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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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담당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 챕터 역시 이 말로 끝난다.

책의 뒤표지에는 '양들의 침묵 이후 처음으로 이 장르 최고의 작품'이라는 둥,

'시인이야말로 고전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둥

타임 지와 스티븐 킹의 말을 빌려서 뻥을 쳐대고 있다.

흐음~

뭐, 실제 작품이 그럴지는 읽어봐야 할 노릇이다.

 

그런데, 마이클코넬리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본 나로서는,

이 책에 압도되었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글래든이라는 살인자, 정말 흉악한 '악의 화신'이 병렬적으로 등장한다.

이럴 경우, 이 살인자는 최종 주인공은 아닌 법이다.

그리고 글래든이 죽고도 아직 100페이지나 남은 스릴러는... 무섭다.

 

글래든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 뒤 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나직한 소리가 시작되어 점점 커지더니

미친 사람 같은 웃음으로 변했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웃어댔다.

그의 귀와 머리가 웃음소리로 가득 찰 때까지.(167)

 

이런 묘사도 멋지다.

 

스토리의 전개에 '소아 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고,

어린 시절부터 성적 학대에 시달린 사람들 이야기도 등장한다.

 

내 뼈가 너무 크게 자라버려서, 난 버림받았다.

아이들은 영원히 어린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380)

 

인터넷이란 것이 없던 시절, 모뎀을 이용한 범죄 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지적이면서 재미있고,

섹시한 매력이 흘러넘치면서

흥미진진하게 인물들이 대립하는 중에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게 하는 '극악무도한 악인'의 창조는,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에 버금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밀하다.

 

이렇게 열정으로 가득한 소설이라면,

장르 소설이라도 충분히 문학적 가치가 있다.

매력이 철철넘치는 멋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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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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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마이클 코넬리가 해리 보슈를 처음 탄생시킨 책이다.

이후의 몇 작품을 읽고 난 후라 그런지,

첫번째의 이 책이 지닌 무게는 유난히 강렬하다.

아마, '첫-'이란 무게가 실려 그럴 것이다.

 

해리 보슈가 베트남전에서 땅굴쥐로 생활했던 모티프를 통해서,

지하 땅굴로 '검은 돈'을 빼내는 범죄를 구상한다.

 

물론 작가의 단골은 '내부 거래자' 역시 뒤통수를 치고,

주인공은 여러 모로 곤란을 겪는다.

 

작가가 있는 소설 속에서는,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 악한들에 대한 벌줌이 가능할는지 몰라도,

현실 속에서는 과연 그 반동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 것인지...

아니, 오히려 그것이 불가능함에 인식이 닿아 이런 소설들이 <문제 해결>의 환상으로 기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건 하수구로 향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끔 그는 자기만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게 문제였다.

다들 진지하게 매진해야 하는 일 대신 취미나 부업을 갖고 있다는 것.(153)

 

범죄자를 대하면서도 그렇다.

 

옛날에 우리는 모두 어둠을 무서워하는 애들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 땅굴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어두웠는지,

파란 하늘을 등지고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일.

이건 그 친구가 땅굴 임무를 표현한 말입니다.

우린 땅굴 입구를 '블랙 에코'라고 불렀는데,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어요.

그 아래로 내려가면 자신의 공포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그 아래에 내려가면 자신이 이미 죽은 것 같아요.(239)

 

검은 메아리...

베트남에서 죽어간 전사들은 대부분 어린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을 범죄에 활용하는 사람들...

세상 참 더럽다.

그런데, 더러운 걸 더럽다고 욕하면, 그 입 더럽다고 떠드는 이들도 많다.

참 드~럽다.

 

그걸 지칭하는 이름이 없어서,

우리도 그냥 그렇게 부른 겁니다.

땅굴 속에 혼자 내려갈 때 느껴지는 축축한 공허함.

어둠같은 것들.

마치 자기가 죽어서 어둠 속에 묻힌 것 같은 느낌.

아직 살아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겁에 질렸어요.

자기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은 게,

그 소시에 자기 위치가 드러날 것만 같은 기분... 그냥 검은 메아리...(445)

 

이런 컴플렉스이자 트라우마인 이야기를 파트너이자 애인인 위시에게 늘어 놓는 해리 보슈...

