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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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멋지고, 표지도 멋지고,

히가시노게이고를 읽던 끝에 온다 리쿠가 보여서 빌려온 책인데...

 

주제의 무한한 변주가 이어진다.

변주란 것이 원래, 주제를 좋아하고 익숙해지면 흥얼거리고 따라읽기 편하기도 하지만,

그 주제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못하면 그 반복에 지루해하기 쉽다.

 

별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미스터리의 변주에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다.

 

우리 모두가 기억을 날조하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날마다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372)

 

기억이란 것은 진실을 모두 함축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변조되고 날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업작가가 된 지금도 연간 2백 권이나 읽는다면서요?

아니죠. 2백 권밖에 못 읽고 있어요.

 

이런 인터뷰를 보면 즐겁다.

그런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일본 사람들의 상상력은 한국인들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는데,

히가시노게이고에 비해서 온다리쿠 쪽이 더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잘 맞을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이 내겐 더 직선적이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다.

 

온다 리쿠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특히 여성들이라면 그의 문체를 매력적이라 느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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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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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들을 읽노라면,

제일 첫페이지에서 잔인하고 무섭게 살인이 일어난다.

그래서 독자는 그 살인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모자이크같은 사건들에 몰입하기가 쉽다.

이런 것이 그의 소설이 가진 힘들 중 하나다.

 

여느 장르소설들이 인물들의 이름을 다 알기도 전까지

한 백여 페이지는 지루하게 흘러가기 십상인데,

히가시노게이고는 독자가 딴전을 부리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사나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좀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어쩜 베르나르베르베르처럼 자신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벋어나가는지를 실험하기라도 하는 듯...

 

게이고를 일컬어 수많은 서랍을 가진 작가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듯이,

그의 관심 분야는 참으로 다양하다.

과학적인 분야에서도 '갈릴레오' 탐정을 기용할 정도로

물리학 교수를 영입하고 있으며,

스키같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발군의 관심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전작들과는 다른 방향의 재미있는 분야를 개척한다.

그의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바탕으로한 것들이었다면,

이 소설은 환상 여행을 하게 한다.

 

어느 날, 초등학교 옥상에서 빛나는 무지갯빛 환상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 빛으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받고 집중력을 높이며, 점점 중독성을 띠게 된다.

그러나 그 중독성은 꼭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었는데...

그 광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둘러싸고,

돈을 벌려는 자들과, 그들을 파괴하려는 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광악을 통한 젊은 세대의 '아우라'는 어떠한 부정도 소쇄하게(기운이 맑고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의 마무리는 열린 구성이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지도 않고,

주인공 편이 환상적 성공을 거두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희망으로 가득찬 아우라를 보여주며 소설은 맺는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마무리가 허생이 사라지는 것으로 열려 있듯,

독자들이 <비현실적인 결말>을 상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소설 자체가 <비현실 적임>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잔인한 살인사건과 그 해결,

이런 장르소설도 재미있지만,

마치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상상력을 따라 여행을 하는 듯,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드는 재미를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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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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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를 뜨문뜨문 읽었는데,

군대간 아들이 좋다고 보내달래서

사서 미리 읽고 보내주노라니, 전작주의자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올해 또 유난히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굳이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연히 찾아오는 그런 것.

 

탐정물이나 추리물에서 잘 등장하는 산장이 여기도 나와주시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파티를 열기로 하는데,

뜻밖의 괴한들의 포로가 되고...

 

중간쯤 읽으면서는 트릭을 조금은 눈치챌 수 있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트릭이 아니라,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이 연극의 협조자는 누구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책을 몇 페이지 남겨놓지 않고서야 진실을 밝히는 작가도 참 대단하다.

 

산장 살인사건은 좀 식상한 구도이지만,

특별히 강도가 튀어나오는 이야기도 특이하고,

약을 담고 다니는 통에 약이 뒤바뀌는 과정을 교묘하게 심리전을 펼치는 일도 재미있다.

 

마음을 텅~ 비우고

시간을 즐기기엔,

그러니 울 아들처럼 군인아자씨에게는

최고의 작가가 역시 히가시노게이고이지 싶다.

 

평소에 책을 안 봐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ㅋ

히가시노게이고를 통해서 죄책감을 사함 받는 일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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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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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보슈

이번에는 콘크리트 속에 매장된 블론드의 미녀를 만난다.

