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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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거리가 멀어서 팟빵의 빨간 책방 같은 방송을 듣고 다닌다.

거기서 김중혁이란 작가가 친숙한데,

웃기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다.

 

소설집은 뭐랄까... 평범하다.

하루키 이후에 음악에 대하여 소설에 많이 쓰는 경향들이 있는 듯 싶은데,

그렇다고 하루키 식의 판타지는 또 별로 없다.

박민규의 판타지가 귀엽다면,

김중혁의 판타지는 발랄하달까.

 

회사원 같은 일에 염증을 느낀 투가 가득하기도 하고,

회의 시간에도 짱구를 굴려 소설을 기획할 인물 같기도 하다.

 

'멍청한 유비쿼터스'란 작품이 괜찮았다.

스토리를 이렇게 짜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 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99)

 

좀 무겁기도 한 주제를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 다룬다.

 

지구가 둥근 이상, 모든 곳이 세상의 끝(100)

 

이런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이 사람, 시를 써도 그럴듯 하겠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단단히 어긋나 있었지만

나는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명색이 오차 측량원인 주제에...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일까?

원인이 없는 결과도 있지 않을까?(87)

 

이런 생각은 멋있다.

인과관계란 인간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것일 수도...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낭비'라고 중얼거렸다.(152)

 

컴퓨터 하는 사람들은 타자기가 종이를 낭비한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웃기는 소리.

종이를 버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낭비입니까,

아니면 컴퓨터처럼 종이를 아끼면서 생각을 지우는 게 낭비입니까.(177)

 

'낭비 사회'란 말이 있을 정도로,

소비를 넘어 낭비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당장 필요한 '니즈'를 넘어 '원츠'를 유발해야 산업이 되는 시대니,

낭비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도 없다.

 

언제나 열심인 것과 성공한다는 것 사이에는 뭔가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다른 것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걸 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인생이라는 사람도 있다.(264)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는 <사백 미터 마라톤>에서 말한다.

 

- 그래, 씨바, 존나 달려보는 거야.(223)

- 그래, 존나 달려보는 거야, 썅.(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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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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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초록 불빛을 향해 끝없는 동경을 보냈고,

황금 모자를 썼지만,

쓸쓸한 생을 마감한 사람.

사랑을 잃고, 제 집 안에 자신을 가둔 사람.

 

이 책에 편집자는 왜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을 붙였을까?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는 개츠비가 개인으로 보이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근대 미국의 상징으로 쓰이기에 손색이 없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인이라면 '더 그레이트 브리튼'에 꿀리지 않는 국가의 이미지를 원했을 듯...

그때 나온 '더 그레이트 개츠비'에 열광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마지막이 애잔하다.

그렇지만, 흰별이 펄럭이는 성조기의 스트라이프를 바라보기라도 하듯,

힘이 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255)

 

이 마지막 구절을 읽는 100년 전의 미국인의 심장은

쿵쾅거리며 뛰었으리라.

비록 몇 년 뒤 공황을 겪지만, 세계대전으로 다시 전성기를 누릴 미래를 향해,

소설 역시 전진한다.

 

나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내 앞에는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한 차례의 십 년이 펼쳐져 있었다.(192)

 

남북전쟁이 끝나고,

서른 살이 된 나라, 미국.

불길하고 위협적인 십 년은 공황으로 예상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떤 서른에도 마흔에도 쉰에도,

삶의 십 년은 위협이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9)

 

이 말은 이 소설의 서두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충고다.

결국 개츠비나 데이지,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화자는 객관적이라는 힘을 실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떤 점에서는 비판받을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삶을 관조해보면, 반드시 이해받아야 할 부분도 있다.

삶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만 놓여있지는 않다는 것.

 

'올드 스포트(김욱동이 '형씨'로 번역)'를 '옥스포드'로 잘못 이해한다는 등,

오해에 얽힌 사건과 죽음으로 점철된 이 소설을 읽고

다시 보는 저 구절은 가슴에 무겁게 얹힌다.

 

개츠비의 죽음 뒤에 누구도 오지 않을 때,

전화가 오지만... 그 용건은 참 초라하다.

 

내가 전화를 한 건,

거기 두고 온 신발 한 켤레 때문입니다.

