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퍼온글] [프레시안]'서민경제 회생'의 전제는 한미FTA 저지입니다 - 정태인

'서민경제 회생'의 전제는 한미FTA 저지입니다  
[기고] 열린우리당 김근태 당의장께 보내는 공개편지

FTA라는 환상
 
  당의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갖다 붙이니 영 딱딱하군요. 하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 읽는 편지라 생각하고 사적인 얘긴 되도록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결국은 국민이 한미 FTA를 막아내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초가 받을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정치지도자의 의무가 아닐까요? 특히 김 의장께서 경제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데 또 한 번 희망을 걸어봅니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얘기를 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수출과 투자에 대한 효과는 미미하거나 나쁜 쪽으로 나타날 것이고, 양극화는 극단으로 진행되리라는 겁니다. 이 점은 나프타 12년 동안 멕시코에서 마킬라도라 효과에 힘입어 그나마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급증했지만, 살리나스 전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한 것과도 대비되는 것이죠. 지난 6월 3일 KBS 스페셜을 보셨다면 눈으로, 또 가슴으로 확인하셨겠지만 양극화의 실태는 다음 그림으로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 제조업 생산성과 노동비용(연간 누적변화율, %, 1993~2002.6). 자료: J.W.Foster and J.Dillon, "NAFTA in Canada : The Era of a Supra-Constitution", KAIROS, p3.

  나프타를 맺은 세 나라 모두 제조업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나프타 이후에 관련 국가의 전체 국민소득은 증가했겠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분배 몫은 줄어들었다는 걸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생산성 향상이 많은 나라일수록 실질임금 하락이 더 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고용 없는 성장'이 이뤄졌고, 그나마 증가한 고용도 '질이 낮은 고용, 예컨대 비정규 노동'으로 채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라 안의 지역 간 격차,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간 격차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일과 같기 때문이고, 또 김 의장께서 강조한 '서민경제'의 어려움도 바로 이 때문이니까요. 그런데도 명백한 사실을 호도하고 나프타가 성공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의 재경부 관리 중 일부는 '결과적으로' 1997년 금융위기는 보약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몇 가지 이데올로기적 주장들
 
  한미 FTA에 관한 한 청와대의 국정브리핑과 이른바 '조중동(그리고 한나라당)'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대통령께서 그토록 원하던 '대연정'이 실질적으로 이뤄진 셈이죠.
 
  우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구한말의 쇄국론자로 모는 주장부터 기가 막힙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우리의 무역의존도는 70%에 달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럽의 몇몇 소국을 제외하곤 최고 수준입니다. 미국, 그리고 무역의존도가 높을 것으로 그들이 지레 짐작하는 일본은 10% 후반대에서 20% 초반대를 오르내리는 것에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숫자입니다. 또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공무원들이 외자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자는 것이 쇄국이라뇨? 쇄국이란 말의 뜻을 알고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김 의장께서도 경제학을 공부하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무역의존도가 저렇게 높다는 것은 곧 내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 따라서 국민의 삶의 질이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내수를 늘려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할 법합니다. 그런데 경제학 박사인 우리의 부총리는 오히려 더 개방을 해서 무역의존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FTA를 맺지 않으면 영원히 후진국으로 남을 것이라는, 박병원 재경부 차관의 대국민 위협은 더욱 가관입니다. 세계의 FTA 체결 현황을 볼 때 중남미 나라들은 평균 7개, 아프리카 나라들은 평균 5~6개, EU가 평균 3~4개, 동아시아 나라들이 평균 2개의 FTA를 맺고 있습니다. 1인당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FTA를 많이 맺고 있다고 주장해도 무방합니다. 적어도 FTA의 갯수와 경제성장률은 전혀 무관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1개의 FTA를 맺은 선두주자 멕시코가 무역수지 적자와 낮은 성장률에 시달리다 결국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걸 박 차관이나 경제보좌관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까요?

  
▲ 자료: Penn World Tables, EPI Issue Brief (2005년 10월 25일). 

