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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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이 문제가 아니라 죽는 사람도 있어요.

사고를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은 늘 위험에 방치돼 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사고가 생기는 거고요.

그런데도 전부 덮어 버립니다.(164)

 

전설의 동물 기린이 서있는 다리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곧 용의자가 체포되지만 그는 달아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우리의 '가가'형사가 등장한다.

가가 형사의 등장은 그 용의자가 살인자가 아님을 보여주듯,

느긋하면서도 정확하게 사건을 파헤친다.

 

윗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아랫사람들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할 일은

사실을 하나하나 밝히는 거야.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사실만 골라내다보면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지.(158)

 

용의자는 사망자와 같은 회사에 있었음이 밝혀지고,

산재 처리에 대한 불만이라는 사회 문제가 표면화된다.

그렇지만 가가는 늘 사건 너머의 그림을 응시한다.

표면의 저편에 이면이 존재하는 것이 삶이란 그림의 특징이니...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사실을 딛고 일어선다.

기린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싶듯이...

 

긴박감이나 흥미진진함보다는

냉철하게 범죄를 관찰한 가가의 추리력에 놀라고,

인간을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가가의 인정에 감동받는다.

 

바쁘지만 히가시노게이고를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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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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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나'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데,

부모가 돈을 무조건 주지 않은 일상의 경우, '책임'이 필요하다.

 

제현주와 금정연의 일상 생활에 대한 토크 방송인 모양이다.

책도 가볍고 읽기도 가볍고 좋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미니멀한 가벼움을 담고 있다.

 

위인이 등장하지 않아 좋고,

'해야만 해' 하고 잔소리하는 꼰대 어른이 없어 좋고,

'나처럼 살아 봐' 하는 꼴깝 언니가 없어 좋다.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아니 좀 찌질해 보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이 전 세계가 자본을 증식하기 위해

온 지구의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신자본의 시대에 맞서서

찌질하지 않고 폼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이나,

경쟁에서 이기려고 시간을 쪼개가며 사는 삶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오손도소 살아가는 것이 찌질하지 않은 것일 수 있음을

이야기들에서 들려준다.

 

누구나 죽는다.

그렇지만 오래 노인으로 살면서 죽는다.

그리고 돈도 벌어야 하고...

 

그런데 건강과 다이어트와 운동은 '체력'과 거리가 멀어서

늘씬한 몸매나 근육질같은 상품을 떠올리기 쉽게 한다.

 

자기 몸을 잘 살펴 관리하는 것도 기술이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삶을 영위하는 것도 기술이다.

 

김영하가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더라면...' 하는 이야길 한 적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강박에 갇혀 산다.

 

퇴근 후 회식 강요를 거부하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듯한 강박과

책을 읽으면 삶의 길을 알 것이란 강박과

건강하지 않으면 병이 걸릴 듯한 강박과,

어린 시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란 강박들 속에서

늙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좀더 널리 읽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은 이야기들이 좀 거시적으로 보이는 세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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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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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뜻밖의 수확이다.

온다 리쿠의 야망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다.

그 야망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대작을 써서 널리 읽히고 싶은 작가의 야망이리라.

그 분야는 바로 '피아노'를 통한 '음악'과 '인생'의 버라이어티를 변주하는것.


제목도 멋지다. 

꿀벌과 원뢰...

'꿀벌'은 일상 옆에서 잉잉거리고 노래한다.

그리고 꿀벌 왕자는 천재로서 피아니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원뢰'는 그야말로 멀리서 울리는 천둥 소리로,

하늘까지 다다르고 싶은 음악의 세계를 대변하며,

[여리게]라는 뜻의 '피아노'가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악기로 승화되게 하는 단어다.

이 단어를 하늘을 꽈르릉거리며 진동하는 '천둥'으로 옮긴 것은 못내 아쉽다.


참 오랜만에 아껴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휴가갈 때 가져가서 읽으려 했지만, 결국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야금야금 읽다보니 이미 파이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네 사람의 피아니스트를 형상화하는 데 작가는 성공하고 있다.

각각 그 성향이 다른 네 사람을 통해

680페이지에 달하는 스토리가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그 사람들의 개성이 오롯이 도드라지고 있다.


벌꿀 왕자는 '먼지 진' 자를 이름으로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아야는 이름처럼 여리기 그지없는 소녀로 그에게는 강한 원동력이 필요한 상태.

꿈을 접고 현실을 살아가는 아카시에게 콩쿠르는 언감생심, 그야말로 페이퍼 문(종이달, 그림의 떡)인 셈.

그리고 천재이기도 하고 외모도 출중한 마사루.


이 네 인물은 뛰어난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선가 결핍을 가득 안고 있어 소설의 긴박감을 더해준다.

피아노 소설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것은 그들의 결핍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주는 혼란일 것이다.

거기에 가자마 진이라는 에너지원을 넣어 이야기에 생동감을 넣어 준다.

마치 목포에서 노량진으로 가는 수조 트럭의 횟감 생선들 사이에 상어 한 마리를 넣어 주는 것처럼...


나도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1년 남짓 배운 적이 있다.

결코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닌 내가 꼬이는 손가락을 반복 반복을 통해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음악이 나오는 일은 창조같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연히 플루트를 접하고 소리를 내고 연주를 하게 된 것도 피아노를 배운 덕이리라.


천재들의 경지는 어떤 것일는지 몹시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뭔가를 깨우치는 순간은 계단식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제자리걸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여기가 한계인가 절망하는 시간이 끝없이 계속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표현할 길 없는 감격과 충격이다.

