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용환의 역사 토크 - 시시비비 역사 논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 법
심용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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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범죄자 박근혜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국민들은 20주동안 주말마다 찬바람 속에서 버텼다.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와 루이앙트와네트를 단두대에 올린 것보다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태극기를 휘두르며 세상을 활보하는 범죄자 무리들이 단죄받지 않은 현실은 어둡다.

대선이 마치면, 국정원의 범죄와 일베 연관성을 캐내야 할 것이고,

국가의 플랜을 차근차근 발표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박근혜를 옹호하는 노인들을 보면

강박적으로 흥분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그저 세뇌라고만 하기에는 복잡한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대화의 형식으로 문제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본다.

 

문제의 복잡성을 잘 드러내고 있고, 한쪽의 주장이 가지는 한계도 알 수 있어 유익하다.

언론이 문제를 호도한 현실에서 제대로된 역사 교육과

언론이 제대로 보도할 사명을 수십년간 견지해야할 과제로 남을 듯 하다.

 

다소간의 문제는 있지만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

박정희가 이끌던 산업화 시대는 정말 대단한 시대였다.

 

4.19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군사혁명을 일으켰다.(국정교과서)

 

이런 거짓된 주장들이 노인들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이다.

가짜 뉴스뿐 아니라 가짜 교과서도 처단해야한다.

 

역사책은 위인전이 아니다.

특정 개인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 아니다.

스스로 임시정부 정통성을 강조하는 데 매진했으며,

대한민국은 그 혼자 세운 나라가 아니다.(173)

 

위안부 문제를 '식민 범죄'라는 말로 강조한다.

전쟁범죄라고 하면 전쟁 중 벌어진 특수한 상황에 묻혀 넘어갈 수 있단다.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과격한 남성적 태도가 느껴져.

그것보다는 꾸준히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함께할 수 있는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48)

 

전쟁 범죄든 식민 범죄든 위안부 문제는 경제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된다.

그것은 민족 감정의 문제이고, 자존심의 문제인 것이다.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도 복잡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방송에서도 내보내면 욕을 듣는 '일제시대(일제가 주인공인 시대)'란 용어를

역사학자가 쓰고 있다는 점에서 좀 수정이 필요하지 싶다.

96페이지 이후로 열번 가까이 등장하는 이 용어는 불편하다.

 

일제와 독재 시대의 경제 발전 방식은 상당히 유사하죠.

정부주도, 정경유착, 도덕적 정당성 없음...

이런 유사성때문에 기업인의 정신과 태도는 계승되지 않았나 하는...(123)

 

이번에 박근혜와 이재용이 구속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왈가왈부가 크다.

 

안창호는 검소한 생활로 일관, 김구 역시 너무 가난해 아내를 잃는 고통도,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가난했는데,

이승만은 대통령 직함을 빌미로 혼자 호텔에서 생활...

신채호는 '이완용이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비난(145)

 

있지도 않은 정통성을 갖다 붙이려니 국부로 그를 칭송하는 무리도 있는데,

참 한심한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1925년 임정에서 탄핵될 때까지 거의 해마다 이승만 때문에 문제가 발생.(152)

 

탄핵 선배가 여기 있는걸 몰랐다.

 

대강대강 편하게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는 태도는 역사왜곡을 불러일으키니 지양해야(155)

 

이승만은 친일파고, 미국을 등에 업고...등 쉽게말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그가 하와이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이씨왕조의 후손이라고 프린스 리라고 부르길 원했으며,

이 박사라고 떠받들린 면 등과 한국 전쟁기의 파괴적 행태는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평가도 논란인데,

공과를 분명히 해야한다. 공만 내세우는 것은 독재시대의 전형적 나팔수다.

 

전태일, YH 사건등, 박정희의 노동정책은 심각했다.

이에 비해 재벌에 온갖 특혜를 주고

정치자금을 받아내면서 정경유착의 폐해를 생산했던 한계(217)

 

박근혜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은 이런 것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그래서 대통령을 해먹은 모양이다.

 

'소유는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는 한국식 경제구조를 만든 게 박정희 정권(218)

 

참 슬픈 말이다.

급격히 치솟은 땅값으로 치부한 자들이

졸부의 탈을 벗고 중산층으로 자리한 것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나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 드는 세력이 된 시대가 슬프다.

 

땅에도 주인이 없다.

노동은 모두 귀하다.

배움은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정책에 녹인다면,

누가 대통령이되든,

이제 한국이란 시스템이 발전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기의 시대,

이제 다시 기회의 시대가 오고 있다.

 

변화 CHANGE와 기회 CHANCE는 조그만 차이지만,

그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므로...

 

역사를 공부해야 할 때다.

 

고칠 곳 몇 군데...

