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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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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은 투명하다.
그러나 프리즘을 투과한 후의 백색광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의 가시광선을 뿜어낸다. 

리영희라는 '현상'적 지식인의 8순을 맞아 그이의 삶의 궤적을 다양한 분석가의 시선으로 이야기집을 만들었다.
물론, 리영희 선생님 찬송가 류의 책을 그분께서 사양하실 터이고, 그런 짓은 다분히 리영희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 작업은 리영희 선생의 글들을 읽은 사람들, 또는 그 시대, 요즘 사람들의 삶에 아로새긴 영향까지 다양한 시선들로 분석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짧은 책 안에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의 주름살들이 켜켜이 아로새겨져 있고,
나의 지긋지긋한 껌정색 터널같던 대학 생활의 최루탄 매캐한 내음이 가득 담겨져 있고,
MT라는 것을 가서도 흐릿한 복사물들을 읽고 학습을 하며, 강가에서 모닥불 피우는 시늉을 하면서 복사물들을 증거인멸했던 한편 우스운 과거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포스트-리영희의 탐구에 있다. 

리영희의 시대는 폭력배들, 파시스트들의 <우상>을 파괴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이성>이라는 무기를 벼렸던 시절이었다면,
리영희 선생이 건강상 이유로 붓을 놓으신 이후,
세상은 '우성과 이상'의 시대로 바뀌어 흐르는 것 같다. 

인간을 '우성'과 '열성'인자로 나누고, 정규직, 제대로 된 월급, 삼성맨... 이런 우성 인자만이 살아남는... 개그풍으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국가가 나에게 해 준게 뭐가 있냐>는 열성 인자들의 패배의식이 공동체의식이 깨져버린 틈을 비집고 만연한 현실... 

이 비루한 세상에서도 '밥벌이의 지겨움'은 목구멍을 포도청으로 여기는 오늘도,
마지막 김현진의 인터뷰에서 리영희 선생의 목소리는 오히려 눈물겹다. 

사회는 그런 치열한 싸움이 없이 결코 변하지 않아요...(221)
악독한 사회는 반드시 패망합니다. 

미국에 대한 저주이며, 한국에 대한 예언이다. 

'결코, 절대' 등의 단어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생의 이야기.
무엇이 무조건 옳다. 그르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책속에만 있을 것 같은 단어도, 근사하지만 뜬구름 잡는 말씀도 않는다. 이런 게 진짜 실용주의...
어떠한 주장이나 입장에서도 시비가 있으며 반발감과 공감이 있는 법.
아무 반발도 없는 주장은 없고, 모두가 공감하는 견해란 없는 것.(226) 

리영희 선생님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 보니...
포스트- 리영희 시대가 슬프지만은 않다. 

'우성'만의 시대로 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다시 리영희 선생의 '이상'을 읽을 수 있어 반가웠던 책. 밑줄을 수도없이 그으며 다시 나를 추스르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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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0-03-1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이 책 받았습니다.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이 계셔서 이 땅 위에 조금이나마 악독함이 덜해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글샘 2010-03-11 09:47   좋아요 0 | URL
사악함이 덜해진다기보담은, 사악함과 싸울 힘이 생기는 거겠지요. 재미있고 날카롭습니다. 잘 읽으세요~~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한상범 지음 / 삼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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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국민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캐무시하고 미국의 골프장 운전이나 하던 인간이 미쿡산 쇠고기를 막무가내로 사들이기로 했을 때, 수백만의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그 때 외쳤던 대표적 노래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주'를 외칠 가치조차 없고, 공화국에서는 공화를 논할 필요도 없다.
민주적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공공의 선을 위한 협의가 부재한 공간에서 외치는 소리는 바로 헌법 제 1조였다. 

헌법이라고 하면, 법중의 법이고 최고법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가장 파워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헌법은 권력자의 폭력 의지에 늘 견제를 가하는 법이고,
독재자들이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에 가장 강한 법으로서 국민을 지켜주는 힘을 가진 법이란 것.
시민 혁명의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법이라는 것. 

그러나,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바로 지금, 5:4라고는 하지만 <사형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법학도'에게 법의 준엄함을 가르치려고 적은 책으로, 법대를 염두에 둔 고등학생 내지는 대학 신입생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뭐, 법의 기본 정신을 되찾고 싶은 법조인들에게도 좋은 책일 것이다. 

