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듣는 벽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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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일단 사건이 단일하고, 등장 인물의 구성도 간단하다.

그리고 당연히 반전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박진감 넘치게 스토리가 진전된다.

 

반전은 언제나 주요 인물의 곁에서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이 소설의 경우 사건을 재연하여

범인을 밝혀내는 엘머 도드의 기지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뒷부분의 스토리를 암시하는 문장들이 암시적으로 제시될 때

그런 것을 읽는 재미가 있다.

 

마거릿 밀러, 찾아 읽고 싶은 작가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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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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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

 

제주도 우도 출신 해녀 잠녀 가족이 일본 바다로 출가 물질 갔다가

도쿄 남쪽섬 미야케지마에 정착하며 시작되는

잠녀로서의 신산한 삶과 재일조선인으로서 겪게 되는

민족차별, 모국의 분단상황에 따른 이념적 갈등 등이 담긴 이야기.(328)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심사 소감에 적혀있다.

 

이 할미가 글쎄 여행중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지 뭐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기미가요마루라는 연락선을 타고

제주를 떠나오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던 거야.(321)

 

삶은 여행이란 비유도 있지만,

디아스포라의 삶은 신산하다.

일본 역시 패전의 우울 속에 잠겼고,

패전국 내의 디아스포라는 더 우울했으리라.

 

나는 쿼터가 아니라 하프야

 

할머니의 피가 섞인 것이기만 한 줄 알았던 손녀는

아버지가 한국인의 자손인 것을 알고 당황한다.

이런 말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서늘함을 느끼기 어렵다.

 

바다가 아무리 험악하고 모질게 굴어도

절대로 원망하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아라.

바다는 말이다.

우리 잠녀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으니가.

우리네 인생이 바다에 달렸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101)

 

구월이가 해금에게 들려주는 인생이다.

어쩌면 이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상황에 대한 서술이 더 많다.

자칫, 형상화보다는 역사에 대한 서술로 읽혀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

 

자주 나타나는 영탄조의 발언은 적절치 않고,

설명으로 처리한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그중 일부는 묘사로 바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329)

 

내가 느낀 아쉬움을 심사평에서 읽었다.

 

우악스럽게도 질긴 뿌리가 살아있는 한,

식물은 홀씨를 퍼뜨리며 제 깜냥대로 생존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 어찌 그와 다르겠는가.(126)

 

이 구절은 원폭 이후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지속적인 공존의 방법임을 인간보다 식물이 먼저 깨달았다.

사람들은 주도권을 인간이 쥐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생존을 위해 선택된 진화를 해나가는 식물에게

인간은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식물이 인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은 그런 속된 마음을 품을 줄 모른다.

오히려 깊은 신뢰와 충정을 다할 뿐, 결코 배신은 하지 않는다.(144)

 

작가가 식물에 대한 애정도 많다.

그런 사유가 담긴 구절들이 아름다운데,

소설의 형상화와 더 어우러질 수 있도록 탐구를 요한다.

 

중독성이 강한 양념 고추, 역시 식물이다.

식물도 욕망이 없는 인간에게는 아마 관심이 없을 것이다.(152)

 

우도에 검은 모래 사장이 있단다.

여수에도 검은 모래 사장이 있고, 일본에도 있다.

 

검은바다

우연은 체념을 완성하기 전에 오는 기회다.

체념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듯.

포기와 체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기는 중도에 그만둬버리는 것이지만 체념은 도리를 깨달아 자신의 의지를 거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은 달관한 자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87)

 

포기와 체념은 다르다.

포기하는 사람은 노력을 접은 것이지만

체념한 사람은 노력해보고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다.

삶의 자세를 탐구한 책으로도 의미있는 책이다.

다만, 스토리가 쭉쭉 전개되는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직 작가의 역량이 덜 발현된 탓이리라.

 

충만은 소각이었고,

소각은 새로운 시작이었다.(190)

 

해금과 한태주가 만났을 때를 묘사한 구절 중 하나다.

작가의 글솜씨를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인물과 스토리를 통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제주라는 섬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한 책.

제주의 낭만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제주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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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인문학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교사들이 던져야 할 8가지 질문
실천적 생각발명 그룹 시민행성 기획, 황현산 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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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를 가득 안고 있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온존하고 있으며,

조선을 거쳐 강화된 시험만능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갈수록 불안해지는 사회는 학교를 지옥으로 만든다.

 

거기서 살아가는 학생들도 힘들지만,

철학없이 휘둘리기 쉬운 교사들도 힘겹게 하루를 넘긴다.

철학과는 상관없이 즉물적인 아이들과 부딪치는 접점에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철학을 가진다면,

그럴 때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신경전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조금 버릴 수도 있겠다.

 

교육의 그물망. 중심에 복속되는 질서가 아니라,

모든 개체들이 동등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생태주의적 그물망.

이 그물망 속에서는 그물코가 동등(37)

 

교사로 출발했던 나희덕의 고민은 다른 사람보다 실질적이다.

가르칠 교 敎라는 한자에 그물망의 의미를 확장시켜

인간 관계의 확산을 기하는 사고는 의미있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무지보다 무시가 더 큰 해악이...

학생이 자신을 무시하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지적 능력을 타고 났다는 것.(39)

 

진정한 의미에서 무지한 스승은

학생의 잠재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그 잠재력이 특정 시기와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현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46)

 

무지한 스승이란 말이 좋다.

아는 체하면서 무시하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겸손하면서 신뢰하는 사람,

잠재력의 발현을 기다리는 사람.

드문 인격의 스승이겠다.

 

인문의 반대는 '야만'

'인간답다'는 말의 반대어가 '짐승 같다'라면,

지금 같은 물신적 사회에서는 '기계 같다'는 말이 더 적절.(67)

 

인문학 열풍이 스펙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사회가 된 것은 왜 일까?

