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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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영하 소설집이 배송되는 동안

도서관 서가에 가보니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날 부른다.

 

김영하를 제법 몇 권 읽었지만,

내 기준으로 압권은 '오빠가 돌아왔다'다.

이유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형상화라 말하겠다.

 

김영하의 사람들은 좀 흐릿하다.

작가거나 편집자거나 감독이거나가 많고,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처럼 존재감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제목들도 철지난 유행가 가사의 한 소절처럼 강렬하지 않다.

 

그런데, 천명관이나 성석제의 말맛처럼,

사람을 그리는가 하면

말맛에 휩쓸려 따라가게 되고,

소설을 맛깔나게 읽을라치면

또 개성적인 인물이 또렷하게 살아나는

단편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오래오래 들어온 라디오 연속극의 인물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43)

 

오빠는 아빠를 치고,

아빠는 오빠를 고발하고,

대화는 주로 욕설로 시작해서 비속어로 끝나며,

말과 말 사이가 긴장으로 가득하다.

 

2002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런 쫄깃한 작품들이 좀 더 들어있다면... 하고 바라는 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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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집에서 책 정리를 하면서
이 책을 본 것 같은데 정작 읽은 것
같지는 않네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작가분이 나오신
것 같은데, 신간 발매와 더불어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신의 장난...을 읽으려고 이 책을 샀다.

신의 장난...은 재미있었다.

김영하의 글이 막다른 골목으로 스토리를 마구 몰아치는 채찍질을 할 때

그의 글에서는 쉬익쉬익 소리가 난다.

 

김탁환이 4월 16일 이후

직접적으로 세월호의 상처에 다가가는 것과는 조금 대조되게

김영하는 아픔을 그려내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듯 싶다.

 

아이를 찾습니다...는 아팠다.

아이가 실종되고, 아내는 실성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그 후로 되돌아온 아이때문에 가정은 박살이 난다.

아프게 읽었다.

 

오직 두 사람...과

최은지와 박인수,

인생의 원점은 뭔가 격화소양의 느낌이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려 애쓰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튀는 공같은 것이고,

결국 인생에 대하여 말하는 일은 가죽신을 신고 발을 긁어대는 것처럼 답답할지 모르겠다.

 

옥수수와 나는 김영하스러웠다고 할까?

유쾌한 빗댐.

스스로를 옥수수라 여기는 정신병자가

호전되어 퇴원한다.

다시 병원에 온 그는 닭들이 자신을 옥수수로 여긴다며 호소하는...

 

나는 옥수수일까?

내가 옥수수가 아님을 안들,

닭들은 나를 옥수수로 여기고 달려들지나 않으려나?

 

빅뱅의 탑은 약을 먹고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는 자유당원들은

청문회에서 강경화를 김이수를 깍아 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옥수수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고 사는 쿨한 사회를 작가는 바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의 글이 자꾸 근질거림을 긁어주지 못하는

더 근질거림이 커지게 하는 격화소양의 아쉬움을 남기는지도...

 

교통방송에서 역주행 차를 조심하라는 소식을 들은 사람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조심하라 했더니,

"한둘이 아니야, 얼른 전화 끊어."라 했다는 개그를 인용하듯,

세상은 역주행하는 자가 자신을 모르는 데서 스토리가 생기고

소설이 기생하는 곳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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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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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십만 톤 하는 배의 진수식...

배의 진수식 광경은 장엄하다.

그 큰 배가 바다로 풍덩 빠지면서 금세 넘어갈 듯 기우뚱 하는 순간은

88열차의 수직낙하구간보다 더 아찔하다.

그렇지만 금세 부력을 얻어 중심을 잡아 제대로 서는 배를 보면 저절로 박수가 쏟아진다.

 

그런데 배가 쓰러지고, 누웠다.

하필이면... 이겠지만 2014년 이후 누운 배는 쓰러진 나라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필이면... 누운 배는, 이 소설에서도, 무너진 세상의 이치였다.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326)

 

만화 '미생'이 회사원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한 작품이라면,

'누운 배'는 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극대화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혁신이 무엇인가? 이노베이션.

이노베이션은 무엇인가? 혁신.

이런 식으로 두 외국어 사이를 오갈 뿐

실상 무엇을 의미하고 의미해야 하는지...(190)

 

결국 혁신은 이노베이션이었다.