법과 법관은 같지 않다. 법의 정신은 추상적이고, 법관은 정말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노동 판사들이 노동법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은 노동자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노동법 위반은 국보법 위반처럼 괘씸한 일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법조인>이란 <권력>을 잡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일제 잔재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일제 이전부터의 봉건적 사고 방식이 가득하며, 월급받고 사는 관료로서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는 관료주의와 시대적 컴플렉스인 반공주의, 출세와 돈을 노리는 기회주의와 출세지향적 태도들이 한국의 법조인들을 추하고 강하게 만든다.  

강한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우열의 법칙에서 '우성'에 가까운 모양이다.
아름답고 고매한 정신은 '열성 인자'를 가진 것인지, 쉽게 퍼지기 어렵다. 

메이지시대 민중 지배를 위한 관료주의적 기술학으로서의 '헌법'이 한국에도 옮겨져 왔다. 

해방이 본의 아니게 갑자기 닥쳤든, 한국의 헌법도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게 되었으니, 뭐, 일본 헌법의 번역판에 불과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중을 지키기 위한 헌법이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힘을 쓰지 못할 때,
그 헌법이 살아숨쉬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기술학>으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바로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2004년 쓰레기같은 국회의원들이 총선 한달을 앞두고 취임한 지 1년되는 대통령을 탄핵하려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촛불 앞에서 떨고 있었다. 그때 헌재가 노무현을 잘라버렸더라면, 한국의 촛불은 헌재의 모가지를 잘라버렸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의 정신과 국민의 '생각하고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그래서 빛과 그림자처럼 한 쌍인 것이다. 

69쪽에서 헌법 학자가 메이지를 본딴 박통의 '유신' 이야기를 하다가 <친일 민족 반역자 박정희>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걸 보고, 역시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콕 집어서 정확하게 갈라내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혼란상은 "혁명으로 청산할 일을 개량으로 하려니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는 꼴이 된다. 국민 대중은 강건너 불구경할 수밖에... 과거 청산 없는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74)는 말은 헌법의 정신을 살리려면 늘 형형한 눈빛으로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고, 당연히 언젠가는 혁명의 그날이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 같다. 

현대 한국의 헌법은 '유전 무죄, 무전 유죄'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음' 정도의 개똥 판결에 유린당하고 있다. 이런 개똥 판결들을 일소하고 헌법이 제자리에 서는 일은 역시 정치가가 할 일보다는 랑시에르의 의미에서의 국민의 참여 <정치>로 이뤄야 할 일이다. 권력자나 정치가들의 '치안'은 국민이나 민중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하여 꾸준히 성실하게 열심히 <관료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있으니, 민중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로 헌법의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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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공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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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에필로그가 인상적이다.
'도그빌'이라는 영화와 여수 출입국 사무소 화재 사건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가슴아프게 읽었다.

도그빌이란 영화를 봤을 때, 천재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답답함이 화면에서 가득 느껴지는 영화.
개같은 마을의 개같은 인간들. 이어지는 착취와 인간적 모멸감...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시간성>임을 이진경은 천착하고 있고 그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궤적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단편들은 <시간성>이 상이하면 상이한 '공간성'을 이룬다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화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한편 한편이 재미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여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핍박받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이진경은 한국과 동남아의 '시간적 거리'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 시간적 거리는 <근대> <민족> <국가> <역사>등의 용어가 사용될 때 항상 은밀히 끼어든다. 

그렇지만 그 은밀함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편파적이어서,
이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저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폭력적이다.
일본의 근대가 그들에게는 문명을 주었지만, 조선에게는 절망을 선사한 것과 같이... 

어떤 점의 미분 계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점을 둘러싼 이웃 관계, 그 점을 포함한 채 구부러지는 선의 양상(37) 

이런 글맛이 이진경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분 계수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명쾌한 설명도 없을 수 있지만, 미분 계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고사성어도 아닌 그런 용어들이 주는 절망감이 글에서 배어나는 것은 그의 글이 가진 단점이 된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서로 다른 리듬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 간에 거리감과 동경과 무시와 멸시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아마존의 눈물'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 나오는 이들은 벌거벗고 살면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들은 턱에 특이한 기구를 매달기도 하고 고추에 나뭇잎을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랑시에르(76)의 '치안'을 들고나오기도 하는데, 말할 수 없는 자로 하여금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이런 것을 그는 '치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의 공간은 틈새를 노리고 치안의 부조리를 <말한다>. 그리고 <말해야 정치>가 된다. 한국 사회의 2010년은 과연 말할 수 있는 공간인가? 정치가 부재한, '동혁이 형(개그콘서트의 등장인물)'의 <샤우팅>이 가능한 공간일까? 어느 날부터 동혁이 형이 편집당하는 그런 사회는 아닌 것인가? 