 

45. 한일협정... 3억엔을 받으면서...(3억 달러가 맞다.)

177. 1960. 5.16... 1961년이 맞다.

183. 1974년에 유신을 했다는... 1972년이다.

 

이런 중요한 수치를 틀리는 것은 역사책에서는 신뢰도를 낮추는 주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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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494
서효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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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wo some place...라는 커피집이 있다.

둘이서 썸타는 곳이라는 말이려니 하는데,

그렇게 플레이스는 둘만의 추억이 담긴 공간을 가리킨다.

한국어로 <장소>나 <공간>도 조금 다르고

영어의 스페이스와 플레이스도 다르다.

우주 공간도 스페이스고, 빈 공간도 스페이스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서도

아련한 동경이 있을 수도 있다.

가본 곳도 스쳐지난 곳에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 용어의 풍크툼은 뭔가 추억이나 사연이 담긴 장소에 가까울 것이고,

스투디움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공간에 가까울 것이다.

 

서효인은

자신이 돌아다니며 묻힌 냄새와

추억과 상념과 사고와 기억들을

장소로 만드는 묘미를 아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여수)

 

이렇게 여수는 그에게 투섬플레이스가 된다.

 

나도 이런 시들을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전주, 울산, 제천, 서울, 인사동, 인천, 광주, 나주곰탕거리, 서귀포이중섭거리, 성산갈치조림식당...

 

만났던 풍경과, 사람과, 냄새와, 추억과, 사념들이 헝클어진 기억을 남기는 일도 좋으리.

 

그 생각 속에는 역사 또한 엉겨있게 마련이다.

진주처럼 형평사 운동과 백정이 떠오르는 도시,

남강에서 그 비린내 같이 맡는 시들은 반갑다.

 

장소들은 행복을 부르지만은 않는다.

아픔과 고통으로 호명되는 장소들도 있게 마련.

 

광주의 분수대가 그러하고 금남로란 이름이 그렇다.

이제 진도와 목포라는 이름도...

 

공원에는 오랜 시간 맞아 평평해진 쓸쓸함이 있다.(효창공원)

 

한창훈의 '꽃의 나라'가 떠오른 송정리도 있었다.

 

권사까지 한 할매는

이른 새벽 홀로 제사상을 차리고,

나는 어쩐지 그곳이 예루살렘 같다고 느끼며...(송정리)

 

이른 아침,

어제가 부활절이었다고

조그만 종이 가방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네'란 글귀가 담긴 달걀을 놓고 간 아이가 있었다.

 

그 옆에 '여수'가 놓여있어

예수처럼도 보였다.

 

 

뒤표지에 반성의 문구가 멋지다.

성폭력 논란도 많았고, 표절 논란도 많았다.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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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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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왜 철학이 없는가?

철학할 만큼 한가하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철학은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돈을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인 세상을 만들었고,

이제 돈을 못벌면, 물려줄 수 없으면, 자식을 만들지 못하는 헬조선으로 전락했다.

그런 세상에 대고, 왜 철학을 못하냐?고 묻지 말라.

 

그 추운 20주동안, 철학이 없다면 길거리에서 촛불을 들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 혁명보다 더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면 길바닥에서 수백만이 모여 촛불하나에 의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가진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배워올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자들끼리 둘러앉아,

왜 이나라에는 철학이 없었느냐고,

왜 동양에는 자존이 없었느냐고 반성하는 일은 하품난다.

 

이 책에서 의미있는 시작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읽게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작가가 한국 사회에 대하여 애정과 관심을 덜 가진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고종이 왜군을 불러 동학농민군 3만을 우금치에서 학살한 것은 혁명에 대한 왕조의 행태였다.

청나라까지 박살내고 당연히 왜놈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민비는(혹자는 명성왕후를 애국자연 추켜올리지만, 학살자들에게 애국은 어불성설이다.)

철저한 왕조사관에 빠진 자로서,

왜놈들을 러시아에 기대 뻗대보려 하다 죽음을 맞는다.

결국 러시아까지 박살난 후,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한다.

일본군의 침략도 없이, 나라를 진상한 셈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 미국의 간섭으로 이승만은 대통령짓을 12년간이나 해먹는다.

저항을 제주도에서 또다시 학살이라는 방식을 써서 짓밟는다.

이승만이 쫒겨나고도 박정희는 18년의 압제를 자행한다.

경제적 발전은 박정희의 공이라기보다는

한국을 관리하는 미국의 경제정책의 일환에 힘입은 것이었다.(관세도 없이 수입해 준 시절도 있었다.)

박정희가 죽고 다시 군사 독재는 이어지고, 광주에서 학살은 벌어진다.

 

비겁하게 살아남는 일만이 삶의 목표가 된 사람들에게,

철학의 유무를 묻는 일처럼 치사한 일이 있을까?