  심지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낡은 일본형 시스템을 버리고 미국형으로 우리 경제를 개조하자고 무지에 찬 신념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미국과 가까운 덕에, IMF가 요구한 개방화/자유화를 통해, 그리고 그 완성태로 미국과의 FTA를 통해 미국형 경제시스템을 백분 받아들인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 국가들 간 성장률 격차의 확대를 그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까요?
 
  미국 FTA의 특징 - 상대 나라의 제도와 법을 다 바꿔라
 
  사실 우리 국민은 물론, 정치권이나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FTA에 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200여 개의 FTA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제로 WTO규정("실질적으로 모든 교역의 개방")을 만족시키는 것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FTA는 우리도 수없이 맺고 있는, 특정 분야에서의 경제협력 협정에 불과하고 따라서 구속력도 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이런 숫자에 현혹되어 초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다릅니다. 미국이 양자 간 FTA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로부터 시작된 다자간 협정이 지지부진하고 한편으로는 EU 등 선진국, 다른 한편으로는 개도국들의 반대로 자신들의 주장이 쉽사리 관철되지 않는 가운데 야심적으로 밀어붙인 FTAA(전미자유무역협정, 나프타를 중남미 국가들에게까지 확대하려던 것)가 수포로 돌아가자 당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로버트 죌릭(현 국무부 부장관)은 "경쟁적 자유주의(competitive liberalism)"를 들고 나옵니다.
 
  그는 아주 명석하고 직설어법을 구사하는 사람입니다(제가 보기에 미 정부 내에서 가장 지적인 이 사람의 말은 외교안보 면에서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나프타 공식문건에서도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부정했던 미국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미국은 나프타를 통해 '상대방 나라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지지'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겁니다. 즉 미국 FTA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개방화, 민영화, 금융긴축)를 상대국에 압박하는 수단이기도 한 것입니다.
 
  앞에서 IMF 구제금융과 나프타의 효과가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만, 죌릭은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발표된 미 의회 조사국(CRS)의 보고서(5.24)는 한국과의 FTA가 '경쟁적 자유주의'의 시범 케이스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p6).
 
  또한 미국의 FTA 정책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FTA, 즉 나프타보다도 더 포괄적이고 강한 FTA를 하는 겁니다. CRS 보고서 역시 솔직해졌습니다. 미국의 FTA에서 관세나 쿼터는 가장 덜 중요한 이슈에 속합니다, 오히려 미국 FTA는 경제행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 정책, 그리고 관행에 초점을 맞춘다고 공언합니다(p5). 즉 관세 등 국경 상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 나라 국경 안의 제도와 법률, 관행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이들은 한미 FTA에서 최초의 요소들(generic elements)을 도입하겠다, 즉 여태 구경도 못한 혁신적 조항을 담겠다고 강조합니다. 미국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이른바 신이슈로 알려진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무역관련 투자(TRIMS), 서비스교역(GATS)입니다.
 
  미국이 신이슈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미국 산업이 이 세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서비스 교역에 WTO의 포지티브 리스트(명시한 분야만 개방)가 아니라 네거티브 리스트(명시하지 않은 분야는 모두 개방)를 적용한다든가, 무역관련 투자 조항을 나프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 지적재산권의 보호 연한을 20년 더 연장하는 것 등 가히 충격적인데 이 외에 뭔가 '혁신적인 것'이 더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투자에 관한 장은 민주주의를 말살합니다
 
  이들 항목을 낱낱이 지적하는 건 이미 다른 분들이 많이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투자에 관한 장(chapter)에 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나프타 플러스'로 알려진 한미 FTA의 투자에 관한 장은 공개되지 않았으니 여기서는 나프타를 예로 들 수밖에 없습니다.
 
  단도직입으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투자에 관한 장은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방금 작은 따옴표로 묶은 주장은 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가해 당사자라고 할 수도 있는 미국의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 저 유명한 랄프 네이더가 시작한 단체입니다)이 만든 보고서의 제목입니다.
 
  시민운동이라면 혀를 내두를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온건한' 미국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의회가 나프타의 11장(투자에 관한 장)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애브너 미크바, 전 미 연방법원 패널리스트, 뢰벤(Loewen) 케이스 나프타 패널리스트). 미국조차도 이 장이 어떻게 활용될지 충분히 짐작하지는 못했다는 얘깁니다.
 
