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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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추리소설로서 뛰어나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청소년들이어서 풋풋한 느낌을 재미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무서운 살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우연한 교통 사고의 원인을 알게 된 주인공은,

학교 생활지도부와 맞붙는다.

 

동급생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 야구부 주장, 니시하라.

그는 참 멋지고 쿨한 성격을 가진 성격으로 그려지는데,

잇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실패한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도 흥미지진하다.

 

이거야 원.

기분이 우울해졌다.

교사가 살해당한 이 마당에,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것보다

학교의 수치를 세상에 숨기는 이리 이들에게는 더 중요한가 보다.(223)

 

한국이나 일본은 이런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끝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없는 한, 문제는 자꾸 은폐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학생들은 교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인권무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교사는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하지만,

이쪽에서 저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281)

 

작가가 학교에 대한 관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그의 에필로그에서 절절하게 보인다.

 

초등학교때부터 교사들이 너무나 싫었다. 왜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아저씨 아줌마들이 잘난 척을 하고 다니는 것인지 늘 불만이었다.

"사회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마다,

"대학 나와서 곧바로 교사가 된 당신도 학교 일 말고는 아는 게 없잖아?" 하고 나는 종종 생각했다.

"어른들의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나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가 되는 거야.

그런 녀석들이 마치 우리에게 교육을 베풀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싫어한 것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나는 주의 어른들 대부분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들 자신은 색과 욕망과 돈밖에 흥미가 없는 주제에,

상대가 어린애라고 훈계, 설교를 늘어 놓는다.

 

무척 고생했다. 너무 고생을 해서, 처음으로 후기라는 것을 써 보기로 했다.(에필로그)

 

이 책과 함께 '학교의 슬픔(다니엘 페낙, 문학 동네)'을 읽고 있었다.

그래.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는 슬픔의 장소일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는 게 없잖아?' 하는 물음에 솔직히,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그렇다.

어른들은, 아는 게 없고, 아이들을 가르칠 주제들이 아니지 않은가 싶다.

 

지금도 어느 숲속에서 실탄을 장전하고,

이 사회와 맞서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고 있을지 모르겠을 어떤 탈영 병사를 생각하면,

그의 죄는 정말 나쁜 일이지만, 과연 이 사회는 그에게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한 해는 참으로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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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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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라는 새는 말이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군.

때까치나 멧새 둥지에 말이야.

그러고는 다른 어미 새에게 새끼를 키우게 한대.

탁란이라고 하는 거죠.(395)

 

뻐꾸기 알은 아무 죄가 없다. (424)

 

뻐꾸기 알은 생부 뻐꾸기의 것도, 길러준 멧새의 것도 아니다.

뻐꾸기 알은 부화되고 나면,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 부모의 문제에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해 보이는 사건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얽혀있다.

역시 히가시노게이고의 플롯을 엮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황금 알은 보통 알보다 깨지기 쉽다고 하니까.(250)

 

사람은 무언가에 주리지 않고는 성장하지 않기 때문(251)

 

유망한 스키 선수를 둘러싼 이야기들도 나름의 재미를 준다.

크로스컨트리 등의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의 배경은 역시 홋카이도이며,

설국 속에서의 스키를 타는 부분 묘사도 멋지다.

 

무엇보다 마지막 부분에서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얽히고 설킨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힘든 추리의 힘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독자를 흥분하게 만든다.

 

잔인하거나 공포만을 양산하는 추리소설에 비하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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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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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것처럼 불렀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사들인 부류들은 바다를 ‘엘 마르’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인 것처럼 불렀다.

그러나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 무생물에도 성의 구별을 두는 스페인어에서는 바다를 여성형으로 ‘라 마르(la mar)’,

남성형으로 ‘엘 마르(el mar)’라고 부른다.(31))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줄거리는 참으로 단순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인의 마음을 내 마음에 담아두고,

노인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았다.

 

거친 노인의 육신은 힘이 넘치지만, 젊은 시절에 비하면 근력이 많이 떨어졌고,'

84일동안 허탕을 칠 정도로 운도 쇠진했다.