가진 것 없는 아이들에게 전투적으로 공부하라는 나라에서, 철학 없는 국민을 꾸짖는 일이 가능할까?

 

아직도 노동조합을 불온시하고 전교조를 응징하겠다는 자가 '보수'를 참칭하고 대선에 나서는 세상에,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철학적으로 공을 차보려는 자는, 역시 가진자의 편이 아닌가 하고 열받으며 읽었다.

 

장자를 감명깊게 읽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장자에 감명을 받고 기껏 한다는 생각이,

장자처럼 살아보는 일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장자는 절대 누구처럼 산 사람이 아니네.(93)

 

이러면서 서양의 것을 몰아내야 한다는 논지를 세운다.

서양의 철학이 주가 된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철학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 것일까?

중국은 공산주의를 철학의 기조로 삼고 있으나, 문화 대혁명으로 상징되는 억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웨이보 같이 국내망으로 부분적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이고,

일본의 철학은 점점 보수화되는 군국주의 부활을 지켜보는 실정이다.

가장 다이내믹한 철학이 한국의 광장이 아닌가 싶다.

정치적 후진국을 벗어날 수 없는 제한적 현실을 인정한다면,

1980년대 광주와 2014년 세월호를 목도한 세대는,

누구처럼 싸우지 않고 끈질기게 촛불을 들었다.

 

강의를 이끌기 위해 한자를 하나씩 앞에 놓았는데, 책에서는 그것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경제적 기준으로 나누려고 한다.

그것 역시 서양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선진국은 철학이 있어서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부자 나라가 되었을 뿐이다.

땅따먹기가 한계에 다다르자 세계대전을 일으켜 천만 명 이상을 희생시키고,

그러고도 공황에 접어들자 전쟁을 통해 GDP를 높이는 방법을 쓰는 짐승같은 것들이다.

 

일본과 독일만 개새끼가 아니다.

일본과 독일은 나눠먹을 땅이 없어 대들다가 얻어터진 쫄짜들일 뿐이고,

세계대전 백년 전부터, 선진국이란 것들은 식민지에서 온갖 추잡한 일을 다 한 선배 개새끼들이다.

 

논어에서 '나는 나를 장례지냈다 - 吾喪我'를 인용하면서,

자기를 살해하고 새로운 세상을 촉구하는 외침을 보여준다.

항상 가진자들이 못가진자들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한국 땅에서 과연 스스로 돌아볼 만큼 여유있는 시절이 있기나 했던가?

 

그럴듯한 말로 독자를 개돼지 취급하지 말았음 좋겠다.

물론, 그가 독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고깝게 들리는 나의 억하심정일지,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못마땅함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이야기가 나쁜 말은 없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다.

 

능동적 주체를 장자식으로 표현하면,

자신을 지배하던 규정적 관념, 즉 성심으로부터 벗어난 소요의 정지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반화하여 자유라고 표현해도 되겠습니다.

자유라는 말 자체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자율, 자정 등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됩니다.(250)

 

노자 운운하는 사람의 말 치고는 참 가볍다.

이것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시절하고 비슷한 논조가 아닌가?

후진국 국민이여, 깨어나라! 이런 것 아닌가?

 

내 보기에 장자의 시대는 잔인한 폭정의 시대였고, 치열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장자의 '소요'는 출세하려 애쓰다 죽지 말고 평화롭게 사는 걸 추구하는 것이지,

결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남을 짓밟은 폭력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유'의 '自'는 그처럼 유목적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해선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기로부터 말미암에 세상이 바뀌는 것이고,

스스로 규율을 세우고,

스스로 깨끗하게 만들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의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애써 선진국이 되려면 또 짓밟고 억누르고 GDP를 높이기만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자'는 <저절로>라는 의미에 가깝다.

인위적으로 애써 하는 일은 지배하는 자나 평범한 자나 일을 망치기 쉽다.

노자는 저절로 다스려지게 하라는 통치철학이고,

장자는 저절로 태어난 인생, 저절로 되어지는대로(自然) 살라는 삶의 철학이 아닌가 싶다.

 

나도 강의를 들었더라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철학자들, 기업가들 불러놓고 지껄이는 강의라면,

광화문에서 낄낄대던 동학 농민들의 웃음과,

광화문 위를 날아 오르던 고래 등 위의 304명의 별빛들이 얼마나 찬란한지

아마도 모르는 일이기 쉬울듯도 싶다.

 

송시열의 이런 시조가 생각난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절로 (수) 절로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절로 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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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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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면

나무에서 뾰죽 솟아나는 봄눈들과 만날 수 있고,

분노스러운 마음과 실망스러운 마음도 주무를 수 있어 좋다.

세상사 누구나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 숙이고 걷고 있다는 걸 보게 되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기록한 것으로 가득하다.

