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공기가 따스하다.
햇살도 이미 봄이다. 

날은 차갑지만... 원래 겨울 속에 따사로운 봄이 들어있는 '법'이다.
어둠 속에 아침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김수환 추기경 가는 길을 배웅하는 사람들... 그걸 '현상'이라 불렀다.
'법'은 반드시 오는 걸 일컫는 말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반드시 아침이 잉태되어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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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처음엔 서평단 모집이라고해서 공짜책 받아볼 요량으로 좋아했는데,
분야가 좀 넓다 보니... 마음에 드는 책을 받아볼 때도 있지만, 별로 적성과 맞지 않는 책도 있곤 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서평단 활동하면서 받아본 책들이 좋은 편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은 역시 <메리스튜어트>다. 츠테판 슈바이크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즈는 메리 여왕의 이야기는 슬픈 연속극이면서 장대한 서사시였다. 

이 책의 매혹적인 부분... 은 도저히 고를 수가 없다.
이 책 전체가 한 편의 대하 드라마고, 오십 권짜리 쫄깃한 만화책과 같고, 우아하고 유려한 언어들의 조직이 독자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마지막 대목에서 메리는 죽고, 70이 넘도록 산 엘리자베스가 죽는 대목을 그린 마지막 페이지...(524) 작가는 그 죽음을 이렇게 산뜻하게 적는다. 

창문 아래에는 스코틀랜드 상속자의 심부름꾼이 말에 안장을 채워놓고서 초조하게 약속된 어떤 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시녀 한 사람이 엘리자베스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창문을 통해서 반지 하나를 떨어뜨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마침내 3월 24일 창문이 덜컹거리더니 여자의 손 하나가 밖으로 나와 반지 하나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렇게 엘리자베스도 죽는다. 

서평단 활동하면서 받아본 책 중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메리 스튜어트와
난세에 답하다 
그림속으로 들어간 소녀 
치유하는 글쓰기 
호모 에로스...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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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비유하기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건 쌩기초 기술이에요.
정의하기, 메모하기, 인용하기, 비유하기 같은 글쓰기 쌩기초 기술을 바탕으로 오늘은 한 단계 높은 글쓰기 기술인 광고 문구 만드는 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표어짓기 숙제를 해 본 적 있을 겁니다.
"1분 먼저 가려다가 10년 먼저 간다."

자 우리모두 초딩이 되어, 표어 하나 만들어 보는 겁니다.

어려울 것 같지요?  그래서 쉬운 것 먼저 합니다.
방송 매체나 종이 매체를 통해 많은 광고 문구를 보셨을 텐데요.  
우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광고 문구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문구를 약간 비틀어 보는 겁니다.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패러디입니다. 그럼 조금 쉽죠.
모방을 잘해야 창작도 잘 합니다.

지난 시간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카테고리', 즉 범주에 관해 배웠습니다.
광고 문구 만들 때도 이 원칙이 가장 중요해요.

스포츠토토 홈페이지에 가 보면 좋은 예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볼까요?
 
오심도 게임의 일부, 오해도 인생의 일부

여기서 범주는 뭐죠? 오심과 오해가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는 개념, 즉 '잘못된 판단, 실수' 같은 거죠. 그러면 오해가 들어갈 자리에 '오탈자'가 들어가도 돼요. 그럼 '인생의 일부'를 '책의 일부'로 고치면 되죠.

아이를 혼낼 때는 엄마는 직구로! 아빠는 커브로!

예, 심하게 혼내는 사람이 있으면 달래는 사람도 있어야 하죠.
여기'아빠'가 들어갈 자리에 '선생님'이 들어가면 안 되겠죠?
범주가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형이나 언니가 들어가는 건 괜찮습니다. 
'형은 너클볼로...'

고의사구로 살려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실습을 해 보도록 하죠. 오늘 과제는 자신이 보거나 들었던 광고 문안 중 감동적이었거나 재밌었던 것을 하나 골라서 직장인 성공시대 광고 문구로 바꾸어 보십시오.

제가 예를 하나 들게요.

“불확실한 미래의 확실한 선택, 직장인 성공시대!”

이건 원래 어느 생명보험 광고 문구입니다.