 

몇 방으로 때려잡을 수 있던 상어에게도 치명타를 가할 수 없고,

몸에는 쥐가 난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의 활기를 회상하는 노인의 아스름한 추억에 잠기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의 노년을 조금이라도 준비해야하겠다는 조급증도 든다.

하지만, 뭐 언제는 준비해서 어른이 되고, 준비해서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던가 생각해 보면,

이러구러 사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도 든다.

 

노인의 투쟁에 관심을 보이며 읽을 때와는 달리,

노인이 집으로 돌아와 앓아 누워 깊은 잠에 빠지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육신의 노쇠와 함께 정신의 각박함도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스스로 굳건한 심사를 지키려는 고집도 필요한 일일 게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도,

조금 다른 시점으로 읽으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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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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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환상을 보게 하는 꽃.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주는 소소한 재미는 몇 종류가 있는데,

나미야 백화점 식의 따스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러면서 몇 가지의 스토리가 이리저리 엮이면서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느끼는 재미~

 

또는 한여름의 방정식 류의 과학적, 수학적 지식이 뒤얽히는 소설의 재미~

 

이런 것들이다.

그의 소설을 아직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이 소설은,

프롤로그의 임팩트가 굉장하다.

대단하다.

 

그런데... 그만, 거기서 너무 인상적이어서... 뒷부분이 실망스럽다.

그 임팩트를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끌고나가는 힘이 부족하고,

제목과 꽃에 얽힌 스토리와,

원자력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작위적인 얽힘을 보여주는듯...

 

계속 판매 1위 자리를 지키는 환상적인 표지는 기대를 한껏 고조시키지만,

실망도 있을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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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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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원에서 행하는 모든 발표의 배후,

그러니까 제 경우에 비추어 말하자면 체포와 오늘 심리의 배후에 어떤 거대한 조직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략) 그런데 여러분,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상대로 무의미하며 제 경우에서처럼 대개 아무 성과도 없는 소송을 벌이는 것입니다.”

 

가난하던 시절,

내 꿈 - 아버지의 꿈은 내가 법조인이 되어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난 공부를 잘 했지만, 법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후견인 없이 불안한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시위 현장에서 여러 번 경찰서를 가보기도 했고,

나이들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 본 결과,

법조인이 돈을 번다는 일은... 참 부조리한 사회의 결과물이지 싶다.

 

소송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참담했다.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고,

이해되는 스토리도 하나도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소송에 휘말리고, 억압당한다.

인간 존재는 소송과 재판정 앞에서 무화된다.

그런 것이 소송의 의미다.

 

소송이란 유령에게 휘말려 본 사람들은 이 소설의 부조리함의 두려움을 더 실감하리라.

허나, 얼마 전 읽은 장애인 노들야학의 교장 박경석이

법정에 수십 건으로 소송당한 사람이, 참으로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장애인이란 신분을 이용하여 법관의 자애를 얻어내며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소송이라는 것은,

가진자들을 위하여,

누리지 못하는 자들의 외침을 막는 가장 '정치적인 것'의 최일선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부조리한 자들이 내지르는 일갈이 바로 '법으로 대처하겠다.'인 것으로 보면, 그렇다.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이 입을 상처를 생각지도 않고 망언을 내뱉은 자들은 '쏘리' 하면 그만이지만,

정부에게 질책하는 잠수사, 시민들은 소송에 휘말린다.

소송은 부조리한 정권을 수호하는 수호천사인 것이다.

 

그 소송을 주관하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저울을 들고 있다.

가진 것 없는 너희의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듯이.

그리고... 무서운 무지막지한 검을 들고 있다.

죽기 싫으면 까불지 말라는 듯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말도 안돼~! 하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이게 소설이란 말인가?

이게 질서란 말인가?

 

그런데 한발 떨어져 생각해 보자.

 

이것이 국가인가?

이것이 대통령이고, 이것이 총리인가?

이것이 여당이고, 이것이 야당인가?

 

그리고 나도 그렇다.

 

이것이 교사인가?

이것이 학교인가?

 

삶의 어느 한 지점, 부조리 아닌 점이 없지만,

그 극치는 역시 '소송'이다.

 

2008년 이후, 촛불 집회가 끝나지 않았다.

민변은 바쁘다.

소송의 부조리 시대가 바야흐로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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