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들여다보다 - 동아시아 2500년, 매혹적인 꽃 탐방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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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꽃에 대한 탐서처럼 보이지만 실은 꽃에 얽힌 한시에 대한 이야기다.

한시를 공부하는 사람이

이처럼 꽃이나 나무의 종류별로 시를 얽어 모으는 재미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참 재미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재미나게 세상을 살면 참 좋겠다.

매를 기르는 '메이블 이야기' 같은 책을 읽으면,

먹고 사는 일에 바쁜 우리 이야기와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학자가 한시를 공부하면서 이처럼 꽃에 탐닉하는 일은 부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물 맑고 얕은 곳에 성긴 그림자 기울어 있고

달빛 황혼 속에 은근한 향기 끼쳐오네(임포, 산원소매)

 

매화는 가지가 성글고 꽃도 은근하다.

그림자와 달빛의 은근한 어울림을 탐하여 창가에 심던 꽃나무다.

그런데 매화 좋아하던 퇴계의 도산서원에

금전을 의미하는 모란을 그득 심었다 하니 정신세계의 피폐함에 안쓰럽다.

 

추사와 교통하던 정판교의 파분란화도 재미있다.

 

봄바람 봄비로 어여쁜 얼굴 씻고

바다의 신선도를 떠나 인간세계로 왔네

그러나 지금까지 끝내 알아주는 사람 없어

화분을 깨뜨리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네

 

화분의 난을 깨뜨리고 산으로 가겠다는 땡깡이 성질 제대로다.

그렇지만 저런 투정같은 어조가 시의 말맛을 돋운다.

 

여름철 처음 연꽃이 필 때

연꽃은 저녁에는 오므라들었다가 새벽에 활짝 피었다.

운은 작은 비단 주머니에 찻잎을 약간 넣어서 꽃봉오리 속에 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꺼내어 샘물을 끓여 우려내면 향기가 더욱 뛰어났다.(심복, 부생육기)

 

접시꽃을 의미하는 '촉규화'는 최치원의 시가 유명하다.

 

적막하고 황폐한 밭 가에

많은 꽃이 부드러운 가지 누르고 피었네

향기는 매우를 겪어 없어지고

꽃 그림자는 맥풍을 띠고 기울어있네

수레와 말 탄 사람 누가 보고 완상할까

벌과 나비만이 부질없이 엿볼 뿐

자라난 땅이 천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남들에게 버림받음을 한스러워하네

 

가녀린 가지에 커다랗게 핀 접시꽃을 보고,

볼품없는 처지에 재능을 띤 자신을 투영했다.

양반의 처소나 궁궐에 어울리기보다

길거리에서 바람 먼지나 뒤집어쓰기 십상인 꽃.

 

일제는 무궁화를 베어서 불태우고,

꽃가루가 피부에 닿으면 부스럼을 나게 하는 꽃이라고,

눈에 들어가면 눈병이 나는 '눈의 피꽃'이라고

조직적으로 헛소문을 퍼뜨려 말살하고자 하였다.(334)

 

문화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며 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그들의 행태는 참 그악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선진국이 된 지금,

이 병신같은 대통령과 무슨 밀담을 나누었기에

위안부 소녀상 처리에 저리 집중하는 것인지,

무궁화를 의미하는 '근'자를 이름자에 넣은 사악한 여자 참으로 지겹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설을 마구 지껄이고,

껄렁껄렁 덜렁덜렁거리는 래퍼들의 읊조림을 듣다가

옛 사람들의 은근한 문장을 접하자니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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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시인선 90
허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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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방에서 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래서 그의 오프닝 멘트 모음을 읽은 적도 있는데, 시집이어서 찾아 읽는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저녁의 호명, 부분)

 

아재개그처럼 유사한 발음도 아닌데,

두 자음의 유사함이 아득한 거리를 표현한다.

슬픔이 아름다운 걸 비애미라고 한다.

삶이 비애미로 가득한 세상이다.

 

뭍이 물을 들이는 저녁의 멀미

물이 나를 삼킨다

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불린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하현의 발꿈치

맨발이 시리다

물이 온다(물이 올 때, 부분)

 

물, 저녁, 물금... 하현, 이런 말들은 여성을 떠올리게 하고,

울음...은 시인의 기본 심상인 듯 하다.

시인만 그러랴. 삶이 언제나 울음으로 가득한 것임을...

시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너는

거기 앉아

죄 없이 눈부시구나

 

이 멀고 억울한 향기

나는 알지

네 몸 냄새

캄캄한 향기(제망매 - 흰 꽃들의 노래, 부분)

 

이제 나도 알겠다.