  "우리의 헌법 3조는 연방법원에 각 사건과 논란에 관한 결론을 내릴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러한 법률적 권력의 '핵심(essential attributes)'을 다른 심판위원회(tribunal; ISCID나 UNCITRAL를 지칭)에 넘기지 않을 것이다." (산드라 오코너 미 연방대법원 판사)
 
  이런 얘기는 미국 미시시피 주정부가 1994년 캐나다의 장례회사 로우언이 불법적, 반경쟁적 행위로 지역의 장례회사를 퇴출시키려 한다고 로우언을 고소하여 승소한 뒤, 로우언이 연방대법원에 제소했다 기각당하자 1998년에 다시 나프타의 기업-정부 제소권을 이용하여 반캐나다, 인종차별 등의 혐의로(나프타 1102조, 1110조 위반) 미국 정부를 제소한 사건(로우언 케이스) 때문에 나왔습니다.
 
  결국은 우습게도 로우언이 외국인기업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하여 기각됐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판결을 제3의 민간기구인 ISCID나 UNCITRAL의 심판위원회에서 내리는 건 위헌적이라고 하여 미국의 두 법률가가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나프타 11장은 온갖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돈 되는 대상이라면 공기업이든 공공서비스든, 아니면 '투기'든 광범위하게 규정되는 투자의 정의에 따라 투자계획 때부터 내국민 대우를 해야 한다는 조항, 수용(expropriation), 나아가 수용에 해당하는 행위(measures tantamount to expropriation)를 현존하는 어느 법률보다도 관대하게 정의한 조항,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입니다.
 
  기업은 언제나 정부에 불만이 많기 마련입니다. 물론 국내 기업은 대부분 불만에 그치고 말겠지만 이제 외국인 대기업은 나프타라는 국제협정에 근거해서 그 나라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초국적기업에 대한 투자 보장을 넘어 이윤 보장을 꾀하는 이러한 조항을 다자간 투자협정(MAI)에서 관철시키려다 프랑스 등 EU 나라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이것을 FTA에 적용하여 전범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도 전파하려는 것이 바로 나프타로 시작한 미국 정책의 핵심입니다.
 
  캐나다의 위헌소송
 
  2001년 캐나다의 시에라 법률구조기금은 캐나다 공공노동조합(CUPE)을 대표하여 나프타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나프타 11장 심판위원회의 비밀유지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혐의였습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을 의식했던 이 제소는 2005년 1월 24일 캐나다 위원회(Council of Canadians)와 캐나다 우체노동조합(Canadian Union of Postal Workers)이 온타리오 대법원에 제기한 위헌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세계적인 특송업체 UPS가 공기업인 캐나다 우체국(Canada Post)을 상대로 나프타 11장 및 15장 2조 및 3조(국가독점기업 및 국영기업은 나프타 11장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 12장 2조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한 데서 문제는 비롯됐습니다.
 
  UPS는 캐나다 우체국이 소포와 택배 서비스에서 자신의 인프라를 교차보조(cross -subsidize)하는 데 이용함으로써 특별한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편, 철도, 전기와 같은 망 산업에서 교차보조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경제학 교과서는 그러므로 공기업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소송에서 UPS가 이긴다면 똑같은 논리가 거의 모든 공공 서비스에 적용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통상교섭본부는 교육이나 의료 부문의 개방을 미국이 요구하지 않았다고 자못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습니다만, 언제든 시장이 성숙해서 돈이 될 때 미국의 어떤 영리법인도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미국 보험회사나 병원은 한국의 건강보험 또는 당연지정제를 제소대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신경독성 물질인 MMT의 반입 금지, 유독 쓰레기의 수출 금지, 수자원 보호가 모두 차별적 조항으로 제소됐고, 멕시코 정부도 쓰레기장 설치에 관한 인허가, 농업보조금 등의 이유로 제소를 당했습니다. 제소의 대부분이 환경, 건강, 공공서비스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는 바, 공공성의 파괴자가 벌금 등으로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부를 제소하여 보상금을 받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야말로 주권과 공공성의 침해이고, 이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위반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통상교섭본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마치 나프타 11장과 같은 내용이 누구나 받아들이는 국제기준인 것처럼 반박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더욱이 판결문 자체는 11장, 12장, 또는 15장의 어느 조항의 위반 여부로 나올 수밖에 없음에도 마치 그렇기 때문에 환경권 등의 침해는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데 이르러서는 과연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이해하고 있기나 한 건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한국기업도 정당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훈계조의 지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반덤핑 제소를 하고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미국정부를 제소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나프타 협상 때 캐나다 정부는 만사를 제쳐놓고 반덤핑 제소, 상계관세 등 이른바 무역구제 조치의 기준을 엄격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에도 이런 무역분쟁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부의 안이한 태도는 미국 정부/기업과 한국 정부/기업 간의 힘의 불균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얘깁니다. 실제로 2004년 말까지 한미 간 제소 42건 중 11건이 해결됐고 이 중 5건은 기업이 승소했고 6건은 기각됐습니다. 이긴 다섯 개의 기업이 모두 미국계이고 미국 정부가 아직 한 번도 패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아직 표본이 너무 적으니 그냥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뒷짐 지고 있는 게 과연 능사일까요?
 