집사가 그걸 보내 주었으면... 테니스 신발인데...(239)

 

삶은 참 구차하다.

 

보통 때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초록색 골프장의 잔디 조각이 사무실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처럼

상쾌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졌는데,

오늘 아침에는 왠지 귀에 거슬리고 메마르게 들렸다.(218)

 

골프 선수 조던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다.

 

웨스트에그에 살면서 이스트에그(부활절이랑도 겹치는 듯)를 바라보는 삶.

초록 불빛 속에 담겨 있을 듯 싶은,

애잔한 과거의 이야기는, 비극을 껴안고도 도저한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구절이 이 소설과 오버랩된다.

 

그대 이른 새벽녘 저 빛을 보라

황혼의 마지막 광휘에 환호하는 우리들의 긍지

위험한 전투 속에서 광대한 선과 빛나는 별들

저 성벽 너머로 찬란히 빛나도다(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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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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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아이를 잃었습니다.

큰 아들이 자살을 했고, 13개월 사이에 막내 아들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나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그리고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155)

 

책제목이 참 슬프다.

Too soon old, too late smart...

늙는 건 금세고, 철드는 건 늦다네...

상담을 하게 되는 그 마음도 참 속이 아니겠다 싶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상담했으나,

우울증 걸린 사람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불가능함을 배웠을 뿐이라니.

 

아이를 기를 때 최고의 목표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165)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것.(187)

아이들에게 세상은 불안전한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188)

 

누구도 제대로 부모 노릇하는 것 가르치지 않았다.

지독하게 자식에게 길잡이 노릇을 자임하는 '강남 엄마'들의 머리에

과연 행복과 희망이란 단어가 들어있기나 한 걸까?

나도 강남 엄마와 다름없는 교사에 불과하지 않은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쁜 소식은 말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199)

 

그렇다.

삶의 질은 평균적으로 좋아지지도 않았다.

젊은 시절의 삶의 질은 좋아졌지만,

나이 들고 나서 누려야 할 질은 형편없다.

 

not dead yet!

장애인 가족 모임 이름(225)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 슬프지만은 않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안에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깃들여 있음을 암시해주는 문구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 있지 말고 자기 삶의 변화를 목표로 적극적으로 행동을 변화시켜나가라는 주문입니다.(101)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나도 집에 책을 많이 쌓아 두고도

또 새책에 욕심을 내는 못된 습관이 있다.

이사를 할 때면, 가장 큰 짐이 책이다.

아내가 웬수로 여기지 않고, 인테리어로 쳐주니 감사할 따름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변화는 내가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책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결핍된 시대의 영향이 클 것이지만,

읽지 않는 책에도 욕심을 내기도 하고,

과욕을 부려 비싼 책을 폼으로 사두기도 한다.

아, 어떻게 할까... 내가 변화시키라는 말이다.

 

그대는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

그렇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입니다.(237)

 

레이먼드 카버가 묘지명으로 내세운 것이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만이

삶에서 가치있는 일이란다.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73)

 

삶의 80%는 밖으로 드러나 보인다.(83)

 

삶은 비밀스런 것도 아니고, 내밀한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삶의 발자취는 얼굴에서부터 몸동작까지 표출되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루해지기 쉽다.

살아야 할 방향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실의 삶과 다르다면,

그 지도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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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자 2016-05-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엔 `아빠`들은 다 일찍 죽고 `엄마`들만 남아서 애들 키우나 봐요?
 
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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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몸속 깊은 곳에서 마개가 열린 느낌이 들었다.

몸속에 가득했던 물처럼 차가운 무언가가 거품을 일으키고 용솟음치며

내면을 씻어내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됐다. 나는 도리어 구제받은 셈이다.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서

빛나는 뭔가가 없어서 다행이다.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는 건 나 자신이다.

시시한 인간인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638)

 

처음부터 '위증'을 하는 미야케 주리가 등장하는데,

'솔로몬'은 뭐지? 이런 의미를 갖게 했더랬는데,

역시 내 예감대로 간바라가 솔로몬의 역할을 맡는다.

 

'마개'

끓는 물도 마개를 잠시 뽑아 두면 터지지 않고,

고인 것도 마개를 뽑으면 흘러 내린다.

