은 투철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성에 대하여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절정에서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있어야 하는 자이다.(76)

 

이런 설명 앞에서 나는 자못 그가 의심스럽다.

시를 설명할 깜냥이 되는 자인지...

 

 

고쳐야 할 곳...

 

12. 귀에 못이 박히도록... 못이 박이도록...이 맞다.

 

103. '명란'과 '창란'... 명란은 맞지만, '창난'이 맞다.

 

189.  神, 理, 氣, 味, 格, 律, 聲, 色... 뒤의 두 가지를 빼먹었다. 추사의 문체 종류는 8가지라고 해놓고 6가지만 적었다.

 

200. 땅을 가진 뒤에 부동산을 짓겠다는... 부동산을 짓는다고? ㅋ 건물이겠지.

 

220. 퇴고의 한자는 推敲에서 온 말이다. 한 군데는 '堆(언덕 퇴)' 자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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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강씨 2016-04-1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군요.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긴 합니다.

글샘 2016-04-11 18:34   좋아요 1 | URL
네.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시 작법에 대한 책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싶습니다.
좋은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거인들의 몰락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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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유럽은 미증유의 대전에 휩싸인다.

그 와중에 흔들리는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의 귀족과 왕살은 망가진다.

 

그 시절의 영국과 독일, 러시아 등의 모습을

생생한 인물들을 살려내서 그려내는 멋진 소설이다.

다만, 켄폴릿은 영국 사람이어서,

그 전쟁들이 가지는 의미를 유럽 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서구 열강들이 회담을 통해 정하는 조약들이

약한 개구리들에게는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이 소설에서는 없다.

 

다만, 제목처럼

거인들로 비유되는 근대의 강국들이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로 썼으면서도,

피츠와 에설, 모드와 발터, 그리고리 형제 등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한때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던 시기라면

이 소설을 가슴 뜨겁게 읽을 수도 있었으련만,

광주의 주범들조차 떵떵거리며 잘 살게 된 이 비극의 나라에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씁쓸하기만 하다.

 

저택 밖의 사람들은 피부가 거칠고 머리칼이 지저분하며

손톱에는 때가 잔뜩 꼈다.

남자는 기침을 하고 여저는 코를 훌쩍거렸으며 아이들은 콧물을 줄줄 흘렸다.

부자들은 자신감에 차서 성큼성큼 걷는 길을

가난한 사람들은 축 처져서 비틀비틀 걸었다.(113)

 

100년 전 웨일즈 지방의 묘사지만, 현대와 다를 바 없다.

 

에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줄곧 남몰래 주머니 속에 다이아몬드를 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189)

 

막장 드라마들의 시작은 이런 착각에서 출발한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사랑은 황홀에 빠지게 하기 쉽다.

 

땅콩을 깨려고 커다란 망치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354)

 

귀족들의 눈은 언제나 이렇다.

전쟁은 늘 귀족들과 권력자들의 욕심에 의해 일어나지만,

사실상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는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들이 전쟁터에서 스물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자는 결정을 내릴 때 참여못한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가 학살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2권 27)

 

빌리는 독일군의 참호의 우수성에 충격을 받았다.

광부인 그의 눈은 안전한 구조물을 귀신같이 알아볼 수 있었다.(675)

 

삶은 시선을 만드는 법이다.

귀족의 삶에서는 자신의 쾌락을 중심으로 시선이 잡히게 마련이고,

농부나 광부는 자신의 일과 관련된 것들에 사로잡힌다.

 

온건파는 늘 사실보다는 희망을 근거로 문제에 대처하는 듯 했다.(2권 178)

 

러시아 혁명이든, 어떤 변혁기에든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과격파와는 달리 온건파는 희망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현실과 사실을 근거로 정파의 길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그리고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러시아 혁명에서는 '빵'이 없었다.

민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인데 말이다.

 

하지만 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2권, 210)

 

다음 주가 선거인데도, 역시 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귀족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착각했던 에설은 사생아를 낳아 기르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노동 운동을 하게 된다.

그는 버니라는 동지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 후보자 선출에서 맞선 버니에게서 현실의 벽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죽이기라도 할 듯한 표정이었다.(458)

 

이런 것이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다.

여성은 사랑스러워야 할 존재이지, 결코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관념.

 

영웅이 되고 싶은 거야?