외부자, 소수자, 그들과 내부자, 다수자들의 시간적 리듬의 차이가 엮어내는 공간적 비틀림은 80년대 그 뜨거웠던 논쟁을 불러왔던 <사회구성체론>의 NL, PD, ND 논쟁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이고,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던 청년 이진경은 이제 시야를 넓혀 다시 <무엇인가를 하려면>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엮인 글들은 그의 고민들이 흘러간 궤적을 마치 셔터를 열어둔 카메라의 필름에 각인된 불빛의 흐름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아무래도 산만한 느낌...  

<민족> <역사> <진보> 등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의식을 점령하며 분할하는지, 어떻게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게 되는지 그 은밀한 비밀을 공부하고 싶은 이라면 추천할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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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자유를위한정치>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 MB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손호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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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 '수사법, 수사학' 이런 뜻을 가지고 있지만, 수사법은 직유법부터 배우는 우리 국어 교육의 변태적 과정상 '표현하는 기예, 설득하는 매력적 기술' 정도로 많이 쓰이는 말로 정리를 하겠다. 

예를 들면 독재자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하는 말을 붙이면, '조국과 민족은 내 아래 꿇어!'하는 말이란 뜻이다. 

요즘 가장 물오른 개그맨으로 박성호를 든다.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이름 자체가 좀 정치적으로 보이는데, 내용은 상당히 우습다.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관계를 남녀탐구생활과는 조금 다른 레토릭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남녀탐구생활>에서는 나레이터의 조금 딱딱하면서도 직설적인 어조와, 그와는 조금 안 어울리는 적나라한 남녀의 성격 차이를 그저 <설명하고 보여주는 showing> 방식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남보원>에서는 노조원처럼 붉은 조끼를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그러고 보니 봉숭아 학당에서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란 말입니까!하던 운동권 학생이 바로 박성호였다는 생각이 난다.) 북까지도 동원하여 관객을 일으켜 세운 다음 구호를 외치는 상당한 <설득하고 들려주는 telling> 방식의 레토릭이 사용된다. 

거기서 가장 인기있는 구절이, 강기갑 의원을 패러디한 외모와 권영길 의원을 패러디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하는 구절인데, 요즘에는 한창 남녀간의 불평등을 역설한 후, "잘못했어, 괜히 ~~ 했어, 괜히 ~~했어... 어떡해... " 이렇게 오두방정을 떨고 있자면, 황현희가 꼬마들 장난감으로 "뾰로롱" 소리를 내고, 그 뒤 전혀 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한 마디로 촌철살인의 개그를 보여주는 것이다. 

손호철의 시대 읽기 잡문 모음을 읽으면서, 왜 남보원이 떠오른 것일까... 

'노무현을 찍어서 과연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대학 등록금은 팍팍 오르고, 아파트 집값 내리겠다고 뻥은 쳐놓고,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지 않았습니까? 복지 정책 편다고 해 놓고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비정규직만 잔뜩 늘려놓은 거 아닙니까!!
괜히 찍었어... 괜히 찍었어... 나 어떡해'... (뾰로롱) 대안은 이, 명, 박 , 커걱... 이런 개그가 번쩍 뇌리를 스친다. 

'과연 이명박 찍어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뉴타운 건설한다 해 놓고는 용산에서 사람 태워죽이고, 서민 정책 펼친다면서 서민은 세금 폭탄에 눌려서 죽을 지경입니다. 학원은 더 많아지고 특목고만 늘어나서 파출부해서는 이제 애 학원비도 다 못댈 지경입니다!
괜히 찍었어... 괜히 찍었어... 나 어떡해'... (뾰로롱) 대안은 닥그네... 

요즘 정치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 저질 개그도 그런 것이 없는데,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은 '국민에게 정치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악한 정치가의 의도가 함축된 레토릭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단된 국가 상황에서 일제 잔재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 전쟁을 치르고 독재 정권의 부패를 틀어막기 위해 '반공'과 '공안' 정치만이 횡행하던 '비민주적'인 과거가 전혀 청산되지 못한 그대로 다시 '민주적 방식'의 탈을 쓴 '독재'의 시대가 발흥하고 있는 이 어두운 혼란기에, 마치 우리 안의 돼지들처럼 처먹을 밥을 서로 차지하려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닥그네와 운차니와 그 갈등을 전가하면서 돈을 버는 이메가가 사실상 현실 정치의 윗부분에 서 있다. 

