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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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주목한 사람이 왜 에라스무스란 사람일까? 몹시 궁금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예술이다. ^^

보통 사람들이 평전을 쓰면 '그는 이렇게 태어나 살다 죽었다'가 되는데,

츠바이크의 글에서는 온갖 비유와 수사를 곁들여 읽는 양념맛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그냥 풀을 뜯어 먹는 것과, 샐러드 드레싱을 즐겨가며 먹는 맛은 천양지차일 거시다.

 

최초의 의식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 에라스무스.

그의 비극을 통해 츠바이크는 자신의 비극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라스무스는 레가토를 사랑한 남자였다. 비유하자면...

레가토는 피아노 연주할 때, 음과 음 사이를 최대한 이어지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소리내는 주법이다.

스타카토와 상반되는 개념인데, 혁명과 열기가 스타카토라면, 에라스무스의 고귀한 인문정신에 대한 숭고한 찬양은 레가토인 셈이다.

 

광신과 폭력으로 점철된 종교전쟁이란시대의 혼란 속에서,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루터파의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극단을 거부하는 에라스무스는 결국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편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그 격동의 시기에 인기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역사는 그것을 보여주는 교과서다.

 

에라스무스, 실망한 이 늙은 남자.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해서는 안 될 이 늙은 남자가 전쟁과 유럽의 분열이라는 혼란 한 가운데서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 도래할, 그리고 결코 막을 수 없는 인류의 인간화에 대해 모든 종교와 신화가 갖고 있는 희망의 원초적 꿈이었으며,

이기적이고 일시적인 격정에 분명하고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리라 희망하는 꿈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때로는 자신감을 잃은 손으로 그려 놓은 이러한 이상은 항상 새로운 희망으로수십 세대에 이르도록 유럽의 시각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253)

 

세계사를 배운 내가 기억하는 그에 대한 것은 '우신 예찬'이라는 책 제목 뿐이다.

르네상스와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ㅠㅜ

이제 츠바이크를 통해, 잔인한 정치의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품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츠바이크가 살았던 시대 역시 나치즘의 잔인한 시대였지만, 어느 한 시대 잔인하지 않은 시대는 없으므로,

에라스무스를 읽는 일은, 극단에서 벗어나기를 한없이 간구하는 수도자 아닌 수도자의 열망이기도 한 셈이다.

 

츠바이크를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그는 나쁜 소식을 듣고 나서야 놓쳐버린 순가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79)

 

루터와의 논쟁에서 그가 적절한 시간에 논박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편지만 써대고 있었던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결정적인 힘, 운명과 죽음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서는 일은 드물다.

그들은 매번 얼굴을 감춘 사자를 조용히 보내지만,

그를 맞은 사람들은 대부분 비밀스러운 그의 말을 흘려듣는다.(139)

 

아~ 에라스무스가 루터의 편지를 받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해석한 대목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츠바이크의 광팬이 될 수밖에... ^^

 

인문주의 세계 제국의 군주(209)

 

츠바이크에게 에라스무스는 이런 존재였다.

그러나 그 군주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츠바이크에게 그 군주의 치명적 결함 역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문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은 인문주의가 민중을 이해하고 그들로 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위에서 그들을 그르치려 했다는 데 있다.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영역은 단지 얇은 상층부만 포함하고 있었고 현실과의 관계는 상당히 약했다.(133)

 

이런 글을 읽으면, 왜 돌아가신 전 대통령과 유시민 같은 사람들 생각이 나는 걸까?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27)

 

종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니, 종교 전쟁의 촉발을 제공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가톨릭의 부패를 조롱하고 풍자한 '바보 예찬'의 저자로서 중도를 지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가상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줄타기였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는 광대는 줄에서 떨어지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무게중심을 변화시키면서, 이쪽과 저쪽의 균형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줄타기의 유일한 방법일지니...

