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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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은 진부하다.

문화대혁명 시기, 성분이 별로인 집안의 딸인 징치우는 우연히 쑨젠신을 만난다.

뭐,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마는,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을 몇 가지 놓칠 수 없다.

 

징치우의 순진함.

그 순박함은 시종 독자를 답답하게 하기도 하지만,

원래 매력적인 사람은 '대교약졸'이지 않던가.

겉으로는 어수룩해보이지만, 사귀어 볼수록 '진국'인 사람.

징치우에게서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운동도 잘 하고, 매사 열심이고 의욕적인 소녀지만,

이성에 대해서는 무지해도 너무 심한 그녀에게 들이닥친 운명적인 사랑은,

그를 잠못들고 애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병든 쑨젠신과 징치우의 베드신이다.

 

여느 소설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육체적으로 그리는 부분이 나온다면,

작가가 남자든 여자든, 두 사람의 육체적인 감각의 묘사에 한켠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육신의 결합 역시 사랑의 연장선이지만, 그 짜릿한 매력에 치중하며 쓰고 읽기 쉽다.

그런데, 이 소설의 사랑을 나누는 구절은,

인간이 이렇게 깨끗할 수도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기억이 느낀 감정일 뿐이다.

 

징치우가 쑨젠신을 '남자'로서 받아들이는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진짜'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어떤 것이라도 '내것이 아니고 내 맘에 들지 않아서 싫어하는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징치우가 쑥맥같은 구석이 있어서 답답한 대목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재했던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그렇게 끌고간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두 사람의 사랑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막막한 벽 앞의 상실감으로 마감되고 만 것은 아쉽지만,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란,

어느 순간에 닥치더라도, 막막한 벽을 실감하는 순간이 될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이 나이듦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벽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여 순애(殉愛, 따라죽는 사랑)의 지경이 되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더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 두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추억들을 반추하면서, 자기도 죽을 날을 기다릴 수 있다면, 죽을 맛은 아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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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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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알라딘 소개글)

 

논픽션이라고 해서 흥미로운 요소가 적을 줄 알고 시작했는데, 착각이었다.

토막난 사체를 둘러싼 범인 잡기를 중심 사건으로 해서,

그 사건은 오히려 왜소해 보일 만큼 신문들의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진다.

 

잉크와 펄프로 만들어진 놀이동산.

 

이런 것이 '선정적인' 언론의 본모습인 것이다.

1890년대 뉴욕의 '월드'지와 '저널'지의 경쟁은,

선정적인 볼거리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옐로 키드'라는 만화를 계기로

옐로 저널리즘, 즉 황색 신문이란 말로 비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상이 이 이야기에서처럼 생생하게 전개되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추리물의 흥미진진함과 사회물의 현실성이 아찔할 정도로 독자를 이끈다.

 

1898년 초, 쿠바에 정박중인 미 해군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어 배와 승무원 대부분이 아바나 바다에 수장된 일.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라고 저널이 선언했다.

전쟁도 폭파범도 확실하지 않았는데도(갑판 아래서 발생한 석탄 화재가 원인이라 보는 사람이 많았다.)

허스트는 확고했다.

전국이 전쟁의 열기로 요동친다고 <저널>은 주장했다.(361)

 

아, 이 부분을 읽으면 천안함이 떠오른다.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아니,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사실조차도, 기사로 대서특필하는 뭔 신문이랑 하는 논조가 비슷하다.

 

그 시대, 살인 사건을 둘러싼 황색 저널리즘의 행보를 읽는 일은 코믹하고, 흥미롭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도 여전히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는 생생하게 약동하는 현실을 느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뒷입맛은 쓰디쓰기만 하다.

 

<시사상식> 옐로 저널리즘

접힌 부분 펼치기 ▼ (네이버 지식 백과)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들을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경향을 이름

1890년대에 뉴욕 시의<월드(World)>지와<저널(Journal)>지 간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사용된 술수들을 지칭한 데서 생겨났다.