좋은 문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범주를 지킨다는 거죠.
훌륭한 광고문안은 모두 범주를 잘 지킵니다.
범주를 잘 지키면 글에 힘이 실려요. 설득력이 갖춰진단 말이죠.
앞문구와 뒷문구의 적절한 대구를 활용하되 서로 비슷한 범주에서 비교하세요.

당구장 가면 벽에 뭐라고 써 있죠?
300 이하 맛세이 금지?  
예, 그 옆에 이런 문구도 붙어 있습니다.

“승자는 세면대로 패자는 계산대로.”

이게 범주를 잘 지킨 문구입니다. 승자와 패자, 세면대와 계산대. 캬~ 깔끔합니다.
당구장 아줌마의 센스 작렬!

범주를 활용한 글쓰기는 대구를 잘 활용합니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광고문구 하나 소개할게요.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걸었다
그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과연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애정 표현 방법을 몰랐고,
아들은 아버지의 애정을 몰랐죠. 가슴이 짠하지 않습니까.

아, 여기서 범주는 사랑,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군요. 다른 예를 좀 더 들어 볼게요.  

또 다시 스포츠토토 광고문구입니다.

10번 중 무려 7번을 실패한 당신,
당신이 바로 성공한 3할 타자!

여기서 범주는? 야구.

나쁜 습관을 하나씩만 줄여도
당신은 버디 인생!

여기서 범주는? 골프.

방향이 잘못되면 담장을 넘겨도 파울!

범주는? 야구, 야구 중에서도 타자.

먼저 취업한 동기를 부러워말라.
선발투수가 꼭 승리투수는 아니다.

범주는? 야구, 야구 중에서도 투수.

이 광고문구 쓰시는 분 누군지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

범주를 지켜 쓰고 나면, 이제 범주를 좁혀 보세요.
그래야 글의 힘이 더 세집니다.

평소에 광고만 잘 살펴봐도 글쓰기의 원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저도 글쓰기 책을 썼지만 이런 글쓰기 교재 읽지 않아도 됩니다.
출퇴근 길이나 TV에서 좋은 문구를 보면 메모해 두고,
흉내내 보고 새롭게 한 번 만들어 보는 과정이 진짜 글쓰기 연습입니다.

또 다른 비법이 있습니다.
모순을 활용하세요.
이것도 범주 활용 글쓰기의 일종이에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말 되게 만드는 비법이죠.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어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죠.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모순이지만 무슨 뜻인지 잘 전달되죠.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쓸수록 버는 카드.

눈으로 마시는 맥주.

잠시 지난 주 내용을 잠깐 복습해 보죠. 한 줄로 비유하는 연습을 했는데요, 청취자들이 올린 글 몇 편을 뽑아 왔어요.  

8958 번호 쓰시는 분.
영어공부는 구슬꿰기예요. 하나씩 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목걸이가 완성되거든요!

=> 잘 쓰셨습니다. 이제 기본을 하셨으니 한 단계 높은 곳으로 가려면 구슬꿰기보다 더 신선한 비유가 없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구슬꿰기 자리에 레고 블록이나 십자수가 들어가면 더 나을 겁니다. 연애가 들어가도 되겠죠.

0007 번호 쓰시는 분.
종철님은 냉수마찰이다. 점심먹고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확 달아나니까

=> 잘 쓰셨어요. 어법이 약간 부자연스러운데요. 점심식사 후 쏟아지는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하니까. 이렇게 쓰는 게 낫겠죠.

2666 번호 쓰시는 분.
사람들과의 인연은 전봇대다. 선이 얼기설기 엮어 있으니까

=> 신선한 비유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 줄로 자기소개하기 연습을 하겠습니다.
자기소개서 첫 줄 쓰는 방법입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자기소개서 훑어보는 시간은 평균 1분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
한 줄로 자기소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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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1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readmefile.net/blog/76
 

오늘은 한 줄로 비유하는 연습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비유가 무엇인지 살펴 봅시다.

비유란 어떤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비슷한 개념을 지닌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동안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비유하는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어느 중학생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은 피자다...
자신이 싫어하는 토핑이든 좋아하는 토핑이든 골라내지 말고 그대로 먹어야 진짜 인생을 즐기는 거라고 했죠.
직장인 성공시대를 정의하면서 청취자들께서 등대요, 나침반이요, GPS라고 비유해 주셨죠. 

