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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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작품들을 다 읽고 이 작품집을 읽으니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이름에서부터 소재에 이르기까지,

유창한 말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재미를 넘어서는 어떤 사고가 부족한 작품들도 보이는 듯 하다.

 

브루노와 통화를 끝냈을 때,

나는 뭔가 후추씨처럼 작지만 독성이 강한 물질이 나의 마음속에 던져진 것을 깨달았어요.(48)

 

후추씨가 가지는 이미지가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남긴다.

 

눈앞의 안개가 짙어질수록 대서는 점점 더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는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는다.(97)

 

이미지를 번지게 하여 분위기를 만드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처음에는 아무리 써도 남을 것 같지만

반이 넘어가면 언제 이렇게 줄었나 싶게 빨리 지나간다.(134)

 

이 말이 이 책에서 가장 명언일 듯.

 

천명관의 십년 전이 지금에 비해 습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성장이 반갑다.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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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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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소리 큰 여자의 노트 - 꽥꽥 소리지르기~~~

영어로 이런 표제가 붙어 있다.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이라는 부제도 맘에 든다.

 

인간은 서로 닿을 수 있다.(361)

 

전통적으로 풍자는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무기입니다.

힘없는 자들을 조준하는 풍자는 그저 잔인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저속하기까지 한 거고요.(259)

 

'위를 향한 주먹질'이어야 할 풍자가 '아래'를 향할 때,

이 땅에서처럼 약자를 위해 조직적으로 국가가 주먹질을 할 때

노무현과 세월호와 용산과 쌍차는

일베의 이름을 뒤집어쓴 국가의 주먹질 아래 난도질 당했다.

 

인간을 서로 다른 편으로 나누는 일처럼 관리하기 쉬운 법이 없다.

도다리를 이상한 생물 취급하는 것도 인간을 기준으로 나누어서 그렇다.

 

이 책의 작가는 코미디언이다.

엄청 뚱뚱하다는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비하하는 코미디를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뚱녀 코미디언이나 못생긴 얼굴을 무기로 코미디를 하는 여성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자기 건강을 그따위로 관리해서 일찍 무덤 속에 들어가는 걸 보게 될 테니 기쁘다.

저년은 당뇨병으로 다리를 잘라내고

돼지기름으로 꽉막힌 동맥때문에

마흔에 심장마비가 오면 틀림없이 그것도 가부장제 탓으로 돌릴거야.(214)

 

이런 찌질한 인간들은 세상에 널려있다.

이런 인간들이 익명의 이름뒤에 숨어서 세상을 비난하지만,

사실 약자에 여성이 들어간 것 자체가 불공평한 세상인 것이다.

 

말 많은 청교도주의자들이 공교육 시스템의 목줄을 틀어쥔 이 나라에 사는 우리는

포괄적인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성행위를 기대할 수 있을까?(235)

 

음란물이 넘쳐나는 인터넷이 무한정 제공되는 세상에서,

올바른 교육은 중요하다.

작년에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여성혐오 내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약자들에게 보이는 관심 역시 '연대'와 맞닿아있다.

여성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범죄자여서 구속된 인간에 대하여

여자가 대통령이어서 나라를 망쳤다고 말하는 건 비겁하다. 무식하다.

 

페미나치(23)라는 말도 등장했다.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자들이 '극단적'이라고 페미니스트를 욕할 때 쓰는 말로,

메갈리언이라고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리라.

 

한국 여성의 70%가 뚱뚱하다고 스스로를 부정한다고 한다.

 

완벽한 몸이라는 말은 거짓이다.(46)

 

물론 모델들은 늘씬한 것이 보기 좋을 수 있다.

그렇지만 먹방에 뚱뚱한 이들을 내세우면서, 그들이 당당해보이기보다는 개그맨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건강을 제치고, 몸매에만 관심을 두는 일은 성상품화의 전단계일 뿐이다.

 

삶에는 일관성있게 한 줄로 그어지는 포물선 같은 것도 없다.(62)

 

원인이 결과를 만들고,

자극이 반응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시선을 무시할 때, 인간으로서 자존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가임 여성 지도나 만드는 나라에서,

조금만 비판적이어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나라에서,

이런 책은 아직 두려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왕의 목을 잘랐던 무식한 혁명보다 더한일을 우리는 했다.

