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앞서 가면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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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 > 앞서 가면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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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 > 앞서 가면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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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35년 동안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이제 정든 법원을 떠납니다. 사건기록에 파묻혀 6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 대법관님들과 후배법관 및 직원여러분의 곁을 아주 떠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잘했다고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고 잘못한 일들만 생각납니다.
  
  환송해 주는 여러분을 뒤돌아 볼 면목조차 없이 떠나게 되어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자만에 빠져, 얄팍한 법률지식을 자랑으로 여기며 법관생활을 시작한 때의 교만했던 제 모습이 제일먼저 떠오릅니다.
  
  법관으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목표설정도 없이 첫 출발을 하였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사 때마다 일희일비하고, 주변으로부터 소외 당하지 않으려고 때로는 소신도 감춰가며 요령껏 법관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명성이 높은 개선장군보다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 중에 우리가 더 머리 숙여 추모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 왔습니다.
  
  저는 특정분야의 법 이론에 밝아서 훌륭한 저서를 남기거나, 특정계층의 이익보호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거나, 항상 다른 사람보다 앞선 자리에 발탁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그러한 법관보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행동이나 업적은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몫으로 돌리고 오로지 국민을 진정코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 하나하나의 처리에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한 사람도 억울함이 없도록
사필귀정을 이루어 내면서 사건당사자 모두를 위하여 묵묵히 봉사하는 그러한 법관이 더욱 더 자랑스러운 법관이라고 생각되어 후자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 묵묵히 봉사한 무명용사는 커녕 후회되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사법권의 독립 보장되어야 하고, 법관과 법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등의 당연한 말조차 남기고 갈 자격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법적분쟁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하여 마땅히 했어야 할 봉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또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사법부 독립의 침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저 자신의 부족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을 깊이 헤아려서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주며 신속하고 공정하게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주장하는 말을 자세히 듣거나 써낸글을 끝까지 읽는 것을 가지고도 마치 시혜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사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함이 없이 저의 편의만을 생각하여 재판기일을 정하고, 연기신청을 받아 주는 데는 인색하면서 직권으로 재판을 연기하기는 거리낌 없이 했습니다.
  
  충분한 기록검토와 휴식을 취한 후 맑은 정신으로 재판에 임하겠다고 항상 다짐하고는 이를 실천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곤한 몸으로 재판에 임하여서는 당사자의 주장이 장황하다고 탓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의 의미를 제 나름대로 해석한 나머지 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기도 하고 사건 당사자들의 편의를 배려하는데도 소홀했습니다.
  
  이론을 연구하고 판례를 숙지하기 위한 노력만큼 사건기록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사실을 파악하는데 정성을 쏟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게 했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서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권위는 그 법대 아래에 내려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 당사자의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권위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당연히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습니다.
  
  까다로운 절차규정의 준수만을 지나치게 고집한 나머지 실체적 정의의 실현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한 적은 없었는지, 그래서 사법적 절차에 접근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서민들의 보호를 소홀히 한 적은 없었는지 두려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35년을 몸 담았던 법원을 떠나면서 제가 무엇보다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진정코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침묵하였으면서 정작 사법부에 대한 경청할 만한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때 이를 외면한 채 '사법권 독립'이라든지 '재판의 권위'라는 등의 명분으로 사법부의 집단이익을 꾀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는 움직임에도 냉정한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동조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환송을 받기보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려운 사건에 접하여 고뇌하던 동료 법관들에 대한 격려에 인색하고, 빛도 없이 열심히 재판사무를 보조하고 법원조직의 순조로운 기능에 크게 기여하면서 묵묵히 사건당사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반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정성이 부족했던 것도 몹시 후회됩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법원을 떠나려고 합니다. 사법부의 어제와 오늘을 누구보다도 소상히 파악하고 계실뿐 아니라 국민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신 이용훈 대법원장님을 사법부의 수장으로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새 대법원장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격려하고 화합하며 긍지를 가지고 봉사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과 신뢰를 받는 새로운 모습의 사법부를 탄생시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는 저와 같이 후회스런 말만을 남기면서 법원을 떠나는 법관이 한분도 없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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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0-1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야 어쨌거나 마지막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그 용기만은 칭찬하고 싶군요...나의 교직 퇴임사도 저렇게 겸허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학습 활동지


1. 다음 글을 읽고, 빈칸에서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여 적어 봅시다.

상장을 찢어버린 날

“혜정아, 밥 먹어야지.” “싫어.” “혜정아, 빨래 좀 해라. 청소도 하고.”
“싫어. 엄마는 왜 그래 왜 나만 귀찮게 하냐고. 하기 싫어. 그러니깐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중학교 시절, 나는 하루하루가 짜증스럽기만 했고, 모든 것이 싫었다. 특히 엄마의 참견은 이래저래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하고만 가까이 지내고 가족들과는 별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지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어느 날 내게 크게 화를 내셨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충고가 곧이곧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상장들을 갖고 소각장으로 갔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 받은 상장들을 엄마가 보는 앞에서 한 장 한 장 모두 찢어 버렸다. 찍찍 찢어지는 소리로 내 화를 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 십 장이 넘는 상장을 다 찢어 버리고 돌아서려 하는데 뒤에서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서 계셨다. 힘든 농사일로 지치신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셨고 찢어진 상장과 나를 번갈아 응시하셨다. 엄마의 표정에 다소 겁을 먹었지만 나는 거리낌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있는 내내 엄마의 불그스름한 눈이 생각나서 선생님 말씀도, 그토록 좋아했던 친구들의 수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았는데 서랍 속에 종이 하나가 비집고 나와 있었다. 나는 서랍을 여는 동시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                                                                                                                                                           >

  미안함과 후회 속에서 내가 상장을 받아올 때마다 나보다 더 좋아하셨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고 눈물이 나온다. 나의 못난 모습이 얼마나 엄마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까.
  시간이 흘러서 인지 엄마는 내게 “넌 진짜로 고등학교 가서 사람 됐단 말이여”라고 하신다. 지금은 대학생의 되어버린 나. 그 시절 보이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들이 나에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굽은 허리 삶에 지친 얼굴. 때론 자식들 눈치를 살피는 엄마의 모습. 엄마의 모습을 알수록  엄마를 이해할 것 같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많이 사랑해.”