참 인간적이다.

그래서 그 인간적인 주인공이 위기에 빠질 때 독자는 그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대열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기분으로 그를 찾게 된다.

 

해리 보슈의 '첫' 이야기인 만큼, 이 책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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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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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이 책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고 번역되어 나왔더라만,

나한테 있는 옛날 책을 다시 읽었다.

한창 하루키가 한국에서 번역되던 무렵.

그의 이 수필집을 사놓고, 부분부분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마라톤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그가 학생들을 가르친 이야기는 신선하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내게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 걸까에 대한 불안...

그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스무살 때는 불안했었다. 아니, 불안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에 하느님이 오셔서 다시 한번 스무살로 만들어주신다면,

그런 시절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나는 스물아홉살 때,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봄날 오후, 진구 야구장에 외야석에 눕다시피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힐튼이 2루타를 쳤고, 그때 갑자기

'맞아, 소설을 쓰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고...(209)

 

하루키의 이야기는 물론 듣는 이에게 '뭐야?' 이런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의 불안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지금같은 작가가 되어있으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비록 지금은 잘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해.

그때까지는 현실의 경험을 벽돌을 쌓아올리듯 하나하나 소중하게 쌓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213)

 

진솔하다.

그는 별 직업없이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겨우 살아온 시간도 오래다.

재즈를 듣기 좋아해서 재즈바를 운영하는 사람은,

술꾼이 술집을 운영하는 것과 같을 거다.

다만, 술꾼 중에도 멋진 시인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냥 알콜중독자로 마치는 사람도 있듯,

재즈를 듣다가 말아먹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글 속에서 늘 울려퍼지는 '긁히는 소리'에 대한 사랑이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재료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의 달리기도 그렇다.

42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은, 단조롭기 그지없는 것이 아니란다.

 

설령 짧게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것.(87)

 

그래. 우리 인생은 참으로 따분하고 기억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으로 이어져 간다.

그 안에, 완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마라톤의 시간은,

자신의 호흡과 자신의 투쟁이라는 매력이 있을 것이다.

 

재즈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한다.

들숨과 날숨이 모든 조음 기관과 마찰을 일으켜 투쟁의 현장으로 불러 일으킨다.

그 끈적거리는 소리는 듣는 이를 기분나쁘게 하기도 하는데,

재즈의 숨소리와 유사한 섹소폰 소리의 거친 마찰음도 삶을 오롯이 긁어댄다.

그 긁힘의 매력에 빠지면,

맑은 음성보다 거친 숨소리에 담긴 삶에 대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를 배우게 되는데,

그가 재즈 카페를 운영하면서 익힌 그런 거친 삶에 대한 나름의 받아들임이

재즈를 통해 울려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빗방울이 달리는 차창을 요란스레 두드려대는 그런 소리와 재즈는 어울린다.

고요한 심사보다는 온갖 갈등이 머릿속을 긁어댈 때랑 재즈는 어울린다.

그렇게 재즈를 들으면서,

삶의 부조리를 말로 표현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때,

그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구사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조각난 말보다는 원색적인 음으로서의 재즈가 삶의 양태를 더 유사하게 보여준단 걸 귀로 온몸으로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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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파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2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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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 시리즈를 몇권 읽었다.

해리 보슈, 참 멋진 남자다.

영혼이 없는 경찰 노릇을 하는 여느 형사들과는 달리, 인간미가 곳곳에서 배어난다.

그것은 저절로 이뤄진 노릇은 아니다.

 

강력계의 옛 스승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피살자들을 '살인자의 먹이'라 부르며 특별한 동정심을 보였다.

그는 일직이 보슈에게 사회에서는 모든 피살자들이 동등한 대접을 못 받지만,

진정한 형사라면 그들을 동등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여자들도 모두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어. 중요하지 않은 여자는 하나도 없다."(61)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이 가진 힘이 이런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메마른 범죄의 함정만 놓인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놓인 관계의 소중함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는 스릴러여서 더욱 매력있다.