캄캄한 향기를, 캄캄해진 몸 냄새의 억울함을...

 

여성의 목소리, 사투리를 쓰는 이의 목소리를 통해

삶의 비애를 대변하는 시도 많다.

 

젖이 많아 갖고 웃물 짜서 한 양재기씩 내 놓으문

할머이가 쇠죽에도 붓구 국묵에도 붓구,

샘물에도 갖다 쏟아붓구 그랬어.

굴묵에 연기 나오듯이 젖 많이 나오라구.

샘물에 붓는 거는 부정 타지 말라구.(유전, 부분)

 

아이엠에프 때 갈라서고 안 해본 일이 없어유. 

입원했을 때, 지가 보호자 한다구,

아 근디 이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갔으니 미치겠어유.

그래도 억울한 거는 풀어줘야 딸 보러 갈 명목이 서지 않겠어유?

(목에 걸린 학생증을...) 명색이 아빤데(보호자, 부분)

 

시는 구체적이지 않다.

파편적이고 이미지적이다.

그렇지만 학생증, 아빠, 이런 단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렇게 다들 이 시대를 앓고 섰다.

 

한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버티는 힘은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이 아닐까?

용산에 대한 부채감도 있고, 쌍차에 대한 부채감도 거들지 몰라...

분노로는 그렇게 할 수 없거든.

 

들썩이는 치열

나는 나로부터 멀다

습성은 문득 낯선 얼굴

 

이후는 다시 이전이 될 수 없다

 

킁킁, 이 냄새는 뭔가(입덧, 부분)

 

페미니즘이라는 말에는 쌍심지가 돋아 있다.

모성이라는 말에는 착취자의 음흉한 심사가 들어있다.

 

그렇지만 둥근 무엇이 여성 안에 들었다.

여성인 시인은 그런 것을 그린다.

 

아이 가진 여자는 둥글다 젖가슴은 둥글다 응은 둥글다

구르고 구르다가 모서리를 지우고

사람은 사랑이 된다

종내는 무덤의 둥긂으로

우리는 다른 씨앗이 된다

0이 된다

제 속을 다 파내버린 후에

다른 것을 퍼내는

누런 바가지

부엌 한구석에 엎디어 쉬고 있는 엉덩이는

둥글다(둥긂은, 부분)

 

페미니즘 같은 말이야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노동자 해방도, 신자유주의도,

그런 말들 다 없는, 개념 이전의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석 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가 되어 살면 될라나...

에혀, 매화가 피었으나

쌀쌀하고 쓸쓸한 봄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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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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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전문)

 

아이들은 신비롭게 태어난다.

강낭콩만한 배아가 엄마를 입덧에 시달리게 하고,

평소 엄마가 먹지 않던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게 한다.

눈도 못 마주치던 것이 6개월이 지나면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다.

음~마, 아바바...로 시작하는 언어도 2,3년이면 거짓말이나 농담을 할만큼 발전한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천재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아직도 건국중이다.

헌법 1조 1항에서 천명한 '민주'도 '공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제 강점기의 학교 잔재가 그대로 온존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욕심이 학교 현장에 투하된 결과,

일반계 학교는 몰락하고 특목고와 자사고 등만 승승장구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 와중에서 아이들의 삭막해진 정신세계가 비행으로 반영되어,

왕따, 괴롭힘, 일진의 폭력과 가출 등의 아이들 문제가 불거지지만,

정부는 언제나 무대책이거나 갖신신고 긁어대는 엉뚱한 대책만 남발하여

학교 현장을 일구덩이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그런 총체적 난국을 묘사하는 데는 장편소설만한 것이 없다.

조정래의 '풀꽃~' 속에는 갈등하는 아이들과 방향잃은 부모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새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근을 와서 3학년 담임을 맡아 첫날부터 밤 10시 넘도록 아이들 곁을 지켜야 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눈물겹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는 신도시 아파트촌에 있는 학교로 가정 형편은 중위권 정도인데,

인근 중학교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일반계로 진학하지 않는다.

전에는 매년 스카이 대학을 십여 명씩 합격시키던 학교였으나,

이제 지방 국립대라도 많이 보내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교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념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교육민주화의 줄임인 듯한 강교민 선생은 수업도 잘하지만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학교의 부조리한 일은 발딱 교사가 되어 지적하고,

아이들의 곤란한 일은 두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

 

소설 속이니 속시원한 이야기지만,

현실 속에서는 매일 쏟아지는 공문 처리에,

아이들 생활기록부 기록하기 위한 각종 행사 준비에,

그리고 온갖 항목의 생활기록부 입력에,

이명박이 '한국근현대사' 없애려고 바꾼 교육 과정에,

박근혜가 '국정' 추진하려 바꾼 교육 과정에,

매년 뒤바뀌는 사립대 살리기 입시 공부에,

아이들은 점점 수능 못 따라가겠다고 자빠지는데,

쾌도 난마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여기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극단적이지 않고,

순둥이들이어서 교사의 의도에 따라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교사들도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 않고,

나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직 희망이라면 희망이겠다.