전근대 사회가 야만의 계급사회였다면

현대사회는 기계같은 믿음에 근거한 사회라는 지적은 서늘하다.

 

창조성의 핵심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현존하는 사물세계의 오류를 바로잡고 보다 정확히 보는 능력(72)

 

인문학적 창의력은

물질적인 창조보다

사회를 더 올바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강조되어야 하는 지점이 그런 곳인데,

인문학조차 기계적으로 수치화되어 스펙으로 측정하려는 창의적 사고는 대단하다.

도대체 세상 어느 나라에,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에 독서 기록을 적도록 되어있을까?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역사가는 실제를 이야기하고

시인은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시는 보편적을 말하는 경향이 많고,

이것은 어떤 개연적 필연적 말과 행동을 설명하니까.(84)

 

문학의 역할은

구체적 삶을 통한 사고가 가능하게 한다.

철학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통해 세계를 더 따스한 눈으로 보게 한다.

학교가 사회에 필요한 기관이 되기를 바란다.

 

타인에 대한 배제와 폭력.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와 불순분자로 타자화하여 폭력을 가하면서 동일성을 강화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누리며 집단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속성을.

동일성이 형성되는 순간

세계는 동일성의 영토로 들어온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뉩니다.

동일성은 차이를 포섭하여 이를 없애거나 없는 것처럼 꾸밉니다.

동일성은 인종, 종교, 이데올로기,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리해 타자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타자로 구분한 이들을 편견으로 바라보며 배제하고

이에 폭력을 행사하며 동일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합니다.

반대로 주류의 동일성에 의해 타자화한 개인이나 집단은

삶의 활력을 잃고 자기실현을 하지 못하며 주눅이 듭니다.(127)

 

한국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은 아닌 사람을 배제하고,

전라도를 배제하고,

빨갱이를, 좌빨을, 종북을 배제해 온 현대사.

그들이 왜 죽창에 태극기를 매달고

계엄을 부르짖으며 교회를 동원하는지 잘 보여준다.

 

탄핵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죽기 직전 단말마의 떠는 모습이 더 처절한 것은 또 당연하다.

내일이 탄핵일이다.

 

한국의 교사들, 예비교사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아울러 이 답답한 교실 환경을 걱정하는 학부모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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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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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단편집이다.

표제작 최순덕~을 처음 찾아 읽었는데,

성경 구절처럼 2단 인쇄 그리고 구절앞에 장구 번호까지 붙인 뒤,

모자라는 인간의 종교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쩌면 태극기 흔드는 교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맹목적이고 광신도적인 성령 충만한 괴물들....

 

여기부터 다양한 밑바닥 인생들의 해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ㅋㅋ 거리면서 웃으며 읽다가도,

타도 노태우 시절의 최루탄 가득한 구호를 읽노라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보도방을 그린 '버니'나

시봉이의 옆에서 본 저 '고백 같은 이야기'는 밑바닥 인생들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머리칼 전언'이나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판타지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환상적 리얼리즘에 녹여낸다.

'백미러 사나이'나 '간첩이 다녀가셨다'에서는 시대에 비추어진 모습이 뒤틀려 해학적으로 그려진다.

 

이기호,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채집하고 싶다.

재미있는 생각이 가득한 작가인데,

사실 이런 것을 소설로 엮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밑바닥도 좀 지속적으로 그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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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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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핀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목련들이 꽃등을 밝히기 시작했고, 곧 찻길 가로 노랗게 개나리들이 수를 놓을 것이다.

봄은 꽃과 함께 온다.

 

선창엔 해가 길어 향연기 하늘거리는데

한 베개 가에 바람따라 대나무 그늘 곱네

상인은 잡결의 눈빛 서늘한데

연석에 앉아 서로 보며 늙음을 모르네(진화, 금명전석창포)

 

창포 곁에 앉은 스승과 제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禪의 세계를 나눈다.

 

내 흑수정에 대해 들었는데

술 담그면 온갖 근심 풀 수 있네

맹세코 한 방울이라도

양주 백 개와 바꾸지 않으리(성삼문, 촉포도)

 

양주자사는 큰 벼슬이다.

사랑을 그렇게 뻥튀겨 표현한 것인데 역시 성삼문답다.

 

달의 항아와 토끼, 계수나무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목서' 이야기도 아쉽다.

 

은목서 금목서로 향기를 날리는

밥풀같은 꽃들을 보면,

아름다운 여인 항아의 절구질이

펄펄 날리는 쌀의 향연처럼 느껴지고,

어떤 향수보다 은은한 가을을 매만져 주는 목서의 향을

계수나무라 부르지 못하고 일본 계수, 서양의 월계수에게 빼앗긴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만리교 옆 여교서는

비파꽃 아래 문을 닫고 사네

소미재자가 지금 젊건만

봄바람 관리하는 일은 전혀 모른다네(당 왕건, 촉의 설도 교서에게 부침)

 

당의 여류시인 설도는

뛰어난 재능으로 여성 교서랑이라 불린다.

소미재자는 아름다운 눈썹을 그린 여성.

비파꽃 핀 여교서의 상상이란...

원래 아름다움은 상상 속에서 더 부풀려 지는 법이니.

 

설도의 시는 '동심초'라는 노래로 널리 알려진 시를 소월이 번역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풍화일장로風花日將老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가기유묘묘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불결동심인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공결동심초空結同心草

 

한 주제를 잡고서

이렇게 문학과 세상과 어우러지는 일도 멋진 일이다 싶다.

난 어떤 주제를 잡고서 아직 젊은 내 나이를 살아갈까나...

 

일본의 어떤 할머니가 환갑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여

여든에 노인용 게임을 만들었다 하니,

나이를 한할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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