 

보슈는 이런 친밀감을 갈망했고 그것이 주는 해방감을 즐겼다.

그는 레이철도 이런 기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게 준 선물은 그를 세상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때문에 과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입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174)

 

로맨티스트 해리 보슈의 주변엔 이렇게 감정을 터놓을 수 있는 여성들이 늘 존재한다.

메마른 세상에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가지지 못한 일처럼 슬픈 일도 없다.

 

작가는 표현 면에서도 재미있다.

 

그 말을 잘근잘근 씹어 액체로 만든 다음 현미경으로 분석해보고 싶었다.(256)

 

범죄자들이 흘린 말의 실마리를 곱씹어 생각하는 부분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미국에는 각종 전쟁에 참전했다 영혼에 잊을 수 없는 질병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람보로 대표되는 그들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회에서 엉망인 삶을 살고 있다.

이 소설 역시,

베트남전의 '땅굴'이 나온다.

범죄자 웨이츠와 보슈는 둘다 베트남의 땅굴 기지에 있었다.

 

정말 거기 있었던 모양이군, 보슈.

그런데 지금 우릴 좀 봐. 당신은 당신의 길로 갔고 난 내길을 갔어.

난 못된 개를 키웠나봐.

매클러런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잖아.

모든 사람은 마음 속에 두 마리를 개를 키우고 있다고.

착한 개와 못된 개.

그 두 마리는 노상 싸운다고 했어. 오직 한마리만 지배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싸움에서 이긴 개는 항상 그 사람이 키운 개라는 거야.

난 못된 개를 키웠고, 당신은 착한 개를 키운 것 같아.(367)

 

권력자의 놀음에 놀아난 웨이츠는 동굴 속에서 자기 성찰에 이른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개를 기른다.

 

그러나, 보슈는 웨이츠의 위치를 제대로 바라보고, 진범을 추격한다.

이런 것이 마이클 코넬리의 진가다.

가진 자들이 추악하게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추한 면을 가난한 자들에게 떠넘기는 현실을,

그 시궁창같은 현실에 비수를 들이대는 해리 보슈...

 

장자연 사건 같은 것에 커터칼 하나 들이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런 소설이 한국에서도 더 실감나게 등장해야 할 듯 하다.

독재 사회일수록, 풍자 소설이 그득한 법이니 말이다.

 

해리 보슈를 더 만나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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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곳 두어 군데

 

314. SUV를  USV라고 표현한 곳이 있다.

411. 약한 엔진을 폭발시켜 다섯 블록을 내달려... 자동차에 강한 엔진과 약한 엔진이 있을 리는 없으니, 저단 기어로 급가속을 하여 순간 가속도를 높여 내달리는 것을 뜻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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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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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블록의 소설, 아버지들의 죄.

 

알콜을 상습 복용하는

범인 체포 현장에서 발사한 총알이 죽인 꼬마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퇴직 경찰이며

시답잖은 탐정 일을 맡고 있는,

매튜 스커더.

 

그에게 맡겨진 일은 난자당한 웬디란 여성의 살해범을 찾는 일.

살해범으로 수감된 청년은 감옥에서 자살하지만, 웬디를 죽인 이유를 찾고자하는 부친.

 

이 소설에선 흥미진진한 스릴은 없지만,

웬디란 아이가 살아온 삶 - 가족에게서 분리되어 애정결핍의 상태에서 창녀 생활을 하는 삶

리처드란 아이가 살아온 삶 - 엄격한 부친 아래 모친 없이 살아온, 동성애적 삶을 살다 살인자로 몰린 삶

이런 삶들을

'죽어도 싼 인생'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 봉건 시대의 통념이었다면,

근대 이후, 아버지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로서,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이런 책도 읽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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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11-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에도 이런 아버지의 위치에 대한 고찰이 있나봐요.
아버지란 위치 참 막막한것 같아요. 제 아버지 세대와 지금 아버지는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지내시죠?

글샘 2013-11-11 13:36   좋아요 0 | URL
참 오랜만이죠? ^^
근대 생산 사회는 아버지의 위치를 집에서 분리해버린 거 아닐까요?
변화에 적응하긴 늘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