오 분만 기다리면 전쟁이 끝날 수도 있어.(465)

 

이런 거스의 충고를 무시한 케리는 즉시 소총을 매고 돌격한다.

그러나 그는 기관총탄에 맞고 고꾸라진다.

그의 죽음 직후, 전선에서는 평화의 만세가 울려퍼진다.

삶은 이렇게 허무하다. 전선에서.

 

혁명의 시기를 거친 1918년 영국.

 

선거 결과는 여당이 승리했다.

의회 역사상 여당이 이렇게 컸던 적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에게 표를 던졌다.(499)

 

민중은 이렇게 어리석은 법이다.

귀족과 권력자들이 자기 자식들을 전장에서 죽게 했거늘,

전쟁에서 이겼다고 표를 던진다.

마치 이 땅의 민중들을 보는 듯하다.

 

결국에는 각국의 납세자들이 전쟁 비용을 대는 겁니다.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밝히는 정치인은 다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거든요.(503)

 

그렇다. 싸드를 비롯하여

긴장을 유발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정치인들은,

그 비용이 국민이 낸 것임을 은폐한다.

 

대령님의 부인이 러시아 공주 맞습니까?

대령님은 사실 개인적인 재산상 이해를 지키러 여기 온 것 아닙니까?(538)

 

전쟁과 폭력은 재산상 이해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권력자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다.

 

얼빠진 장교때문에 불필요하게 목숨을 걸었던 분들도 있고,

우리 중에는 많은 사람이 똑똑한 하사관 덕분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632)

 

이 두꺼운 책을 안고 뒹구는 동안,

역사는 불행하게도 반복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왕조 국가이든, 민주주의의 탈을 쓴 국가이든,

가난하고 가지지 못한 이들이 무엇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지난한 투쟁이 이어저야 한다는 것도.

 

두툼한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지만 현실에 부르르 떠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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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한 삶 - 그들은 어떻게 일과 생활, 집까지 정리했나?
이시카와 리에 지음, 김윤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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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하다는 말이 기분좋다.

일본어로 '미가루니'는 身輕이다. 가뿐한 몸과 관계있다.

 

삶은 불필요한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덕지덕지들을 홀연히 떨쳐버리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첼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면

알기하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어느 날 갑자기 된다니까'하고 말하잖아요.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돼요.(26)

 

나이가 들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 신체는 급속도로 쇠퇴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몰라보게 좋아지기도 하더라구요.

제가 산 증인이에요.

저희 발레 선생님은 레슨에 근육 트레이닝을 꼭 집어넣는데

복근운동 150회를 하고 나면 힘은 들지만 몸이 확실히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38)

 

나이가 들어 훨씬 건강해졌다는 사람이다.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만용이다.

그렇지만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현실이기도 하다.

 

돈만 내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근사하게 꾸며놓는다 해도 별 의미가 없어요.

절실히 원하고 스스로 노력한 끝에 얻은 것일수록 색다른 만족감을 주잖아요.(90)

 

모두가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문득 본질로 눈을 돌리고 보면

자신의 생각을 가두었던 틀이 스르르 무너지고 곧 마음이 편안해 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힘들어 지기도 해요.(99)

 

길을 잃고 당황하는 사람과,

애초에 길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차이겠다.

 

사랑하는 '너'도 갈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갈 것이다.

홀가분한 삶에 대해 좋은 책을 만났다.

 

오늘은 죽기에 딱 좋은 날이란 인도의 시구처럼

나도 품위있게 죽어

맨몸 하나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아무리 많은 물건을 소유한들 죽은 후에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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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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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어떤 사람일까?

세상은 진보와 보수, 혁명과 수구로 나뉘지 않는다.

인간은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운동체이다.

 

세계 제일의 분단 국가,

제일의 안좋은 것을 수두룩하게 타이틀을 차지한 남한에서,

책을 읽는다는 일은 그래서 어느 한쪽의 의견을 듣는 데 그치는 일이기 쉽다.

 

이 책에는 학자부터 방송가,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기업가 등

종잡을 수 없는 분야의    작가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이 간결하게 실려 있다.

 

경제적으로 호황일 때 윤리적 자기 계발을 찾고,

경제적 불황일 때 신비적 자기 계발을 찾습니다.(19)

 

첫 인터뷰가 자기계발의 '사기극'과 관련된 것이라니 의미가 깊다.