 

내가 발령받던 1989년 전교조가 생길 때,

우리 아이는 좀 좋은 세상에 살까 생각했던 적도 있으나,

이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군대까지 마친 청년이 되고 나도 퇴직을 십년 정도 남겨둔 나이가 되고 보니,

대한민국의 현실은 쾌도 난마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가 서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공화의 이념을 가꿔 나가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학교를 살리는 길은,

부모가 욕심을 버리고 대안학교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민주 공화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독일처럼 기술자 우대해서 독일보다 더 세심한 기술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고,

핀란드처럼 뒤처지는 아이가 없도록 하여 민주 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이 강을 오염시키고도, 자원외교로 쪽박을 차고도 멀쩡허니 사는 세상에,

박근혜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도 저렇게 시퍼렇게 날뛰는 세상에,

지금처럼 학교가 온존하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

 

결국, 풀꽃을 꽃이게 만드는 것은 정치다.

황지우처럼 <멀리서> 쉬이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너에게 <가는> 마음이 필요하리라.

 

부모와 교사가 읽어야 할 책이고,

정치가가 읽어야 할 책이다.

아이들이 비명지르는 소리가 가득해서, 아프지만 그래도 미래에는 좀 나아져야하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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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마음 아프게 읽었어요.ㅠ 현실은 점점 나빠지는 듯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오늘도 촛불 들어요. 글샘님 소식도 반갑네요!^^
 
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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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A Land를 봤다.

 

라라랜드는 '로스엔젤레스 스타일'이라는 뜻이란다.

 

 

영화와 드리밍의 도시 LA에서

배우와 재즈를 꿈꾸는 자들이 사랑과 낭만 이야기다.

 

그 도시에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궁금하지만,

아마도 그 도시 사람들로서는 LA에 바치는 오마주로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City of Stars...라는 음악 역시 스타들이 횡행하는 도시에서 스타 되는 꿈을 꾸는 이야기...가 되겠다.

 

마지막 부분에서 두 가지 컨셉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미아가 셉과 결혼했더라면...이라는 '어바웃 타임' 류의 반전 스토리랄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단 한번뿐인 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일부터 새학기가 시작된다.

요즘 아이들은 그들대로 나름 힘든 삶을 영위한다.

맥없이 앉은 아이들에게 왜 의욕이 없냐 물으면 시간이 하염없이 길단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들도 많다.

아마도... 희망이 없어서 지금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지 못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교육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시간을 철학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음을 알려 준다.

주인공 아이의 닉넴도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오른손에는 모래시계를 왼손에는 반월도를 잡고...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반월도로 거세하고 제 능력보다 뛰어난 아들을 핏덩이째 심장부터 삼키는 신이다.

시간이란 그렇게 가차없다는 뜻일까?(42)

 

시간에 대한 작가의 관념은 들뢰즈의 철학에서 배운 것이라 한다.

 

현재란 결국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른 이미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이다.

 

기억을 단순히 지나간 약한 지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 다른 것으로 고찰해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각인, 잔상이 아니다.

무한한 과거의 연쇄와 상호 침투이다.

 

지속으로 생동하는 시간에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현재가 아니며,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 있지 않다.

현재와 과거는 절대로 동시적이며,

현재란 상호 침투하고 상호 연쇄하는 잠재적 과거의 집적의 선단이다.(250)

 

결국 현재는 과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래서 좋은 미래를 바라면 현재 아름답게 살아야 하고,

현재의 불행을 과거의 직접 원인으로만 파악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몸에 켜켜이 쌓이는 건지도 모르겠어요.(47)

 

그말을 이렇게 정리해 준다.

 

난 밥먹을 때 말하지 않네.

음식을 먹을 때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이 내 인생의 철칙이네.

거 잡생각은 떨쳐 내고...(61)

 

선발 집단이던 지난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단어장을 들고 밥먹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한 적이 있다.

밥 먹을 때 스트레스 받으면 소화도 안 될 것이니...

그렇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스트레스가 절대적 분량이라면,

밥먹는 동안이라도 그 스트레스를 이기려 노력하는 것도 한 방식이 될지 모르겠다.

암튼, 사는 거 힘들다.

 

할아버지를 통해 크로노스의 시간 규칙과 다른 것을 배운다.