올해 6월 선거가 있고, 작년 뜻밖에도 뜨거웠던 서거 정국의 1주기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어떤 결과를 낳게 될는지가 자못 모두의 관심을 받게될 즈음, 용산에는 돈 주고 덮어버리고, 김연아와 월드컵으로 도배를 하려는 의도가 슬슬 일어나는데, 그래서 방송국 접수는 박정희의 총만큼이나 절실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민주당은 븅신짓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시민은 유훈정치에 나서는 모습으로 실망감을 안겨주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선언'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지 않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위기론이 작가의 말대로 떠오르는데... 그 태어나지 않은 것은 '진보 연합'이 아니라 '닥그네'일 뿐이란 절망감이 자꾸 떠오른다. 닥그네와 친박계가 합리적 온건파...라는 선수교체를 준비중이란 우울한 예상이...(101)

야당과 진보가 <죽었다, 영원하라!>는 어불성설처럼, 그들은 이미 죽었는데, 영원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화 神話 김대중이 죽었고 新話 노무현도 죽었다. 민주당을 믿을 수 있을까? 유시민이나 문국현을 믿을까? 노회찬 심상정을 믿을까... 영원한 것은 가진자의 오만이 아닐까...
이런 걱정들을 나름의 관점으로 그때그때 프레시안에 <시론 時論>으로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이 이 책이다.(솔직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글이다. 그렇지만, 이런 정치적 관점들을 만나는 일이 싫은 것은 아니다. 좀더 정리된 그의 생각을 읽고 싶지만, 그의 다른 책을 읽으면 될 일이고, 솔직히 그는 좀더 현장에 많이 나가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리라 생각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면, 민주당과 진보 사이에는 한강(아니면 태평양)이 흐른다...는 노회찬의 말이 내 귀엔 이렇게 들린다.(285)
두 보수적 당들과 유권자의 다수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면, 민노당과 진보신당과 유권자 사이에는 <레드 콤플렉스>, <반공>, <박정희>라는 태평양같은 바다가 가로막힌 것이나 아닐까 하는... 

그는 결국 민주당에게 좀더 왼쪽으로 가서 정책을 만들고, 패권주의적 경향을 탈피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경고하지만, 정세균의 <정치에너지>란 책 부제처럼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나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건 그저 '말'이고 표를 얻기 위한 '레토릭'일 따름이다. 뭐, 그 레토릭은 딴나라당도 그대로 쓰는 것 아닌가. 

민주당의 재보선 승리가 <축복으로 위장된 재앙>일 수 있다는 표현은 신랄하다.(322) 

09년 11월에 쓴 글에 <세종시 문제로 닥그네의 대선가도에 이미 아성이 된 영남에 충청표까지 더해져 더욱 확실한 날개만 달아주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세종시의 솔로몬 해답은 없는 것인가?> 아, 이런 표현은 우울하고 또 우울하다. 

헤겔의 이야기처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비상을 시작한다> 결국, 지식인은 대중의 움직임에 사후적 해석만을 할 뿐, 언제 대중은 분노하고 언제 대중은 침묵하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솔직한 '정치학자의 한계'일 것이다.(337) 

아, 다시 개그콘서트에 '지팡이 짚고 펭귄 걸음 걷는 전임 대통령'이나 '맞습니다 맞고요'로 별로 웃기지도 않는 개그가 등장할 날이 오기나 할 것인가.
그렇지만, 세상 어느 정치학자도 식민지 시대를 40여년 거치고(실지로 일제에 종속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로 본다면 그렇다) 1953년 전쟁을 마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밑바닥 원조 경제 국가에서 7년만에 4.19가 일어날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80년 광주의 피비린내가 채 식기도 전에, 자충수를 둔 올림픽 때문에 군대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한 채 바톤을 넘겨주게 만든 6월 항쟁도 7년만에 일어나리라고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명박 집권에서 7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한국인의 좌충우돌 다이나믹 에너지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 

이 책에 나온 글들은 언론에 발표된 것들이어서 휘리릭 읽어버릴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일이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을 체크하지 않았다. 아마 했다면... 20개 정도는 적혔을 듯 싶다. 편집자의 몫에서 더 깊이 공부해야 할 부분이 상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든지'를 써야할 자리에 '~~던지'를 쓰거나(경상도 사람일까?)
'이러쿵 저러쿵' 같은 것을 '이러 쿵 저러 쿵' 이렇게 띄어쓰는 등 수정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필자가 그랬잖은가.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도 중요하지만 '인격'도 중요하다고...(그래서 민중당 출신 김문수보다 한날당 출신 김용갑이 더 훌륭하다고...)
그 사람의 '글의 내용'이 물론 중요하지만, 책에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지나치게 오류를 범하면 오히려 그 내용을 잡아먹을 수도 있음을 고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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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2-1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글샘님의 오타찾기는...저도 자꾸 오타가 눈에 들어오네요. 이제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샘 2010-02-17 12:44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오타 한번 찾아서 올려 주시죠. ㅎㅎ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2010-02-17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2-19 21:29   좋아요 0 | URL
오해라니요... ^^ 사정이 있으시면 그럴 수도 있죠 뭐.
아무 생각없이 무람없이 부탁드린 제가 더 미안하네요. ㅎㅎ

saint236 2010-02-2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 몇개 찾았습니다. 띄어쓰기는 워낙 많아서 패스.
 
