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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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물의 두권째인지 모르고 읽었더니

재미가 덜하다.

시리즈물을 다 읽을 생각은 별로 없다.

 

반드시 추가 병력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

그런데 이상한 건 당시 최고 실력이고 제일 노련한 수사관인 형사가

무기도 없는 상태로 범인과 협상하다

기관총에 맞아 무참히 살해됐어.(78)

 

주인공 해리의 파트너 베아테의 아버지 이야기다.

얼마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보이스'의 주인공 비슷하다.

한번 본 얼굴을 잊지 않는 베아테와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딸의 모습.  219)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죠.(219)

 

죽은 은행원의 남편의 말이다.

남편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남편은 참담한 마음을 잘 나타낸다.

지구과학적 지식을 뽐내는 작가는 좀 흥미롭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건 아니다.)

 

중성자성이 뭔지 아시오?

행성이오.

이 행성은 밀도와 표면 중력이 너무 높아서

이런 담배 하나만 떨어뜨려도 원자폭탄에 맞먹는 폭발이 일어난다오.

안나도, 사랑과 미움을 끌어들이는 그녀의 중력은 너무 강해서

둘 사이에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었소.

그녀는 목성과 같았소.

끊임없이 맴도는 유황 구름 뒤에 숨어 있는 목성.(294)

 

일본과 미국의 추리소설에 비하면,

유럽의 그것은 지적이면서 지루한데,

북유럽의 그것들 역시 지적인 지루함을 즐기며 읽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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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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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은 매혹적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보통 줄거리를 따라가기 쉽지 첫 문장에 집착하지 않는데,

김정선의 이 책 덕택에

소설 첫문장을 찾아읽는 법을 배운다.

 

바람이 분다. 순간 깨닫는다.

바람은 부는 순간 이미 떠나고 없다는 것을.

정체를 알 수 없을 때까지만 내 곁에 머물 뿐.

, 바람이구나 하고 느낄 때면 이미 바람은 내 곁을 떠나고 없다.

그래서, 바람이다.(65)

 

이렇게 재미있는 감상도 들어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김훈, 칼의 노래)

 

이 첫 문장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방인의 첫 문장처럼 인상적이다.

버려진 섬도 아련하고, 그 섬들이 여럿이어서,

섬마다라는 말도 애잔했는데,

사람이 다 죽어 버려진 섬에 꽃이 피었다니

이 한 문장으로 시가 되었다.

 

덧붙인 이야기도 예쁘다.

이 책을 도란도란 읽는 사람들이라니...

 

-꼬노 나가이 톤네루오 누케루토 소꼬와 유키구니닷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그곳은 눈의 나라였다.

 

일본어 연수를 받는데, 유키구니의 첫구절을 가르쳐 주었다.

문학은 번역할 수 없다.

저 일본어 발음을 도막도막 내뱉을 때,

또는 '나가이 톤네루오 누케루또,'의 쉼표 지점에서,

기대감과 기다림,

그런 것을 헤치고 나온

소꼬와 유키구니 닷다...는 벅차다.

 

언어를 배우는 만큼,

많은 세계를 경험한다는 말을 알겠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최인훈, 광장)

각자 따로 놀면서도 쉼표를 통해 묘하게 이어지기도 하는...

 

광장에서 이런 멋진 구절을 읽어내지 못한 나도 참 무심하지만,

그걸 읽어내는 작가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쉼표를 통해 묘하게 이어지는, 구절들.

 

그일에 대해 나는 굳이 알고자 하진 않았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하비에르 마리아스, 새하얀 마음)

, 이러면 안 되는데...(다케우치 마코토, 도서관에서)

    

이런 구절들을 만나면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겠다.

 

모든 건 잠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프레데리크 베그베데, 9,900)

      

모든 게 달라질 거야.(카타리나 하커, 빈털터리들)

 

무언가 결정을 내리기에 일요일 오후는 나쁜 시간이다.(프란세스코 미랄레스, 일요일의 카페)

    

시작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을 골랐을지,

그 호흡을 생각하게 하는 책.

 

하늘나라도 나라는 나라일 테니 나는 다시 국민이 되는 것이리라.

죽고 나서도 또 그 지긋지긋한 국민으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감옥이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감옥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신선할 것도 같고.(49)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게가공선)

아저씨 감옥에서 나왔죠.(나비잠)

 

사는 일은 지옥이고, 감옥이면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그 벗어난 곳의 언어 또한 '천국'이거나 '하느님 나라'라면,

재미없다.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실제로 닥쳐오는 위험보다 많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는 어떤 경고도 없는 법이었다.(편혜영, 재와 빨강)

 

삶은 유한하고

일회적이어서

늘 당황스럽고 주저하게 된다.

 

인간은 늘 부족하고 엉성하다.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나,

어쩌다 부모가 되고, 어쩌다 어른이 된다.