남녀의 동등함을 이야기해도 좋을 때다.

노동자도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시급 일만원 시대를 논할 때다.

 

내 몸은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움직이다니. 얼마나 큰 선물인가.(122)

 

깨달음과 당당함이 무기다.

인간이든, 여성이든.

 

여자들은 우리 자신이라는 그릇을 채울 기회를 얻지 못하는 때가 많다.(129)

 

유리천장이라는 한계가 있다.

여성이 일도 하면서 가사와 육아를 모두 떠안으면 그리 된다.

 

이번 금요일(2017.4.14)부터 공무원이 4시 퇴근을 한단다.

좋은 일이다.

외부인들은 욕을 할지 몰라도,

토요휴일제도 공무원, 은행이 먼저 했다.

조금씩 번지려면, 정경유착이 근절되어야 하고,

노동조합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

호주처럼 6주 휴가나, 프랑스처럼 7주 휴가도 미래에는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수치는 억압의 도구지 변화의 도구가 아니다.(150)

 

뚱뚱하다고 놀리는 일.

신체의 일부가 조금 다르다고 수치스러워하는 일은 억압이다.

세상이 좋아지는 데 필요한 건, 변화다. 억압은 아니다.

 

네가 사랑하는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네 곁에 머물면서 같이 돌아 다니기를 원한다면

새가 날아가지 못하게 주먹을 꽉 그러쥐어선 안 돼.

주먹을 쫙 펴고 새가 네 손바닥 위에 앉기를 기다려.

손아귀에 꽉 쥐고 있으면 그 새는 네 친구가 아냐.

너의 죄수지.

손을 쫙 펴고 사랑하라고.(314)

 

남자든 여자든, 사랑 앞에서는 서툴다.

그리고 불안하다.

새의 비유는 좋은 이야기다.

새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마음이 맞닿는 일이고, 우리는 서로 닿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강한 사람은 작고 구체적인 것들과 싸운다.'(375)는 말을 했다.

 

여성 문제가 더 시끄럽게,

슈릴... shrill...의 말 그대로,

더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꽥꽥거리며 터져나와야 한다.

 

김영애 씨의 투병과 사망 소식과 함께 이영돈 피디가 뭇매를 맞고 있다.

방송이 권력이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약자의 목소리도 꽥꽥거려야 권력은 약해진다.

우리는 닿아야 한다는 목표를 버려서는 안 된다.

 

딱딱한 개념서에 비해,

실생활에서 이해하기 좋은 예들을 가득 늘어놓은

아름다운 페미니즘 입문서로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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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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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칠드런 액트는 아동법이다.

제목을 원어 그대로 쓰는 것은 좀 우습다.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를...

아동법이 너무 딱딱하면 다른 제목이라도 붙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년의 여성 판사는 가정 생활에서 남편의 바람기로 잠시 혼란스럽다.

샴 쌍둥이 분리 수술 판결과

여호와의 증인 수혈 거부 사건을 해결하면서 그의 능력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그의 인간적 고귀함을 드높여 주는 것은 음악이다.

말러의 '느리고 고요하게'를 연주하는 판사라니...

동료 판사와 하모니를 맞추는 우아함이라니...

그리고 환자 아이의 어색한 바이올린에 맞춘 음악이라니...

 

물을 건너지 못하는 과부를 보고

큰스님은 등을 빌려주었단다.

시동이 나중에 절에 와서 물었다.

"스님, 스님이 여자를 막 업어도 됩니까?"

스님의 답,

"나는 강가에 과부를 내려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내려두지 못했느냐?"

 

삶에서 판단을 내려야 할 일에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남의 삶에 개입하여 판단하는 판사라는 직업이야 더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소설이었다면 피오나 판사의 음악회에

소년이 총을 들고 난입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지막은 애잔한 마음을 일으킨다.

 

피오나는 조용하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다정한 그 소년이 지녔던 삶의 열정과

그의 죽음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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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기담 사계절 1318 문고 95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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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괴담이나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이다.

 

헐리우드 귀신 영화는 청춘남녀가 야리꾸리한 분위기일 때 귀신이 등장하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야자 마치고 집에 가는 아이들 앞에 귀신이 등장한다.

불쌍한 청춘들이다.