  진정 '서민경제'의 회생 원한다면 한미FTA부터 막고 볼 일
 
  한미 FTA는 명백하게 양극화를 심화시킬 겁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며 사회권 등의 규제를 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면, 또 가뜩이나 심각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극까지 추구된다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더구나 기업이 정부의 제도를 대상으로 제소를 하고 그 판결을 제3의 민간기구가 비밀로 처리한다면 우리 국민의 주권은 산산조각나고 말 겁니다. 김 의장이 말하고 있는 서민경제의 회생이란 결국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심화일 겁니다. 그런데 한미 FTA는 바로 그 민주주의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한미 FTA를 저지하거나, 천보 만보 양보해도 투자에 관한 장 전체를 삭제하거나 최소한 기업의 정부 제소권은 삭제해서 EU처럼 정부와 정부가 분쟁을 처리해야 합니다. 한껏 양극화를 조장하고 나서 이를 다시 증세로 치유하겠다는 건 정말 바보짓입니다. 선조들은 이럴 때 쓰라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을 만든 모양입니다.
 
  양극화를 막고 동반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면상 정책목표와 정책의 원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화, 금융화 시대에 성장과 분배가 맞물리면서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자산에 대한 서민의 접근 기회를 높이고 동시에 현재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형태전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서민의 자산접근 기회를 결정적으로 봉쇄합니다. 투기수요가 없어질 때까지 보유세를 강화하는 현 정부의 정책은 올바릅니다. 오히려 경제부처와 당 일부의 고질적인 '공급확대론'이 정책을 혼미에 빠지게 했을 뿐입니다. 공급곡선의 이동보다 더 빨리 수요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투기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한 어정쩡한 공급확대는 오히려 가격의 폭등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교육, 즉 인적 자산의 기초에 접근할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좋은 정책입니다. 현재처럼 특정 지역이 그런 기회를 독점하게 되면 그 나라는 머지않아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맙니다. 실업자에 대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역시 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입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등 금융에 대한 접근기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산업의 클러스터화도 근접성에 의한 기회의 확대라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속하는 좋은 정책입니다.
 
  이 모두 당의장께서 복지부 장관일 때 드린 '동반성장의 길'이라는 글에 들어 있습니다. 멀리 해밀튼 보고서를 뒤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면 실행계획도 언제든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지금처럼 졸속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는 한 제대로 시행할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겁니다. 100% 확실하게 정권이 넘어갈 테니까요.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해결된다는 시장만능론은 잘 아시다시피 원래 한나라당의 전유물입니다. 특히 한미 FTA는 재벌-고급 경제관료-조중동 등 보수언론이라는 3각동맹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 적극 추진하는 정책입니다. 재벌들은 한미 FTA로 기존의 규제가 풀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경제관료들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맹신에 빠져 있습니다. 보수언론은 이번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일 뿐 아니라 방송을 손아귀에 넣을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단순한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 개조를 부르는 정책기조입니다. 엄청난 부작용을 몰고 올 외부쇼크 요법을 노무현 대통령이 대신 써준다 하니 한나라당 처지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열린우리당을 포함해서 이른바 '개혁세력'이 살려면 단호하게 한미 FTA를 저지해야 합니다. 물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가만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한나라당도 뒷짐 지고 침묵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한미 FTA를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죠. 다음 대선의 구도가 한미 FTA 찬반의 정책 논쟁, 그리고 그 외에 서민경제의 회복 방향을 둘러싼 논쟁으로 짜일 때 비로소 한나라당이 거저 정권을 줍는 불행의 길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김 의장 등 당 지도부, 이보다 훨씬 외연이 넓은 범개혁세력이 살 길입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궁지에서 벗어날 길이기도 합니다. 한미 FTA의 부작용은 다음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전 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급기야 청문회에 서야 할 지도 모릅니다.
 
