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 레인코트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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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뭔 말인지 도무지 책을 읽고 나서도 알 수가 없다.

그럴수록 자꾸 얽매인다. 할 수 없다. 털어 버려야지.

몽키...가 마약, 도박을 즐기는 사람의 속어로 쓰인다는데...

 

스릴러 치고는 스릴이 없고,

추리물 치고는 추리가 없고,

탐정물 치고도 탐정의 맛이 적고,

이 소설에서 튀는 두 인물은, 주인공 엘비스 콜과 의뢰인 엘런이다.

 

엘비스는 좀 경박한 인물인데, 좋게 보자면 유쾌하고 다스한 마음을 지닌 남자다.

"고양이 기르시는 줄 몰랐어요."

"기르는 거 아니에요. 맥주랑 음식 얻어먹기가 편한지 그냥 여기서 사네요."

고양이랑 집을 공유하는 남자다.

 

마약과 범죄 집단이 등장하는 탐정소설인데,

멋진 투우에 대한 배경도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자못(?) 시시하다.

람보나 코만도의 시대의 그림자인 1980년대에 쓰인 소설이라 그럴법도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가 쏟아붓는 폭격은 뭔가 충분한 개연성을 지니지 못한 작품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징징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증스럽다.(53)

앨런 랭이 38구경을 들고 문간에 서있었다.

파이크가 가르쳐준 대로 왼쪽 팔꿈치를 굽혀 오른쪽 팔을 지탱하면서...(351)

 

이 소설에서 가장 애정을 보이는 부분은 의뢰인 엘런의 성장이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가녀린 여성, 한심한 여성에서 람보의 심장을 가진 투사로 자라난다.

여운을 남기고 마치지만, 콜과 엘런의 후일담도 궁금할 정도다.

한 인간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을 보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흐뭇하고 즐겁다.

 

엘런이 용기를 가지고 성장하는 데, 같은 상처를 가진 남자 콜의 유쾌함이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태극권, 요가, 태권도 등 동양 무술의 달인으로 그려지는 탐정은,

뭔가 1980년대의 '쿵푸' 신드롬을 반영한 브루스 리의 후예쯤으로 보인다.

 

투우사는?

소랑 싸우는 사람?

아니, 그건 투우사에게 모욕에 가까운 표현이야.

투우사가 소와 싸운다면 소하고 원수가 져야 정상이지.

투우사는 황소를 지배하는 사람이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니야.

황소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투우사가 하는 일은 황소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결국 투우사란...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154)

 

어쩌면 투우사나 마약이나 상대방을 지배하도록 예정되어있는,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일지도 모른다.

 

피살자의 아들이 "우리 아빠 찾아 주실거죠?" 이렇게 물을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뱃속으로 길고 가늘면서 차디찬 무언가가 들어가 가슴으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117)

 

번역도 멋지지만, 원문도 참 멋질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도 정말 뱃속의 내장을 통해서 찌르르한 아픔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듯한 살아있는 표현이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듯, '행복한 사건 전문'이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과 맞닥뜨려도

유쾌하기, 행복하기를 잊지 않는다.

 

인기 미스터리 작가 로버트 크레이스의 유쾌한 작품들은

베트남전의 상처에서 끙끙대던 미국인들에게 무척이나 행복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번역이 어색한 몇 군데...

 

137. 글로브 상자... 글로브 박스(대시 보드 아래의 박스, 다시방이라고 부르는 곳)를 굳이 글로브 상자라고 해야하나? 장갑 상자는 어떤가? ㅋㅋ 그냥 글로브 박스라고 해도 될 것을...

 

141. 말아놓은 동전을 손에 쥐고...그를 갈겼다. "당신 손에 뭔가 쥐고 때렸어." ... 동전을 말아 놓는 건 어색하다. 동전을 쥔 손을 말고... 갈겨야 정상이다.

 

353. 흔히들 관상동맥이라고 부르는 증상을 겪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통증... 증상은 관상동맥 부전으로 오는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이라 불러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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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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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서쪽으로 기울어 하얗게 빛나던 띠는 절반쯤 가늘어졌다.(269)

 

 

 

 

인간의 세상은 참으로 하잘것 없는 것들로 날마다 난리도 아니다.