 

푸르른 봄날...을 뜻하는 청춘은,

풀나무에서 꽃으로 대표되는 성적인 시기여야 마땅하다.

서로 관심을 끌기에 여념이 없고,

성적인 호기심에 나날을 보내는 것이 정상적인 것 아닐까?

 

초등학생부터 학원에서 나날을 보내야 하는 불행한 아이들부터,

뭔가 제 궤도가 아닌 듯 삐그덕거리는 방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까지,

이 사회에서 남녀 학생들의 청춘의 메시지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대학을 가거나 어른이 되면,

커플이 아닌 것에 대하여 무진장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반면,

결혼도 육아도 행복도 포기해야 한다는 세대를 탄생시킨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만든 잘못이다.

 

민주화되지 못한 세상 탓도 있지만,

급작스런 경제적 호황과 고학력자 양성에 맞물린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부동산 투기와 부정부패 정부를 가진 국민으로 살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 학교, 학원이라는 틀에 가둔 것이 이 나라의 청춘들에게 열린 세상이다.

 

수학여행 가던 배가 뒤집어지고

한차례의 구조 시도조차 없이 수장되고 말았던 청춘들 앞에서

기성세대는 많이 울었다.

해마다 100명이 넘는 자살 학생들 앞에서 청춘은 푸르지 않다.

 

이금이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애늙은이를 만드는 학원에 보내는 고찰, <나이에 관한 고찰>을 청소년이 읽는다면

자신의 나날과 겹쳐보이는 구부정한 척추측만이 비칠지 모른다.

<유니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 이야기에서는

한부모 가정과 입양이라는 복잡한 세계를 투영한다.

<검은 거울>에서는 입장을 바꿔볼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어른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며,

<1705호>는 이 세상에 만연한 고층 아파트 붐과 상호 무관심,

그래서 늘어난 실패하지 않는 자살, 투신...이라는 이야기를 섬뜩하게 들려준다.

<셔틀보이>는 휴대폰을 손에 놓지 못하는 세상의 아이들이 입을 상처와

그 아이들이 겪을 빈부격차 같은 것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푸른머리 소녀와 블루라는 고양이를 통해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이들을 그리워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괴담> 수준의 이야기들은 부분적으로 보이지만,

박민규 말마따나,

이 땅에서 사는 한, 청춘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청춘으로 사는 그것 자체가 <기담>이 되어버리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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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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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홀'은 장모가 마당에 판 '구덩이'일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의 '구멍'일 수도 있고,

영어 표기만 없었다면 홀아비, 홀어미, 홀로이 '홀~'로 읽을 수도 있겠다.

 

주인공 오기라는 교수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마비가 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185)

 

이 인간관계의 구멍에서 이루어지는 장모의 복수랄까 그런 것은

치밀하지 못하다.

흥미롭게 전개되던 스토리가 구멍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은 싱겁다.

 

인간은 그런 식의 빈구석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진실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오기는 수업시간이나 강연 때 자주 써먹었다.(180)

 

한국에서 인간관계는 끈끈하게 보이다가도 절벽이 된다.

인간은 그런 고독을 필연적으로 안고 다니는 존재임을

이 사회는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그 결락은 구멍이 되고, 구덩이가 되어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87)

 

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그렇다.

비교하고 엉뚱한 공상을 모델로 삼는다.

그런것이 구멍의 원인이 된다.

모두 그렇고 늘 그렇다.

 

사십 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

 

좀 어색한 핑계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정확할 수 없다는 것.

지도로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도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의미가 있기는 했다.

정확히 살필 수도 없고

선이 보이지도 않는 궤적을 누군가는 구태여 실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애썼다는 점.

정확히 알 수 없고 하나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온갖 정치적 의도와 편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세계.

그래도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75)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작가다.

나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도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 일도 그렇다.

어느날 황당하게 구덩이 속에 묻힐 존재이기는 하지만,

해석과는 달리,

삶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냄새와 온도를 가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구덩이도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구덩이에 빠져 죽느냐,

구덩이를 극복하고 기대고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의지다.

 

재미있게 전개되긴 하지만,

지도라는 상징체계와 삶을 잘 빗대고 있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성찰이 좀더 스토리를 통해 빚어져 나오길 바라는 아쉬움이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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