  모두 살 길을 놓아두고 왜 죽을 길을 찾아드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추가성장이 필요하다,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모색한다는 의장의 말씀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 건 제가 지금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 때문이겠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보기에 의장께서는 근년에 항상 두 박자쯤 뒤늦은 결정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이미 한 박자는 놓쳤습니다. 이제 결심을 할 시기입니다. 좌고우면하며,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연말까지 한미 FTA를 졸속으로 해치우려는 세력, 더구나 EU 등과의 FTA까지 도박에 가까운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정부 안팎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개혁세력이라 부르든, 아니면 민주화세력이라 하든 기나긴 동면을 하면서 추억 속의 훈장만 만지작거려야 할 겁니다.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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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 > 다시 우리의 외침은 필승도, 애국도 아닌 인권이 되어야 한다.

공은 공공의 폭력을 싣고…

인권운동가가 본 월드컵…
승리의 환호 속에 ‘불편한’ 소식은 외면당하는 6월 …
애국의 열기가 치솟는 틈을 타 국가는 약자들의 시위현장에 폭력을 행사한다

▣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야, 6월은 안 돼. 뭔 일을 해도 안 된다고.” “개막 전후 며칠간이 제일 위험해. 그때 칠지 몰라.” 월드컵의 계절이 왔다.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월드컵의 신화여, 어게인(Again)! 한몫 챙기려는 언론과 자본이 다시금 월드컵의 열광을 부추기는 요즘, 운동단체들은 6월을 피해 행사 일정을 조정하고, 6월을 기해 휘몰아칠 국가폭력에 대비하느라 그야말로 똥줄이 탄다. 월드컵은 탈정치화와 정치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련된 정치의 장이다. ‘현실의 전쟁’을 비가시화하는 대신,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국민 총단결의 기치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다. 그래서 월드컵은 인권의 무덤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사람들은 둥근 축구공이 빚어내는 극적 드라마와 묘기대행진, 자국의 순위에 넋을 빼앗긴다.

월드컵의 암운은 오래간다

그사이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불편한’ 소식들은 참담한 외면을 당해야 한다. 지난 2002년에도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사망 소식은 변방에서 소리소문 없이 잊혀졌다.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노점상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공(公)폭력’이 들이닥쳐도 그 현장에 따라붙는 언론은 없었다. 외국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98년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한국을 3 대 1로 격파하자 거리로 쏟아져나온 인파는 “멕시코! 멕시코!”를 외치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며칠 전 치아파스주 사파티스타를 상대로 멕시코 정부가 벌인 폭압적 진압작전은 승리의 환호 속에 ‘잠겨버렸다’. 올해라고 다를까. 가히 인권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총공격이라 부를 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 평택의 고통은 ‘온 국민이 하나’라는 강요된 신화 속에 묻힐 것이다.


