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예찬 -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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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뭔가 끄적이는 것은 재미있다.

낙서를 하거나, 글씨를 적어 보거나,

타자 연습을 하고 타다다닥 규칙적으로 자음과 모음을 배열하는 작업을 하거나,

뭐든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사진도 찍고,

글도 쓰지만,

목공과 가죽공방을 드나든다.

나도 흥미는 있으나, 책을 읽다 보니 글쎄다.

한두 번 가보는 일이라면 모를까, 오래 다니기 힘들 것 같다.

 

짜맞춤 가구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한때' 참 잘했던 나 자신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64)

 

붓글씨를 배운 적도 있었다.

펜글씨는 나보다 훨씬 못 쓰면서

붓글씨를 잘 그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과거의 나를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만들 수 없음을 배웠다.

 

칭찬은 B형 남자의 바느질을 춤추게 한다.(100)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초보자에게 칭찬은 중요하다.

부족하다고 꾸짖으면, 발전보다 지겨움이 앞설 수 있다.

칭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함께 사는 여인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변수가 많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리미리 정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

아내는 정반대다. 항상 멋대로, 기분따라 행동한다.

나는 그런 숨 가쁨이 무진장 싫다.(217)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그렇지만 목공방, 가죽공방을 들락거리고

밤새워 바느질하는 비형 남자를 견디는 여자가 쓸 말이 더 많지 않을까?

 

물건만 잘 만들면 장인이야?

장인은 우리의 망가진 삶을

우리의 찢어진 마음을 꿰매고 수선하는 게 장인이야.

물건을 고치고 수선하는 것은

단순히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니야.

그건 그 물건을 사용하던 사람의

삶을 생명을 마음을 꿰매고 수선하는 거야.(258)

 

이렇게나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페른베...FernWeh...  먼 곳을 향한 그리움...(253)

 

페른베만 가득한 작가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명령어를

사랑하고 매만지고 보듬어주자라고 바꾸면 어땠을까.(292)

 

군대 수송부에서 만나기 쉬운 문장이다.

공방에서 자르고 깎고 꿰매는 일로

존재를 사랑하고 매만지고 보듬어주는 마음을 배우는 곳이 공방인 모양이다.

 

나도 퇴직하고 나면

어떤 공방이든 가보고 싶다.

햇살이 가득 비치는 공방에서

털실로 뜨개질을 할지, 대팻밥을 밟아가며 장붓구멍을 만들고 있을지...

손이 움직이는 것은 아직 젊음을 가진 것일지 모르니...

 

뭔가 조물락거리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고싶어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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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선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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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시세계는 다양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대 세계사에 우리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게 되고,

그래서 남미의 역사를,

칠레에서 피노체트와 아옌데를,

스페인의 내전과 지식인들의 연대를

그리고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나 '일 포스티노' 같은 영화들을 엮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칠레라는 나라가 워낙 다양한 위도를 건너는 길이를 가지다 보니

안데스 산지와 파타고니아의 한대기후까지

다양한 분포의 자연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네루다 시에서

풍요로운 자연의 은총을 느낄 수 있다.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6(140)에서 그가 말했듯

연대는 필요하다.

 

난 그 무엇도 해결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난 노래하기 위해 여기 왔다.

그대와 함께 노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소련의 콜호스를, 미시시피의 억업을,

볼리비아의 주석 광산과 파타고니아까지,

그의 노래는 자연 속에 있고

사람 속에 있다.

 

고통보다 더 넓은 공간은 없고,

피 흘리는 그 고통에 견줄 만한 우주는 없다.(점, 208)

 

혁명과 반혁명이 예리하게 맞부딪쳤던 이 고뇌의 시기에

네루다는 역사를 끌어안기 위해

고독과 절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자유에 복무하지 않는 일체의 창작은 반역을 의미했으며

정치적 앙가주망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 된다.(269)

 

스페인어라는 세계적인 언어로 쓰여졌기에

더 널리 읽힐 수 있었던 그의 시를

원어로 읽지 않는 것은 시를 느낄 수 없는 일인 듯...

 

시는 번역되지 않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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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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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상을 뒤엎지 않았다.

 

나구라가 왕따를 당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튀기도 튀지만 비싼 선수복을 입는 일은

부원들의 반감을 사기 때문이다.

나구라는 그런 눈치가 전혀 없었다.(24)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눈치가 없는 점도 작용을 할 것이다.

보통 방송에서 왕따 문제를

인간성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쯧쯧... 하고 말면 해결은 없다.

 

뭔가 부족한 아이들 역시

청소년기에 친구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기 남녀의 미묘한 감정까지 끼어들면, 심각하다.

 

캠프를 망쳐버린 장본인이니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약속을 깨고 고자질을 했다.(179)

 

이런 행위는 더더군다나 미움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후배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1학년 후배에게 기절놀이를 강요해.