 

소설은 그 엉성함에 대한 변명이자 실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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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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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좀 묘하다.

젊은 여성이 비스듬하게 정면을 응시하는데,

옷차림은 혼자서 침실에 앉은 편한 차림이다.

 

젊은 날들은 가벼이 지나간다는 의미일지,

라이트 이얼즈는 '광년'의 속도로 지나가는 삶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것이 제각각이면서도 밀접하게 엮여 있고,

보이는 것과 달랐다.

실제로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51)

 

긴박한 스토리의 소설은 아니다.

심심하고 진지하지 않은 날들이어서

지루하다.

간혹 읽을 법한 문장들을 만날 뿐이다.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문제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 마치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듯이... (67)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타인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게 좋다.

스릴있거나 범인을 좁혀가는 이야기도 좋다.

이렇게,

가벼운 나날들을 늘어놓는 것은 싫다.

취향의 문제이리라.

 

날들은 온기를 잃었다.

때로 정오가 되면 작별인사를 하듯

한두 시간 여름같다가 금세 온기가 사라졌다.(119)

 

이제 냉기를 잃는 시간이지만,

한두 시간 봄같다가 온기가 사라지는 저녁은 비슷하다.

표현에서 배울 점은 많은 듯하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하나는

꿈꾼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325)

 

세상을 험하게 사는 사람들은,

러프한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은,

인생의 초입에서 이미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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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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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몇달만에 서재 사진을 바꿨다.

권력자가 구속되어야 민주주의가 온다는 말도 바꿨다.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촛불에 어떤 평화상보다도 명예스러운 역사가 남을 것이다.

 

책의 일본어 제목은 いなかの パンヤが みつけた <くさる けいざい>이다.

시골의 빵집이 발견한 <썩는 경제>

 

이 책에서 '부패'는 아주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

인간의 얄팍한 기준으로 부패와 발효를 나누지만, 사실 똑같은 현상이다.

 

한국 경제가 부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화하고자 했던 것일 뿐이다.

부패는 고착시키지 않는다.

새로 계속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GMO로 개발한 것들은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래 보존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썩지 않아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 자유롭게 부패하고 발효해야 한다.

가진자들만의 공고한 '앙시앵 레짐'을 더 말랑말랑하게 분해해야 한다.

 

비참한 사회 사회 상황을 향한 분노와 슬픔이 자본론을 쓴 동기(43)

 

이렇게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빵집을 연다.

한국 사회야말로 자본론을 읽어야 할 땅이다.

 

기술 혁신은 겨ㄹ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65)

 

맞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자본가의 편이다.

우리는 휴대폰을 통해서 1가구 1인터넷에서

1인 1인터넷의 비용을 자본가에게 바치고 있다.

 

제가 아는 제빵사는 대부분 코가 안 좋거나

피부가 상하더라고요.

잔류 농약 때문 아니겠어요?(78)

 

일터에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사흘은 가게를 닫고

일 년에 한 달은 장기 휴가를 간다.(111)

 

좋은 가게다.

그렇지만 그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물좋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인간이 더 겸손해져야 한다.

 

이 나라도 빵처럼

좀더 향기롭게 발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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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여행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 한 손엔 차표를, 한 손엔 시집을
윤용인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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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참 많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여행기를 쇼핑하는 사람들은 더 많소

(이렇게 죽어갑니다)(om의 녹턴)

 

김선우 시집에 이런 시가 이ㅆ었다.

여행기로 대신 가는 여행.

아마... 휴가 없는 국민으로 살아서 그럴게다.

 

여행...

낯선 곳에 가면,

작아진다.

외롭고 심심해 지는데, 그런 마음이 시의 마음이기도 하다.

 

내 그지없이 사랑하노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그 굽은 곡선, 정현종)

 

여행은 직선의 시간이 아니다.

곡선의 마음으로 나비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황동규)

 

영화 '편지'에서도 등장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다.

약수동 편에서

<소중한 사소함을 찾아서>란 제목을 붙였다.

소중한 사소함... 예쁜 말이다.

그 사소함은 소중하다.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그것은 표현되지 않은 사랑이다.

 

눈 앞을 가리는 꽃나무 가지를 쳐내자

황혼 빛 아름다운 먼 데 산이 보이네(초의선사)

 

아무리 좋은 것도

좀 멀리서 비껴 봐야한다.

여행은 그런 시간을 준다.

좀 게을러도 되는 시간.

최선을 다하지 않는 시간.

열심이 필요 없는 시간.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손 두발에게

머리 조아질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도보순례, 이문재)

 

밝아지고

민감해지는 것의 반대가

여행에서 얻는 것이다.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가 되어,

사는 것을 배우는 일이

시를 읽는 일이고

여행을 하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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