한 줄로 비유하는 데에도 특별한 기술 같은 게 있을까요?
예, 자기가 처한 현실과 관련을 깊이 맺을수록 좋은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몸이 알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몸에 익은 것을 옮겨 적는 것, 그게 진짜 글입니다.
현재 자신이 몰두하는 일에 관해 쓰고, 그걸 활용해 비유하세요.

기부는 수능이 아니라 검정고시다... 김장훈 씨가 했던 비유 기억하실 겁니다.
김장훈 씨 비유가 왜 좋은 비유일까요?
자기가 겪은 삶에서 우러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하는 비유가 아니라 몸이 하는 비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인생은 골프다.
제가 이렇게 쓴다면 악플이 달리거나 무플.. 둘 중 하나겠죠.
그렇지만 타이거 우즈가 그렇게 쓴다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현실을 활용하라! 그런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잖아요.
라디오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것은 어떤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책으로 미술 공부하는 것과 같아요.
단초만 제공할 뿐입니다.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써 봐야 합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반디게시판에, 이메일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글쓰기 도구를 적극 활용해야 글쓰기 실력이 늡니다.

그럼 비유하기 실습을 해 보도록 하죠.

지난 시간에 청취자께서 ‘일지매는 박카스다.’ 이렇게 올려주셨지요?
제가 첨삭을 해드린다고 했는데요, 요약이라기보다는 비유하기에 적절한 사례였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취미나 인물을 다른 대상에 비유해 보십시오.
인라인스케이트, 포커, 스타크래프트....
김연아, 이효리, 오종철... 

우리가 이미 배운 정의 형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한 문장으로 비유해 보십시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 장면 기억하실 겁니다.
프랭크가 어느 여인에게 다가갑니다.
“기다리시기 지루하면 제가 탱고를 가르쳐 드릴게요.”
“스탭이 엉킬까봐 두려워요.”
“스탭이 엉키는 것,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인생과 마찬가지죠.”

적절하게 비유하는 것, 참 중요합니다.
비유는 원래 개념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징표입니다.
직설적 표현보다 한 단계 높은 의사소통입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아스널 팀의 감독 아르센 웽거에게 기자가 물었어요.
“외국인 선수들을 지나치게 많이 영입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웽거 감독이 대답했죠.
“저는 선수들의 여권을 보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죠?
“전 무조건 실력대로 뽑아요.” ....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얼마나 근사합니까.

비유를 잘해야 글을 잘 씁니다.
비유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인생을 근사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가수 김창완 씨, 이제는 연기자로 더 유명하시죠.
수필집을 내셨는데 서문에 비유적 표현이 많이 나오더군요.

"나는 게으른 어부다. 한데 요즘엔 그 짓도 싫증이 났나 보다. 그늘에 앉아 그물코를 손질하고 있다. 그물을 손질하며 꿈꾼다. 커다란 물고기. 꼭 그 물고기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물을 손질하는 동안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내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수필집은 내가 놓쳐 버린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또 다른 비유하기 비법, 즉 원칙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부터 제가 새로운 용어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카테고리라는 용어입니다. 다른 말로 범주라고 하지요.
제가 ‘한 줄로 정의하기’ 시간에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A는 B가 아니라 C다. 이렇게 정의할 때 B와 C는 비슷한 개념에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었죠. 그 비슷한 개념이 바로 범주입니다.
이 한 가지 원칙만 지키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그럼 잠시 지난 주 내용을 잠깐 복습해 보죠. 한 줄로 요약하는 연습을 했지요?

우리가 학위 논문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음대로 요약해 보자고 했죠. 책이든 드라마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보고 나서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그 책이나 프로그램을 보는 수준이 높아집니다.

요약하는 연습을 많이 해 보면 좋은 글과 좋지 않은 글을 분별하는 안목이 생깁니다. 좋은 글이나 영화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워요. 그런 작품을 돈 주고 사 보아야 하는 겁니다. 한 문장이면 될 것을 구구절절 길게 늘여 쓴 찌질한 자기계발서는 돈 주고 사 보기 아깝잖아요.

비유 사례 몇 가지만 더 보죠. 

<형사>, <M> 같은 영화를 연출한 이명세 감독에게 리포터가 물었어요. 영화감독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명세 감독이 대답합니다. 