츠바이크에게 에라스무스가 그만한 무게로 다가선 것은,

에라스무스가 처한 광포한 현실과,

그가 추구한 이상이 그만큼 절실한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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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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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0년대, 식민지를 거처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초등학교를 거쳐,

경쟁을 지고의 가치로 아는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했다.

80년대 뜨거운 시대를 거쳐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27세에 25세였던 아내와 결혼하여 다음 해 아이를 낳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역사인데,

여기에는 어떤 자유 의지도 개입할 수 없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고,

학교를 다닌 것도 별다른 길이 없어 다닌 것일 뿐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고시공부처럼 후원이 필요한 학과엘 지망하지 못했고, 재수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결혼 역시 그 시절에는 그 나이에 다들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도 죽지않고 살아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지'의 동물이라고 일컫는다.

인간은 자유 의지가 있어, 훌륭하게도 되고, 범죄자도 된다.

그래서 범죄자는 네 의지로 그렇게 한 것이나 사형이야~! 이렇게 처벌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얼마나 허용되는가...

인간이 정말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있는가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그 결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이다.

 

그래. 주류 경제학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 경제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몇몇 나라의 몇몇 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자유 의지 역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몇몇 사람은 <하면 된다>는 의지의 중요성을 역설할지 모르지만,

세상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의지대로 살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서양의 개방된 사회에 비하여 한국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 사회 몇몇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한 세상에서 여성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하는 바,

자유 의지라는 것 역시, 만병통치로 두루뭉술 쓸 개념이 아닌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 효용과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개념이다.

 

세상의 그 어떤 읻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나 양육된 방식에 책임이 없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에 운이 얼마나 크게 개입하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 같다.(68)

 

이 책이 밝히려는 바는 명백하다.

인간을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규정하고,

그래서 인간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근거가 되도록 하는 일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그래.

한 아이가 공부를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되어있기 까지는,

수많은 불운들이 개입하고 누적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도덕적으로 접근하는 길일 것 같다.

 

보복에 대한 욕망은 모든 이가 자기 사고와 행동의 자유로운 주체라는 관념으로부터 발생하여,

인지적이며 감정적인 환상에 의지하며,

급기야 도덕적인 환상을 영구화한다.(73)

 

그렇지만, 우리는 뭔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사람에게 '처벌'을 당연시한다.

자기 행동의 자유로운 주체는 자신이므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자는 의견이 과격할 수 있어 보이지만,

이런 의견이 존중받는 세상은 그래도 좋은 세상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전쟁으로 버틸 수 있는 전쟁산업국가이지만,

또 이렇게 자유롭게 의견 개진이 가능한 나라여서 그 나라의 저력이 두려운 나라다.

 

주류 경제학, 주류 사회학에서 굳이 애써 외면하려 하는 가난, 불안, 질병... 이런 현상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새삼 안목을 키워주는 얇은 책이다.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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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다른 청소년 교양 1
권재원 지음 / 다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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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정치의 목적은 '정권의 획득'이라고 가르치지만,

권력을 획득하려는 목적은 가르치지 않는다.

권력 획득의 유일한 이유는... 자본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지배자가 권력을 획득한다면,

자본의 합리적 운용에 관심을 가지겠지만,

사리사욕에 휩싸인 지배자가 권력을 획득할 경우,

개인 자본의 증식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유명한 경제학 교과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선택의 결과이며, 선택은 대가를 고려해야 한다.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고,

이득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며,

시장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라는 등의 당연해 보이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이런 당연해보이는 시장논리 경제 이론들이,

왜 어떤 나라에서도 증명되지 않고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은 요원하기만 한 것인지...

그것까지도 간명하게 설명해주는 데 있다.

 

세상은 선택과 집중의 결과라지만,

과연 부모나 국가를 선택한 것인가?

절대 빈곤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슨 선택의 기회가 있으며,

식민지 백성 역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너무 부정적이고 일면적인 것을 말한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일반적 진리'라는 규칙을 찾을 순 없다.