 

일 분 일 초의 시간을 조각내어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크로노스라면,

할아버지는 카이로스였다.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회의 신으로,

시간 너머, 의미를 관장하는 카이로스.(65)

 

결국 작가가 의도한 바는 이것일 게다.

시간은 크로노스와 함께 차근차근 흐른다.

그렇지만 인생의 행과 불행은 한 순간 한 순간을 잘 산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찾는 것은 짧은 시간에 올 수도 있고,

한 마디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가지고 살 수도 있다.

 

방황의 시간처럼 무의미해보이는 시간도 배움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 '태도'의 문제가 아니겠나 싶다.

 

청소년들에게 시간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 안고 있는 문제의 무게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다.

청소년들의 시선에 맞추었다고는 하는데,

글쎄다, 청소년들의 시선이라고 비슷한 것만도 아니다.

 

아무튼, 꼴통들이 모여서 행복한 결말을 짓는,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64. 등골이 송연해졌다...는 어색하다.  모골이 송연하다... 또는 등골이 오싹하다... 이렇게 쓰인다. 아마 모골이 송연하다의 착각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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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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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서 교양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문학개론, 사회학개론, 교양독일어 이런 것들을 들은 기억이 난다.

개론 과목은 대학 교수들에게는 꼭 필요한 밥벌이가 아닐까?

도대체 그 많은 개론들은 왜 개설되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 대학 선배들과 시대의 덕에 '사회과학 세미나'라는 것을 많이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들이 모두 리버럴 아츠 였다.

그 시대에 유행한 '민중과 지식인'이나 '우상과 이성' 등이 모두 교양서이다.

물론 철학이 무엇인지를 공부하기 전에 마르크스의 저항론과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을 공부해야 했던 치우친 시대이기는 했지만, 나의 교양은 바람을 맞으며 술집에서 공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의 장점,

인생에서 교양은 왜 필요하며,

되는대로 살면 무의미함에 빠질 수 있을 때 교양이 필요하다는 것과,

교양은 인문, 과학, 문학이나 예술 등을 통해 함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한계,

도쿄법대 졸업하고 재판소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작가의 경험이라는 것.

그래서 일본 문학보다는 영미 문학이, 일본의 철학자보다는 서양의 철학자들이 우위에 서게 된다는 것.

에드워드사이드를 높이 친다면서, 자신의 책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는 것.

 

한국은 고려 광종(10세기 중반)때 과거제가 정착되어 '시험 불패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책읽는 것을 높이 치는데, 그 책은 바로 출세를 위한 책이기 십상이고,

공부라는 것은 시험 공부가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면 책이 뭔지를 잊고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독자를 탓할 일은 아니리라.

 

뇌가 진화해온 길은

기계적인 정확함이 아니라

애매모호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선택(84)

 

요즘은 대세가 뇌 과학이다.

인간을 동물보다 우세하게 여기기보다는,

뇌가 진화해온 길을 공부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다가서는 노력도 좋은 시도다.

 

프로이트와 융 같은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는 이들과

요즘 핫한 아들러 같은 작가를 비교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방법을 의식하지 못한 채

타성에 따라 살아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98)

 

아들러에 대한 칭찬이다.

인간은 자극- 반응을 보이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다.

생명체는 진화한다.

그 진화의 방향 역시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문학이란 한 사람의 이름없는 작가가

연약한 인간으로서 현실이나 시대와 온몸이 얼얼해질 만큼 접촉하면서

창조되는 것.(165)

 

이렇게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리버럴 아츠다.

한국의 문학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극우문학가 김동리의 아들이라는 녀석이

시대와 온몸이 얼얼해질 만큼 접촉하면서 남발하는 말들을 듣다 보면,

문학의 정신도 돈과 권력 앞에서면 맥도 못추는지도 모르겠다.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은 느낌은 상쾌하다.

 

나는 이 책을 삼십 대 후반에 읽었는데

어쩌면 이 책은 인생의 전부를 알았다고 느낄 때 또는 싫증나고 지쳤다고 느낄 때 읽어야 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도 읽지 않고 죽는다면 아까울 작품.(174)

 

톨스토이, 멜빌을 거쳐 프루스트에서 이런 찬사라니...

 

사람마다 찬사를 보낼 수 있는 분야는 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교양 없이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양 지껄이는 '스피커형 인간'은

독재의 선전 선동에 아주 적합한 인간 되시겠다.

 

노인들이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맹신하는 이유도,

박정희의 스피커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세뇌를 해서겠다.

 

아무튼 결론은, 청년들이여 책을 읽고, 생각을 하라... 되시겠다.

음악을 듣고, 예술을 감상하며, 영화를 보고... 생각을 하고 토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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