부자들을 위핸 개발에 불과했고,

그럴듯해보일 뿐, 바뀐 것은 없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을 하고 어떤 답이든 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른채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말에 길들어가며 세월만 보내게 될 것.

결국 지금 저 배처럼

다 썩은 채 일어선 것도, 누운 것도 아닌 것은 내가 될 터.(306)

 

썩은 배는 결국 사회에 대한 은유만도 아니었다.

우리 삶이 일회성이고,

길들어버리면 누웠다 일으켜도 썩어버린 결과만 남을 수도...

 

회사는 여전히 이런 회사고

현실도 계속 이런 현실일 것이다.

어느 곳에나 바담풍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도망쳐도 되돌아오고 그만둬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곳.(295)

 

벗어나 수도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세상을 욕해선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에 게으르지 마라는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쓸데없는 의전으로 시간을 보내고,

밀려나고 뿌리뽑히고 버려지면 실패,

잠시 승리해도 무한정 지킬 수 없는 실패.

심판도 규칙도 없는, 오로지 요행의 세상.

악순환의 바퀴,

이런 회사 생활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미생'에서는 인물이 살아 숨쉬는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화자가 평면적이고,

반동적 인물들도 생생하게 살아 튀어나오지 못하는 한계가 아쉽다.

 

모든 주체가 책임은 회피하고 이익과 자기 보전만 좇았다.

얻어야 할 것을 얻기만 한다면 사실 따위 아무 상관 없었다.

누운 배라는, 자명하고 육중한 사실조차 그랬다.(65)

 

지금 나라라는 것이 그렇다.

나라 꼴이 밑창으로 처박혀 누더기를 입은 형국이어도

제 보전만 좇는 인간들이 천지로 널려있다.

이 나라가 그저 누운 배다.

 

사람들은 원인에 관해 말했지만

사실 책임에 관해 말했다.(20)

 

원인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은

이치를 따져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지만,

책임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은

면책에만 목표가 있다.

 

이 소설이 훌륭한 것이 그런 점이다.

나라의 상징이며, 체제의 상징이고, 삶의 상징인 것.

 

다소 아쉬운 형상화의 문제에 천착하여

기억에 남는 인물을 한둘 남겨주었더라면,

첫 작품이 불후의 명작이 될 수도 있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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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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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럿 읽었는데, 무라카미 류는 처음이다.

전에 읽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제목이 야하다. ㅋ

무려 69라니...

 

김해경이란 시인이 '이상'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69'라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요즘말로 '싸이'라는 예명쯤 되겠는데, 그 당시에 69라니... ㅋㅋ 심했다.

69는 이런 포즈를 뜻하는 말이다.

 

세계사에서 68 혁명의 시대라는 말도 있듯이,

전 세계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도덕에 대하여 저항하고 있던 시대 정신을 일컫는 시대가

일본에선 69로 지칭된다.

 

한국이야 그 시대에 1968.12.5... 이런 거 외우던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었던 암흑기였고...

 

청소년들의 좌충우돌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소설이다.

 

이 당시부터 나는 타인을 속이는 기술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때

상대가 모르는 세계를 일부러 내세우는 것이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79)

 

청년들의 황당한 좌충우돌은

시대에 휩쓸려 투쟁으로 휘말리기도 한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88)

 

히틀러도 그러했지만, 권력 쟁취에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사람들의 눈물보를 터뜨린 노무현이 그랬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나 '노무현입니다'에서는

그의 상상력이 결국 문재인을 만들었다는 결론을 얻게 한다.

 

체제는 풍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한다.(112)

 

학교도 또한 그러하다.

아침에 9시 등교가 그렇게 어렵고,

방학 중 보충학습 없애기가 그렇게 어렵다.

체제는 그 사소한 것에 목을 맨다.

결국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억눌리게 마련.

 

이 소설에서는 청소년들이 점거를 하고,

교장실에서 똥을 싸는 등  저급하게 웃기지만,

상상은 체제를 바꾸고 권력을 쟁취할 무기가 된다.

 

봉쇄를 막다니, 베트남 인민이 매일 몇 명이나 죽는지 아니?

저런 놈들이 난징이나 상하이에서 사람들을 마구 죽였던 거라고.(114)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체제에 반증을 들이밀려는 시도에는

언제나 과감한 일반화가 필요한 법이다.

형사의 방문을 받아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불행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

행복은 그 반대로,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한 쌍의 카나리아다.