<'좋은 생각' 홈페이지 www.positive.co.kr 에서>

2. 다음 글을 읽고, 빈칸에 적당한 대화를 상상하여 적어 봅시다.

한 밤중의 전화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날 밤의 전화도 그랬다. 나는 그 요란한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았다. 붉게 빛나는 야광의 숫자들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어느새 일어나 앉은 남편과 눈길이 마주쳤다.
"엄마……."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옆자리를 더듬어 남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엄마, 너무 늦은 시각에 전화를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얘길 끝마칠 때까지는 아무 말씀도 말아 주세요. 물어보실 필요 없게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지금 술을 많이 마셨어요. 좀 전에 차가 거의 길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어요."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엄마, 나 지금 너무나 무서워요. 만일 내가 죽었다면, 그래서 경찰관이 엄마를 찾아가 그 소식을 전했다면 엄마가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지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아요. 엄마! 나, 너무나 집에 가고 싶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렇게 집을 뛰쳐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저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신지 잘 알고 있어요. 진작 전화했어야 했는데, 너무나 두려웠어요. 너무나……."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저……."
"엄마! 제발, 제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끝까지 제 얘기를 들어 주세요!"
내 말을 끊어버린 그녀의 외침 속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 속에 스며 있는 깊은 좌절을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달래 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얘길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 저 임신했어요. 이렇게 술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술 마시면 절대 안 되는데. 하지만 너무나 두려워요. 너무나.……."
그녀의 얘기가 다시 울음으로 이어졌다. 입술이 아파왔다. 언제부터인가 내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흐릿해진 두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입 모양으로 누구인지를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자 남편은 거실로 뛰쳐나가 무선 전화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엄마, 제 얘기 듣고 있어요? 제발 끊지 마세요. 엄마가 필요해요, 너무나 외롭고 무서워요!"
남편이 무선 전화기의 스위치 켜는 소리를 통화가 끊어지는 소리로 착각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에게 눈으로 물었다. 남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끊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래, 나 여기 있다. 절대로 전화 끊지 않으마."
"엄마한테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요. 엄마는 언제나 저를 타이르셨죠. 십대들의 성 문제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셨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하실 말씀도 많았겠죠. 하지만 제 얘기를 들어 주시진 않았어요. 그때그때 제 느낌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던 거죠. 내 느낌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 같아서 가끔씩 많이 서운했어요. 하지만 그 얘기조차 할 수 없었죠,. 엄마는 제 엄마이기 때문에 제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제가 정말로 원했던 건 해답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 얘기를 잠자코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나는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법'에 관한 이런저런 책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있잖아요. 도로를 벗어나서 간신히 차를 세운 다음 한참 동안 생각했어요. 아기 생각이오. 문득 사방을 둘러 보다가 이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어요. 절대로 음주 운전은 안 된다고 하시던 엄마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 걸기 전에 택시부터 불렀어요.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잘했다, 얘야!"
비로소 가슴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내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아 있던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엄마, 저 지금 운전할 수 있어요."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오는 것 같았다.
"얘야, 제발! 운전은 안 된다. 택시가 올 때까지 이 전화 끊지 말아 다오!"
"당장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그래, 제 마음 잘 안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도 제발, 택시를 기다려 줄 수 없겠니?"
전화기 저쪽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가 차를 몰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만 다급할 뿐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전화기 저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엄마, 저기 택시가 와요!"
천만 다행이었다. 택시를 부른 사람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먼 소리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꼬집듯 남편의 손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비로소 힘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저 지금 집에 가요!"
한결 밝아진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 전화는 끊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걸어 나갔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열여섯 살짜리 내 딸의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어두웠다. 뒤따라온 남편이 등 뒤에서 팔을 감으며 내 머리 위에 턱을 가져다 대었다.
"아이들의 얘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겠어요."
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그래, 우리 노력하자구."
나는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남편의 두 손이 나의 웃몸을 따뜻하게 감싸왔다. 그렇게 남편의 품에 안긴 채 나는 아이의 침대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남편이 나를 부드럽게 밀어내더니 내 얼굴을 살펴보며 물었다.
" (                                                          ) 그녀가 알게 될까?"
" (                                                          )라고만은 생각되지 않네요."
"엄마, 아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졸음에 겨운 목소리가 침대 쪽에서 들려왔다. 딸아이가 일어나 앉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우린 지금 연습을 하고 있단다."
"연습, 무슨 연습이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딸아이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듣는 연습."
나는 딸아이의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어머니를 위한 101가지 이야기(상), 잭 캔필드 외, 해바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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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2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은,,, 음,,, ㅠㅠ 찢어진 상장을 어머니께서 붙여 놨을 거 같구요,,,
2번은,,, 잘못온 전환가?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글샘 2005-09-2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모두 맞추셨네요. 잘못 걸린 전화를 받고 저렇게 정성스레 받아주신 어머니의 마음... 감동적이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