거기엔 인간 냄색 하나도 묻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생산성의 이름아래 죽어간 사람들은 효율적으로 산재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채굴 국가, 원유를 가진 국가는

강대국의 견제와 지배 체제 아래서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내분과 내란으로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되기 전부터,

경제 민주화가 실종되었다는 우려가 많다.

자기가 내세운 공약조차 당선 후에는 무시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 것도 웃기지만,

이런 것을 국가라고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도 참 웃긴다.

 

정말, 남쪽으로 튀어서,

국민이기를 포기하고, 세금 따위는 안 내고 살고 싶다.

그러려면, 공무원 신분을 먼저 버려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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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2-21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불편한 진실들입니다. 경제 시스템은 가르치는데 그 내면에 숨겨진 사람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으니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고 할수록 더 살이 어려워지는 것이겠지요.

글샘 2013-02-26 20:44   좋아요 1 | URL
경제란 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게 허상이겠죠.
모든 사회 문제가 다 그럴 거구요.
다만, 어느 지점을 바라보 것인지의 가치 문제인 거 같애요.

poopoo 2022-10-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86이나 운동권 시대의 사람들은 어느사이트를 가던 댓글방향이 한결같군요 ㅋ.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싶으면 사회주의 국가로 이민가면 될것을.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 빅토르 프랑클 회상록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박현용 옮김 / 책세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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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무래도 어색했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라니?

이야기를 썼은 책이고,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라며... 작가 머릿속에나 들어있을 건데... 이건 뭔 시츄에이션?

이러면서 원제목을 해석해본다.

 

 

Wie nicht in meinen Buchern steht.

나의 책들에 나와있지 않은 것(이야기)

 

기존의 그의 저서들에서 언급하지 않은

잡다한 회상록이라고 이해하고 나니,

더부룩하던 속이 확 풀리듯 소화가 되었다.

제목을 좀더 가다듬었음 싶다.

 

어쩜 좀 시시하다.

기존의 그의 책을 내가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조차 잘 없지만...

나치 수용소를 읽은 기억이 있긴 하니깐, 아마도 그의 책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해서도 사소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고,

자신의 심리학적 견지(로고테라피)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하고있다.

 

나는 열다섯 혹은 열여섯 살 무렵에 이 모임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발표를 했다.(78)

 

한국의 고등학생은 너무 다람쥐 쳇바퀴 밖에 관심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교육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대학을 개혁하고, 사회가 개혁되어 공부가 필요없는 사회가 오기 전에는...

언감생심... 좁은 공부에 열중하는 게 맞다.

 

심리치료 속의 심리주의와 싸우면서,

아픈 것이 절대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하고 싶었다.

로고테라피는 모든 것을 병리학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주장과 맞서 싸울 것을 선포한다.

편집증 환자가 주장했더라도 2*2=4이다.(109)

 

지식채널에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친구가 작정하고 병원에 가서 '귀에서 쿵 소리가 들려요' 란 한마디로,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아 입원에 성공한다.

병원에서 '너, 사실 제정신이지?' 이렇게 알아보는 이는 다 입원 환자들이었단다.

그들은 병원 안에서 아무리 정상적으로 활동해도, 한번 환자는 계속 환자였다는 이야기...

 

감기가 걸렸다고 비정상적인 인간 취급하지 않듯,

신경정신적 증상 역시 비정상적 병리학으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라~!

 

이런 제목의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 수기>가 있단다.

정신적 질환, 가벼운 우울에서부터 편집증, 정신 분열에 이르기까지..

삶은 <노>로 점철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전쟁 중의 유태인들을 학살하던 시기, 삶은 <노>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부정당하고 부정당하는 나날의 연속.

 

생텍쥐베리의 말을 인용한 이유가 뭘지... 한참을 생각했다.