마개라는 말로 '해소'를 푸는 작가가 멋지다.

 

오이데 슌지를 가차없이 신문하며

가즈히코는 온 힘을 다해 주리에게 사과한 것이다.(614)

 

변호인 가즈히코는

검사측 증인으로도 등장하여 악인을 응징하면서,

지혜롭게 주리의 위증에 대하여 대처한다.

 

그것은 얼굴도 형체도 없이 새카맣기만 했다.

그래서 간절히 원했다.

꼬맨아, 나에게 어서 얼굴을 만들어줘.

나를 이 세상에 빚어내.

어서, 어서,,어서. 그것은 지독한 굶주림이었다.(604)

 

사는 게 귀찮고 살아갈 의미가 없어서라고 했습니다.(566)

이렇게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왜 살아가야 하는가.

사람이 사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525)

 

꼬마 철학자 가시와기의 섬세한 생각은

부모를 죽이고 싶어했던 노다,

부모의 죽음을 겪고 자란 간바라의 삶과 겹쳐지면서,

이미 강 건너를 보아버린 사람들의 생각을 본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승리한 것은 관조를 통한 달관이 아니라 악마의 굶주린 목소리였던가.

 

지평선 저 너머의 조그만 먹구름.

료코는 방금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직 멀다. 가까이 다가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1권, 83)

 

휴일의 텅 빈 파란 하늘에 여름 끝자락의 소나기구름이 떠 있었다.(3권, 502)

 

아직 먼 먹구름이 이제 소나기구름으로 바뀌었다.

마개를 열면 솨아아~~ 시원하게 빠져나갈 배경으로 맞춤하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와 관계없는 곳에서 돌아간다.(309)

 

스스로 여드름 귀신이라고 유명하다고 생각하던 주리의 생각은 자격지심이었다.

청소년기는 자의식이 생기면서 자격지심을 많이 안게 된다.

결국 그 증폭기가 가시와기를 죽음으로 몰고 가며,

주리를 위증 고발자로 만든 것이다.

 

솔로몬은 말한다.

너희 잘못은 아니라고.

 

이 소설은 사건 해결 법정 소설이기도 하지만,

교육 소설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청소년들이 심리가 투영된 과정이 잘 드러나고,

무엇보다 학교의 역할이 미미하면서도 명확하다.

 

몸집이 작고 가냘픈 오자키 선생은 옅은 파란색 마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온화한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의자에 앉자 오자키 선생은 훨씬 작아졌다.

그런데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285)

 

학교에는 이런 교사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숨쉴 구멍이 있어야 한다.

완벽한 시스템으로 숨구멍을 다 틀어 막으면 7일만에 혼돈의 청소년들이 죽고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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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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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질 것도 없는 존재감의 가벼움이

삶의 본질을 투영하는 작품이 있다면...

이 소설집을 읽으면 '무진 기행'이 떠오른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로 각인되는 소설이라서일까?

 

귀청을 찢는 듯한 해명도

그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소리가 아닙니다.

그저 익숙해진 평범한 소리같은 것으로

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77)

 

소소기 바다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감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82)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싶어지는 법,

이라는 이야기와 환상적인 장면들은

현실과 오버랩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

 

아야코는 언제까지고 밤 벚꽃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아아, 이거구나.

대체 뭐가 이것인지 분명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그녀는 지금이라면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꽃 안에서 일순 본 것인데,

그 아련한 기색은 밤 벚꽃에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110)

 

이 소설을 관통하는 사건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 죽음들은 명확한 사건이 아니라

희미한 배경이고,

전경에 가득한 빛은 환상처럼 빛나는 벚꽃잎들이다.

 

란도라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문밖에서 희미한 술렁거림이 일었다.

여관의 안뜰에 있는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는데

교토의 약간 후미진 곳에서는 그와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술렁거림이 귓전을 때린다.

그것은 바람이거나 흔들리는 잎이거나

누군가 낙엽을 밟는 소리이거나.

아무도 자지 않는데도 방의 어딘가에서 잠자는 숨소리 비슷한 게 들려오는...(135)

 

명확하지 않은 문장들이 그려내는 장면이

오히려 더 명확하게 각인될 때가 있다.

무진의 명물, 안개처럼...

이 소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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