 

보슈는

금발 미녀 창녀를 불러 살해한 뒤 화장을 하는 '인형사'를 추적하고,

급기야 범인에게 총격을 가하여 죽이는데...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 드라마로 좀 심심하게 진행된다 싶더니,

창녀들을 이용한 포르노 산업과 관련된 작자들,

포르노 전문 형사, 관련 교수 등이 인형사의 '모방범'일 것으로 추측되면서

급진전을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과연 '민중의 지팡이'인지,

과잉 진압을 일삼는 국가 폭력인지,

그 재판대에 선 해리 보슈를 대상으로 공격하는 챈들러라는 유능한 미녀 변호사까지 등장하여,

과연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악으로 지목되어 재판정에 선 보슈는

'인형사' 사건과는 또다른 양상의 '모방범'을 찾으러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소설은 제2막을 열게 되고 새로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 회에 온 가족이 둥글게 둘러앉아 파티를 하게 된다는

너무나도 뻔한 '대단원'을 짐작하게 하는 한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마지막까지도 범인을 알아맞히기 힘들게 하면서,

급기야 허를 찌르는 살해 대상에 이르기까지,

세상사의 쉽지 않음을 작가는 너무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다.

그 재미는 단순히 스토리 라인을 따라 흐르는 쾌감뿐만 아니라,

아드레날린이 풍기는 흥분뿐만 아니라,

왠지 인생의 쓴맛을 바라보면서 대뇌 가장 바깥부분에서 진하게 풍기는 전류가

보슈의 말보로 쓴맛처럼 진하게 감겨오는 데서 느껴지는

공감각적 쾌감이라고 하겠다.

 

강력반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란 사실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인간에겐 살인이 예술이듯,

살인사건 수사도 그것을 사명으로 아는 형사에겐 예술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선택한다.(62)

 

코넬리 소설의 진수는 이런 문장을 만나는 데 있다.

세상 살이는 그래서 어렵고, 재미있다.

 

뛰어난 음악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당신은 음악가가 되었는가, 음악가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소용없다.

음악 따위가 인류에게 뭐란 말인가, 하면서 비난해도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뛰어난 음악가에겐, 그저 음악이 주어졌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직업적 부름을 '소명'이라는 말로 쓴다.

경찰도 그렇다.

돈벌이로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분명 있고,

부업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일이 그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보슈가 그렇다.

이처럼, 보슈란 인물을 통하여, 인생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

그런 것이 성공하는 '형상화'인 것이다.

 

"이건 갈취야."

"아니지, 병신아, 이런 게 바로 정의야."(199)

 

"잘 들어, 이 좆만 한 새끼야. 보슈가 너희집 강아지 이름이야?

난 네가 첫 번째 법률서적을 열기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처리해 왔어.

그리고 네가 컨버터블 사브를 몰고 센추리시티에 그 이기적인 허연 낯짝을 들이민 한참 후에도

이렇게 처리해 왔다고."(508)

 

경찰은 범인과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있지만,

또한 범인을 구속기소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지휘명령에 따라야 한다.

세상에는 헌법에서 인정한 '인간의 행복 추구권'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범죄자들은 그 약자들을 이용하고 짓밟으면서 더 큰 이권을 따지만,

늘 법률은 그들을 비호한다. 검찰 조직 역시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미필적 고의로 범죄자들 편에 서는 일도 흔하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 보슈는 빠큐를 날리는 셈이다.

 

당신이 한 일들은 다 얘기하면서 감출 건 또 감추잖아요.

우린 친밀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때려눕힌 남자에 대해선 얘기하면서

왜 당신 자신에 대해선 입을 다물죠?

당신과 당신의 과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게 뭐죠?

우린 그것부터 풀어야 해요. 해리.

아니면 서로를 모욕하는 걸 그만두든가요.(202)

 

연인 실비아의 질문은 해리같은 남자들의 가슴에 쿵, 하는 큰 발자국소리를 남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인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말로 어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명확히 알면서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님을 실비아가 좀 알아주면 좋겠다.

과거가 추잡하거나 비열하여 감추는 것이 아님을...

 

검은 심장은 혼자 뛰지 않습니다.(221)

 

장르 소설 작가도 이런 멋진 시를 쓴다는 게 놀랍다.