△ 평택 대추초등학교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에 저항하는 시위대. 월드컵에 평택의 고통은 묻힐 것이다. (사진/ 류우종 기자)

더 큰 문제는 월드컵 동안 치솟을 애국의 물결이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이 사회에 깊은 암운을 드리울 것이라는 점이다. 월드컵은 국가별 대항전으로서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요소를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상업적 이익에 눈먼 언론은 기꺼이 애국의 열기를 주조해낸다. ‘전사’와 ‘정복’이라는 군사주의 용어가 판치는 이유도, 국가의 자존심을 연거푸 읊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승에 집착하는 광적 열기는 자연스레 국가주의와 파시즘적 몰이성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 뒤 12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숨진 사건을 보자. 문제의 경기가 국가 대항전이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응원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축구였다고? 글쎄…. 월드컵은 순수한 축구팬들이 빚어낸 신명나는 축제였을 뿐이라던, K리그에서 다시 보자던 붉은 악마의 공언은 어디로 증발해버렸나.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외치라

‘온 국민의 하나됨’을 강조하며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하나의 열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노동자와 노점상, 장애인들의 정당한 생존에 대한 요구는 어느새 국가 통합을 해치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치부되고 만다. “평택 주민들은 사익(私益)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백기 투항하라!” 땅에서 농사짓는 일이 곧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 하나로 보수언론의 뭇매와 군경의 공포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더 휘몰아칠 ‘국익’ 공세는 여론의 차가운 외면 속에 평택 주민과 지킴이들의 숨통을 아예 끊어놓을지도 모른다. 국익의 신화 속에, 애국의 물결 속에 소수자의 목소리, 다른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지금 평택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말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는 없다. 다시 우리의 외침은 필승도, 애국도 아닌 인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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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 > 과연 가능할까?

짝~짝 짝짝짝 FTA반대!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던 3월16일, 한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격파하고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지상파 방송의 9시 뉴스는 모두 한-일전 승리 소식들로 채워졌다. 이 경기를 생중계했던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정확히 37분을 할애해 승전보를 보도했다. 9시 뉴스 시간이 통상 45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뉴스데스크>는 WBC를 위한, WBC에 의한, WBC에 대한 방송이었다고 할 만하다.

2002년보다 보수화된 2006년

흥미롭게도 이날은 지난 4년7개월 동안 법정 싸움을 벌였던 새만금 공사 매립면허 무효소송이 기각당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한국형 개발주의와 왜곡된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개펄 생태보존 지역을 지도에서 삭제해버린 비극의 날이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새만금 사건은 WBC의 과잉된 승전보 소식에 압도당해 제대로 시청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월드컵 이벤트는 야구의 정치적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1962년 칠레 정권은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을 이용했고, 196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월드컵 우승을 틈타 임금을 동결했다. 1976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정권은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이용했고, 페루 선수단을 매수해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해 본선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6~7월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이다. 주지하듯이 한-미 FTA는 단지 무역 개방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지형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고, 향후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줄 정치적 사안이다. 지난 WBC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스포츠 애국주의의 열기가 지속돼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린다거나, 현실정치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정치적 ‘잠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쉽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단선적으로만 생각해보면 ‘2006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반대, 혹은 평택 미군기지 확정 이전반대 운동 정세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선 탈락이 사회운동에 유리할까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2006년 독일월드컵은 2002년처럼 개최국가로서의 문화적 프리미엄이 없는데다 경기 시간대와 경기 참여 방식이 현장 중심으로 이뤄질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 담론은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주도될 것이 분명하다. 즉, 몸으로 부딪치고 참여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보다는 대부분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 채널을 통해, 상품광고 형식을 통해 월드컵의 열기를 간접 체험하는 방식이 두드러질 것이다.


△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2002년 시민적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한 재앙이다. 월드컵을 통해 FTA의 실상을 알릴 수 있을까.(사진/한겨레 김태형 기자)

여기에 이미 올 초부터 사회적 공분을 야기했던 특정 기업들의 지나친 월드컵 상품 전략들이 문화적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고, 급기야 공공 광장의 사용을 사기업화하는 현상이 초래됐다.