재난에 대한 예지력도 없어서 몰살당하기 십상인 존재들이,

툭하면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체를 떤다.

 

그런 인간종을 말끄러미 응시하는 고양이들의 세계.

 

사마귀 날개는 긴 목에 어울리게 아주 가늘고 길게 생겼는데,

듣자 하니 그저 장식용일 뿐

인간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처럼 전혀 쓸 데가 없다고 한다.(329)

 

고양이의 눈에 비친 주인의 실제 모습은

약진하는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고 그 대열에서 낙오한 채

궁상을 떨고 있는 태만한 한량에 지나지 않는다.(623)

 

소세키가 바라본 일본은,

지나치게 서구를 좇는 어리석은 '궁상 한량 집단'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그는 '마음'같은 작품에서도 인간이 본질에 대하여 눈길을 놓지 않으려 했던가 보다.

일본 내의 '도련님들'에게서 에너지를 찾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런 기세로 문명이 발달해간다면 난 살아가는 게 싫네.(586)

 

이런 것이 당시를 바라보던 소세키의 소회다.

고양이들이 바라보던 인간은 어리석고 참 보잘것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고집스런 주인의 모습에서 '당랑거철'처럼 보일지 몰라도,

물질 문명의 폭주에 당당하게 맞서는 정신은 높이 살 만 하다.

 

인간이란 천공해활한 세계를 스스로 좁혀 자기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자리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도록 잔재주를 부려

자기 영역에 새끼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란 구태여 고통을 바라는 존재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533)

 

이 소설은 잔잔한 재미로 가득하다.

스토리가 졸깃거리면서도,

만담같은 능청스러움도 있고,

그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움도 번득인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시대에 뒤처지는 편이 낫다네.

무엇보다 지금의 학문은 앞으로 앞으로만 갈 뿐인데,

아무리 가봐야 끝이 있는 것이 아닐세.

도저히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거지.

그에 비하면 동양식 학문은 소극적이고 깊은 맛이 있네.

마음 자체를 수양하는 거니 말일세.(450)

 

고전은 단순히 오래 살아남은 책이 아니다.

오랜 뒤에 읽어도, 그 책에서 날카로운 관점을 읽을 수 있는 책이 고전이다.

소세키 전집이 다시 유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129. 시로키야... 白木居...로 적혀있다. 白木屋으로 쓰는 게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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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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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법 :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원리에 따라 혹은 진리 보존적 추리 규칙에 따라 주어진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  

 

귀납법은 여러 번의 실험, 경험을 통하여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반면,

연역의 방법은 머릿속에서 결론을 도출해 낸다.

모든 추리소설은 작가가 살인한 다음 이끈 결론이 아니니 연역의 방법을 쓰는 상상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책들일진대,

심플 플랜은 제목과 같이 가볍게 시작하여 무척이나 복잡한 연역적 사고를 통해 재미를 얻게 하는 소설이다.

 

시작은 참 '단순한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히 큰 돈을 발견한 세 사람.

문제는 '세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 세 사람이 '친구'거나 '형제'라면 문제가 없다.

그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가 나쁜, 상황 판단에 장애가 있는 형과 형의 친구, 그리고 동생이었다.

 

'폐허'의 작가 스콧 스미스는 상상력의 귀재다.

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꿀 때,

형과 형의 친구는 자꾸 불안한 사고를 저지른다.

독자는 자꾸 겹쳐지는 불안의 그림자에서 언해피엔딩, 내지는 비극적 결말을 추리할 수 있다.

 

다만, 뜻밖에 불거지는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추리력이 벌이는 긴장감이 자못 재미있어 책을 쉽게 놓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가를 곰곰 되씹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지, 옳지 않은 것들이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세상을 지배하는 것인지,

그건, 사람들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피가 튀어 범벅이 된 살인 현장을,

목이 잘려 온 방안에 피가 튀어있는 장면을 묘사하는 소설이 싫은 사람이라면,

연역적으로 추리가 이어지는 이 소설의 재미에 폭 빠져들 만도 하다.