눈 앞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123)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로 전락하지 않는 건,

이런 통찰이 담겨서일까.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진학, 취직, 결혼,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구역질나는 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는...(141)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146)

 

아,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잪이는 힘이 세다.(지은이의 말 중)

 

유쾌한 청춘물이면서도,

씁쓸한 시대와의 불화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득하다.

시대의 풍조는 달라도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먼 후일,

또 이런 글들을 쓸 것이다.

 

적어도, 그때 '정말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버린 선생'으로 기억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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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일기 - 2010년 - 2014년
박용하 지음 / 체온365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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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은

지난 10년간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강렬한 책이었다.

그의 글은 내 피를 자극했다.(29)

 

여러 날에 걸쳐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을 읽었다.

매혹적인 책, 그의 '침묵의 세계'와 쌍벽을 이루는 책.(262)

 

이러면 읽고 싶어진다.

작가의 '오빈리 일기'에 비해

이 일기의 시대는 더 참혹하다.

왜 안 그럴까.

강물은 썩어 들어가고, 세월호는 원한인데...

 

가고 싶지 않은 섬처럼 떠 있는 이웃들.

내 나라에서는 이웃들,

그것도 이웃이란 이름의 탈을 쓴

양심불량들 때문에 피가 역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142)

 

이제 시골도 더이상 예전같지 않나보다.

농촌 공동체는 변함없던 시절 이야기고...

사람들 사이의, 그 섬에 가고싶다던 시도 있었는데,

가고 싶지 않은 섬이라니...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네루다)

 

언제나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을 위해 울어줄 신 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다.(155)

 

그래서 시인은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야 한다.

인간의 문제를 울어줄 '곡비'는 시인이니...

 

그 조선 위선녀는 자위대 원숭이가 아닌 것처럼 군다.

악평 말고는 할 게 없다.

속이는 기술보다 속지 않는 기술이,

사기치는 기술보다 사기당하지 않는 기술이 먼저다.

누가 우군인지 알 수 없고

원군은 당나라 군대다.(164)

 

자위녀에 대한 이야긴가보다.

주어는 없지만.

요즘에도 악평 말고는 할 게 없다. 완전 썅년이다.

 

지난 5년간 예민과 과민 상태로

걸핏하면 분노와 고압 상태로

자주 나는 내 일상을 파괴했고 망쳤다.(185)

 

아, 나도 그랬다.

예민, 과민, 분노, 고혈압이었다.

요새도 화나지만

그건 정당하다고 여겨지니 좀 낫다.

 

과거 없이는 현재도 없고 미래 역시 없다.

우리는 어제에서 태어나 어제일 오늘과 오늘일 내일로 살러/죽으러 간다.

'화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에 담는 자나 세력은

가해자거나 가해의 역사를 가진 것들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지금도 죄를 짓는 2차 가해다.

꿈에서라도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피해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절대 이유.(189)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화해'라는 가해자로 박근해가 떠오른다.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불가역적 화해를 내밀던 미친년이 있었으니...

 

주체, 타자, 라캉, 들뢰즈...를 언급하지 않으면

글이 안 되는 족속들을 뭐라 이름 붙일까?

읽는 시늉을 한다. 질린다.

약간 들린다. 질리는 게 들리는 게다. 닝기리.(208)

 

맞다.

동서 냉전이 동구의 몰락으로 서구의 우세로 밀어붙여질 때,

세상을 설명하는 저자들이 등장했다.

질린다.

나도 읽어도 모른다.

 

왜 이리 이 화가에 이토록 끌리는 것일까?

이 화가의 무엇이 단박에 나를 체포한 것일까?(238)

 

에드워드 호퍼를 늦게서야 알았나보다.

그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이 호퍼의 그림엔 있다.

전근대와 농촌, 가난의 그늘을 벗어난

현대와 도시, 부유함의 양지에 드리운 또다른 차가운 그림자가 호퍼의 그림이다.

 

평론가는 박수치는,

편파적으로 박수치는 사람이다.

이름하여 문학 변호사.

시인을 기억하는 건 시인이다.(269)

 

맞다.

시집 같은 곳에 평론이라고 붙는 글들은

많은 경우 췌언이다.

사족이다.

아니, 변호사가 없으면 1달 만에 기소유예로 나올 거,

변호사 사면 30일만에 기소유예로 나오는 거나 마찬가지로,

문학 변호사는 돈만 들 뿐인지 모르겠다.

 

그의 시 세계는 어떨지, 기회가 되면 한번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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