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 어느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
요제프 로트 지음, 김삼화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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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어서서

안락의자를 소파 옆으로 당기고,

사진을 안락의자 위에 놓고 다시 누웠다.

서서히 눈이 감기는 동안

그의 눈은 하늘의 모든 파란 쾌청함을 잠 속으로 옮겼다.

그리고 새 아이들의 얼굴도.

사진의 갈색 배경에서 요나스와 미르얌이 나타나 그들 옆에 자리 잡았다.

멘델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진한 행복과 위대한 기적들을 체험한 후 휴식에 들었다.(249)

 

성경에는 '욥기'라는 대목이 있다.

고난의 대명사다.

삶은 고난이라는 것인데,

고난 속에서도 자식을 기르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지만,

또 그 자식들과 헤어져 살아가게 마련이다.

 

결국 잠드는 휴식만이 그를 안도의 숨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

고난의 이야기로는

세월호 이야기에 비하지 못할 정도다.

 

그닥 새롭지 않은 고통이 평범하게 전개된다.

 

우리는 부활한 죽은 이들이다.(253)

 

성경처럼 오래 남는 말을 쓰고 싶었던 작가였던 모양이다.

성경의 욥보다 욕보며 살아가는 치욕의 세상이다.

한국에 문학이, 영화가

이토록 처절한 서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 기록되지 못한 서사들이 더 많이 남은 것도,

성경의 욥보다 욕보며 살아온 현대사의 굴곡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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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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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나는 대부분 꽃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식물학 또는 미학과 거의 상관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자연의 형태들 - 나무, 구름, 강, 돌멩이 꽃 같은 것들 - 이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로 보여지고,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건 -  당연한 이야기지만 -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 딱히 우리를 향해 던져진 것도 아닌 메시지였다.

자연의 외양들을 텍스트로 읽어내는 일이 가능할까.(104)

 

왜 자연에 몰두하게 되는가.

작가는 매미 소리를 듣고,

꿀벌과 천둥의 소리를 들으면서 깨닫는다.

그것이 존 버거에 오면 수직상승하는 '지양'을 거친다.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절단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할 것.(109)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부려 쓸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군함도'의 미남 배우들처럼

폭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언어 뿐이니...

 

버텨온 우리는 아직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고,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연대 안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111)

 

존 버거는 자연에 매몰되지 않는다.

관조에서 꽃을 피운다.

언어로 사상의 꽃을...

사진만 찍고 관조하지 못하고 응시하는 작가들의 한계가 그런 것이다.

 

연대하지 않는다면,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 자본의 세상에서

더이상 인간으로 남을 수 없음을... 이 작은 책은 웅변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무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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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そがしいクリスマス ぼくは めいたんてい (新裝, 單行本)
마르크 시몽 / 大日本圖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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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문으로 되어있어 읽기 편한 일본어 동화. 단어가 반복되고 있어 읽는 재미는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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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 - 정신과의사 문요한이 전하는 여행의 심리학
문요한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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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이다.

대통령도 휴가를 간다 하고, 고속도로가 정체의 절정을 이루고,

온갖 숙박지는 바가지 요금으로 돈을 벌어 들이는 계절이다.

 

기업 중심의 문화, 부자 중심의 휴가가 되다 보니,

계를 모아서 일년에 한 번 버스를 타고 명승지로 가면서 술에 취해 버스에서 춤을 추던 시절도 있었다.

그나마 이제 8월에 한 주 사람들이 쉰다. 참 초라하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이 쓴 이 책이 부산의 '원북'으로 선정되었다기에 찾아 읽었다.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자신이 안식년을 내고 1년을 세계를 떠돈 가족의 이야기였다.

틈틈이 여행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삽입했다.

부러웠다.

돈도 있고, 안식년도 내고, 참 부러웠다.

 

그 부러움의 욕망이 여행을 부추긴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 비판하던 것처럼,

여행의 욕망은

 여행 자체의 고유한 가치에서 발생하는 것도,

 여행하는 사람의 필요에서 발행하는 것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모방하여 여행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늘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행하면서 먹기까지 하는 프로그램은 더욱 짜릿하다.