다른 한편으로 2006년 한국 사회 정세는 2002년과는 달리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 이는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시민들의 국익우선론이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사례나 동아시아 내 한류에 대한 시민들의 우월의식, 그리고 지난 3월 WBC 정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과열된 내셔널리즘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국익을 기반으로 한 신우익주의의 등장이 월드컵의 열기를 오히려 보수적 애국주의로 무장해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2002년 시민들의 참여 열정으로 탄생한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카드를 정권의 정체성 전략으로 내세우는 마당이고, 스크린쿼터제가 국익을 위해 축소될 수 있다거나 한-미 FTA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협상이라는 대중의 정서들이 예상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2002년과는 다르게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운동 정세와 무관하거나 관련이 있다 해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는 없을까? 차라리 한국 선수단의 예선 탈락과 월드컵 국면의 조기 마감이 사회운동 진영의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월드컵 기간에 월드컵 응원현장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FTA 대미 협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면, 단순히 월드컵 자체를 보이콧하는 운동보다 긍정적인 정치 효과를 낳을 것이다. 한-미 FTA가 스크린쿼터 축소나 전면 폐지를 전제로 한 것이고, 스크린쿼터 폐지는 곧 미국의 다국적 자본의 방송 개방을 전제로 한 것인바, 이번 기회에 한-미 FTA가 문화적 주권의 상실은 물론 한국 문화 기반의 총체적 몰락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사실 1994년 미국원드컵을 기점으로 월드컵의 경제학은 이미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와글로벌 문화자본의 중심에 있다. 월드컵의 모든 광고와 이벤트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락없이는 아무 것도 허가를 받을 수 없다.(주 1참고) 만일 한-미 FTA가 시장의 완전한 개방으로 이어져 공공부문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시민들의 스포츠 채널권이 다국적 미디어기업들에 봉쇄돼 돈을 내지 않으면 중계를 볼 수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 있는 광장마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먼저 거리의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컵의 시민적 열기로 시작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돌이켜보면 시민들의 자발적 열정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정치적 대의권력들이 철저하게 이 열정을 묵살하거나 왜곡해왔음을 알 수 있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에 막대한 부만 안겨주고, 민생의 곳곳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공공성의 파괴와 이로 인한 서민 경제의 파탄을 예고하는 한-미 FTA야말로 현재의 참여정부가 2002년 시민적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NO FTA"골 세리머니를 기대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국가, 자본, 미디어의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흡수 공세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없던 일상을 반전시킨 장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국면은 시민들의 따분한 일상의 신경계를 건드렸고, 국가의 장기 폭력과 자본의 독점, 정치의 치졸한 매수로 오랫동안 감옥의 그늘에 살았던 많은 시민들의 '화려한 외출'을 자극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국면이 2002년보다 보수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하고 자생적인 사건 속에서 현재의 한-미 FTA로 대변되는 한반도 정세의 위기를 반전시킬 계기가 마련될지 모르겠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어질 시민들의 응원 열기의 감수성 안에 잠재되 있는 자율성의 에너지가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는 한-미 FTA에 제동을 걸 수 있지 앟을까 싶다. 아니면 한국 선수 누군가가 월드컵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로 "NO FTA"가 새겨진 러닝셔츠를 들어올리는 사건의 반전을 꿈꾸면서 현장에서 사건들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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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리포터7 > [퍼온글] 돈 없어서 책 못산다? 이곳에선 '엄살'

돈 없어서 책 못산다? 이곳에선 '엄살'
 
[오마이뉴스 2006-06-06 11:56]    
 [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혹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책을 구입하려고 서점을 찾거나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는데 생각지 못한 가격에 당황한 적이 없는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요즘 책값이 결코 만만치 않다.

신간 소설도 1만원을 육박한다. 인문도서 같은 경우 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과학이나 경제, 혹은 문화예술 분야는 어떤가? 1만원으로는 부족하다.

출판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확실히 책 한권 사는데 쉽게 지갑을 열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형서점에서 서서 읽는 것으로 책값을 아끼는 ‘서점의 로망’을 살려야 할까?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언제까지 버티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했다. 이 말은 책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약간의, 아주 약간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그렇다면 하늘은 뭐고 노력은 무엇인가?

먼저 하늘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독서 의지를 낮추는 원인으로 뽑히고 있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놀랍게도 인터넷은 책을 ‘거의 공짜’로 보게 해준다.