조지프 퓰리처는 1883년에 뉴욕의 <월드>지를 인수하여 화려하고 선정적인 기사와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미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확보했다.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만평과 사진을 화려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 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함으로써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1895년 캘리포니아 광산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시로 옮겨와 경쟁지인 <저널>지를 인수하면서 퓰리처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그재미너(Examiner)>지를 대규모 발행부수로 대단히 성공적인 신문으로 만든 경력이 있었던 허스트는 선정주의와 홍보, 일요특집판 등을 이용하여 경쟁지들을 물리쳐 뉴욕시에서도 같은 업적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는 편집진의 일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려왔으며 또 일부를 퓰리처의 신문에서 스카우트해 왔다.

그 가운데는 <선데이 월드(Sunday World)>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던 연재만화 '옐로 키드(The Yellow Kid)'를 그린 시사만화가 리처드 F. 아웃콜트도 있었다. 아웃콜트의 변절 이후 <월드>지의 만화는 조지 B. 룩스가 그렸는데 두 경쟁지의 연재만화가 사람들의 열띤 관심거리로 등장하면서 두 신문 간의 경쟁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되었다. 이러한 총력적인 경쟁과 그에 따른 판매촉진방법들은 두 신문의 발행부수를 크게 늘렸으며 또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신문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옐로 저널리즘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든 직후 <월드>지가 점차 선정주의적 경쟁에서 물러서면서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옐로 저널리즘 시대의 몇 가지 기법, 예를 들면 전단표제라든가 천연색 만화, 풍성한 화보 등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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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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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일본어로, 쯔키노 우라가와...

우리는 달의 앞면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니, 우리가 볼 수 있는 면을 앞면이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면을 뒷면이라 할 수 있겠다.

 

삶이란 그렇다.

내가 보고 있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진실인 것 같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 하고, 공감각적 느낌을 함께 끌어들이면,

진실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철학적 사유를 던지며 여운을 남기고 엔딩이 마무리된다.

 

물의 도시,

물과 연관된 실종과 재생,

그리고 그 비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사람들.

 

그런데, 동화되지 않은 몇 명이 물의 기운에 동화되어버린 끈적하고 찝찝한 기운의 그것들을 관찰한다고 착각했던 순간,

인간을 실종되게 하는 미스터리의 비밀을 찾아다니는 자신 역시,

'그것들'의 족속이 아닌 것인지... 미궁의 소용돌이로 사고는 빠져 든다.

 

인생은 명쾌한 진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곳에 숱한 비밀을 장치해 두고 있다.

그곳을 달의 뒷면 이라 이름붙일 수도 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을 '진실, 진리'라고 우기면,

자신이 달의 뒷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제한된 존재', '유한한 존재'임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

 

뭐랄까,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71)

 

그래. 굳이 설명하려 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가는 하고 있다. ㅋ~

미스터리 작가 치곤, 꽤나 직선적이다.

 

전문가들로 골라 팀을 편성하면 순위와 실력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가 한 사람 끼면 레이스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해진다.

여자란 늘 변수요, 미지수다.(88)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늘 말한다.

여자는 '본질'이고 남자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ㅋ

달의 세계는 '음'의 세계이다. 여성적인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하는데, 거기다가 뒷면이라니...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음파의 감응은 '본질'에 가까운 여자들에게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어째 무섭다."

"인간의 상상력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다몬은 어릴 적 빗소리가 낙하하는 소리인지, 착지하는 소리인지가 궁금한 나머지 비가 올 때마다 귀 기울여 듣던 것이 생각났다.(93)

 

다몬...은 多聞일까?

눈으로 보기보다 귀 기울여 듣기에 몰입하는...

세상은 다양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인간의 공포는 보는 것 외에도, 소리로도 극대화되기도 하니깐...

 

일본인의 뇌는 벌레 울음소리라든지 빗소리처럼

본디 인간의 뇌가 잡음으로 처리해야 할 걸 정서를 관장하는 부분을 써서 듣는다.

그러니까, 원래 단순한 현상으로 처리해야 할 거세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정보 처리를 하는 바람에

보통은 보일 리가 없는 게 정말로 보이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거지.(135)

 

이렇게 듣는 일 역시 단순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 이면을 듣게 된다면, 상식이나 지식은 한 순간 무너질 터.

 

방 안에 이렇게 화살표 모빌이 잔뜩 매다려 있다 쳐.

남자는 말이지, 가끔 따로 노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는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잔뜩 매달려 있거든.

