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십 사일간의 방학을 마치고 이제 개학입니다. 부산은 14일 월요일이 초중고 개학이거든요. 고3 담임은 아이들이 없어서 좀 한가합니다. 생활기록부 마감하고, 진학현황 파악하고, 졸업식 각종 상장 준비하면 되거든요. 아 신입생 받는 업무도 해야 합니다.

근데, 졸업식은 아직도 운동장에서 추운데 지루하게 진행됩니다. 난 운동장에서 하는 일체의 식을 거부하고 싶지만, 사실은 졸업식은 조금 설레기도 합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새 출발을 하는 스무 살의 어깨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이월의 그 차가운 대기 속에는 반드시 눈부신 햇살 속에 봄이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졸업식은 그렇게 겨울과 봄이 같이 있고, 시작과 끝이 같이 있고, 마지막과 처음이 공존하는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가장 당황스런 순간은, 졸업식을 운동장에서 마치고 교실에 오면 졸업앨범과 학업우수상, 개근상, 졸업장을 다 나눠주고 나면, 드디어 오랜만에 만나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고 쌍꺼풀을 만들고 옅게나마 화장을 하고 입술을 빨갛게들 그린 아이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게다가 교실 뒤편까지 쳐들어와 사진도 찍고 계신 만장의 학부모님들 앞에서 길게든 짧게든 <훈화> 내지는 <연설>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지난 12년의 공교육을 마감하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그 길게도 할 수 없고, 아니 할 수도 없는 한 마디에 담임은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3학년 담임을 예닐곱번 했고, 그만큼 졸업식도 겪어 보았건만, 다른 때는 한 시간이면 A4 두 페이지 가득 적곤 하던 제 글발도 졸업을 앞두고는 주례사를 치르는 식은땀 만큼이나 곤란한 마음 가눌 수 없습니다.

지난 방학부터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방학 중에 '마지막 담임 통신'을 마련해 두려 했지만, 결국은 졸업식을 나흘 앞둔 지금까지 아무 염을 갖추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저를 가엾이 여기신다면 짧게나마 인상적이었던 말이나, 여러분이 담임이 되고, 인생 선배가 되어 꼭 들려주고 싶은 졸업식사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건 이벤트도 아니고, 거의 구걸성 페이퍼에 지나지 않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적이 있으시다면, 소리없는 메아리로 넘기지 마시고 간단히 응답해 주시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니, 제게 큰 도움이 되겠지요...

마지막 담임 통신의 제목으로 <세상을 다 가져라>로 미래를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적을까 생각중이기도 하고, <물 위를 걷는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으로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적을까도 생각 중입니다. 불쌍한 담임에게 희망의 코멘트를 남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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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2-14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글샘님 , 벌써 원고 다 준비해 두셨을 듯 한데요^^ 연금술사를 작년에 이어 두번째 읽는 중입니다..참 좋은 책이다 싶어요. 그냥 메모했던 토막들 중..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다.

이런 구절이 있고..사실 저런 내용이 반복되지요..
그렇지만 읽을수록 새로운 비젼과 도전을 제시해 주는 듯 합니다.

코마개 2005-02-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글쎄. 우리 담임샘이 한 말중에 부모가 돈대줄때 하고 싶은거 다해라. 나중에 본인이 돈벌어서는 절대 못한다.-지금 제가 돈버는 이때 매우 공감하거든요.- 그리고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죽도록 아르바이트 해서 시간만 나면 배낭여행가고 죽도록 놀아라. 늙어지면 못노나니.

글샘 2005-02-16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피솔님...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다... 연금술사에 반복되는 이야기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쥐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진리를 말로 가르쳐 주신 그 선생님이 과연 젊어서 잘 노셨는지는 의문이죠. 그래요. 나이 먹은 우리가 못 했던 것들이 요즘 아이들에겐 가능하겠죠? 감사합니다.
 

客上天然居  나그네 천연거에 올라가더니 

居然天上客  느긋이 천상의 객이 되었네 


人過大佛寺  사람이 큰 절간을 지나가는데

寺佛大過人  절의 부처 사람보다 훨씬 크더라.


雁飛平頂山  기러기 평정산을 날아가는데

山頂平飛雁  산꼭대기 기러기떼 가지런하네


花香滿園亭  꽃이 만원정에 향기로우니

亭園滿香花  정원이 꽃 향기로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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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한 면에는 넘실넘실 강물이요  長城一面溶溶水

넓은 벌 동편에는 점점이 산일래라  大野東頭點點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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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지었다고 일컬어지지만, <최불암 시리즈>처럼 김삿갓과는 직접적 연관을 확인하기 어려운 시들...


仙是山人佛弗人  신선은 산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요

鴻惟江鳥鷄奚鳥  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 어찌 새리요

氷消一點還爲水  얼음이 한 점 녹으면 도로 물이 되고

兩木相對便成林  두 나무 마주 서니 문득 숲을 이루네


天脫冠而得一點  하늘이 모자를 벗고 한 점을 얻으며(犬)

乃失杖而橫一帶  ‘乃내’가 지팡이를 잃고 띠를 하나 둘렀네(子)


소동파가 벼루 뚜껑에 새겨 놓았다는 글(硯盖, 즉 벼루 뚜껑)

硏石猶在  연석은 그대로인데(石)

峴山已頹  현산은 이미 무너져 버렸네(見)

姜女己去  강녀가 떠나가자(羊)

孟子不來  맹자는 오질 않네.(皿)


天長去無執  하늘은 길어 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  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네

菊秀寒沙發  국화는 찬 모래에 곱게 피었고

枝影半從地  나뭇가지 그림자 반쯤 드리웠는데

江亭貧士過  강가 정자를 가난한 선비 지나다

大醉伏松下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어졌구나

月移山影改  달이 옮겨가자 산 그림자 바뀌고

通市求利來  저자에선 이利를 구해 사람들 돌아오네

<음으로만 읽으면...>

천장엔 거미집, 화로엔 젓불내음, 국수 한 사발, 간장 반 종지,

강정과 빈 사과, 대추와 복숭아, 워리 사냥개, 통시에선 구린내... ^^


書堂乃早知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房中皆尊物  방 가운덴 모두 다 존귀한 물건뿐

生徒諸未十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 되어

先生來不謁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음으로만 읽으면...>... 음, …… 淫陰音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김삿갓의 시

四角松盤粥一器  네 다리 소반에 죽이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하늘 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아 면목없다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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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13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죽이는군요. 김삿갓이라...
 

 

白犬前行黃犬隨  흰둥이 앞서가고 누렁이 따라가는

野田草際塚纍纍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 늘어섰네(연달을 류 : 纍)

老翁祭罷田間道  제사 마친 늙은이는 두둑 길에서

日暮醉歸扶小兒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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