 

진실은 조각조각 드러나기 때문에 나쁜 것처럼 보이죠.(235)

 

법정에서 일어나는 진실 공방은,

사건을 통으로 보지 않고 조각조각, 기억들의 파편을 되짚어낸다.

결국 그것이 진실에 가까이 갈 수도 있지만,

진실을 호도하는 일이기도 한 셈인데,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애쓰는 모든 직업인들이

엉뚱한 파편 때문에 아파하는 일이 있다면,

이런 소설로도 큰 위무를 받을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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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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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낚시'로 시작해서 '낚시'로 끝난다.

 

우리 집안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39)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구분이 없었던 시절.

인공의 구분이, 어린이와 학생을 나누고,

기혼과 미혼을 나누고, 부자와 가난뱅이를 나누고,

잘나가는 직장과 실업자를 나눈다.

 

그런 것들이 의미없던 시절의 고요함...

 

정지용이었다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듯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

이라고 묘사했을 그런 고요한 세상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고요한 세상을 살았던 인생에 대한 감사의 오마주다.

일흔이 넘어서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행운이다.

 

네 박자 리듬은 아주 훌륭한 기능을 발휘한다. 하나에 낚싯줄, 리더, 플라이가 물에서 나온다. 둘에 이 셋을 공중으로 곧바로 들어올린다. 셋은 우리 아버지의 설명대로라면 이렇게 된다. 낚싯줄이 머리 위에 왔을 때 리더와 플라이에 약간 지체하는 시간을 주어서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낚싯줄을 뒤따르게 한다. 넷에 손에 힘을 넣으며 줄을 앞으로 던져 10시 방향이 되게 한다. 이어 플라이와 리더가 줄보다 앞에 서게 하여 물속으로 가볍게 떨어지는지 확인한다. 힘은 아무 데서나 발휘하라고 있는 게 아니고, 진정한 힘이란 그것을 어디다 쓸 것인지 아는 데서 나온다. 아버지는 거듭하여 말하곤 했다. “기억해라. 낚시란 말이야, 10시 방향과 오후 2시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네 박자 리듬이야.”(44)

 

지금 세상은 몸으로 겪는 일이 거의 없다.

기계를 움직여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몸이 느끼는 미묘한 정적과 흐름을 잡아내는 그 순간에 대한 몰입이 아무래도 흐려진다.

 

대충 넣어도 간이 맞던 부뚜막의 소금처럼,

낚싯줄을 네박자 리듬으로 흔드는 사람들의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언어로 표현해도 전달이 전혀 되지 않는다.

다만, 같이 마음으로 므흣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마 예전에 동네 사람들끼리

꽹과리를 두드리던 상쇠나

열두발 상모를 돌리던 청년이나

풍년이라도 든 연후에 농악놀이를 놀면서 그런 흐벅진 감정을 맛볼 수 있지 않았으려나?

온몸에 땀기운으로 무럭무럭 김을 내면서 바라보던 눈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유의 느낌.

그런 것이 현대인들에게서는 사라진다.

 

각자 제 모니터를 바라보고 따로 산다.

엄청 시끄러운 음악의 현란한 비트를 즐기는 듯 하지만,

시속 150 킬로미터의 속도감을 즐기는 것 같지만,

고요함의 아름다움이나 걷는 일의 소박한 상쾌함을 잊고 살게 된 지 오래다.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조용한 감동 중의 하나는

영혼이 잠시 당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당신이 우아하게도 뭔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 물건이 물 위에 떠다니는 티끌일지라도 말이다.(105)

 

이런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책을 읽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윽고 모든 것은 하나로 융합되고

그 속으로 하나의 강이 흐른다.

강은 세상의 대홍수에 의해 조성되었고,

시간의 근원에서 흘러나와 돌들 위로 흘러간다.

어떤 돌들에는 태곳적의 빗방울이 새겨져있다.

그 돌들 아래에는 말씀들이 있고,

그중 어떤 것은 돌들의 말씀이다.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201)

 

이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며 작가는 빙긋이 웃음지었으리라.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보는 일은

세상사에 흔들리는 마음을 재우는 일이기도 하다.

무념무상으로 이끄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사는 일은 행복하다.

 

강물의 반짝임 하나에서도,

태곳적의 물고기가 비늘 번득이는듯 보이는 그 시간,

인간은 한없이 겸손해질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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