<불만합창단>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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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서 나온 책이다.
희망제작소 상임 이사인 박원순 이사, 대한민국 최대의 에너자이저가 아닐까 한다.
다른 눈으로 보기, 다르게 생각하기, 그리고 열심히 찍어대기... 소셜 디자이너의 기본 자세라고.
소셜 디자이너.
정치가도 사회 운동가도 아닌 사회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꿈을 품은 사람.
그렇지만, 그는 그저 '드리머'가 아니다.
그는 프로 정치가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의 방식이란 충분한 자원과 치밀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
어렵겠지만 한번 해보자는 도전 정신에 있다는 것(31)을 마음에 심어둔 사람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제브라로그'를 무턱대고 찾아간 제작진. 대단한 용기다.
얼룩말 + 이야기의 합성어인 제브라로그는 얼룩말처럼 굉장히 독립적이며,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이면서도 함께 조화를 이뤄 사는 매력을 본따 만든 말이란다. 

한창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도중에 촛불 시위가 본격화된다.
정치적 부담이 클 때였을 것이다. 논의는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이 간다. 

다다익선, 질보다 양, 커닝 장려, 비판 금지 - 이런 것들을 발상 모으기의 원칙으로 삼았는데, 그럴싸하다. 

촛불의 양상이 '수직적이지 않은 운동', '전문 운동꾼이 없는 상태의 집회'로 규정되면서 불만 합창단도 제자리를 잡는다. 한국의 사회운동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지 실감가는 대목이다. 언제나 풍전등화인 조직. 

<화병>이란 병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나라. 한국.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발 정신질환.
분노를 억제함으로써 발생하는 이 분노 증후군은 온갖 신경성 질환과 통증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심각한 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의 주범.
전통적으로 개인의 불만은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데다가, 시절이 하도 수상하여 막걸리 보안법이 사회를 억누르던 시기를 지나왔으니, 불만이 울화증이 된 것.(153)
불만 합창제의 구실은 이런 것들로 충분하다. 
말 많으면 빨갱이란 현실이 유전자에 새겨둔 생존 본능이 바로 '불평하지 말 것'이었으니... 

사회 혁신에 대한 활동가인 영 파운데이션의 제프 멀건이 제시한 단계도 제법 멋져서 적어 본다.
1. 촉발과 촉진
2. 제안과 생각
3. 모델과 시도
4. 지속성
5. 확산과 성장
6. 구조적인 변화...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거쳐야 할 일들이다.
아, 학교에도 이런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미루기, 나만 아니면 돼, 회피,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새로운 울화만 치밀 뿐이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더니 똥차도 안 와(커플 지옥 솔로 천국)
이 대목 읽다가 개콘 생각이 났다. 이런 데서  아이디어를 얻는구나! 

233쪽의 진주 꾀꼬리 불만합창단의 노래는 가사가 딱딱 떨어지는 것이 명문이다. 

첨본 사람이 내게 묻는 말/ 몇살입니꺼, 어디 삽니꺼/ 온 국민이 다 통계청 직원
인터넷 강국 온 동네 pc방/ 게임 중독도 전 세계 최강/ 나의 정보도 모두 공유해...
송아지 출산 무조건 30만원./ 우리는 셋째 겨우 20만원/ 둘째는 아예 한숨만 나와
연예인 성형을 자랑하니/ 사람들은 애 얼굴 견적 뽑네/ 거리마다 똑같은 얼굴들...
쇼위도에는 44 마네킹/ 내 몸매닮은 마네킹 없네./ 88사이즈는 어떡하라고
어린이 공연에 보모 없어/ 따라가는 어른도 표받아./ 그렇다면 할인을 해야지
원자재 곡물값 오를 때는/ 제일 먼저 오르는 생필품/ 내를 때는 나 몰라 패밀리... 

불만 합창단의 소리가 제대로 정치에 반영되는 구조가 선진국일텐데,
정치권에서 사회 단체를 '빨갱이'로 몰아대는 판국인 나라에서
불만 합창단의 갈 길은 멀기만 하지만,
일반인들의 목소리들이 사회 단체를 뛰어 넘어
정치가 되고 선거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갈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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