 

완전함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략할 것이 없는 것이다.(172)

 

인간이란 무엇일지... 생각하는 심리학자로서,

이 정도면 완전한 심리학 이론이야... 할 수 있는 경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것...과,

더 이상 생략할 것이 없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것... 속에는 불필요한 것이 겹쳐져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전함...

인간은 완전한 존재다... 라고 말하려면,

인간에게는 더 이상 생략할 것 하나 없는,

인간에게는 불필요한 '인종', '장기', '개인'은 없다는 역설을 하는 것이다.

 

나치즘의 순혈주의는 아직도 살아있다.

여자의 몸을 '관념'에 묶어 두는 '순결주의 운동본부'도 웃기는 집단이고...

담배를 팔질 말든가, 팔면서 '국민건강진흥법' 운운하면서 흡연구역을 좁히는 것 역시 어불성설인 법률이다.

한쪽이 옳다...고 우기는 집단은,

그르다...고 판결내리는 집단을,

불필요해서 빼어버리고 싶은, '생략해버리고 싶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철학에서, 이 둘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곰곰 씹어가면서 음미할 구절이다.

 

 

나는 늙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그런 까닭에 나이가 드는 만큼 성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늙는 것이전혀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19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보다 멋있지 않은가?

나이들면 외모가 보기 싫어지고,

나이들면 맨날 여기저기가 아프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기 쉽다.

사회 생활이 줄면서 의욕이 줄고 의기소침하기 쉽다.

그러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나이는 사람을 쫄아들게 만든다.

 

그러나, 빅토르의 생각에 긍정하려면,

나이들어도 '자기만의 세계'가 성숙하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대수롭지 않다고... 확언할 수 있는, 멋진 노년을 구성할 수 있을 거다.

 

인생이 허무함은 '덧없음'의 반영이다.

그의 로고테라피는 이렇게 말한다.

 

두 번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라.

첫 번째 인생을 잘못해서 모두 망쳤는데,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도 지난번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라.(193)

 

인간은 완전한 존재다.

인간의 모든 장기는 완전하게 종합적으로 기능한다.

불필요한 장기 하나 없다.

상보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 개체와 인류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저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라고 할 순 없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의 이야기를 참조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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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0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5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6년 3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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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그림을 2003년 처음 보았다.

월, 목 쯤으로 기억되는데,

첨으로 웹툰이 올라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의 순정만화, 미심썰, 이런 것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마음 따스하게 읽었고,

바보나 그대를사랑합니다 같은 작품은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2006년 작품 26년이다.

 

1980년.

그 해의 광주는 한국의 현대사를 뒤집어 놓았다.

 

'독재자의 딸'이 이 멍청한 또는 불행한 나라의 다음 대통령이 될는지는 열어봐야 할 일이지만,

1970년 전태일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갈 때,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꿈꾸며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기 위해 애썼다.

 

그의 딸이 대선 후보를 나서면서 전태일 재단에 갔던 이유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의 영구집권이 저지되고 다시 혼란의 시절,

신군부가 집권하기 위해 타겟으로 삼은 것이 광주였다.

 

한국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지였고, 그때만해도 사진 전송 등의 기술이 낙후되어 자료사진이 거의 없고,

반전 운동도 미미했던 냉전의 시대여서 세계의 관심을 갖지 못하였으나,

1980년 광주는 달랐다.

세계는 자국민을 섬멸하는 공수부대를 가증스런 눈으로 쳐다보았고,

그 필름을 유통시켰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자국의 군대가 자국민에게 총을 들이민 그 사건을 눈으로 보고

손에 돌을 들고 보이지 않는 대머리를 향해 돌을 던졌다.

 

이제 32년.

광주는 '민주화 항쟁'의 자격이 없다.

아직도 광주는 '사태'의 이름이 어울린다.

그때 봉기했던 사람들은 <폭도>의 이름이 적합하다.

그렇게 대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사태...

그 핏빛 5월이 잉태한 아이들이 다시 서울 연희동으로 간다.