 

 

495. 와인병 사금파리 위에 무릎을 꿇었고, 사금파리는 계산원의 체중에 가루가...

   사금파리...는 사기그릇이 깨진 조각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와인병은 유리로 만들어졌으니, 사금파리보다는 유릿조각처럼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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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7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김양미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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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는 뇌를 그토록 찾아 헤맨다.

그렇지만, 허무한 해답은...

 

"허수아비야, 너는 뇌가 필요 없어.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있으니까.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단다.

세상을 오래 살수록 그만큼 경험도 쌓이는 법이야."

 

이 동화가 가르치려는 것은 이것만은 아니다.

세상은 나이들어 가면서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는 것이지만,

또한 따스한 사랑이 없이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양철나무꾼에게 심장을 얻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마법처럼 심장을 되찾게 해준 오즈의 비법은,

원래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던 존재감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법보다 더 큰 힘이다.

 

그러나,

도로시와 함께 여정을 같이 했던 양철나무꾼이 도로시를 사랑했다면... 하는 상상도 흔히 한다.

동화의 세계에서는 양철나무꾼이 서쪽나라 윙키의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고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로 마쳐지지만,

권력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심장의 온도다.

 

사자의 용기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토토란 강아지의 동반에 대해서도 역시...

 

삶은 유한한 것이다.

삶은 어느 날, 어느 순간,

자기가 뜻하지 않은 공간에 자신이란 존재가 놓여있음을 알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가 뜻하지 않았던 능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오해되면서, 세상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동쪽마녀를 죽인 도로시의 능력이나, 공부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공을 잘차는 등의 능력은... 따져보면 모두 오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되어줄 존재와,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마음과,

사랑이 내재되어 있음을 아는 자신감과,

용기를 낼 줄 아는 사고력 같은 것임을

이 동화처럼 폭넓게 들려주는 책도 드물 것이다.

 

이 책을 어른들도 읽어볼 만 하다.

<더 클래식>의 도네이션 콜렉션에서 나온 '오즈의 마법사'는 정가도 3,300원이니

마음이 팍팍한 어른들이

소주 한 잔 값에 풍요로워지는 마음을 얻게될지도 모른다.

<인디고>의 이 책은 김민지의 그림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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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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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비가 내리고 나면,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어요.

그러면 빗물이 도로에서 얼어버렸죠.

그게 블랙 아이스예요.

도로에, 검은 아스팔트 위에 얼음이 끼어있는데,

잘 보이지가 않아요.

아버지는 내게 운전을 가르쳐 주실 때마다 말씀하셨어요.

'실비아, 블랙 아이스를 조심해.

눈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잘 보이지가 않는다.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보이는 거야.

그땐 너무 늦었고, 차가 미끄러져서 어찌 해볼 수 없게 되는 거야.'

 

누구나 어느 정도는 과거에 매여 있을 거예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과거를 연구함으로써 미래를 배우게 되나.

당신은 아직도 연구하고 있는 사람 같아 보여요.(263)

 

경찰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해리 보슈는 살해당한 경찰의 아내를 만나고,

실비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블랙 아이스는 마약의 속칭이다.

마약 거래를 둘러싼

거대한 자산의 흐름과, 인간 관계의 파열을 둘러싸고,

보슈의 수사는 멕시코까지 흘러간다.

 

눈앞의 위험은 늘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또 달콤하게 풀어내다니.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고서 드러나는 반전은 굉장하다.

스릴은 적지만, 대단한 반전을 기대해도 좋은 작품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181)

 

세상 만사가 그럴 수도 있다.

너무 깔끔한 것은 오히려 작위적인 냄새를 풍긴다.

 

단단한 껍질 속에 상처와 외로움을 숨기고 있겠지만,

힘도 가지고 있었다.(48)

 

돈 앞에선 어린 시절의 추억도, 인간 관계도 다 무너져 버리게 생겨먹은 이 세상.

사람들은 '세계-내-존재'로 태어나 그 마법의 <자본> 앞에서 무력하다.

그렇지만,

또 사람은

사람만이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힘'을 가진 존재다.

 

흔들리는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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