주변 사람들이 어디를 간다 하고, 무엇을 먹는다 하면,

그것들이 다 머릿속에 들어앉아 나의 욕망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나 아닐까.

 

지라르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의 모방이 진실임에도,

진실을 은폐하는 가운데 세워진 낭만적 거짓에 불과한 욕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래서 경쟁자인 타인이 대상을 손에 넣는다는 상상은

대상의 가치를 드높이고 욕망을 강렬하게 만들어

평등해지는 사회일수록 모방의 갈등이 강렬해진다고 한다.

 

맺음말에서 오르한 파묵을 이야기한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 속의 풍경까지 바꿔 놓는다.

 

여행도 그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활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여행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여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이후의 일상에 달려 있다.(318)

 

이런 좋은 여행조차도

타인의 욕망에 대한 모방이 아닐는지...

여행이란 말조차 낭만이고 꿈이던 70년대를 돌아보면,

일 년에 두 번 명절이면 길고긴 시간 버스에서 흔들리던 사람들의 시절을 생각해 본다.

욕망이란 말조차 낭만적이던 시절...

이유없는 반항이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같은 뜻모를 언어들에 대한 동경의 시절...

 

결국 여행은

자본의 흐름 속에서 파생된 상품의 하나이고,

욕망의 삼각형 속에서 감추어진 '타인의 욕망'에 대한 갈구이면서도,

자신의 일상에 활기를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다면적인 것이다.

 

절정 경험이란

부모가 되는 경험, 신비 또는 광활함에 대한 경험,

자연에 대한 경험, 미학적 지각, 창조적 순간,

치료적 또는 지적 통찰력, 오르가슴.

특정 운동의 성취 등의 순간 등이 있다.(매슬로, 215)

 

여행이 반드시 절정 경험일 수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를 따라서 히말라야나 남미에 갈 필요도 없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사는 곳에서 벗어나는 곳이면

거기가 인근 소도시의 모텔 방이든,

한적한 해안가든,

나름의 여행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텅 비운(vacant) 도시,

서울 같은 곳으로 바캉스(vacance)를 떠나는 것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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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 열림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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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아라 동무야

멀고먼 길

발은 부르트고

무릎은 깊게 깨어져

피멍이 들었구나

 

어이 쉬 잠들 수 있겠느냐

별들의 눈말울은 초롱초롱

바람은 초저녁부터

라일락 꽃가지를 흔들었네

 

잠들어라 동무야

사랑의 날이 올 때까지

동무야(자장가 - 귀정에게)

 

 

 

고 김귀정 열사 추모비

 

1991년 민자당 야합 후, 민자당 반대 집회가 거세지자

시위를 강경진압하다 희생시킨 귀정 열사...

 

아, 이름만 들어도 그 시대가 막막하게 다가온다.

노태우 김종필... 이 개새끼들... 김영삼, 비겁했던 위인... 그 시대가...

 

<김귀정 관련 포스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73713&memberNo=1990002&vType=VERTICAL

 

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 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

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계단을 밟고

내 오막살이집을 찾을 때

있겠지요

설령 그때 내게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이 찾아와

, 이게 네가 그 동안 목마르게 찾았던 그 물건이야

하며 막 봇짐을 푸는 순간이라 해도

난 당신이 내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신과는 상관없이

강변 숲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곽재구, 계단-연화리시편 5>

 

곽재구의 말은 다정하다.

강물처럼 잔잔하다.

 

곽재구가 타고르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한때 여행 자유화가 되었을 때,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그 막연한 이름들의 땅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가서 본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이십 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지만,

타고르처럼 잔잔해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가끔 김귀정같은 시를 만나면 반갑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고

 

깊게 사랑했던

사람 떠나간 뒤

 

젖은 눈 앞에

상처받은 세상의 끝이 보일 때

 

타고르

연화리로 와요(쓸쓸한 날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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