하지만 여자는 방향이 다른 화살표가 잔뜩 매달려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자기 화살표하고 여자 화살표의 방향을 맞추려고 하는데,

여자 화살표는 방향이 전부 같은 게 아니니까

어느새 다른 화살표하고 정면충돌한다든지 입체적으로 교차하고 그래.(146)

 

남자와 여자의 다른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극'처럼,

삶의 모든 국면은 변화하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은,

여자의 측면처럼 화살표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끝이란 참 조용하게 시작되누나.(259)

 

끝의 시작이라.

달의 뒷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존재, 진실을 끝으로 볼 수도 있겠다.

 

나라는 건 뭘까, 나란 누구였을까?(386)

 

나를 도둑맞는 이야기와 '나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숱한 변형을 안고 반복된다

부처의 고민도 그것이었고,

모모의 여행도 거기서 출발했다.

 

하루가 골뱅이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끝난 사람들에게,

빤히 올려다보이는 달의 희뿌윰한 빛 말고,

그 뒷편에 보이진 않지만, 거기 있는

쯔키노 우라가와가 있을 수 있음을...

소줏잔에 비치는 달님은

소줏잔을 아래서 본다면 ㅋ~

그 뒷면을 볼 수도 있잖을까를 농담삼아 안주삼아 기울인다면,

아, 소줏잔을 기울여 입안에 그 액체를 털어 넣는다면,

달의 뒷면까지를 내 안에 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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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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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보슈에 빠져드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겠다.

 

직업에 대한 전문성,

사건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통찰력,

맥을 짚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지적 번득임,

그리고 여자들을 사로잡는 섹시한 매력~

대담하게 부딪치면서 사람들과 연대하는 파워~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권력과도 불화를 서슴지않는 용기.

 

 

나약하게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그런 남자 하나쯤 선물한 작가가 고맙다.

 

장르 소설의 효용은 그런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에 역겨워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어질 때...

장르 소설 안에서만이라도,

권력도, 암투도, 어떤 검은 거래도 주인공이 날려버리는 속시원한 해결~

 

그런데 이 남자,

또한 무척이나 섬세하다.

터프하기만 하면 매력이 덜한 법인데, 한 섬세하는 이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

 

나는 손전등을 끄고 린델에게도 끄라고 하자 그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잠시 끄라고."

그가 손전등을 끄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암벽의 윤곽과 돌출면이 차츰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를 따라 들어온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로스트 라이트. 난 로스트 라이트를 보고 싶었어."

"뭐라고?"

"잃어버린 빛이란 뜻이야. 어둠 속이나 지하에서도 항상 볼 수 있지."(401)

 

음... 이런 낭만이라니...

하지만 이 낭만을 되뇌는 장소는 FBI 대원의 시신을 찾으러 간 동굴임에랴.

 

현대인은 환한 불빛에 너무 의존한다.

세상의 사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제각기 아주 약한 빛을 반사하고 품고 있는데도...

이 소설에서 '빛'이 상징하는 바는, 단순한 명암을 뛰어넘는 애수를 자아낸다.

아무리 캄캄한 곳,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곳이라도,

어둠이 간직하고 있는 빛,

숨어있는 빛, 잃어버린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해리 보슈는 일깨워준다.

 

속에서 불길이 두 줄기로 뻗쳐올랐다.

하나는 빨간 불길, 다른 하나는 파란 불길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쳤다.

하나는 분노의 감정, 다른 하나는 따스한 감정이었다.

하나는 내가 컵을 깊숙이 담글 수 있는 비난과 복수로 가득한 데블즈 펀치볼,

마음속 캄캄한 심연으로 나를 인도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끌어내어 천국의 길로 안내했다.

환하고 축복받은 낮들과 어둡고 성스러운 밤들,

로스트 라이트가 돌아오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빛.

...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410)

 

로스트 라이트는 파경을 맞았던 해리 보슈가 아내와 만나는 대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다함이 없다.

그렇게 은은한 빛으로 간직되어 있다가 삶을 다사로운 빛으로 인도한다.

 

매력남 해리 보슈는 은퇴한 경관이다.

그는 색소폰 레슨을 받는다.