리뷰만 쓰면 책이 공짜?... 리뷰 클럽

구체적으로 보자. 먼저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가 있다. 이곳은 출판사가 보내준 책들을 리뷰 도서로 공지하고 있는데 회원들은 이 도서들을 ‘리뷰어’로써 신청할 수가 있다. 물론 ‘완전’ 공짜는 아니다. 적당량의 마일리지와 해당 도서에 대한 리뷰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조건이 까다로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마일리지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자. 마일리지는 리뷰를 써서 적립할 수 있다. 일반 리뷰는 100원, 우수 리뷰는 500원, 으뜸 리뷰는 1000원으로 적립되는데 이것을 1/5로 계산해서 책을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훈의 소설집 <강산무진>을 신청한다고 해보자. <강산무진>의 가격은 1만1000원이다. 하지만 리뷰 도서로 신청하면 2200원의 마일리지만 있으면 볼 수 있고 본 후에 리뷰만 작성하면 된다.

리더스가이드에 시중에 있는 모든 책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문학동네, 휴머니스트, 위즈덤하우스, 청어람미디어, 길벗, 살림, 노블하우스, 노블마인 등 국내의 굵직굵직한 출판사들이 꾸준히 책을 보내고 있어 웬만한 신간 도서는 리뷰어로서 볼 수 있다.

규칙상 2주에 한 번씩 책을 신청할 수 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돈 없어서 책 못 본다’는 하소연은 쏙 사라지고 만다.

인터넷 서점 YES24의 'YES24 리뷰어클럽(http://club.yes24.com/reviewers)'도 돈 안 쓰고 책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매주 일정량의 책을 정해놓고 리뷰어 신청 자격을 받고 있는데 신청 자격 요건은 YES24회원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책을 받은 후에 리뷰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신청 조건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회원들이 관심 있는 신간을 ‘이 책 읽고 싶어요’ 코너에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 사정상 모든 책이 리뷰 도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명무실한 코너도 아니다.

6월 11일까지 리뷰어 신청을 받고 있는 책이 세 권인데 이중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러시 라이프>는 회원들의 신청으로 선정된 책이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곳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도 빼놓을 수 없다. ‘알라딘 편집팀 서재(http://my.aladin.co.kr/editors)'에서도 리뷰어 신청을 받고 있다. 보고 싶은 책을 신청하거나 공고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 흠이지만 알라딘 서재를 만들고 '신청합니다'만 쓰면 된다.

워낙에 신청이 쉬운지라 경쟁률이 높지만 그럼에도 '즐겨찾기' 해놓기에 충분하다.

인터넷 서점들도 '리뷰'에 마일리지... 책값 쏠쏠

물론 신청한다고 전부 되는 건 아니다. 또한 원하는 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 서점에 리뷰를 써보자. 생각 외로 엄청난 ‘행운’을 잡을 수 있다.

리브로는 달마다 우수 리뷰를 뽑고 있는데 최우수상이면 10만원의 마일리지를 받을 수 있다. 설사 최우수상이 아니더라도 우수상이면 5만원, 가작이면 1만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어린이’, ‘만화’ 부문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니 동화나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2000자내의 리뷰를 써볼만 하다.

다른 인터넷 서점들도 주마다 나름의 기준으로 독자들의 리뷰를 뽑고 있는데 YES24는 3만원, 알라딘은 5만원, 인터파크는 3만원의 마일리지를 주는 등 잘만 이용하면 꽤 쏠쏠한 책값을 얻을 수 있다.

살펴본 바에 따르면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이 많이 뽑히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니 서점에 가서 아는 것만 잘 말해도 넉넉한 책값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책값이 부담스러운 세월이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곳들은 모두 고액에 마음이 오그라든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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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6-14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신청할 때마다 글샘님의 닉넴을 보고 정말 부지런하시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글샘 2006-06-1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히려 게을러서 책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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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13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글샘님 우린정말 운이 좋은것 같아요.너무 늦은 밤이지만 이리 좋은글을 보게 되어서 저도 무척 운이 좋네요.잘퍼가겠습니다.

미미달 2006-06-13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도되죠? ^^

마늘빵 2006-06-1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저도 가져갑니다.

혜덕화 2006-06-1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갑니다._()()()_

달팽이 2006-06-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몽당연필 2006-06-14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아픕니다. 밝게 웃어야할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걸 보니 ㅠㅠ

글샘 2006-06-15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고통이 <나의 안정>을 확인하는 데 쓰였다는 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학원, 학교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면 더 눈물날지 몰라요.

석란1 2006-06-2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퍼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