굳이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즐겁다.

아니, 한발짝 걸어 나가서 같이 걸으면 더 즐거울 것이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8)

 

삶은 우리를 슬프고 괴롭게 한다.

그럴때면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 왜소하다 느껴지고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그렇지만 비껴나 있는 삶에 대한 생각을 만나면,

뭐 의기소침하고 두려울 것도 없다.

남을 아프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니...

 

고독하다는 것. 얼음과 같은, 쇠붙이와 같은 전율, 무덤의 냄새.

자비심 없는 죽음의 전조.

아 한번이라도 고독했던 자는 다른이의 고독이 결코 낯설지 않은 법.(16)

 

죽음과 고독에 대하여,

누구나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인지상정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헤닝 만켈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서 가득한 죽음을 앞둔 소회도 낯설지 않다.

 

호저 : 난 정말 기분이 좋아.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도 얼마나 멋지게 살 수 있는지 넌 상상하기 힘들겅.

난 내 외모가 멋지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확신하고 있어.(52)

 

호저는 이제 만족하는가.

그건 비밀이다.

비밀이란 원래 특성상 설명이 불가능하다.

설명하기 힘든 일은 흥미롭다.

흥미로운 일은 마음에 든다.(55)

 

황새와 호저의 대화 중,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호저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작가는 재미있다.

산책은 이런 생각을 궁글리기 좋은 시간이다.

 

희고 드넓은 고요가 초록빛 투명한 고요에 싸여있다.

그것은 호수 그리고 호수를 둘러싼 숲이다.

그것은 하늘, 창백하게 푸르고 살짝 우울에 잠긴 하늘이다.

그것은 물, 하늘을 그대로 닮아서 물이 오직 하늘이고 하늘은 오직 푸른 물인 듯이 보이는 그런 물이다.

달콤하고 푸르며 고요한 아침이다.(123)

 

대지를 즐기세요.

겁내는 자는 아무것도 즐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떨쳐버리세요.(127)

 

두려움을 버리고

겁내는 자세를 극복하면,

비로소 산책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꿋꿋하게 참고 견뎌라.

좋은 날은 그 다음에 오리니.

좋은 날은 항상 우리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인내심이 장미를 피운다.(166)

 

봄이 오면 장미도 피는 법이니...

 

자신의 작은 섬으로 간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굴곡진 길을 걸어간다.(189)

 

나는 결코 백치가 아니고 이성적 감수성이 발달한 편이다.

백치 역할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난 때때로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이고, 그게 전부이다.(240)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조금 아픈 다리를 이끌고, 물집 잡힌 발을 조심조심 딛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걸음은

자신의 마음을 자기의 작은 섬으로 이끈다.

번역자는 '매혹되었다'고 펄쩍 뛰지만,

이 책은 조용하다.

하긴, 조용한 사람에게 매혹되었다는 사람도 있을 법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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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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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지나치게 과장되고,

띠지까지 붙여서 광고 효과를 노리게 되고,

책날개에는 작가 소개와 작품 개요를 실어 두고,

앞뒤표지에는 온갖 상찬과 요란한 리뷰들의 주례 비평을 가득 싣는걸 광고 효과라 생각한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써낸 두번째 책인 이 책은,

책에 대해서 생각할 좋은 책인데, 너무 비싸다.

딱 오천원이면 좋겠는데 하드커버에  11,500원이다

 

나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이 자유가 싫었다.(14)

 

인도인의 외모와 의복으로 튀는 어린이에겐

교복이 선망의 대상이었을 수 있다.

 

표지는 단순히 책이 입는 첫 번째 옷일 뿐만 아니라

첫번째 시각적 해석 혹은 홍보용 해석(24)

 

그런 면에서 과장이 심하다는 의견에는 적극 공감이다.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비밀스러웠다.

그 무엇도 먼저 드러내지 않았다.

책을 알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날 사로잡았던 작가들은 그들의 말로만 자신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표지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48)

 

도서관의 책에 대한 추억이다.

요즘엔 도서관에도 책표지를 붙여두기도 한다.

워낙 많은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텍스트 언어가 하나의 장벽일 수 있듯

표지도 장벽을 만들 수 있다. (68)

 

과도한 포장, 각종 수상 실적,

유명 매체들의 리뷰와 상찬은

작품에 대한 장벽일 수 있다.

 

결국 표지가 예쁜 것은 아무 상관 없다.

진실한 사랑이 그렇듯 독자의 사랑도 맹목적이다.(81)

 

자신이 책 표지에 대하여 다양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중요한 것은 표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자본이 중심인 세상이 아닌가.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깔끔한 옷을 입은 사람이 뭔가 더 우아해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표지도 작품성보다는 상품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고,

앞으로도 더 그 중요도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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