모두들 그런 지점들을 수없이 거쳐 지금 여기에서 무대에 서 있다.(455)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설을,

지루하기는커녕 아쉬워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핍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연주를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레가토처럼 옮겨가는 기법을 쓴 공이 큰 듯 싶다.

심사위원의 시점에서, 아야의 시점으로,

그러다가 진의 돌발 행동과 색다른 연주 경험으로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아야의 친구의 시점과,

최고의 재능을 돋보이는 마사루나 끝없는 아마추어리즘의 아카시까지

곡의 전개에 따라 재봉선이 없는 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천의무봉의 시점 전환은 소설을 매끈하게 만든다.


참으로 음악이란 신비하다.

연주하는 것은 그곳에 있는 작은 개인이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것은 매 순간 사라지는 음표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는 영원과 거의 같은 의미의 존재가 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이 영원을 자아내는 경이로움.

그 자리에만 국한된 덧없는 일과성의 존재,

음악을 통해 우리는 영원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571)


음악 철학이라 할까.

그런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듣고 있자니 그것 또한 흥미롭다.


본디 인간은 자연의 소리 안에서 음악을 찾았다.

그렇게 들은 음악이 악보가 되고  곡이 된다.

하지만 가자마 진의 경우 곡을 자연으로 환원한다.

과거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있다.(671)


작가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데 핵심이 되는 모티프는 '호프만' 선생님과

그의 폭탄인지 재앙인지 튀어대는 제자 '진'이 있다.


음악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약속.(673)


이런 생각을 통해, 자기 굴레에 갇혀 있던 아야까지도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다.

갇혀 있으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

음악은 소통이기도 하고

음악은 사랑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재미와 

음악이 주는 유익함을 맘껏 펼친 대작이다.


좋은 소설이다.

일단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으니 성공한 소설이고,

부정적 인물이 등장해서 쓸데없이 갈등을 조장하고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하지 않고도

물이 흐르듯 쏜살처럼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주제 의식이 쏟아져 나오니 멋진 소설이다.


세부에 치중하면서 인물 설정에 어색함을 보인 듯 했던

온다 리쿠의 몇 소설을 읽고 그를 던져 두었지만, 이 책은 감사하면서 읽었다.


악기 연주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책...




어려운 낱말 공부...


647.  음악에는 역사와 굴레도 있지만 동시에 항상 갱신되는 신선함도 내포되어 있다.

같은 한자라도 '갱신'은 '면허증 갱신, 인증서 갱신', 그리고 이 경우처럼 '다시 새로워짐'의 뜻이 있고,

                '경신'은 '기록 경신, 제도 경신'으로 쓴다 한다.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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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1 - 개정판 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1
박철 지음 / 진명출판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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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교수는

한국외대 총장도 했던 분이고,

돈키호테를 완역했던 분이다.

 

10년 전에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심을 가졌다가

사두었는데 테이프를 좀 듣다 말았다.

 

실비아의 멘토링을 들으면서

집에서 야금야금 보았는데 역시 요즘 책이 낫다.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은

그날그날 분량이 적어 좋고,

파일을 다운받아 폰으로 들을 수 있어 좋다.

 

어학 공부도 젊은 강사들이 대세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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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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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돈을 빌릴 일이 있어 재직증명을 떼었더니,

어언 28년 6개월을 재직했다 한다.

그 숫자의 무게에 입이 떡 벌어진다.

 

초롱대는 아이들의 눈동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

내가 어찌어찌 다짐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친절한 사람이 되고,

아이들 이름을 되도록 많이 외우고,

수업 시간에 우스개를 많이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고,

이십 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시간도 많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279)

 

결혼하고 '여보, 당신'으로 부르는 호칭은

두 사람을 기성세대로 훌쩍 넘기는 기분이 들어 마뜩치 않았다.

나이 들어서도 서로 ~~씨로 부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선생님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권위를 얻기 위해서

비꼬는 말, 내뱉듯 하는 말,

강하게 평가하는 말, 이런 말들을 늘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상처를 받았다.

나 역시 그런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았다.

차가운 언어는 차가운 관계를 만들 뿐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306)

 

이 책의 별을 하나 깎은 것은,

심심한 부분이 제법 많아서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많다.

 

두려움이란 것도 경이로운 감정이죠.

젊은 시절엔 모든 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들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

준비된 사람은 없어. 그러니 걱정할 필요도 없어.(269)

 

요즘 온다 리쿠의 '꿀벌과 원뢰'를 읽고 있는데,(천둥은 아무래도 마뜩잖다. 먼 뇌성...이 아련하고 좋다.

피아노...는 '약하게'라는 뜻인데, 거기 천둥이라니... 불편하다.)

천재들의 음악을 눈으로 읽으며

상상 속에서 호사를 누린다.

 

불현듯이란 말이

불 켠듯에서 유래했다는 설(202)

 

애지욕기생...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110)

 

소리를 언어로 붙잡는 이야기.

독자의 상상 속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언어의 예술을 활활 지펴올리는 온다 리쿠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장르 소설처럼 휘리릭이 안 되고,

남은 부분을 아까워하며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인데,

뜨겁지만 놓을 수 없는 온도의 언어를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하다.

 

 

 

 

 

205.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틀린 부분 : 흐붓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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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7-08-04 14:22   좋아요 1 | URL
어이쿠죠. ^^
지나간 시간은 참 짧아요.
남은 시간은 막막하겠지만 말입니다.

더 용감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