젊은이들에게 '사기의 계발' 구라를 퍼뜨리는 자들이 그득하니 말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계발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21)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들은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들이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내딛는 이야기(55)

 

이런 희곡 작가라니, 따스할 듯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구 읽고 싶은 책이 늘게 된다.

그나마 내가 내공이 늘었다면, 바로 구입하지는 않는다는 것.

 

현실은 늘 폭력적이게 둔 채 예술의 세계에서만 부드러움을 찾기보다는

현실에서의 폭력이 줄어들고 예술에서의 폭력이 증가하는 것이 훨씬 괜찮은 세상.(77)

 

최규석의 만화가 지향하는 바이다.

송곳,의 힘이 느껴진다.

 

제 문체와 조언 속에서 느꼈다는 힘은

자존감에서 나온 겁니다.

그게 없으면 뭘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101)

 

김어준이다. 자존감의 인간.

세상이 자존감을 바닥치게 만든다.

그래서 김어준이 힘이 세다.

 

과학자가 연구비를 따려면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라 해야 돈을 주고,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하면 됩니다.

한국은,

무조건 돈이 된다고 하면 되죠.(155)

 

한국 과학은 아프리카 태권도 수준이라는 과학자...

슬프지만, 그것이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처럼 경직되고 위선적이며 공격적인 사회는

상대와 섞이고 싶은 진실한 욕구가 좌절된 데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오르가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억압적인 권위에 대해 체질적인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게 되고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이데올로기, 문화, 교양 같은 신비화 전략을 통해

피지배자들이 오르가슴으로부터 무감각해질 수 있는 구조적 장치들을 사회 도처에 실시합니다.(185)

 

어떤 말인지는 알겠으나~

난 이처럼 성적인 용어를 학문에 접합하는 데 저항감이 든다.

융도 그랬을래나.

 

문제는 강력한 왕권이야, 이 바보들아. 라고 일갈하는 필자가 요즘엔 너무 많다.

거기서 불거지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환유적 욕망이다.(198)

 

요즘 '태양의 후예'에 대한 폭풍적 열망 뒤에 숨은

국기 하강식 같은 모습은 박정희 시대의 '속성'을 부르는 '환유'가 아닐까?

명량의 '이순신'에서 자신의 쿠데타라는 피냄새를 지우고,

애국의 덧칠을 하려고 무척 애쓴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애써 부르는 '환유'

 

보수주의자 맹자에게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고,

그 존엄성의 근거는 한 줌 마음입니다.(221)

 

이런 보수주의라면 대환영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뒤로한 '용산'과 '세월호'에 국민들이 눈물흘린 것은,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한스럽게 조문을 했던 것은,

존엄성에 대한 부정 앞에서 꺾일 수 없다는 자존심의 마음이었을 게다.

 

프랑스는 우리의 '청산'을 역사 용어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는 '숙청'입니다.

청산의 우리말 뜻이,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버림이라면,

숙청은

엄하게 다스려 잘못된 것을 모두 치워 없앰, 이니...(227)

 

그래 친일파도, 독재의 과거도 '청산'할 노릇이 아니다.

피비린내 번지더라도 '숙청'을 했어야,

지금의 현실로 후퇴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직도 야당은 그나마의 민주화 시대의 향수를 팔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한반도 내의 고대국가 설립 시기를 2-4세기로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 사학자들이 왜곡해 놓은 연구를 되풀이한 것이다.

식민 사학적 주장의 반증이 10여 미터의 성벽이 4킬로미터에 달했던 풍납토성.

이 귀중한 증거를

바람에 모래가 날려 쌓인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며 인정하지 않던 한국 사학계.

그래서 발굴을 하면서도 사적지 지정을 하지 않아,

아파트가 들어서 4분의 3 가량이 파괴된...(311)

 

숙청하지 못한 역사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다시 반복된다 했던가.

읽고 싶은 책은 많으나,

그나마 장정일의 의견들을 들으면서 겸허해지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다음 주, 선거다.

부산은 워낙 일색의 지역이라 내 한 표가 무슨 힘이 있으랴마는,

투표장에 나가야 할 노릇이다.

책읽는 일에도 힘을 내야 하는 좌절스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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