"영화감독은 양어장 주인과 비슷해요. 고기들을 풀어놓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물을 가져와서 고기를 잡을 것이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강태공 같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고기를 잡든 그건 관객의 몫이죠."

<<우리말 바로쓰기>>의 저자 고 이오덕 선생에게 누가 이렇게 물었어요.
“틀린 말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쓴다면 표준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오덕 선생이 이렇게 답하지요.
“세상 사람 모두 도덕질을 한다고 해서 나도 도덕질을 해야지...이래서 되는가? 글쓰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클래식(classic)'이란 말이 있죠? 고전을 의미하는데요.
비유적 표현에서 비롯한 말이에요.
이 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함대(艦隊)'라는 뜻이었어요.
나라가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기부하는 부호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어요. 그래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 줄로 광고카피 만드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표어짓기 숙제를 해 본 적 있을 겁니다.
자 우리모두 초딩이 되어, 표어를 만들어 보는 겁니다.
스포츠토토 홈페이지에 가 보면 좋은 예들이 있습니다.

예)
오심도 게임의 일부, 오해도 인생의 일부

아이를 혼낼 때는 엄마는 직구로! 아빠는 커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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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룡(지음), 정훈이(그림), <<김대리를 위한 글쓰기 멘토링>>, 뿌리와이파리, 2007.

직장 동료였던 공대 출신 마케팅팀 김 대리가 어느 날 기획팀 소속이었던 나에게 물었다. “너 국문과 대학원 다니다 왔지?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책 많이 읽고, 또 많이 써 봐야지. 글쓰기에 왕도가 어디 있어.”


참 개떡같은 조언이었다. 김 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도사 나셨구먼.’ 그 뒤로 김 대리가 글을 읽거나 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와 등 돌리고 살아갈 김 대리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때늦은 답변을 대신해 이 책을 쓴다.


김 대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획서 구상에 관한 간단한 요령이었다. 개요를 잘 짜는 방법이 궁금했던 거지 문예공모전 나가서 상 타는 법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는 왜 김 대리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사이클 선수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 들었을까. (...) 자전거 타는 방법은 사이클 황제 암스트롱에게 배우는 것보다 친구나 형한테 배우는 게 낫다. 싸보이지만 괜찮아.

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교조주의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 있다. 선생님은 칠판에 한자로 적으며 한참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는 척했다.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곧이곧대로 하는 거 말야.”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이 괜히 전교 1등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놈은 습득한 정보를 자기 방식대로 재정리하여 이해했기에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나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었던 거다.

전자제품 사용자들은 딸려오는 매뉴얼을 달달 외지 않아도 된다. 당장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 직접 눌러보고 익히면 그만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연로한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죽으면 비디오를 틀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유익한 것은 비디오 매뉴얼일까, 아들의 설명일까. 나는 한석규가 되어 신구 김 대리에게 비디오 켜기, 재생, 끄기, 이 주요 기능만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되감기, 녹화방법은 뺐다. 세 가지 기초 기능만 숙달하면 필요할 때 스스로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은이의 말 중



- 엉성해 보여도 일단 완결된 버전을 만들어 놓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기가 쉽다. 후레자식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본드 불고 가족을 힘들게 한다. 시작이 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실전에서 절반은 필요없다. 완성본만 필요하다.


- 빤쓰 줄여놨으니 돌아오라는 엄마 말씀에 집 나온 소년의 가슴에 울컥 뜨거운 것이 솟는다. 새 빤스 타이트하게 착용하고 이제 엄마 말씀 잘 듣고 새사람 되리라 두 주먹 불끈 쥔다. 돼지표 본드여 사요나라. 그게 개념 재규정이다. 자기 꼬라지를 알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태도. 공자님, 소크라테스 선생 모두 비슷한 말씀 하셨다. 무식한 줄 모르면 유식해질 수 없다. 일단 니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 한예슬 언니가 ‘꼬라지 하고는’ 하고 말할 때 그거.

- 때와 장소에 적합한 합리적 의제 설정, 명쾌한 설명, 정확한 근거 제시, 절묘한 비유. 이런 것들이 바로 카테고리 신이 내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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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미있네요.

글샘 2009-02-12 21:27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니 제가 오려 붙이고 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