그의 색소폰 선생 슈거 레이는 기억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음악이 있는 인생. 그리고 직접 그 음악에 참여하는 인생은, 빛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 역시,

로스트 라이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란 걸 나는 알겠다.

 

그가 전처 엘리노어 위시에게 느끼는 감정.

마음 속 깊이 담아둔 애정이 느껴진다.

 

나는 단발이론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

내가 알고 있는 건 엘리노어 위시가 나에겐 그 사랑의 총알이었다는 것.

그녀는 나를 깊숙이 관통했다.

엘리노어가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그것이 영영 아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144)

 

이 책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이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9)

 

작가의 마음 속에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애정으로 가득한 다함없는 인간에 대한 긍정은,

해리 보슈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을 주었다.

마음속에서 간절한 것은 결국 뚝,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해리 보슈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400페이지의 두께도 아쉬워할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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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3-04-1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어떤 경우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얼마전 링컨차를 탄 변호사 후속편에 잠시등장 존재감을 과시 해주셨죠

글샘 2013-04-17 23:23   좋아요 0 | URL
링컨차 후속편도 나왔군요
참 멋지더군요. ^^
 
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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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환상문학 작가로 유명하다.

작년엔가 별세했다.

 

이 소설의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세계에서 책은 금지된다.

책이 발견되면, 모조리 불살라진다.

저항하는 사람 역시 그렇게 한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Fireman이라고 부른다.

예전의 소방관은 불에 물을 뿌리는 사람이었다면,

이 시절의 소방관(방화수)는 등유를 뿌린다.

 

책이란 것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시대.

사람들은 벽의 텔레비전(브라운관이 달린 텔레비전도 낯설던 시대의 상상치고는 대단하다.)을 주야장천 바라보며,

텔레비전에 동화되어 사고가 제어되는 상태로 살아간다.

 

과연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짚어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가공할 노릇이다.

책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기보다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 넣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이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움츠러들거나 스스로에 대립되는 판결을 내리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책이란 옆집에 숨겨 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버려야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사람들 마음을 파괴하는 거지.

다음엔 누가 박식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99)

 

지식, 과학, 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 기술의 노예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신선하다.

 

주인공 몬태그가 만난 소녀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과연 네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너의 것인지, 텔레비전에서 말하는대로 따라하는 것인지를...

 

차를 타는 사람들은 녹색 얼룩을 보면, '아, 이건 풀이야' 그럴 거예요.

분홍색 얼룩? 그건 장미꽃 정원이지, 하얀 얼룩들은 거리에 늘어선 집들이고...

아침에 잔디밭에 나가보면요. 이슬이 맺혀 있어요.

하늘을 보실래요? 저 달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저씬 행복하세요?(25)

 

21세기에 '느리게 살기, 천천히 살기, 명상, 마음챙김' 들의 언어로 세상의 속도감을 늦추고 바라보라는 책들이

이미 그 시대에 의문 부호로 도드러진다.

과연, 행복한가?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주어지는 것만이 행복이라 착각되며 살아가진 않는지...

 

세상이 참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건 물론 좋지요.

그렇지만 그저 떼거리로 모여 있기만 하면 뭐해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개 침묵한 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해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죠.

요즘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사납게들 대하는지 아세요?(55)

 

사람이 사람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속도의 시대.

군중 속의 고독을 강하게 맡을 수밖에 없는 시대.

극복하여야할 근대, 를 헤치고 나온 '현대'라는 괴물은 인간을 더 소외시키는 자본의 힘에 예속되고 만다.

인간과 질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텔레비전 리모콘이 삶의 웃음을 대신한다.

아니, 텔레비전은 웃음마저 대신 웃어준다.

 

나는 지금 사물 자체를 애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사물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앉은 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123)

 

산다는 것은 이래야 하는데....

내가 여기서 살아 있음을,

사람과 사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글과 아이디어와 은유에 대한 저의 사랑을 통해서라면,

아무리 기이한 것일지라도 당신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275)

 

작가의 인터뷰에 담긴 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감겨있는 시대.

소방관이 등유를 뿌리는 역설적 상황을 통하여,

이해하기 힘든 세상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담아내는 소설.

 

모든 책을 태우는 온도... 파렌하이트 451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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