다들 울컥해서 나구라를 에워싸고 등을 꼬집었다.(279)

 

테니스 부원들에

후배 부원들에

여자 아이들까지 나구라를 꼬집는다.

 

나구라는 멋지게 점프하는 친구들을 동경하며 몸을 날리고...

결국은 추락사의 결과로...

 

왕따 문제는

장본인의 문제도 있고,

부모와 가정의 문제도 있다.

학급과 학교, 사회의 문제도 있다.

 

결국 경쟁 중심이거나

청소년들의 미묘한 사이에서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른들이 그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성장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부족하게 마련이다.

 

누군가 지지해주고

누군가 상담해준다면

그 고비를 넘길 수도 있으리라.

안타까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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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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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치는 스스로 그룹에 뛰어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성가셔해도 그들을 졸졸 쫓아다녔다.

아마 사카이의 그룹에서 꽃겨나면 다른 그룹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가혹하다.(260)

 

중학교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이치.

사체에서는 오랜 기간 꼬집힌 자국이 발견되고,

집단 괴롭힘을 준 아이들은 14세가 겨우 넘은 2명과 아직 넘지도 않은 2명.

 

중학생이란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229)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는지...

뒤표지에는 <첫장의 예측이 무엇이든지, 마지막 장에서는 배신당한다>는 문구가 하권으로 재촉한다.

 

평범한데도 경험과 상식이 없다는 것이 소년 범죄의 비극이다.

저지르고 난 뒤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203)

 

소년범죄와 자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상황이고,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려운 문제들이다.

 

사회의 문제를 오쿠다히데오는 정면으로 바라본다.

학교의 입장, 아이들의 심리,

기자와 경찰과 검사의 입장에서,

유족과 가해자의 부모 사이에서,

하권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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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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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내 집도 내 집이 아니다.

집, 국가, 풍경, 몸의 왕국은 이제 내겐 낯설고 이국적인 것이 되었다.(142)

 

이 책은 치매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면서,

무척이나 상냥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훌륭한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157)

 

번역인데 번역의 어색함이 없어서 오히려 어색하다.

매끄럽고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오히려 이상하다.

 

어머니는 매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구를 땄던 그 해 여름 이후로, 어머니는 매번 다른 사람이었다.(333)

 

어머니는 행복한 아이였다.

얼마 후에는 자주 넘어지는 길 잃은 아이가 되었다.

그 다음에 어머니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점점 말이 없어지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337)

 

한 단계를 지나가면 더 곤란한 사람이 되는 병, 치매.

국가가 관리하겠다고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좀 안심이 되지만,

당사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치매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질환이다.

 

시인 마차도의 꿈.

자기 심장 속에 벌집이 하나 있고

벌들이 나의 오래된 실패들을 가지고 꿀을 만들어 내는 꿈.

실패는 쉽게 찾아오지만 그걸로 꿀을 만드는 일은 그보다 어렵다.

 

이 책은 쉽지 않았던 시절에 오히려 더 풍성해졌던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그럴 수 있게 도와주었던 우정과 친절함에 감사하는 마음은 전체에 흐르고 있다.(감사의 말)

 

누구에게나 실패는 흔하다.

그걸로 꿀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멋진 비유다.

 

미로는 미궁과 정반대다.

미궁은 하나의 복잡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이며, 때로는 중심도 없다.

그 안에서 헤맴은 긑이 없고 최종적인 도착지도 없다.

미궁이 대화라면,

미로는 주문이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미로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꺾이고 뒤틀린 곳에서 길을 잃게 마련이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 된다.

미로 속 여정의 끝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리 한가운데가 아니라 다시 입구로 나오는 것이다.

출발했던 곳이 또한 진짜 끝이기도 하다.

그것은 순례나 모험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집과 같다.

미로 안에서는 볼품없던 모퉁이나 여백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여정은 어딘가로 들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어 나오는 여정이기 때문이다.(277)

 

비유도 재미있다.

여러 가지 신화의 이야기들을 곁들여 비유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지진은 오랜 시간 쌓여 온 긴장이 낳은 결과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커지던 그 긴장이 쌓이는 과정은 볼 수 없다.

긴장은 오직 그것이 터져나올 때만 볼 수 있다.

아픈 사람과 노인,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 광경이 우리 안에 쌓이고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의 삶이 바뀐다.(259)

 

지진과 삶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이 울린다. 좋은 글이다.

 

어머니는 나를 거울로 생각했지만,

거기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울을 탓했다.(42)

 

어머니가 뜯어지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날아가고, 문단이 뭉개지고,

단어가 흘러내려 흩어지고,

종이는 순수한 흰색으로 되돌아간다.

가까운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더해지지 않는

뒤에서부터 지워지는 책.

어머니의 말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사작하며, 텅 빈 자리만 남았다.(24)

 

부제가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로 되어있다.

멀고도 가까운 사람,

멀고도 가까운 기억,

멀고도 가까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로 읽을 수 있다.

 

아련하고 아슴아슴하다.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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