'그 새끼'를 응징하러...

 

그 영화를 만들려 했더니,

전두환장군님을 사모하는 모임이라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압에 의하여,

영화제작은 계속 무산되었다.

 

지금 대선 정국을 앞두고 공백기를 틈타, 26년이 개봉되었다.

작품은 슬프고, 아프다.

이런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영화는 좀 정신없이 진행된다.

만화가 박진감 측면에서 더 심장 뛰게 한다.

 

그렇지만, 왜 다시 광주인가...

26년이 흐른 지금...

아니 거기서 다시 6년이 흐른 지금...

 

왜, 이땅의 사람들은 광주의 피를 잊고, 불타죽은 용산의 꿈을 잊고,

경찰이 개패듯이 사냥하던 뙤약볕의 평택 쌍용차를 잊어가는가...

2008년 촛불의 가능성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문재인을 비롯한 퇴물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철수의 조용한 사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보는 이제 '소수정파 죽이기'에 질식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독재자의 딸이 국민투표의 결과로 대통령에 오르는 꼬라지를

두눈 뜨고 보아야 하는가?

 

가진자들의 나라로 진군, 또 진군하는 모습을,

못가진자들은 더 궁핍한 삶 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두눈 번히 뜨고 못 보는 걸까?

 

텔레비전, 종이 신문, 인터넷 포털 등을 장악했다고 해도,

불쌍하게 총맞아 돌아가신 옛 임금과 영부인의 자녀로 그저 불쌍한 여자라서,

정치 철학도, 삶의 지혜도 없는 그 여자를 청와대로 보낼 작정인가?

 

26년에서 저격하고자 하는 그 새끼와,

그 여자는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그 당시에 6억을 받았단다. 30년 전 6억...)

 

다만, '빠진 충치'처럼 생긴 그 당이 몰락하는 꼴을 내 살아 생전 보고 싶다.

내 젊은 시절 던졌던 돌들이 아무리 힘없는 돌팔매였다 하더라도,

'앓는 이' 쑥 빠져 속이시원한 꼴을 반드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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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2-12-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영화보고 왔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막막하더군요 원작의 깊이 있는 내용이 영화의 시간때문에 삭제되어 내용을 전부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전달되더군요 시간이 면죄부를 줄수는 없죠 범죄는 공소시효가 끝나더라도 남겨진 사람들 피해자들은 결코 잊을수 없습니다

글샘 2012-12-13 11:43   좋아요 0 | URL
정치적으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빼앗을 걸 못뺏고 잘 사는 걸 보는 맘이 더럽죠. ㅠㅜ

다크아이즈 2012-12-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으로 나온 만화도, 뭉근한 영화도 다 봤어요. 전 왠지 영화가 더 좋았어요.
원작 만한 영화 없는데, 만화 권하는 이의 추천 덕에 기대치를 넘 높였었나 봐요.
강풀은 스토리의 천재 같고, 요즘 최규석 만화 눈여겨 보는데, 구질구질한 감성에도 천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도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글샘 2012-12-13 1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규석의 날카로움도 좋죠.
강풀의 시나리오는 좀더 길게 가면서 감동을 주고요.

감은빛 2012-12-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영화 제작이 무산되었을 때 무척 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웹툰으로 연재할 당시에 눈빠지게 기다리다 보곤 했거든요.
올해 클라우드펀딩으로 소액투자자를 모을 때 참여했는데,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돈을 돌려주더라구요.
무척 아쉬웠습니다. 작은 돈이나마 보태고 싶었는데요.
어쨌거나 영화가 개봉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보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글샘 2012-12-13 11:45   좋아요 0 | URL
광주...가 아직도 '사태'인 한은... 이런 영화, 이런 주제가 더 많이 다뤄져야 합니다...
근데, 맨날 조폭 영화만 놔두는...
지하경제 활성화를 기하는 정권이 저렇게 표를 얻으니 참 답답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